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사연모음] 판도라의 상자를 연 여자 외 2편
매뉴얼로 발행하긴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꾸 눈에 밟히는 사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간. 금요사연모음의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주 수요일에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입히는 고슴도치녀, 문제는?]이라는 매뉴얼을 발행한 이후 '고슴도치녀'관련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구남친에게 얼마나 모질게 굴었는지를 회개하는 고해성사부터 어째서 여자 잘못인 것처럼 말하느냐고 따지는 항의까지 다양한 메일을 받았다.
가까이 살면 우리 동네 커피숍에 함께 앉아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눌 텐데(포인트는 내 카드에 적립),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지면의 한계상 모든 얘기를 다 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모두 식중독인 것은 아니잖은가. 다만 사연을 보낸 대원이 식중독(고슴도치녀)과 가장 유사한 증상을 보인 것이고, 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런 건 여야가 잘 합의해서 결론을 내라는 건 훼이크고, '고슴도치녀'관련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부터 좀 전하는 것으로 오늘 매뉴얼을 시작할까 한다. 출발해 보자.
질문이 많으니 문답 형식으로 풀어보자.
A. 남자친구가 '성인(聖人)'이라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간사해질 수 있는 '보통사람'이라면, 그 방법은 사용하지 말길 권한다. 농담이 하고 싶은 거라면 "오빠는 어서 여왕님 순방 맞을 준비를 하도록!" 정도로 풀어 가면 된다.
말의 힘이라는 게 참 무섭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오빤 참 똑똑해. 컴퓨터도 잘 하고."라고 말하는 것과, "난 컴퓨터 잘 못 하는데…. 압축도 내 친구가 해줬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사연에선 남자친구가 자신이 연애에 소홀히 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그 와중에 (장난으로라도)한 번 더 넙죽 엎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A. "이번에 대학 가지?"라는 물음이라고 해보자. 저 말만 떼어놓고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현역 수험생에게 "이번에 대학 가지?"라고 묻는 것과, 삼수생에게 "이번에 대학 가지?"라고 묻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여자는 오픈 준비로 인해 연락이 줄어들고, 단답을 할 때가 많으며, 크리스마스 만남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 남자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픈 준비하느라 바쁘고… 와서 고생만 하게 될까봐 걱정이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걸 여자는 "와도 제대로 데이트 할 수 없을지 모르는데, 오고 싶으면 와."라는 뉘앙스로 들었던 것이고 말이다. 비슷한 뜻의 말이지만 "조금만 같이 고생하자, 금방 좋아질 거야."라는 말과 "나중에 좋아질 거니까 지금은 고생좀 해."라는 말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 보길 권한다.
A. 연인이니까! 비지니스가 아니라 사랑이니까! 그렇게 하면 자존심 세우고 손익계산 하느라 남남처럼 지내는 것 대신, 포옹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머리카락을 팔아 시곗줄을 산 델라. 짐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시계를 팔아 '머리 핀'을 산다. 아아, 짐의 그 대사 읽으며 난 참 많이 울었는데….
"델라,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분간 치워 두자고, 지금 당장 사용하기엔 너무 훌륭한 것들이니 말이야. 당신 핀을 사 주려고 나는 시계를 팔았거든."
서로 하나 더 가지려고 목에 힘을 주는 커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상대에게 하나 더 주려는 커플이 되고 싶은가?
A. 노멀이 아니라 무한이라고! 싸우자!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 수 있는 남자친구의 메일함, 메신저, 카카오톡, 미니홈피 등에 접속한 뒤 멘붕을 경험하는 대원들이 종종 있다. 남자친구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갔다가 여자친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흑역사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로그인 중인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경우가 많다.
흑역사까지는 이해해 주라고 권하고 싶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문제를 현재로 가지고 와 논하기 시작하면, 계속 비난만 하게 된다. '친구에게 내 얘기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진중한 남자들은 자신의 연애를 쉽게 말하지 않지만, 아직 철이 없거나 호사가인 남자는 자신의 연애를 소재로 삼아 대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따위의 폼도 잡을 수 있다. 내 친구 K군이, 실제로는 월급 180받으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연봉? 별로 못 받아. 오천 좀 안 되지."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절대 귀엽게 보이진 않겠지만, 그냥 허세와 철없음이 섞여 나타난 증상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에게는 즉시 헤어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우선, 다른 여자에게 여자친구 험담을 하며 "네가 더 낫다. 우리 같이 여행가자." 따위의 얘기를 하는 남자는 싹수가 노란 거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의 남자친구는 그 '다른 여자'가 셋이나 된다.
