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사연모음] 인기를 즐기는 남자 외 2편
매뉴얼로 발행하긴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꾸 눈에 밟히는 사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간. 금요사연모음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은 갈 길이 머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오해할 수 있는 게 맞다. 그 트레이너가 했다는
따위의 말들은 확실히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하루 종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상황에선 누구라도 '혹시 내가 이 사람과 연애를….'이라며 김칫국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그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면, 그게 그냥 '서비스'라는 걸 알 수 있다. 서비스란 사랑이라는 것에서 '표현' 부분만 따로 떼어내 발달시킨 것 아닌가. 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서비스다.
주희양이 '썸남'이라고 착각 중인 그 트레이너는 여자친구가 있다. 여자친구 없는 사람처럼 자유분방하게 행동하고 연락하다가, 사람들이 계속 추궁하자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간 결혼은 마흔 넘어서 할 생각이라느니, 외롭다느니 하는 얘기를 잘도 뱉어냈으면서 말이다. 그 사실을 안 주희양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넌 나쁜 남자야."라는 식의 돌직구를 던지자, 그는
라며 정색했다. "주어가 없는 말이니 책임질 필요가 없다."식의 황당한 변명이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얼른 벗어나길 권한다. 주희양은 "다른 사람들이 트레이너의 서비스를 호감으로 착각하는 것과 제 얘기는 달라요."라고 말하는데, 전혀 다른 점이 없다. 다들 그런 식으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진짜."라고 생각하다 코 베인다.
트레이너 남자친구와 관련된 끔찍한 사연으로,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PT회원이 안 모인다."라는 얘기를 듣는 여성대원의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PT를 받으며 만난 트레이너와 사귀며, 자신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했다. 그런데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연애는, 늘어나는 남자친구의 요구들로 인해 시궁창이 되고 말았다.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들 PT하는 걸 질투하려면 헬스장에 나오지 말 것, 일 때문에 연애한다는 숨겨야 하니 그렇게 알 것, 일하고 있을 땐 연락하지 말 것, 집에서 다른 여자 전화를 받아도 일 때문이니 이해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저런 연애가 정상적인 것인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라는 얘기는 못 하겠다. 어쩌면 51.6%의 사람들(시각에 따라서는 48%의 사람들)은 "남자가 저러는 것도 다 돈 벌자고 하는 건데, 이해해야 하지 않냐."고 말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여하튼 거기서 엄하게 미련 운운하며 방바닥 긁지 말고, 어서 그 상황을 박차고 나오길 권한다.
그냥 한숨만 나오는 사연도 있었다. 노멀로그를 읽으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며 "이젠 전처럼 부담스럽게 들이대지 않고, 여자와 좀 친해지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남성대원의 사연이다.
뭔가 이번엔 제대로 썸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그가 첨부한 카톡대화를 열었다. 그런데 거기엔
라는 말들이 적혀있었다. 대체 뭐가 '좀 잘 되어가고 있다'는 걸까? 저건 그냥 아부다. 예전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서 맹렬하게 구애했다면, 지금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따위의 아부만 하는 거다.
급격한 실망이나 격한 질투만 문제가 아니다. 맹목적으로 상대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문제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자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좋은 남자' 코스프레를 하면, 그 역효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히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사연을 보낸 대원이 상대가 리액션을 해 주면 정신줄을 놓아버린다는 부분이다. 부정적인 부분에서의 급격한 감정변화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에서의 감정변화는 여전하다. 상대가 "ㅋㅋㅋ"라고 웃기라도 하면, 사연을 보낸 대원은 갑자기 광분해 상대를 더 웃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있는 힘껏 던지는 것에만 열중한 나머지 폭투하고 마는 것이다.
상대도 나만큼의 사고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대화해야 한다. 상대 나이가 어린데다가, 이쪽에서 허튼소리를 해도 리액션을 잘 해주니 '얘는 이 정도에 넘어올 애'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 역시 속으로는 '이 오빠는 이 정도의 오빠니까, 웃으면서 분위기 좀 맞춰줘야겠다.'라며 웃는 거다. 회사 부장님들이 이걸 모르는 까닭에, 부하직원들이 리액션을 좀 해주면 '내가 유머감각이 좀 있는 듯'이라며 착각한다.
지금처럼 지내다간 '술주정 들어주고 밥 사주는 웃긴 오빠'가 되고 만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아, 카톡으로는 상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애드립'은 직접 만나서 상황 봐 가며 하는 게 좋다는 것도.
'고슴도치녀'와 관련된 사연 중 '너무나도 예민한 그녀'라고 할 수 있는 여성대원의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첫 연애를 하고 있는 이십대 초반의 여자사람으로, 취미가 '서운해 하기'고 특기가 '질투'다.
