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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열정적인 사랑을 하려는 남자의 치명적 문제들

by 무한 2012. 12. 13.
열정적인 사랑을 하려는 남자의 치명적 문제들
노멀로그가 병원이고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이 환자라고 치면, 처방이 어려운 환자가 딱 세 부류 있다.

- 아프지도 않으면서 거짓말로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
- 묻지마 민간요법까지 다 쓰곤, 심박이 멎은 후에야 병원을 찾은 환자.
- 다리가 부러졌는데 당장 내일 축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



열정적인 사랑을 하려고 하는 남자는, 위의 세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고, 답변을 듣기 위해 상대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상대가 이쪽을 차단할 정도로 질색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그녀와 다시 친구로라도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라며 사후약방문의 방법을 묻는다. 거기다 하나같이

"제가 보내는 이런 사연은, 읽어보신 적 없으실 겁니다."


라며 자신만이 운명적인 사랑을 지향하는 로맨티스트인 척 한다.

이런 사연은 주로 20대 초중반의 대원들이 보내는데, 요즘 대학 기말고사 시즌이라 그런지 사연이 부쩍 늘었다. 시험시즌엔 잉여력이 폭발하기 마련이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연애 고민 때문에 책을 볼 수가 없습니다."라며, 부모님이 내 주신 등록금을 까먹는 대원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은 그렇게 혼자 달아오른 대원들을 좀 식혀줄 생각이다. 출발해 보자.


1. 믿기 어려운 고백.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전 처음부터 A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억지로 마음을 접었죠.
이성적으로 참다보니, 참아지더군요.
그런 후에는 다른 여자를 짝사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냈고, 지금은 A를 정말 사랑합니다.
이젠 더 이상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녀와 잘 되고 싶은데,
(사연설명부분 생략)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사연만 놓고 보면 그냥 일반적인 '찝쩍이'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찝쩍 스타일' 남자들이 그런 방식의 구애를 한다. '연애할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놓고 이성을 대하는 까닭에, A에게 호감을 가졌다가도 가능성이 더 높은 B가 나타나면 B에게 들이댄다. 그러다 B와 잘 안 될 것 같으면 다시 A에게 돌아오거나, 그 상황에서 더욱 가능성이 높은 C에게 대시한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전 다른 남자들처럼 찝적거린 게 아니고, A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제자리로 돌아온 겁니다."라고 말한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다른 '찝쩍남'들도 다 그런 얘기를 한다. 그들이라고 해서 전부 가짜감정으로 들이대는 거 아니고, 마음에도 없으면서 막 고백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남의 일이니까 가볍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여기서 보면 사연을 보낸 대원이나 다른 남자들이나 다를 게 없다.

백 번 양보해서 남들이 하는 건 '찝쩍거림'이고, 사연을 보낸 대원이 한 행동은 '진짜사랑으로의 회귀'라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여자에게 열심히 구애하는 걸 다 목격한 상대에게 "내가 사실 정말 사랑하는 건 너였다."라고 말하는 건, 신뢰도 안 갈 뿐더러 조금 웃기기까지 한 일이다. 그걸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반전멘트'라고 생각하는 건, 미안하지만 만화나 드라마의 부작용이다. 

사연을 보낸 대원이 아니라 다른 남자가 그랬다고 해보자. 며칠 전까지 다른 여자에게 선물을 사다 바치던 A군. 그가 갑자기 또 다른 여자에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너."라며 고백한다. 그 고백이 진실성 가득한 감동적인 고백처럼 보이는가?

이제 이 여자 아니면 안 된다거나,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얘기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슨 소리를 갖다 붙이든, 믿음이 안 가는 건 마찬가지다. 유일한 해결책은 앞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차차 진심을 증명해 가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열정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들은 당장 상대에게 믿을 수 있냐, 없냐를 대답하라고 요구한다. 믿기 어려운데 어떻게 연애로 이어지겠는가. 그렇게 사요나라.


2. 구애를 거절당하면 발생하는 문제들.


