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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오빠동생에서 한 발짝 더 다가서지 못하는 남자

by 무한 2012. 12. 11.
오빠동생에서 한 발짝 더 다가서지 못하는 남자
자기 캐릭터를 만드는 게 참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쇼핑몰에서 어중간한 가격대를 차지하고 있는 들러리 상품처럼 되어 버릴 수 있다. 최저가도 최고가도 아닌 평균가 정도에 있는 애매한 상품 말이다.

캐릭터는 본인의 특성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까닭에, 내가 콕 집찝어서 권하기는 어렵다. 만약 내가 사연을 보낸 S군의 입장이라면 얼마 전 웹에서 유행했던 "어서와~"라는 걸 이용해서 캐릭터를 만들 것 같다. 강의실에서든 과방에서든 누군가 들어오면 "어서와~"를 외치는 '어서와 오빠'가 되는 것이다.

재치가 좀 모자란 편이라면 살짝 덕후적인 느낌을 풍기면서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초콜릿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초콜릿 오빠'나, 바나나우유에 목숨을 거는 '바나나우유 오빠'가 되는 것이다. 이걸 잘 활용하면, "이거 정말 내가 아끼는 건데 주는 거야."라며 초콜릿 한 조각을 건네는 것으로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조선시대 역사공부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명종이나 인종 등의 왕은 존재감이 살짝 가벼운 반면, 세종은 훈민정음 똭! 고종은 커피 똭! 그런 엣지가 있기에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다. 사연을 통해 바라본 S군은 뚜렷한 외곽선 없이 전형적인 '아는 오빠'의 이미지만 갖고 있으니, '캐릭터'와 관련해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연구하길 권한다. 어려운 거 아니다. 핸드크림 하나 사서 가지고만 다녀도 만들 수 있는 게 캐릭터다. (핸드크림을 바를 때마다 "밤~ 밤바라밤밤~ 발라버려~"라며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를 부르면 캐릭터가 쉽게 만들어진다. 핸드크림 오빠. 혹은 발라버려 오빠. 추천하진 않는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 기회가 왔는데 왜 잡지를 못하니.

S군이 영어를 전공했다고 하니 잘 알 것 아닌가. "미드 영어자막으로 보면 영어실력 느나요?", "문법은 정말 볼 필요 없나요?"라고 묻기만 하는 사람들은 백 날 가도 같은 질문만 계속 하게 된다는 걸 말이다. 뭐든 일단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드를 보든 단어를 외우든 매달려서 하다보면 조금씩 뿌리를 내려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 것처럼.

사연에 나온 둘의 대화를 보자.

상대 - 공모전 준비 중인데, 환희를 나타내려면 뭐가 좋을까요?
S군 - 꽃이 들어가면 어떨까? 만발한 꽃. 팝콘처럼 터지듯 피는….
상대 - 오! 괜찮네요. 벚꽃처럼!
S군 - 그것도 괜찮고… 음, 갑작스러워서 생각이 잘 안 나네. ㅋ
상대 -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시면 또 얘기해 주세요~
S군 - 응. 알았어.



저기까진 별 문제가 없다. 그 다음이 문제다. 분명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면 또 말해주기로 약속을 해 놓고, 그 이후 둘은 '환희'에 대한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방치해 둔 채,

"걱정이네요. 이제 곧 방학하면, 연락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S군 때문에 난 답답하다. 내가 S군이었다면, 저 대화를 나눈 그 순간부터 주제가 정해지는 날까지 '환희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리하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살았을 것이다. 상대가 아직 자고 있을 이른 아침에도 뜬금 없이,

"자는 중이지? 미안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환희에 대한 거, 헹가래 치는 걸로 표현하면 어떨까?"



라는 카톡을 보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망설임 없이 전송했을 거란 얘기다.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상대가 정한 주제에 대해 묻고, 진지하게 들어줬을 것이다. 기발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며, 완성되면 꼭 보여달라는 얘기도 했을 것이다. 결과 발표가 날 때엔 입상이면 축하주, 낙선이면  위로주를 샀을 것이다. 이게 바로 '참여'다.

'좋은 기회'가 오기를 바라거나, 그녀에게 뭘 해줘야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 등은 '참여' 다음에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S군은 현재 소극적인 태도로 상대의 물음에만 응답하며,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있듯 '언젠가는 우리가 연인이 되기를' 바라고만 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지만 말고, 우선 앞에 놓인 그 좋은 기회들부터 잡아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


2. 상대도 어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상대의 이야기에 보호본능을 자극받아, 다짜고짜 보호자가 되려는 달려드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지방에서 올라온 까닭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학교-집-학교-집 매일 그런 생활이죠."
"주말엔 그냥, 티비 봐요."



