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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금요사연모음] 이별통보 대처법 외 2편

by 무한 2013. 1. 26.
[금요사연모음] 이별통보 대처법 외 2편
매뉴얼로 발행하긴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꾸 눈에 밟히는 사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간. 금요사연모음의 시간이 돌아왔다.

금요일에 올렸어야 하는데, 갓 헤어진 친구 K가 찾아오는 까닭에 사연모음이 하루 늦어져 버렸다. K는 20대의 절반을 함께 보낸 남자와 헤어졌다. 당연히 다음 순서는 결혼이라 생각하며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는데, 그러는 사이 상대는 K와의 이별을 준비했던 것이다. 모든 생활이 그와 함께 하는 것에 맞춰진 까닭에 K는 이별 직후 미아가 된 듯 혼란스러워 했다. 또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 하지 않는 상대를 보며 K는 절망했다.
 
"이유라도 알고 싶어."


K가 내게 한 말이다. 내가 답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적인 까닭에 여기에 옮겨 적을 수 없고, 그것과 함께 전한 '이별통보 대처법'만 좀 얘기할까 한다. 그걸 소개하며, 하루 늦은 금요사연모음 시작해 보자.


1. 이별통보 대처법


주먹에 주먹을 내면 겨우 비길 뿐, 이라는 게 내가 K에게 한 말이다. 상대가 이별을 통보했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너 나 사랑하긴 한 거니?"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건, 상대가 낸 주먹이라는 이별통보에 주먹으로 맞서는 행위다.

그 얘기와 함께 '가출한 아이와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줬다. 어쩌다 보면 아이가 충동적으로, 혹은 집이나 부모의 소중함에 무감각해져 가출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즉시 아이를 호적에서 파내거나 다신 볼 일 없도록 관계를 부숴버리면, 훗날 아이는 거대한 후회를 느껴도 돌아올 수 없다.

그렇다고 아이를 즉시 힘으로 제압해 데려 온다거나, 협박을 통해 데리고 와도 문제가 생긴다. 스스로 깨달을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까닭에 몸만 돌아왔을 뿐 마음은 계속 밖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을 벌인 상대에 대한 판단을 일단 정지하는 것이다. 폭투를 하는 투수의 공을 걸러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거기에 애써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는 없다. 이 모습이 상대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 모습도 상대가 가진 여러 모습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밖으로는 그렇게 판단 정지를 해 놓고, 안으로는 자신의 실책을 돌아봐야 한다. K의 경우에는 약간의 심술이 문제였다. 상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려는 본능이 불러온 비극인데, 진심은 그게 아니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모습이다. 토요일엔 바쁘니까 일요일에 보자는 상대에게

"아냐. 바쁘면 일요일도 너 할 거 해. 안 봐도 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식의 말을 해 버리는 것이다. K는 상대가 저 말을 듣고 적극적으로 달래주길 바랐다. 하지만 K의 저런 모습에 늘 괴로움을 겪던 상대는, 전과 달리

"너랑 함께 살 자신이 없다. 우리가 결혼하다고 해서 행복할 것 같지 않아."


라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K는 '저게 진심이었구나. 그동안의 모습은 다 연기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여기까지 들어가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니까 심술 얘기는 이쯤만 적어두자.

여하튼 저런 상황이 찾아온 까닭에 K는 절망했다가, 상대가 괘씸했다가, 또 그래도 다시 한 번 잘 해보고 싶었다가,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있다. 그 마음으로는 앓는 소리 해가며 관심을 요청하거나, 나만 상처 입을 수 없다고 손톱 세워 상대를 할퀴거나, 무조건 잘 하겠다며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난 K에게 이것마저도 연애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길 권했다. 상대가 이별이란 주먹을 내밀면, 이쪽에선 그것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보자기를 내는 거다. 이별통보를 책상에 선을 긋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짝꿍이 선을 긋는다고 거기에 맞춰 "너도 넘어오지 마."라고 말하는 대신, 상대가 넘어와도 가만히 있는 것. 그렇게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어떤 결론도 짓지 않는 태도로 일단 이별통보에 대처하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대처하고 나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해?"


그건 K가 한우를 쏘면 말해주기로 했다.


2. 여자 후배가 다가왔는데요.


같은 학교의 여자 후배가, 자신의 친구에게 전화번호까지 물어가며 연락을 해 왔다는 사연이 있었다. 그간 늘 이쪽에서 먼저 관심을 표현했는데, 이번엔 누군가가 먼저 이쪽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때문에 사연을 보낸 남성대원(이후 J군)은 들떠 있었다. 당연히 그 관심을 사양할 이유가 없기에, J군은 그녀와 연락을 하고, 또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세 번 정도 만난 후엔 그녀의 연락이 급격히 줄어들고, 만나자는 J군의 요청도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J군의 호감은 점점 커지는데, 상대의 호감은 작아지는 상황.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J군은 물었다.

우선, 누군가가 관심을 표현한 것은 개봉예정작에 대해 '저 영화 재미있겠다. 개봉하면 보러 가야지.'라고 마음먹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길 권한다. 관람 전 평점이지, 관람 후 평점이 아니란 얘기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J군은 그 부분을 간과했다. 상대가 이쪽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단순하게 이제 몇 번 만나면 연애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디어디서 만났고 무엇 무엇을 했고,
아무튼 밥 먹고 영화 보고 어쩌고저쩌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저 말 속에 답이 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면, 그 데이트에서 J군은 심각하게 겉돌았단 말이 된다.

"아! 같이 있다가 그 애가 멍하니 있기에,
제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몇 번 물어 본 적은 있어요.
만날 때마다 좀 멍하게 있더라고요.
그랬더니 습관적으로 그러는 거라고 하던데…."



