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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결혼 얘기로 부담 주는 여친과 헤어지려는 남자

by 무한 2013. 2. 6.
결혼 얘기로 부담 주는 여친과 헤어지려는 남자
논리적으론 최형의 말이 맞아. 이 더하기 이는 사라는 식으로 계산하면, 최형이 여친에게 비전 같은 걸 제시할 필요는 없지. 각자의 몫만큼만 알아서 하면 되는데 최형의 여친은 너무 징징대잖아.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그런 못난 어린애 같은 여자와 결혼할 순 없지. 자기 생활의 사소한 부분들을 늘어놓으며 위로를 바라는 여자. 그녀와의 연애는 의무만 가득한 느낌이잖아.

이별을 말리거나, 그래도 어쩌겠냐며 결혼을 권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몇 년을 사귀었든 상대보다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연애는 그 순간 종말을 맞거든. 아직 정리가 안 되었다 뿐이지 최형의 연애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병상에 누워 있는 상태야. 최형이 그 호흡기를 떼면 끝이지. 최형의 마음이 여기까지 와 버린 이상 여자친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여자친구에게 어떤 노력을 부탁하면 좋냐고? 지금 최형의 마음으론, 여자친구가 어떤 노력을 하든 다 모자라고 어설퍼 보일 걸. 그녀가 아무리 애써봐야 그저 발버둥으로 보일 뿐이지. 참 웃긴 게 뭔지 알아? 그런 상황에선 여자친구가 최형의 요구대로 노력하면 할수록, 최형은 여자친구를 더 하찮게 여길 거야. 최형의 요구대로 여자친구가 불안증 증세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최형은 그녀가 그저 참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그 노력을 가볍게 여기게 되겠지. 그러니 '노력할 기회'를 주겠다며 여자친구를 고문하지 말고,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게 나을 거야.

최형이 바라는 대답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그런데 매뉴얼을 발행하려면 위의 세 문단 가지고는 분량이 안 나오거든. 미안하지만 아래에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좀 적어둘게. 최형과 비슷한 상황에서 최형처럼 '이 여자 방법 없는 듯'이란 얘기 대신, '어떻게 해야 연애를 지킬 수 있나?'라는 질문을 한 사람들에게 하는 얘기야. 최형도 시간 나면 한 번 읽어봐. 자, 가 보자.


1. 논리적이면 행복할까?


얼마 전에 이런 사연이 있었어. 사귄 지 반 년 정도 된 커플인데, 여자는 대학원생이고 남자는 회사원이야. 학교에 가는 날이 아니라 여자는 혼자 집에 있었어. 점심을 막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나다가 여자가 쓰러졌어. 잠시 후 의식이 돌아오긴 했는데,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서 구급차를 불렀지. 가는 길에 남자에게 전화를 했어. 이러이러해서 응급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설명했지. 그 순간에도 여자 특유의 자존심이 발동했는지, 병원으로 와 달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 물론 속으로 기대는 했지.

그런데 남자는 오지 않았어. 왜 쓰러졌냐고 계속 묻기만 했다는데, 아니, 원인을 알면 뭐 하러 구급차를 불렀겠어. 약국에 가서 약 산 뒤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나 사 먹었겠지. 여하튼 남자는

"내가 지금 간다고 해서 당장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난 의사가 아니잖은가."
"조퇴는 할 수 있지만, 이 조퇴 한 번으로 회사에서의 내 입장이 난처해진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너도 내가 지금 가나, 퇴근하고 가나 똑같다는 걸 알 것이다."



따위의 이야기만 했어. 틀린 말은 아니지. 차갑게 바라보면, 남자가 자신이 난처해 질 걸 감안하고 응급실로 달려가 봐야 여자에겐 '병원에서 집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가, 남자친구 차를 타고 돌아오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니까. 또, 진료야 의사가 알아서 할 거고, 문제가 있어도 병원 사람들이 알맞게 대처를 해 주겠지.

하지만 최형, 우리 모두가 효율성과 논리를 따지며 위와 같은 식으로 세상을 살면 행복할까? 이렇게 가정해 보자. 최형이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가면서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했어. 그 친구가 동대문 지리도 잘 알고, 옷 입는 센스도 뛰어나니 옷 고르는 데에 도움도 좀 받을까 해서. 그런데 최형이 얘기를 꺼내자 친구가 이렇게 답하는 거야.