딱 저 정도의 이야기만 듣고도

'그래, 얜 지금 인생을 재미없이 살고 있어. 내가 힘이 되어줘야해.'
'아마 약간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거야.'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이 있을 지도 모르지. 상처가 깊을 게 분명해.'



따위의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다. 전에 소개한 사연에서 나왔던 비슷한 장면을 보자.

남자 - 힘들지?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
여자 - 네? 제가 왜 울어요?
남자 - …….



상대는 그저 좀 심심하단 얘기를 했을 뿐인데, 이쪽에선 상대를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생각하며 상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넓은 오지랖을 자랑하는 몇몇 대원들은 대놓고 보호자 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상대의 사생활에까지 참견하는 것이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S군에게서도 살짝 저 '보호본능'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져서 하는 얘기다. 여자의 푸념이나 투정, 하소연은 꼭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걸 해결해 주면 상대가 고마워하며 보답으로 마음을 줄 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대원들이 많은데, S군은 그 착각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에 빠지면 몸, 시간, 돈만 버리게 되니 말이다.

"오빠가 너무 다 해주는 것 같아서, 좀 그래요. 제가 할게요."


대신 해주려고 하니까 호의가 부담으로 치환되어 버리는 거다. 대신 해주려 하지 말고, 같이 하자.


3. 매력남의 필수조건, 융통성.


융통성에 대한 뜻을 사전에 찾으면 아래와 같다.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
또는 일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하는 재주.

- 표준국어대사전, '융통성'에 대한 설명.


S군은 저 융통성이 부족하다. '음료수'문제는 어떻게 각색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적자면, 그런 상황에선 내 몫의 음료수를 상대에게 주거나 다시 편의점에 다녀오면 금방 해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S군은 "그녀 몫의 음료수를 사지 않은 게 좀 마음에 걸렸어요. 그녀가 거기로 올 줄 몰라서 안 샀던 건데, 좀 실망한 눈치더라고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난 솔직히 이걸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사람이 넷인데 음료수를 세 개 밖에 사지 않아 그녀에겐 음료수를 주지 않았다니. S군이 마신 음료수는 S군 몫으로 산 거니, 양도가 불가능 하단 얘긴가? 편의점 가서 하나 더 사오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것인가?

무슨 일인지 여기다 밝히진 않겠지만, 그 사건도 있지 않은가.

"너무 오빠가 다 사는 것 같아서 싫어요."


저 때는 나중에 얻어 먹기로 합의보고, 일단 지르는 거다. "이것까지는 내가 살 테니까, 나중에 커피 사." 정도로 넘어가면 다음 '커피 약속'도 자연스레 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싫다고 하는데 내가 산다고 하면 부담스럽겠지. 그래. 그냥 조용히 있어야겠다.'


그렇게 융통성 없이 진지해져 버리면, 상황이 붕 떠버리는 거다. 또, 커피숍 사건도 마찬가지다. 삼십 분 정도만 이야기 하다가 들어간다는 상대를 두고,

"지금 삼십 분 된 것 같은데, 정말 들어갈 거야?"


라고 물을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S군이라면 상대가 이야기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시계를 볼 생각이 들지 못할 정도로- 최선을 다할 것 같다.

연애는 정답과 오답으로 갈리는 객관식이 아니라, 그 순간을 차곡차곡 써 나가는 서술형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거기엔 상대를 설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처럼 상대에게 "예, 아니요."라는 대답만 들으려 하지 말고, 때로는 과감히 리드하자.


마지막으로, 예전에 발행한 [여자에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남자, 이유는?] 이라는 매뉴얼을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그 매뉴얼의 소제목 2번이 현재 S군의 태도다.

남자 - 오늘 점심 같이 먹을까?
여자 - 저 오늘 학교 못 갈 것 같아요.
남자 - 왜?
여자 - 아파서 누워 있어요. 이따가 병원 가려고요.
남자 - 수업 듣고 가면 되잖아~ 그냥 와~
여자 - 저 진짜 아파요 ㅠ.ㅠ
남자 - 할 수 없지 그럼. 병원 다녀와서 푹 쉬어~
여자 - 네.



애정 없이 열정만 있으니 저런 행동을 하게 되는 거다. 상대가 아픈 것과 같이 밥 먹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입장을 바꿔 S군이 학교도 못 갈 정도로 아픈데, 상대가 전화해서는 밥 얘기만 하고 끊어버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마음에서 소리치는대로 별 생각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저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저런 짓을 저질러 놓고 "스키장 같이 갈래?" 따위의 얘기를 백 번 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방학하면 못 보게 된다느니, 영화를 보자고 할 건데 괜찮냐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는 내려두고, 얼른 연락해서 아픈 건 좀 나았냐고부터 물어보길 바란다. 



▲ 영국의 좌측통행 하는 도로 진짜 적응 안 됨. 어제만 사고를 몇 번 낼 뻔 한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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