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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구여친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남자, 그가 모르는 것들

by 무한 2013. 12. 11.
구여친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남자, 그가 모르는 것들
개그 욕심을 가진 사람은 항상 자신의 말을 두 번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내'말'을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내가 웃자고 한 말이든, 그저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 말이든, 아니면 진심과 달리 좀 놀리려고 한 말이든, 상대는 그것이 '나'이며 '내 생각'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개그 욕심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종종 실수를 한다.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큰 실수 중 하나는, 내 SNS에 친구 사진을 올리며 우스꽝스러운 멘트를 작성했던 일이다. 그 친구는 함께 몸담고 있던 팀에서 우리가 '얼굴마담'으로 부르던 H군이었는데, 난 우리끼리 그렇게 부르던 게 있으니 SNS에도 '비주얼 하나로 뽑힌 우리 팀 얼굴마담. 노래보단 얼굴. H군.'이라는 식의 장난스러운 멘트를 달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H군이 내 글을 보고는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네 자유야.
하지만 난 정말 음악이 좋아서 너희들과 함께 하고 있는 건데,
이런 내 진심과 상관없이 날 희화화 시켜서 이야기 하는 너에게 화가 난다."



H군에게 사과하고 사진을 내린 이후, 난 지금까지 누군가의 사진을 올리고 그 사람에 대해 코멘트를 다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저건 정말 오래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난 H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 경솔함으로 인해 H군이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처를 입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겨우 농담 하나 가지고 무슨 상처씩이나'라고 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맑은 날 내 속을 다 펼쳐놓고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내 '열등감'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게 남들의 '농담 하나', 또는 '생각 없이 한 말'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대들도 그렇지 않을까? 학창시절 친구에게 "넌 무슨 메소포타미아 사람이냐? 이건 무슨, 한글이 아니라 쐐기문자 같잖어. 글씨 진짜 못 쓰네."라는 농담을 들은 사람은 '나는 글씨를 못 쓴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1. 아량을 베풀 줄 모르는 남자.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한 친구가 내 안경을 밟아 부서뜨린 적이 있다. 그 친구도 안경을 쓰는 친구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둔 자기 안경을 찾아 쓰려다 내 안경을 밟은 것이다. 덕분에 난 그날 오후 겨우 안경점을 찾아가 새 안경을 맞추기 전까지, 안경알 하나로 여행을 해야 했다. 아 이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그때 친구가 안경 값 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줬다. 부서트린 안경이 경량 테에 니콘 렌즈라 비싼 안경이었는데, 9년이 지난 지금 다시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여하튼 Y군이라도 저런 상황에서라면, 미안해하는 친구에게 "괜찮아."라며 억지로라도 괜찮은 척 했을 것 같지 않은가? 설마

"내 안경을 밟았어? 괜찮아. 나도 네 안경 밟으면 되니까. 벗어서 여기다 놔 봐."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연애에서 Y군은 후자처럼 행동한다. 시험 준비로 인해 바빠지면 만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여자친구. 그녀를 대하는 Y군의 태도를 보자.

여친 - 나 다음 달엔 시험 준비하느라, 만나는 게 좀 어려울 수 있어.
Y군 - 그래? 나도 내 시험이 임박하면 보기 힘들 거야. 공부에만 집중할 거니까.

 

Y군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게 논리적으로 따지면 맞다. 하지만 대인관계를 논리적으로만 따지며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언젠가 내 친구 하나가 다른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25,000원을 부조하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아직 어렸기에 그랬던 것일 텐데, 그 친구는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쟤가 5만원 부조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 한 분만 계시고, 쟤는 두 분이 계신다. 
내가 똑같이 5만원을 내면 나만 두 번 내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25,000원을 내고,
다음번에 일이 생기면 25,000원을 더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계산기 두드리며 따지자면 틀릴 게 없는 말이지만, Y군이라면 저런 친구와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네가 한 번 그랬으니, 나도 나중에 한 번 그러겠다."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아무도 사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Y군의 여자친구도 그 일로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을 것이고 말이다. 만약 이 이야기를 듣고 Y군이 내게,

"너무 여자 편만 드시는 거 아닌가요?
먼저 만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 건 여자친구잖아요.
저도 똑같이 대응했을 뿐인데, 왜 저만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말하시죠?"



라고 묻는다면, 난 대답 대신 "그냥 좀 한 번 져주면 안 되냐? 한 번도 지지 않고 상대가 발 밟으면 너도 똑같이 밟아야 속이 시원해?"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물론 여자친구가 Y군을 떠보며 자신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려 한 것도 맞다. 그녀는 살짝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낸 뒤 Y군이 그 말을 다시 부정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소심한 사람들이 '확인'을 받고 싶어 할 때 사용하는 나쁜 버릇이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여자친구가 원인제공 한 거 맞고, Y군은 딱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 뿐이니 특별히 더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잘못의 무게를 달아 판결을 내리는 대신, 잠시나마 상대의 가방 들어주듯 상대의 허물까지 감싸줄 것 같은데, 이것에 대해서 Y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시 그건 불공평하고 비논리적이며 여자 편만 드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다.

아, 나는 꼬꼬마시절 내가 잠시 출가를 했을 때, 내 배를 채워주고 자신의 세뱃돈을 내게 나눠주며 내 옆에서 얼어 죽지 않게 도와준 J군의 호의를 뼈에 새겨 기억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Y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J군은 내게 얼마 쯤 빌려주고 그냥 얼른 집에 들어가란 소리 하고 갔어도 되는 거였다. 돈이 없다며 안 빌려줬어도 되는 거였고 말이다. 혹시 Y군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생각해 본 적 없다면 오늘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여전히 눈치만 보는 두 사람.
 