"난 동대문에서 살 거 없는데?"


친구 대답이 잘못된 건 아니지. 최형이 좋아하는 논리와 효율 측면에서 보자면 친구는 잘 대처한 거야. 왔다 갔다 차비 나가지, 거기다가 자기 옷 사는 거 아닌데 시간 뺏기지, 따지고 보면 쇼핑의 들러리가 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일은 비효율적이잖아.

저 대답을 들으면 최형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내가 잠시 비이성적이었어. 맞아. 내 옷은 내가 알아서 사야지.'라는 생각이 들까? 우정이라는 건 저런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인 일들을 함께 할 때 더욱 잘 자라는 법이잖아. 저 답을 들었다면 아마 최형은 둘의 우정을 의심하거나, 친구에게 실망했을 거야.

최형 친구는 이해 못 하겠지. 분명 논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느라 거절한 것뿐인데 왜 우정이 의심받아야 하나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어. 실망했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최형에게 반발감을 갖곤 "넌 내가 쇼핑들러리를 해줘야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식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지. 속으론 '그래, 이런 걸로 다퉈야 한다면, 얘랑은 그냥 절교하는 게 나아.'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바로

지금 최형이 최형 여자친구에게 그러듯이.


2. 여자 나이 서른

삼 년 연애하며 서른이 된 여자.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듣는 건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잔소리야. 잔주름은 늘어 가는데 이 연애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 남자친구가 자신을 못마땅해 한다는 걸 최근엔 피부로 느끼는 중이고 말이야. 필연적으로 삼수생의 조급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지.

여자 나이 서른엔 말야, 합격자가 적혀 있는 세 페이지짜리 발표문을 보는데, 두 페이지를 다 읽도록 자기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수험생 마음이 되기 쉬워. 최형처럼 네 페이지짜리 합격자 발표문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먼저 이해해야 해. 최형의

"나도 세 페이지 째 읽고 있는데 아직 내 이름이 없다.
그래도 난 조급해 하지 않는데, 넌 왜 조급해 하냐?"



라는 말은, 절대 그녀를 안심시킬 수 없어. 오히려 "넌 아직 한 페이지가 더 남았으니까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거잖아!"라는 비명 섞인 항의만 부를 뿐이지.

최형과 그녀는 결코 동등한 조건에 놓여있지 않아. 과년한 처자에 대한 사회적 폭력이 어떤지,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 나도 남자라서 경험해 본 적은 없는데, 추측하기론 아마 매일같이 친척들을 마주해야 하는 어느 삼수생, 그의 처지와 비슷하고 생각하면 될 거야.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최형이 여자친구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걸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해 보길 바라기 때문이야. 최형이 여자친구의 조급함에 대처한 태도는 조언자의 태도거든. 그건 그녀의 고민을 '당신의 문제'로 놓고 이야기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나 알맞은 태도야. 그런데 최형은 남이 아니라 그녀의 연인이잖아.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들은, 당장 최형보고 눈앞에 보이는 해결책을 내 놓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길 바라. 지겹도록 얘기한 부분인데, 여자는 자신이 꺼낸 고민을 누군가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놀랍도록 차분해 질 수 있어.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최형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면 되는 거야. 왜 쓸데없는 그따위 고민을 하고 앉아 있느냐고 각성시키려 하지 말고 말야.

그녀가 입을 옷이 없다고 고민할 땐 "전에 입었던 그 검정색 폴라티 잘 어울리던데." 정도의 대답만 해줘도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어. 거기에 대고 "입을 옷이 왜 없냐, 넌 왜 불평밖에 할 줄 모르냐.", "그 얘기는 나보고 옷 사달라는 의미로 꺼낸 말이냐."라고 다그치는 남자는….


3. 이상한 조련


내가 보기에도 최형의 여자친구가 최형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게 맞아. 최형은 그간 그녀가 의존할 때마다 그녀의 일을 대신 해 주거나,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 노력했지. 그러다보니 그녀는 기대는 게 습관이 됐어. 아니, 이건 원래 최형 말대로 그녀가 '원래부터 기대는 타입' 이었는데, 처음엔 그저 연애에 들떠 그녀의 그런 모습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고 치자. 