둘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그 남자도 싹수가 노랗기는 마찬가지다. 걔는 그냥 아는 여자 술자리에 불러주는 대가로 술 얻어먹는 포주다. 둘이 사귀고 난 뒤 주선자와 남자친구가 나눈 대화들은 가관이다.
가장 낮은 수위의 대화가 저 정도다. 여자친구 신체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그럼 다른 애로 해줄까? 토요일 날 신천에서 콜?" 따위의 멘붕을 부르는 얘기가 가득하다.
똥 밟은 거다. 다른 사람 같으면 첨부된 201개의 대화기록 중 한 개만 봐도 이미 이별을 결심했을 텐데, 그걸 다 보고도
라고 말하는 저 대원은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늘 얘기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 정도로 빠져 있으면 헤어 나오는데 한참 걸릴 것이 분명하기에 난 참 속이 쓰리다. 어쩌면 좋을까. 저 대원은 남자친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기세인데.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될 때, "안 해 본 거라, 또 내가 잘 모르는 거라 난 못 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게 뭐든 일단 발을 담그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태도로 삶을 살게 되면 '익숙한 것'만 고집하게 되며 '새로운 것'에는 늘 겁을 먹게 된다. 때문에 남들이 새로운 곳을 다니며 경험을 축적할 동안, 겁먹은 그 사람은 딱 자기 팔이 닿는 위치까지만을 살아간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져 '경험 없음'이 자신을 갉아 먹게 되고, 작아질 대로 작아진 그 사람은 결국엔 제자리에서 숨을 쉬는 것에만 만족하게 된다.
사연을 보낸 대원의 과거는 '못 해'와 '몰라', '안 해'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고,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며,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에게 올인 하고, (이쪽이 겁쟁이임을 눈치 채)상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지 걱정하며, 다툼이나 갈등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대가 낯선 모습을 보이면 일단 매달려서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다.
그간 만났던 남자들이 죄다 별로였기 때문이라며 맞장구 쳐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위의 이야기들을 좀 풀어 놓았다.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게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또 무릎부터 꿇을 것이며, 그 모습을 본 상대는 이쪽을 만만하게 보고 말 것이다.
5만 원짜리 외투와 50만 원짜리 외투를 똑같이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런 일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 아닌가. 50만 원짜리 외투는 옷걸이에 걸어두지만, 5만 원짜리 외투는 아무데나 던져두기 마련이다. 옷에 음식을 흘리거나 오물이 묻지 않을까 주의하는 것도 50만 원짜리 외투 쪽이 훨씬 더하다.
사연을 보낸 대원과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변화한 지인을 목격한 적 있다. 혼자 있을 땐 머뭇거리고, 여럿이 있을 땐 묻어가려 하던 지인이었는데, 일 년 간 공부를 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 모임에서 직책도 맡아 활동했다고 하던데, 목소리와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을 좀 짜증나게 만드는 성향도 함께 생겼다는 부작용이 있긴 한데, 지금처럼 '5만 원짜리 외투취급'을 받는 것에서는 확실히 벗어날 수 있을 테니 한 번 시도해 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커플생활의 성장통'이라는 제목의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에게 답장을 하는 것으로 매뉴얼을 마칠까 한다.
사연대로라면 남자친구가 판타스틱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는 게 맞다. 휴대폰 검사를 하고, 친구 만나러 가는데 따라 나오고, 메일함을 뒤적거리는 것은 분명 '집착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런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을 보낸 대원의 행동도 한 몫 했다. 구남친이 보낸 메일을 간직하고 있는 점, '9년 된 친구'라며 이성친구와 따로 만나는 점 등이 지금의 남자친구를 자극한다. 게다가 "친구들 만날 때 알아서 집에 들어갈 건데, 날 기다린다거나 합석하려고 하면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 '9년 된 친구'가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은 남자친구를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애정을 분산하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모든 애정을 독차지 하고 싶은 남자. 필연적으로 둘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남자친구가 폰 번호를 바꾸라고 해서 바꿨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가지고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남자친구가 5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데, 남자친구는 자신이 10이 되고 싶어 하니 말이다.