그녀는 너무 잘 멈춘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친구와 통화를 하면,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따위의 생각을 한다. 혜민스님 같은 분이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많을 것들을 보며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겠지만, 사연을 보낸 대원이나 나 같은 속인들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많은 것들을 보며 번뇌가 많아진다. 까딱 잘못하면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같이 TV를 보다가 남자친구가 걸그룹의 누가 예쁘다는 얘기를 하자, 그녀는 토라져선 차가운 얼굴로 집에 가 버린다고 한 적도 있다. 그 상황에서 남자친구가
라며 하소연하자,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예전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손도 잡고 포옹도 하며 그 데이트를 잘 마무리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워서는 다시,
라며 멈추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그녀는 "이젠 날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이야?"라고 남자친구를 추궁했다. 남자친구는 그녀를 열심히 달랬고 그녀도 그 자리에선 수긍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마음에 의문이 생겨 내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의 마음을 예전으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멈추는 빈도'를 최소화하길 권한다. '일어난 일'을 바꾸려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 '일어날 일'을 변화시키란 얘기다. 남자친구에게서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 계속 예민하게 굴다간, 참혹한 미래만이 찾아올 것이다. 기차표 인쇄가 흐릿하게 되어 있다고 따지다가 기차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 있으면서 스킨십을 허용하는 여자'를 두고 고민 중인 대원의 사연을 살펴볼까 한다. 둘은 올 여름에 직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 이상한 관계가 시작된 것은, 그녀가 사연의 주인공에게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한 직후부터다. 가을쯤 그녀가 주선한 소개팅이 있었는데, 여차저차 하다 보니 소개팅이 끝나고 주인공은 주선자인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게 되었다.
술자리에서부터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있기는 했다. 주인공이 그녀의 친구에게 관심을 표하며 살갑게 굴자, (2차로 술을 마시러 간 자리에서)뜬금없이 스킨십을 해대며 질투를 한 것이다. 주인공은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일종의 주사라고 생각해서 넘겼다. 하지만 친구를 데려다 주고 주인공과 그녀만 남게 되었을 때 -이게, 수위조절이 필요한데- 아무튼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한참 열심히 일을 하다가 그녀가 갑자기 우린 이러면 안 된다며 가버렸다. 그는 '역시 술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그런 일이 몇 번 더 일어났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싸우고 지금 우는 중이다. 내 방으로 와 줄 수 있나?"라며 그를 부르기도 했고, 그에게 할 말이 있다며 불러내선 안기고 더듬거리는(응?) 짓을 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궁금했던 주인공은 그녀에게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를 묻기도 했다. 그녀는 '우린 친구'라고 답했다. 혹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자신과 사귈 생각이 있냐고 묻기도 했는데, 그녀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답했다.
주인공은 이게 저울질 당하는 건지, 아니면 어장관리를 당하는 건지, 또는 그녀도 자신을 좋아하지만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고 내게 사연을 보냈다.
불장난이다. 언젠가 작은 산불을 낸 적 있는 내 친구의 마음과 비슷하다. 왜 산불을 냈냐고 묻는 질문에 내 친구는 "그냥, 주머니에 라이터도 있고, 춥기도 했고, 낙엽도 보이기에…."라고 답했다. 산불을 낼 무슨 계획이나 목적 같은 건 없었던 거다. 그녀 역시 술을 마셔서 취기가 오르기도 했고, 심심하기도 했고, 마침 그때 앞에 남자도 있었고, 뭐 그런 식의 상황에서 불장난을 한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서 계획이나 목적 같은 걸 찾는 건 무의미한 일일 가능성이 높으니, 남자친구에게 집중하라고 한 마디 해주고 어서 본인의 연애궤도로 돌아오길 권한다.
▲ 발행이 하루 늦어 죄송합니다. 어제가 지구 종말이라기에 사과나무를 좀 심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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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로 발행하긴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꾸 눈에 밟히는 사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간. 금요사연모음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은 갈 길이 머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 인기를 즐기는 남자 트레이너.
오해할 수 있는 게 맞다. 그 트레이너가 했다는
"주희가 나랑 놀아주겠지~"
"제일 열심히 해서 예쁘니까, 내가 와인 한 번 사주도록 하지."
"운동 그만둬도 내가 친구 해줄게~"
"제일 열심히 해서 예쁘니까, 내가 와인 한 번 사주도록 하지."
"운동 그만둬도 내가 친구 해줄게~"
따위의 말들은 확실히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하루 종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상황에선 누구라도 '혹시 내가 이 사람과 연애를….'이라며 김칫국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그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면, 그게 그냥 '서비스'라는 걸 알 수 있다. 서비스란 사랑이라는 것에서 '표현' 부분만 따로 떼어내 발달시킨 것 아닌가. 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서비스다.
