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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이별통보를 받은 취업준비생, 그의 문제는?

by 무한 2013. 4. 2.
행복한 1년의 연애, 그리고 이별위기에 놓은 남자
진지한 얘기가 될 것 같아 경어를 쓰겠습니다. Y씨가 보내주신 사연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연은 회생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매뉴얼로 발행하는 건, 훗날 Y씨가 다른 연애를 할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현재 Y씨의 연애와 비슷한 문제로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다른 커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할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즐겁지 않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 번은 꼭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기에 이렇게 적습니다.


1. 소비적인 연애의 부작용.


특별한 데이트 하지 않더라도, 요즘 둘이서 영화 한 편 보고,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나면 돈 오만 원은 우습게 깨집니다. 멀리 여행까지 가지 않아도, 일주일쯤 밤낮으로 함께 있다 보면 식비만 삼십만 원 정도 나옵니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를 했을 때의 비용이 아닙니다. 하루 세 끼 햄버거 세트만 먹어도 저만큼의 지출을 해야 합니다.

Y씨는 취업 준비생이고, 여자친구는 휴학생입니다. 둘은 서로가 좋았기에 1년을 함께 지냈습니다. 여자친구는 아침에 공부를 하러 간다고 집에서 나와, Y씨 자취방에서 머물며 함께 지냈습니다.

전 저 이야기를 읽자마자 이 연애의 종말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둘이 마주보며 순간을 즐기는 소비적인 연애 입니다. 두 사람이 자동차에 타고 있는데, 둘 모두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필연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단 얘깁니다.

"저흰 함께 운동하기로 하고 프로그램에 등록한 적도 있는데요?"
"놀기만 한 게 아니라 나중에 여행갈 것을 대비해서 영어 공부도 했는데요?"



설마 같이 헬스클럽 한 달 다닌 걸,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영어 공부 역시 단어 몇 개 알게 된 것 빼고 남은 게 없으면, 그건 그냥 영어책 펴 놓고 논 겁니다.

자취방 보증금 차액과 부모님께 받은 돈으로 초반엔 재미있게 지낸 것 같은데, 그렇게 돈 쓰고 다닐 땐 누구나 즐겁습니다. 뭐 먹을지 고민하는 연애가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커플티 주문하고, 커플 운동화 주문할 땐 '아, 이게 정말 행복한 연애의 맛이구나.'하는 생각을 할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커플링 디자인 고민하는 연애가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위기는 잔고가 줄어들 때 찾아옵니다. <개미와 베짱이>이야기에서, 겨울이 되자 베짱이가 다급해 진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위기 초반엔 서로 의논하는 모습 보여 가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 좀 줄이자, 좀 아끼자, 당분간 뭘 사지 말자 이러면서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갈 돈이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올 돈이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예민해 집니다. 서로의 소비습관을 지적하고, 둘 중 하나가 과소비라도 하면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Y씨가 더 많은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기에, 여자친구보다 예민해졌습니다. 여자친구가 커피숍을 가면 날 선 말들로 비판했고, 데이트 시 식사는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으로 메뉴를 정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경영의 실패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여자 나이 스물넷이면, 한창 예쁜 카페도 가고 싶고 바다도 보고 싶고 그럴 나이입니다. 그런데 Y씨는 여자친구가 자기 돈 내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마셔도 비판하고, 여행에 대해선 경비를 생각하라며 여자친구를 훈계했습니다. 메뉴는 이름보다 가격을 보고 고르며, 밥을 먹고는 자취방에서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 동선은 연애후반 반 년 간 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녀가 제 여동생이라면, 전 어떻게 해서든 그 연애를 끝내도록 설득했을 겁니다.


2. 더 황당한 문제.


저렇게만 적어두면 여자친구가 즐길 것만 즐기고 이제 잔고가 바닥나니 떠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Y씨에게 자취방을 꾸미고 보증금에 보태라며, 돈을 내놨습니다. 이게 꽤 큰돈이라 저도 놀랐습니다. 편의점에서 네 달 꼬박 아르바이트를 해야 벌 수 있는 액수였기 때문입니다.

전 사실 저 돈을 준다고 받은 Y씨를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여하튼 연애 초기에는 저렇게 신혼부부 신혼집 마련하듯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잔고가 줄어들어 Y씨가 날카로워졌고, 헤어지기 직전엔 돈 몇 천원 때문에 싸우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더치페이 하기로 했으니까, 돈 줘. 오천칠백 원."
"내가 어제 밥을 샀으니까 이건 네가 계산해야지.
그렇게 하기로 해놓고 왜 넌 계산하려는 생각을 안 해? 네가 내야지."



막장까지 가 버리고 만 겁니다. 결국 톡으로 계좌번호까지 찍어 보내는 촌극이 벌어지고, 둘은 이별하게 됩니다. 며칠 뒤 Y씨가 잘 하겠다며 사과를 해 인연을 끊진 않았지만, 다시 연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여자친구가 초반에 자신이 보탰던 돈 중 일부라도 돌려받고 싶다는 얘기를 꺼냅니다.

네, 이건 Y씨가 생각하신대로 정리할 생각인 게 맞습니다. 돈이 아깝기도 할 겁니다. 자신은 모아 놓은 돈을 아낌없이 Y씨에게 건넬 정도로 Y씨를 생각했는데, Y씨는 밥 값 두 번 계산하게 생겼다며 여자친구에게 식당에서 타박을 주니, 서럽기도 할 겁니다. 오만 정도 다 떨어질 겁니다.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 이 연애를 계속 이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물론이고, Y씨를 생각해 큰돈을 내 놨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상황이 이쯤 되었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하는데, Y씨는 상대가 일부라도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발끈해서 싸움을 이어갑니다.