내 여동생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쨌든 난 헤어지길 권할 것이다. 남자가 너무 폭력적이다. "내가 보는 앞에서 보내."라든가 "못 보게 하는 게 수상한 거다." 따위의 말을 하며 억지로 자신의 뜻대로 여자를 조종하려 하는 점. 또, 지인들에게 마음대로 전화해 관계를 휘저어 버리려고 하는 점들이 남자친구로서는 실격이다. 단, 이쪽의 애정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떠한 형태로든 상대에게 전달된다는 것 역시 잊지 않고 말해줄 것이다. 애정을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아, 상대의 태도가 점점 기형적으로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기 바라며!
▲ 아침에 밖에 나갔다가 천국문 두드릴 뻔 했음. 내린 비가 다 얼어서 문워크로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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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로 발행하긴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꾸 눈에 밟히는 사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간. 금요사연모음의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주 수요일에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입히는 고슴도치녀, 문제는?]이라는 매뉴얼을 발행한 이후 '고슴도치녀'관련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구남친에게 얼마나 모질게 굴었는지를 회개하는 고해성사부터 어째서 여자 잘못인 것처럼 말하느냐고 따지는 항의까지 다양한 메일을 받았다.
가까이 살면 우리 동네 커피숍에 함께 앉아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눌 텐데(포인트는 내 카드에 적립),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지면의 한계상 모든 얘기를 다 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모두 식중독인 것은 아니잖은가. 다만 사연을 보낸 대원이 식중독(고슴도치녀)과 가장 유사한 증상을 보인 것이고, 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위궤양일 수도 있는데 왜 그런 얘기는 안 하시나요?"
"저도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이틀간 도토리묵 먹고 나았어요."
"공감하기 어렵네요. 저건 위암아닌가요? 저 여자가 불쌍하네요."
"저도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이틀간 도토리묵 먹고 나았어요."
"공감하기 어렵네요. 저건 위암아닌가요? 저 여자가 불쌍하네요."
그런 건 여야가 잘 합의해서 결론을 내라는 건 훼이크고, '고슴도치녀'관련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부터 좀 전하는 것으로 오늘 매뉴얼을 시작할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고슴도치녀 사연에 대한 얘기들.
질문이 많으니 문답 형식으로 풀어보자.
Q. 그러면 "오빠 보고 싶은 내가 올라갈게. 일시키든 구경만 하게 하든 오빠가 알아서 해. 대신 밥은 먹여줘~"식으로 애교를 섞어 이야기 하면 될까요?
A. 남자친구가 '성인(聖人)'이라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간사해질 수 있는 '보통사람'이라면, 그 방법은 사용하지 말길 권한다. 농담이 하고 싶은 거라면 "오빠는 어서 여왕님 순방 맞을 준비를 하도록!" 정도로 풀어 가면 된다.
말의 힘이라는 게 참 무섭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오빤 참 똑똑해. 컴퓨터도 잘 하고."라고 말하는 것과, "난 컴퓨터 잘 못 하는데…. 압축도 내 친구가 해줬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사연에선 남자친구가 자신이 연애에 소홀히 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그 와중에 (장난으로라도)한 번 더 넙죽 엎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Q. 남자의 대답이 왜 문제죠? 저건 여자친구가 올라와도 데이트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염려와, 와서 고생만 할까봐 걱정이라는 배려가 잘 담겨있는 것 아닌가요?
A. "이번에 대학 가지?"라는 물음이라고 해보자. 저 말만 떼어놓고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현역 수험생에게 "이번에 대학 가지?"라고 묻는 것과, 삼수생에게 "이번에 대학 가지?"라고 묻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여자는 오픈 준비로 인해 연락이 줄어들고, 단답을 할 때가 많으며, 크리스마스 만남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 남자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픈 준비하느라 바쁘고… 와서 고생만 하게 될까봐 걱정이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걸 여자는 "와도 제대로 데이트 할 수 없을지 모르는데, 오고 싶으면 와."라는 뉘앙스로 들었던 것이고 말이다. 비슷한 뜻의 말이지만 "조금만 같이 고생하자, 금방 좋아질 거야."라는 말과 "나중에 좋아질 거니까 지금은 고생좀 해."라는 말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 보길 권한다.