멍하니 있을 틈을 줬다는 건, 이쪽에서 관찰자가 되어 상대를 구경 했다는 증거다.

"제가 호감을 떨어뜨릴 만한 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J군이 뭔갈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다. 아마 그녀의 감정은 내가 모 감독의 최근작을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거다. 그 감독의 영화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까닭에 난 그 영화를 믿고 봤는데, 정말 지루했다. 뭔갈 보여주기 보다는 아무 실수도 하지 않으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만든 영화 같달까. 그럴 것 같은 일들을 그럴 것 같은 방식으로 풀고 있었다. J군의 실수는 바로 그 진부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애가 먼저 연락을 한 거라, 절 많이 좋아해 줄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도 안 하고,
이번 주말에도 만나자고 하니까 친구랑 약속이 있다네요."



대학교에 먼저 입학한 선배가 고등학교 후배들 찾아와 입시에 대해 조언하듯 만나니, 그녀에겐 그 만남이 재미도 감동도 없는 거다. 차라리 친구들 하고 노는 게 더 재미있다. 상대가 나에게 먼저 관심을 가졌다는 것과 내가 오빠라는 것에 J군이 너무 큰 부담을 가진 듯 보인다. 그렇게 되면 상대를 앉혀 놓고 훈화말씀만 늘어놓게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하며 만나서 '놀길' 권한다. 뭔가 상대에게 교훈을 줘야 한다는 강박에서만 벗어나도 충분히 즐겁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 오빠가 공부한다면서 연락이 없어요.


상처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 얘기는 한 번쯤 들어둘 필요가 있을 테니 하자.

지인 중에 술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H양이 있다. 그녀는 연세우유는 연세대에서 만들고, 서울우유는 서울대에서 만드는 줄 아는 여자다. 낯가림이 없는 까닭에 그녀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포함된 술자리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돌하게 행동한다. 적극적인 성격에다가 이성을 만나는 빈도도 잦으니 그녀는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술 마시다가 얘기 좀 통하고 느낌 좋다 싶으면, 바로 연애를 한다.

그녀가 만나는 남자는 대부분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해서, 이틀이 멀다하고 술자리를 갖는 사람들이다. 그녀 역시 술자리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니 둘의 데이트는 대부분 술집이 되기 마련이다. 술집이나 술자리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 대부분 소모적이기만 하니 문제라는 거다.

남자친구의 친구와 H양의 친구까지 포함해 같이 놀러가서는 술, 스키장에 갔다가 술, 사람들과 모여 술 마시다가 술자리가 파하면 또 단둘이 술…. 그러는 동안 큰 갈등이 일어나진 않는다. 별 이유 없이 H양이 짜증을 좀 내면 상대가 술자리를 마련해 풀어주는, 이벤트식 다툼이 있을 뿐이다. 만나자고 할 때 거절하는 법 없고, 나오라고 했을 때 빼는 법 없으니 연애 중반까지는 순풍을 만난 듯 별 탈 없이 진행된다.

문제는 남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 발생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이제 정신을 차려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의 정리대상 1순위는 H양이 된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H양은 그렇게 수많은 남자를 떠나보냈다. 남자들이 그녀를 '연애하긴 부담 없고 좋지만 결혼하기엔 알맞지 않은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 그녀만 모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잘해줘서 남자가 떠났다거나, 남자가 다 똑같아서 떠났다고만 생각한다. 이제는 또래의 남자들 중 사람이 없으니, '연상녀가 쉬울 거라 생각하는 꼬꼬마'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것 같던데, 묻지도 않은 이런 얘기를 굳이 나서서 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난 관찰만 하는 중이다.

공부를 시작한 오빠(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없다는 대원의 사연을 읽다보니, H양의 느낌이 났다. 데이트의 패턴도 비슷하고, 정신 차린 상대에게 예전처럼 돌아오라고 매달리는 모습도 비슷하다. 특히

'친구와 밤새 술 먹으며 연락 안 하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없자 다음 날 걱정도 안 되냐며 따지기.'



의 모습은 꼭 닮았다. 그 얘기를 들은 남자가 '난 왜 연락을 안 했을까….'라며 반성할 것 같은가? 아니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폭풍연락을 할 것 같은가? 미안하지만, 그대를 '정리대상 1순위'로 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뿐이다.

떨어져 있는 시간에 오빠가 나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어쩌고, 그런 거 없다. 추억의 8할이 술 취한 순간인데, 맨 정신에 거기서 어떻게 소중함을 찾겠는가. 스스로 자신이 비전 있는 여자인지를 살펴보길 권한다. 작년을 살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같으면, 내년에도 그럴 거라 생각되는 법이다. 작년보다 올해, 한 뼘이라도 더 괜찮은 여자가 되려면 지금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그러면 전화 안 받고 카톡 답장 안 하며 감정싸움 하는 거 말고, 진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스마트폰으로 사연을 보내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점이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 사용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이거 폰으로 쓰는 거라 길게는 못 쓰고요…."
"띄어쓰기안해도이해해주세요.폰으로쓰는거라."
"폰이라서 사연은 못 적고, 카톡대화만 첨부할게요."



등의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이 많아졌다. 어떤 대원은 폰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곳에서 메일을 보냈는지, 메일 전송 버튼을 여러 번 눌러 내 메일함을 같은 사연으로 도배하기도 했다. 여하튼 사연을 대충 적어서 보내면, 나도 대충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하루 놀아도 내일 또 놀 수 있는 토요일! 이 반가운 쌔러데이를 구석구석 세밀하게 즐기시길 바라며!



"비전 있는 여자가 어떤 여자죠?" 다양하지만, 책 읽는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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