"그럼 넌 그동안 내가 해 준 거, 다 내놔."


뭐, 이런 분위기 입니다. 내가 그동안 쓴 돈을 얼마고, 거기서 상대가 준 돈을 제외하면 얼마가 되니 그걸 내 놓으라는 식입니다.

"어차피 헤어질 거 돈이라도 받자는 생각에서 저러는 걸까요?"


거기서 정말 꼭, 노동력에 대한 계산까지 돈으로 환산해가며 얼마 더 내 놓으란 얘기 하셔야 겠습니까? 일방적 이별통보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 그 얘기 하면서 쪽팔리지 않으셨습니까?

여자친구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건 당연한 겁니다. Y씨가 협박하셨으니까요. 사귀면서 수백만 원 썼다며 내일 당장 돈 받으러 찾아가겠다는데, 그 말에 여자친구가 느꼈을 공포는 생각 못하셨나요? Y씨는 내일 모레면 서른이고, 여자친구는 스물넷입니다. 공갈협박이라도 해서 이별을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방법은 분명 잘못된 겁니다. 여자친구의 카톡을 확인한 가족들이 Y씨를 찾아오겠다고 한 이상 방법은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뭐가 문제였는지 아시겠다면, 그저 백번 사죄하시길 권합니다.


3. 몇 가지 이야기들.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어 몇 가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A양은 스물다섯이고,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원 입니다. 월급은 160을 받는데, 방세가 50만원 입니다. 이것저것 내야 할 돈을 내고 나면 80만 원 정도가 남습니다. 남자친구와 겨울이면 보드를 타러 가고, 봄이면 꽃구경을 가고, 그런 데이트 비용을 제하면 절반 정도가 남습니다. 그 나머지로는 회사에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게 아니니 옷도 사고, 몇 달 전 지른 가방 할부금도 빠져 나가고, 뭐 그렇습니다. 집에서 든든하게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닙니다.

그러다 진짜 망합니다. 재테크 할 돈이 없는데 재태크 책을 읽어서 뭐합니까. 회사 동료들에게 어쩌다 돈까지 빌리는 생활, 그렇게 몇 년 지나고 보면 남는 게 없습니다. 여자만 남자의 조건을 보는 게 아닙니다. 이십대 후반쯤 된 남자라면, 그 역시 여자의 조건까지를 포함해서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서로만 바라보며 놀러 다니는 게 좋을 수 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사라지면 파산하고 마는 생활, 즉시 항로를 수정하시길 권합니다.


B씨는 서른넷이고, C양은 스물 셋의 여자입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닙니다. 둘은 만남 어플을 통해 만났고, 아직 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B씨는 C양을 챙긴다는 명목 하에 얼마씩 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화장품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관계가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 C양이 B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후원자가 되고 싶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C양이 언젠가 B씨의 그런 행동에 감동해 사귀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은 헌신의 보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사지 멀쩡한데 낯모르는 이에게 용돈 받아가며 사는 건, 폐인으로 가는 지름길 입니다. 얼마간이라도 그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생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둘 다 망가집니다.

ⓒ 
D양은 얼마 전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D양의 남자친구는 데이트를 할 때마다 자신이 계산을 다 합니다. D양이 내려고 해도 자신이 내겠다며 말립니다. 당장은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계산을 다 하는 남자친구 쪽으로 관계가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첨부된 카톡대화를 보면, 점점 D양에게 권위적으로 구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늘 신세를 져야 하는 D양 역시 그런 상황을 점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베푸는 쪽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받는 쪽이 허리를 숙이게 되는 건 필연적인 겁니다. 이 부분을 주의하시길 권합니다.

둘째, 남자친구가 정말 D양을 생각해서 계산을 다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D양도 어느 정도 눈치 채신 것 같은데, 남자친구는 그냥 자신이 돈을 내는 걸 즐기는 스타일 입니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호기 있게 계산하는 것에 맛 들려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둘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이야 자기 돈 자기가 쓰니 문제가 없겠지만 결혼하면 백프로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남자친구의 직업은 젊은 시절에만 반짝 돈을 만질 수 있는 직업입니다. 사십대 후반만 되어도 일거리가 확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지금 씀씀이대로라면 저 위에서 말한 '소비적 연애'의 문제가 '소비적 결혼'의 문제로 바뀌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셋째, 안에서 인색하다는 점입니다. 밖에서 그렇게 돈을 쓰는 것과 달리 D양의 남자친구는 자신의 가족들에겐 별로 베풀지 않습니다. 술자리에서 몇 십만 원씩 호기 있게 계산하는 사람이, 부모님과 형제들에겐 인색합니다. 이거, 나중에 결혼생활에서 그대로 재연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자식 장난감 사 주는 것엔 인색하면서, 남의 자식 돌잔치에 금반지 사들고 갈 수 있습니다.

금요사연 모음에서 이야기 하려고 했던 부분인데, 마침 '돈' 얘기가 나왔기에 적어 두었습니다.


자신의 생활 없이, 연애를 생활이라 착각하며 살다보면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계획이 없다면, 연애의 달콤함은 금방 녹아버리고, 현실의 문제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땐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돌인 것처럼 여겨질 것이고 말입니다.

이걸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훗날 지친 상대가 떠나려고 할 때 그걸 '배신'이라 말하며, 상대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밖에 하지 못할 겁니다.

"너한테 다 맞추게 만들어 놓고, 헤어지자고 하면 나 어떻게 살라고!"


공허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겐, 저런 외침을 외칠 일이 생기지 않길, 기원합니다.



▲ 비까지 오는데다 분위기가 요따위라 마땅한 드립을 칠 수 없어 비워둡니다.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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