여하튼 그런 관계로 꽤 긴 시간을 지내오다 보니, 이젠 여자친구가 사소한 일 까지도 최형에게 의견을 묻거나 허락을 구하려고 하지. 이게 내가 전에 한 적 있는 직장상사 얘기랑 비슷해. 

"왜 나한테 보고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처리해? 나한테 물어봤어야 할 것 아냐!"


라며 갈구는 직장상사 얘기 말야. 저런 태도 때문에 부하직원들은 뭘 하든 다 직장상사에게 보고 하게 되었어. 그런데 또 어느 날은 직장상사가 이런 말을 해.

"너 어린애야? 이런 것까지 내가 다 말해줘야 해?"


부하직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 하게 되지. 

최형의 조련 덕분에 여자친구는 갈팡질팡하는 부하직원이 되었어. 그런 상황에선 당연히 최형이 그녀와 결혼하는 게 '손해 보는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 결혼했다간 여자친구의 인생까지 대신 살아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들잖아. 뭐, 그래서 최형이 내게 사연을 보낸 거기도 하고. 

난 최형이 이 연애를 끝내고 다른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한 번씩 큰 희생과 헌신으로 사랑을 증명하고, 나머지 시간엔 각자 알아서 할 일 하는 그런 연애는 하지 말길 권해주고 싶어. 이전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연애는 애완동물 키우는 것과 다르거든. 아니, 사실 강아지만 키우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의무가 따라. 강아지들에게 산책은 무척 중요한 일이거든. 강아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자세히 적진 않을게. 하고 싶은 말은,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나 쓰다듬으며 예뻐해 주고, 그렇지 않을 땐 그저 무신경하게 방치해 두어선 안 된다는 얘기야. 

의무라고 하니까 꼭 벗어나야 할 어떤 지겨운 굴레처럼 느껴지는데, 그걸 달리 말하면 노력이 되는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최형이 말한 그 의무가 '책임감'이 되는 거고 말이야. 이제 좀 감이 오지 않아? 서두에서 내가 말했잖아. 여자친구에게 노력하라고 닦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왜? 최형 자신은 자기 몫의 노력을 '의무'라고 말하며 피하려고만 하고 있으니까. 감정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는 내 글을 여자친구에게 보여줬다고? 그러면서 최형은 왜 내가 더욱 소리 높여 말하는 '책임감 없는 남자'에 대한 글을 안 읽었어? 여자친구를 향한 최형의 손가락. 그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누굴 가리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오해하진 마. 무조건 헤어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야. 다만 내가 보기엔, 최형과 여자친구가 인터넷이 안 된다며 컴퓨터만 계속 포맷하려 했던 것 같아서 말이야. 인터넷이 안 되었던 건 뒤에 랜선이 뽑혀 있어서 그런 것 같거든. 그런데 최형과 여자친구는 수 없이 포맷을 하다가 이젠 지쳐서 컴퓨터를 버리려고 하잖아. 애초에 해답이 틀렸는데, 그 답으로 백날 노력해 봐야 몸과 마음만 고달프지. 

만약 위의 글을 읽고 이 연애에 대한 태도를 한 번 바꿔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가장 먼저 최형의 진심을 여자친구에게 털어 놓길 권할게. 그게 입 밖으로 꺼내면 진짜 별 거 아니거든. 머릿속에 있을 때만 복잡하지, 정작 말하고 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 그래서 옛 사람들이 '고민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라는 이야기를 했나봐. 고민이 아니라 슬픔인가? 뭐, 어쨌든 뜻은 통하니까. 

그렇게 오픈한 상황에서 함께 해 나가야지, 지금처럼 최형 혼자 심각한 얼굴로 여자친구의 인생까지 대신 살아주는 사람인 양 까칠하게 굴 필요는 없어. 또, 모든 여자에겐 위대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절대 얕보거나 미리 상대의 한계를 설정한 채 대하진 말고. 훈화가 아닌 대화를 하면, 분명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화이팅!


▲ 최형, 내가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추천은 눌러주고 가야지. 그냥 가면 섭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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