Q. 왜 저 상황에서 여자가 연락하고 만나러 가라는 답을 내신 거죠? 남자가 자기 일 때문에 바빠서 귀찮다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굳이 여자가 먼저 손 내밀 필요가 있나요?
A. 연인이니까! 비지니스가 아니라 사랑이니까! 그렇게 하면 자존심 세우고 손익계산 하느라 남남처럼 지내는 것 대신, 포옹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머리카락을 팔아 시곗줄을 산 델라. 짐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시계를 팔아 '머리 핀'을 산다. 아아, 짐의 그 대사 읽으며 난 참 많이 울었는데….
"델라,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분간 치워 두자고, 지금 당장 사용하기엔 너무 훌륭한 것들이니 말이야. 당신 핀을 사 주려고 나는 시계를 팔았거든."
서로 하나 더 가지려고 목에 힘을 주는 커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상대에게 하나 더 주려는 커플이 되고 싶은가?
Q. 노멀님. 제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화났다고 표현을 해도 저런 남자는 똑같아요. 포기하든가 헤어지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 나을 거예요.
A. 노멀이 아니라 무한이라고! 싸우자!
2. 판도라의 상자를 연 여자.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 수 있는 남자친구의 메일함, 메신저, 카카오톡, 미니홈피 등에 접속한 뒤 멘붕을 경험하는 대원들이 종종 있다. 남자친구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갔다가 여자친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흑역사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로그인 중인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경우가 많다.
흑역사까지는 이해해 주라고 권하고 싶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문제를 현재로 가지고 와 논하기 시작하면, 계속 비난만 하게 된다. '친구에게 내 얘기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진중한 남자들은 자신의 연애를 쉽게 말하지 않지만, 아직 철이 없거나 호사가인 남자는 자신의 연애를 소재로 삼아 대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야, 여자친구는 나처럼 휘어잡고 있어야지. 왜 쩔쩔 매냐?"
"스킨십? 연애 하면 스킨십이 지겹다 인마. ㅋㅋ"
"사귀어 봐야 아는 거지, 뭐 지금 결혼을 논할 단계는 아니니까."
"스킨십? 연애 하면 스킨십이 지겹다 인마. ㅋㅋ"
"사귀어 봐야 아는 거지, 뭐 지금 결혼을 논할 단계는 아니니까."
따위의 폼도 잡을 수 있다. 내 친구 K군이, 실제로는 월급 180받으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연봉? 별로 못 받아. 오천 좀 안 되지."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절대 귀엽게 보이진 않겠지만, 그냥 허세와 철없음이 섞여 나타난 증상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에게는 즉시 헤어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우선, 다른 여자에게 여자친구 험담을 하며 "네가 더 낫다. 우리 같이 여행가자." 따위의 얘기를 하는 남자는 싹수가 노란 거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의 남자친구는 그 '다른 여자'가 셋이나 된다.
둘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그 남자도 싹수가 노랗기는 마찬가지다. 걔는 그냥 아는 여자 술자리에 불러주는 대가로 술 얻어먹는 포주다. 둘이 사귀고 난 뒤 주선자와 남자친구가 나눈 대화들은 가관이다.
주선자 - 야 원래 B급이랑 사귀어야 편한 거야. A급 사귀면 피곤해.
남친 - 얜 C급이잖아. ㅋㅋㅋ
주선자 - ㅋㅋㅋ 그래도 걘 착하니까 B급으로 해줘.
남친 - 얜 C급이잖아. ㅋㅋㅋ
주선자 - ㅋㅋㅋ 그래도 걘 착하니까 B급으로 해줘.
가장 낮은 수위의 대화가 저 정도다. 여자친구 신체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그럼 다른 애로 해줄까? 토요일 날 신천에서 콜?" 따위의 멘붕을 부르는 얘기가 가득하다.
똥 밟은 거다. 다른 사람 같으면 첨부된 201개의 대화기록 중 한 개만 봐도 이미 이별을 결심했을 텐데, 그걸 다 보고도
"남자친구가, 원래는 착한사람 입니다…."
라고 말하는 저 대원은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늘 얘기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 정도로 빠져 있으면 헤어 나오는데 한참 걸릴 것이 분명하기에 난 참 속이 쓰리다. 어쩌면 좋을까. 저 대원은 남자친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기세인데.