주희양이 '썸남'이라고 착각 중인 그 트레이너는 여자친구가 있다. 여자친구 없는 사람처럼 자유분방하게 행동하고 연락하다가, 사람들이 계속 추궁하자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간 결혼은 마흔 넘어서 할 생각이라느니, 외롭다느니 하는 얘기를 잘도 뱉어냈으면서 말이다. 그 사실을 안 주희양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넌 나쁜 남자야."라는 식의 돌직구를 던지자, 그는
"내가 먼저 애인 있다면서 사람들 붙잡고 얘기하고 다녀야 하나?"
"여자친구 있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서 말 안했던 건데?"
"내가 연애하는 게 죄야? 나한테 왜 이래?"
"여자친구 있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서 말 안했던 건데?"
"내가 연애하는 게 죄야? 나한테 왜 이래?"
라며 정색했다. "주어가 없는 말이니 책임질 필요가 없다."식의 황당한 변명이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얼른 벗어나길 권한다. 주희양은 "다른 사람들이 트레이너의 서비스를 호감으로 착각하는 것과 제 얘기는 달라요."라고 말하는데, 전혀 다른 점이 없다. 다들 그런 식으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진짜."라고 생각하다 코 베인다.
트레이너 남자친구와 관련된 끔찍한 사연으로,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PT회원이 안 모인다."라는 얘기를 듣는 여성대원의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PT를 받으며 만난 트레이너와 사귀며, 자신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했다. 그런데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연애는, 늘어나는 남자친구의 요구들로 인해 시궁창이 되고 말았다.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들 PT하는 걸 질투하려면 헬스장에 나오지 말 것, 일 때문에 연애한다는 숨겨야 하니 그렇게 알 것, 일하고 있을 땐 연락하지 말 것, 집에서 다른 여자 전화를 받아도 일 때문이니 이해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저런 연애가 정상적인 것인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라는 얘기는 못 하겠다. 어쩌면 51.6%의 사람들(시각에 따라서는 48%의 사람들)은 "남자가 저러는 것도 다 돈 벌자고 하는 건데, 이해해야 하지 않냐."고 말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여하튼 거기서 엄하게 미련 운운하며 방바닥 긁지 말고, 어서 그 상황을 박차고 나오길 권한다.
2. 아 대체 이게 뭔가요.
그냥 한숨만 나오는 사연도 있었다. 노멀로그를 읽으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며 "이젠 전처럼 부담스럽게 들이대지 않고, 여자와 좀 친해지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남성대원의 사연이다.
뭔가 이번엔 제대로 썸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그가 첨부한 카톡대화를 열었다. 그런데 거기엔
"지은씨는 아는 오빠 100명 넘을 것 같아요~"
"클럽이요? 클럽 가서 남자한테 번호도 좀 주시겠네요?"
"역시 지은씨는 인기녀!"
"심심할 때든, 배고플 때든, 외로울 때든, 언제든 전화해요~"
"클럽이요? 클럽 가서 남자한테 번호도 좀 주시겠네요?"
"역시 지은씨는 인기녀!"
"심심할 때든, 배고플 때든, 외로울 때든, 언제든 전화해요~"
라는 말들이 적혀있었다. 대체 뭐가 '좀 잘 되어가고 있다'는 걸까? 저건 그냥 아부다. 예전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서 맹렬하게 구애했다면, 지금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오 나의 여신님! 굽신굽신."
"예예. 맞습니다. 여신님 말씀은 언제나 옳지요."
"저를 몸종으로라도 부려주십시오. 영광입니다."
"예예. 맞습니다. 여신님 말씀은 언제나 옳지요."
"저를 몸종으로라도 부려주십시오. 영광입니다."
따위의 아부만 하는 거다.
"예전처럼 급격한 실망을 하거나 격하게 질투하진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급격한 실망이나 격한 질투만 문제가 아니다. 맹목적으로 상대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문제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자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좋은 남자' 코스프레를 하면, 그 역효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히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사연을 보낸 대원이 상대가 리액션을 해 주면 정신줄을 놓아버린다는 부분이다. 부정적인 부분에서의 급격한 감정변화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에서의 감정변화는 여전하다. 상대가 "ㅋㅋㅋ"라고 웃기라도 하면, 사연을 보낸 대원은 갑자기 광분해 상대를 더 웃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있는 힘껏 던지는 것에만 열중한 나머지 폭투하고 마는 것이다.
상대도 나만큼의 사고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대화해야 한다. 상대 나이가 어린데다가, 이쪽에서 허튼소리를 해도 리액션을 잘 해주니 '얘는 이 정도에 넘어올 애'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 역시 속으로는 '이 오빠는 이 정도의 오빠니까, 웃으면서 분위기 좀 맞춰줘야겠다.'라며 웃는 거다. 회사 부장님들이 이걸 모르는 까닭에, 부하직원들이 리액션을 좀 해주면 '내가 유머감각이 좀 있는 듯'이라며 착각한다.