먼저, 섣부른 결론짓기로 인한 회복불가의 문제가 있다. 구애가 거절당하자 상대나 주변인들에게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다. 마음을 접겠다느니 정리를 하겠다느니 하는 얘기를 해서 결론을 짓는다. 하지만 아직 미련과 아쉬움이 남은 까닭에 그는 입장을 번복해 구애를 한다. 작은 바람에도 거세게 흔들리는 나무에 어찌 둥지를 틀 수 있겠는가. 아침에 고백, 저녁에 절교, 다시 아침에 고백을 말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로그아웃을 결심한다.

그 다음으로는 자기비하를 읊조리는 '비련의 주인공 코스프레'의 문제가 있다.

"난 이러이러한 상황이니까, 이런 내가 네 마음에 들진 않겠지."
"그래. 네 선택이 현명한 것 같다."
"피해 주고 싶지 않다. 그냥, 나 혼자라서 계속 좋아하겠다. 이건 허락해 달라."



막 던지다 보면 하나라도 걸리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대책 없이 던지는 거다. 상대가 죄책감을 느껴서라도 자신을 받아 주길 바라는 경우가 있으며, 일말의 가능성은 남아 있지 않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비하를 가장한 떠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전부 상대에겐 부담으로 치환된다는 걸 모른 채 계속 던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양지에선 침묵하고 음지에선 수다스러워지는 모습'을 보이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절절한 마음을 글로 적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상대를 피하거나 상대 앞에서 어색한 분위기만 조성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종교화'라는 이야기로 여러 차례 소개한 적 있으니 이전 매뉴얼을 참고하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문제도 있다. 열정적인 구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에너지를 모두 증오로 바꿔 상대를 적대시 하는 태도다. 이 역시 [주변의 아는 여자를 멸종시키는 남자, 문제는?]이라는 매뉴얼에서 '초토화 시키고 떠나는 문제'라는 제목으로 설명한 적 있다. 상대가 날 차단해야 진정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빨리 차단당하고 싶어 안달 난 행동'을 벌이는 남자들. 그들이 여기에 속한다.


3. 편하게 생각해? 친하게 지내자?


상대에게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해서 상대가 편하게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내가 이렇게 매뉴얼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 빨리 안 오냐고 다그치지 말고, 상대의 속도에 맞추라는 얘기를 예순 여섯 번쯤 한 것 같다. 하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하려는 남자는 상대와 속도를 맞춰 걸으면서도,

"이제 우리 뛸까?"
"좀 더 빨리 걷는 게 어때?"
"내가 지금 네 속도에 맞추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좀 빨리 가자."



따위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상대의 속도에 맞추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는

"무한님, 조급해 하지 않고 속도를 맞추는데 더 빨라지지가 않네요. 어쩌죠?"


라는 이야기를 한다.

같이 밥 먹고 놀아야 친해지는 거고, 애정이 생기고 신뢰가 생겨야 편해지는 법 아닌가. 같이 밥 한 번 먹은 적 없고 겨우 인사만 나누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편하게 생각해. 친하게 지내자."라는 말만 하는 대원들이 있어 가슴이 아프다.

의도가 불순하다거나 그대가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라며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사람들도 결코 나쁜 의도로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는 그게 날 돕는 것이라 생각해 벌이는 일일 것이니 말이다. 선물을 주고, 고백을 하고, 이벤트를 벌이는 일이 "마음 전하러 왔습니다."라며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어느 남성대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

"결혼식장까지 찾아가 사랑하는 여자를 쟁취해 오는 남자,
공항까지 찾아가 사랑하는 여자를 못 떠나게 막는 남자,
전 그런 남자가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열정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싶은 건지도…."



희망사항을 가지는 건 자유다. 하지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열정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 상대를 거기다가 끼워 맞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태도를 바꿔보자. 혼자 달아오르는 역할극은 그만하잔 얘기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초인종이 울렸다.

"…이 땅에 보내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영하 13도 인데, 참 대단하다. 입이 얼어서 말도 잘 못하시면서 이렇게 찾아오시는 건, 저 분 나름대로의 소명의식과 열정, 신념이 있기 때문 아닌가.

"그녀의 집 앞에서 밤새 기다려서라도…."


노래선물을 해주고 싶다. 자우림의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 맹세하지 말고, 약속 하지 말고, 기적만 바라지 말고, 같이 식사부터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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