3. 구남친들에게 매번 무시당했다는 여자.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될 때, "안 해 본 거라, 또 내가 잘 모르는 거라 난 못 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게 뭐든 일단 발을 담그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태도로 삶을 살게 되면 '익숙한 것'만 고집하게 되며 '새로운 것'에는 늘 겁을 먹게 된다. 때문에 남들이 새로운 곳을 다니며 경험을 축적할 동안, 겁먹은 그 사람은 딱 자기 팔이 닿는 위치까지만을 살아간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져 '경험 없음'이 자신을 갉아 먹게 되고, 작아질 대로 작아진 그 사람은 결국엔 제자리에서 숨을 쉬는 것에만 만족하게 된다.
사연을 보낸 대원의 과거는 '못 해'와 '몰라', '안 해'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고,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며,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에게 올인 하고, (이쪽이 겁쟁이임을 눈치 채)상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지 걱정하며, 다툼이나 갈등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대가 낯선 모습을 보이면 일단 매달려서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다.
그간 만났던 남자들이 죄다 별로였기 때문이라며 맞장구 쳐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위의 이야기들을 좀 풀어 놓았다.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게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또 무릎부터 꿇을 것이며, 그 모습을 본 상대는 이쪽을 만만하게 보고 말 것이다.
5만 원짜리 외투와 50만 원짜리 외투를 똑같이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런 일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 아닌가. 50만 원짜리 외투는 옷걸이에 걸어두지만, 5만 원짜리 외투는 아무데나 던져두기 마련이다. 옷에 음식을 흘리거나 오물이 묻지 않을까 주의하는 것도 50만 원짜리 외투 쪽이 훨씬 더하다.
사연을 보낸 대원과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변화한 지인을 목격한 적 있다. 혼자 있을 땐 머뭇거리고, 여럿이 있을 땐 묻어가려 하던 지인이었는데, 일 년 간 공부를 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 모임에서 직책도 맡아 활동했다고 하던데, 목소리와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을 좀 짜증나게 만드는 성향도 함께 생겼다는 부작용이 있긴 한데, 지금처럼 '5만 원짜리 외투취급'을 받는 것에서는 확실히 벗어날 수 있을 테니 한 번 시도해 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커플생활의 성장통'이라는 제목의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에게 답장을 하는 것으로 매뉴얼을 마칠까 한다.
사연대로라면 남자친구가 판타스틱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는 게 맞다. 휴대폰 검사를 하고, 친구 만나러 가는데 따라 나오고, 메일함을 뒤적거리는 것은 분명 '집착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런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을 보낸 대원의 행동도 한 몫 했다. 구남친이 보낸 메일을 간직하고 있는 점, '9년 된 친구'라며 이성친구와 따로 만나는 점 등이 지금의 남자친구를 자극한다. 게다가 "친구들 만날 때 알아서 집에 들어갈 건데, 날 기다린다거나 합석하려고 하면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 '9년 된 친구'가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은 남자친구를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애정을 분산하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모든 애정을 독차지 하고 싶은 남자. 필연적으로 둘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남자친구가 폰 번호를 바꾸라고 해서 바꿨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가지고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남자친구가 5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데, 남자친구는 자신이 10이 되고 싶어 하니 말이다.
내 여동생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쨌든 난 헤어지길 권할 것이다. 남자가 너무 폭력적이다. "내가 보는 앞에서 보내."라든가 "못 보게 하는 게 수상한 거다." 따위의 말을 하며 억지로 자신의 뜻대로 여자를 조종하려 하는 점. 또, 지인들에게 마음대로 전화해 관계를 휘저어 버리려고 하는 점들이 남자친구로서는 실격이다. 단, 이쪽의 애정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떠한 형태로든 상대에게 전달된다는 것 역시 잊지 않고 말해줄 것이다. 애정을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아, 상대의 태도가 점점 기형적으로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기 바라며!
▲ 아침에 밖에 나갔다가 천국문 두드릴 뻔 했음. 내린 비가 다 얼어서 문워크로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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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집착하는 남자만 만나는 여자, 문제는? (72) | 2012.12.17 |
열정적인 사랑을 하려는 남자의 치명적 문제들 (45) | 2012.12.13 |
오빠동생에서 한 발짝 더 다가서지 못하는 남자 (52) | 2012.12.11 |
옛 여자친구를 잊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최형에게 (83) | 2012.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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