난 참 답답한 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사람이 예전의 태도로 서로를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둘이 오랜만에 나눈 대화를 보자.

여친 - 눈도 오고, 네 생각이 나더라. 아프지 말고 잘 지내.
Y군 - 그래. 너도 잘 지내. 아프지 말고.
여친 - 응. 고마워.
Y군 - 그리고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여친 - 뭐가 미안한데?
Y군 - 전에 그랬던 일들….

(이 통화 중 Y군은, 과거에 여자친구가 욕이 담긴 문자를 보내고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다시 해선
여전히 "뭐가 미안한데?"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나게 된다.)
Y군 - 그런데 너는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 잊고 살려고 노력해서 이제 겨우 좀 괜찮아 졌는데,
        이렇게 연락하면 내가 다시 힘들어 질 것 같다.
        아무튼 너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내 할말 끝. 끊는다.



이렇게 전화를 끊고 난 뒤, 여자친구는 Y군의 저 말이 자신이 기대했던 말이 아니었는지 Y군에게 아래와 같은 문자를 보낸다.

"이제 안 미안해해도 돼. 그땐 정말 너에게 화가 나고, 또 네가 원망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좋은 기억들만 남는 것 같아.
그리고 나도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넌 나에게 참 많은 힘이 되어주었는데, 난 너에게 그러지 못했던 것 같고,
너무 내 감정만 생각했던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워.
내가 연락해서 널 힘들게 했다면 이제 안 할게. 그럼 잘 지내."



사과를 하면서도 떠보는 여자, 사과를 받고도 용서하지 못하는 남자. 답답하다. 이거 그냥 오늘 눈도 오고했으니 "만나서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아?"라고 물은 뒤, 만나서 등 보이지 않고 얘기하면 당장 다시 만나게 될 커플이라는 게 보인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인지 소심함 때문인지, 두 사람은 서로 눈치만 힐끔힐끔 보면서 자꾸 '뒤돌아 등 보이는 액션'만 취한다.

그러니까 잡으면 잡혀주겠다면서 이러고 있는 건데, 난 이 두 바보가 오늘 만나 부대찌개나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 "잘 지내.", "건강하고.", "잘 있어." 같은 얘기 하지 말고, 그냥 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이건 Y군이 "내가 악당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다. 아무래도 내 철 없는 모습이 그렇게 튀어나왔던 것 같다. 내 생각이 짧았다. 진심으로 난 우리 사이를 가볍게 생각한 적이 없다. 좀 더 조심스러워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널 다시 만나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만 해도 해결 될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Y군은 이 정도로 넓게 마음을 펴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웅크린 채,

"이별 후 제게 그렇게 모진 말들을 해 놓고,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게 불쑥 연락을 하는 게
저를 고려하지 않는 정말 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의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 절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단순해서 그런 건지…. 얘는 왜 그러는 건가요?"



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울퉁불퉁해진 Y군의 마음을 내가 다리미로 좀 펴주고 싶을 정도다. 그녀의 "내가 연락해서 널 힘들게 했다면 이제 안 할게."라는 말을 보고도 모르겠는가? Y군 수능 때 언어영역 몇 등급 받았는가? 저기 숨겨진 화자의 의도는 "난 너랑 다시 잘 지내고 싶어. 그래서 연락한 거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날 내친다면 나도 더 다가가지 않을게. 하지만 만약 내가 다시 다가가길 너도 원한다면 말해줘."라는 뜻 아닌가. 그녀가 설마 쌀밥에 고깃국 먹고 할 짓이 없어서 Y군을 골탕 먹이려고 "넌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는데, 난 너에게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서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하겠는가?


만나서 속에 더 남는 얘기가 없을 때가지 길게 대화를 나눠보길 바란다. 연애 할 때 여자친구가 떠보면 Y군이 똑같이 대응했다가 여자친구가 삐치고, 그러면 또 Y군은 동굴로 들어가

'이건 공평하지가 안잖아? 난 똑같이 한 건데 왜 나만 가해자야?'


라며 억울한 마음을 키웠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연락을 해오면 대충 수습해서 다시 만나고. 그렇게 지내다 사건이 터지니 또 전처럼 여자친구는 '부정적인 의미들'을 찾아내 그런 거 아니냐고 Y군에게 따지고, Y군은 자기 진심이 아닌데 여자친구가 그러니 '얘는 지금 날 매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침묵으로 여자친구의 분노를 받아냈다. 이별 후 다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에도, 둘은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 확인하는 건 하지 못한 채 서로 눈치를 보며 액션만 취했고, Y군은 그걸 두고 '얘는 왜 일방적으로 이러는가? 괘씸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지 말고 만나서 열두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전부 다 꺼내 놓고 대화하길 바란다. 원래 대수술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이다. 장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겉에다 빨간약 바르는 걸로 치료할 생각하지 말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오해인지, 또 어느 부분이 서운해서 자꾸 틀어지게 되는지,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꺼내 맞춰 보길 권한다.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지'라고 생각하며 조율하다 보면, 불협화음이 나지 않는 관계를 다시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율한다고 앞으로 마찰이 없겠어요?" 넌 피아노 조율 평생 딱 한 번 하니?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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