지금처럼 지내다간 '술주정 들어주고 밥 사주는 웃긴 오빠'가 되고 만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아, 카톡으로는 상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애드립'은 직접 만나서 상황 봐 가며 하는 게 좋다는 것도.
3.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무서움.
'고슴도치녀'와 관련된 사연 중 '너무나도 예민한 그녀'라고 할 수 있는 여성대원의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첫 연애를 하고 있는 이십대 초반의 여자사람으로, 취미가 '서운해 하기'고 특기가 '질투'다.
그녀는 너무 잘 멈춘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친구와 통화를 하면,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지금 얜 나보다 친구가 중요한 건가?'
'삼 분 넘은 것 같은데 안 끊네?'
'지금 나 완전 서운하고 서러워. 얘는 나 내버려두고 뭐하는 거지?'
'삼 분 넘은 것 같은데 안 끊네?'
'지금 나 완전 서운하고 서러워. 얘는 나 내버려두고 뭐하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한다. 혜민스님 같은 분이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많을 것들을 보며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겠지만, 사연을 보낸 대원이나 나 같은 속인들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많은 것들을 보며 번뇌가 많아진다. 까딱 잘못하면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같이 TV를 보다가 남자친구가 걸그룹의 누가 예쁘다는 얘기를 하자, 그녀는 토라져선 차가운 얼굴로 집에 가 버린다고 한 적도 있다. 그 상황에서 남자친구가
"그냥 한 말 가지고 그렇게 다신 안 볼 사람처럼 굴면, 매번 그러면,
정말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
정말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
라며 하소연하자,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예전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손도 잡고 포옹도 하며 그 데이트를 잘 마무리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워서는 다시,
'잠깐만, 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건, 헤어지고 싶다는 얘긴가?'
라며 멈추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그녀는 "이젠 날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이야?"라고 남자친구를 추궁했다. 남자친구는 그녀를 열심히 달랬고 그녀도 그 자리에선 수긍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마음에 의문이 생겨 내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의 마음을 예전으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멈추는 빈도'를 최소화하길 권한다. '일어난 일'을 바꾸려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 '일어날 일'을 변화시키란 얘기다. 남자친구에게서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 계속 예민하게 굴다간, 참혹한 미래만이 찾아올 것이다. 기차표 인쇄가 흐릿하게 되어 있다고 따지다가 기차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 있으면서 스킨십을 허용하는 여자'를 두고 고민 중인 대원의 사연을 살펴볼까 한다. 둘은 올 여름에 직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 이상한 관계가 시작된 것은, 그녀가 사연의 주인공에게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한 직후부터다. 가을쯤 그녀가 주선한 소개팅이 있었는데, 여차저차 하다 보니 소개팅이 끝나고 주인공은 주선자인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게 되었다.
술자리에서부터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있기는 했다. 주인공이 그녀의 친구에게 관심을 표하며 살갑게 굴자, (2차로 술을 마시러 간 자리에서)뜬금없이 스킨십을 해대며 질투를 한 것이다. 주인공은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일종의 주사라고 생각해서 넘겼다. 하지만 친구를 데려다 주고 주인공과 그녀만 남게 되었을 때 -이게, 수위조절이 필요한데- 아무튼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한참 열심히 일을 하다가 그녀가 갑자기 우린 이러면 안 된다며 가버렸다. 그는 '역시 술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그런 일이 몇 번 더 일어났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싸우고 지금 우는 중이다. 내 방으로 와 줄 수 있나?"라며 그를 부르기도 했고, 그에게 할 말이 있다며 불러내선 안기고 더듬거리는(응?) 짓을 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궁금했던 주인공은 그녀에게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를 묻기도 했다. 그녀는 '우린 친구'라고 답했다. 혹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자신과 사귈 생각이 있냐고 묻기도 했는데, 그녀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답했다.
주인공은 이게 저울질 당하는 건지, 아니면 어장관리를 당하는 건지, 또는 그녀도 자신을 좋아하지만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고 내게 사연을 보냈다.
불장난이다. 언젠가 작은 산불을 낸 적 있는 내 친구의 마음과 비슷하다. 왜 산불을 냈냐고 묻는 질문에 내 친구는 "그냥, 주머니에 라이터도 있고, 춥기도 했고, 낙엽도 보이기에…."라고 답했다. 산불을 낼 무슨 계획이나 목적 같은 건 없었던 거다. 그녀 역시 술을 마셔서 취기가 오르기도 했고, 심심하기도 했고, 마침 그때 앞에 남자도 있었고, 뭐 그런 식의 상황에서 불장난을 한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서 계획이나 목적 같은 걸 찾는 건 무의미한 일일 가능성이 높으니, 남자친구에게 집중하라고 한 마디 해주고 어서 본인의 연애궤도로 돌아오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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