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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수동적 남친, 어떡해?

by 무한 2013. 12. 12.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찬 다혈질 남친, 어떡해?
유학생이나 교포 분들의 사연을 다룬 적은 있는데, 외국인의 사연을 이렇게 매뉴얼로 다루는 건 처음이다. R양의 번역기를 돌리며 작성하신 듯한 문장들과

"문장쓰는 능력도 없고 문법도 많이 틀렷겟지만
짜증난다고 생각하지만은 말아주세요."



라는 마지막 문장에 가슴이 뭉클해져 이렇게 다루게 되었다. 두유노킴치? 두유노싸이? 두유노킴연아? 출발해 보자.


1. 싫은 건 싫은 거라는 남친.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남자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이건 따로 계산해야 하는데…."하는 말을 했다. 캐셔 아주머니는 알아듣지 못했고, 한 번에 계산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영수증을 받은 남자가 물건을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아줌마, 이건 내가 따로 계산해야 한다 그랬잖아.
계산도 똑바로 못 해?"



남자가 화를 내자 아주머니는 반사적으로 사과를 했고, 여기서는 취소가 안 되니 옆에 있는 고객센터로 가서 취소를 하면 다시 따로 계산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이 아줌마 웃기네.
아줌마가 잘못한 걸 왜 내가 가서 취소를 해?
아줌마가 가서 취소해 와."



하며 더 화를 냈다. 마트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줌마에게로 향했다. 아줌마는 어쩔 줄 몰라 하다 무전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잠시 후 고객센터에 있는 직원이 달려왔다. 고객센터 직원은 거듭 사과를 하며 잠시만 같이 가 달라고 남자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남자는 꿈쩍도 않고 서서

"내가 왜 당신하고 같이 가는데?
이 아줌마가 잘못한 거니까, 둘이 가서 해결해가지고 와.
여기 웃기네. 지들이 잘못한 걸 왜 손님보고 해결하라 그래?"



라는 이야기만 해댔다. 일부러 더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해결하라고 으름장만 놓을 뿐 해결을 해주겠다고 해도 안 따라 나서는 남자 때문에 캐셔 아주머니와 고객센터 직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자만 화를 낼 줄 알고, 캐셔 아주머니나 고객센터 직원은 화를 낼 줄 몰라서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만약 그곳이 대형마트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마트였다면,

"야 너한테 안 팔 거니까 그냥 나가."


하지 않았을까? 

물론 R양의 남자친구가 위의 남자 수준으로 '진상 짓'을 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소심하게, 상대를 흘겨보며 '일촉즉발'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거나,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적의를 드러낸다거나, 아예 마음을 닫은 채 '얘는 이래서 싫고, 쟤는 저래서 싫다.'며 상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R양의 남자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한국에서는 이미 유명한 시인데,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짤막한 시이다. 누군가와 친해지지 않는 것,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 또 누군가를 믿지 않는 것은 그의 자유겠지만, 그렇게 울타리 쳐 놓고 살다보면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는 R양에게도 "그건 내가 싫어하는 거니까 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여자친구에게도 자신처럼 고립된 생활을 하라고 강요하는 태도'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2. 자긴 잘 모른다고 말하는 남친.


날 때부터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간단한 '택배 보내는 일'도, 해보지 않으면 할 줄 모르는 법이다.

"난 부동산 가서 집 계약해 본 적 없어."
"난 이사해 본 적 없어. 이삿짐센터 전화번호도 몰라."
"내 주변에 보증인(이사 문제로)으로 세울 사람 없어."
"(운반을 도와줄)기사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



R양의 남친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까닭에, 두 사람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현재 R양이 다 알아서 해결하고 있다. 저 문제는 둘의 데이트에서도 드러난다. 어디를 가고 뭘 할지 등을 모두 R양이 알아본 후 남친에게 말하면, 그제야 남친이 따라나선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가 같이 가주지 않으면 병원에 못 가는 남자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주인이 애완견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증상을 설명하듯, 자신을 앉혀 놓고 엄마가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진료를 받지 못한다.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남자'인 것이다.

난 R양의 남자친구가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남자'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R양에게 모든 일을 다 떠맡기는 건지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R양의 말만 들어보면 전자가 맞는 것 같은데, 그가 R양을 만나기 전 혼자 자취하며 잘 살았다는 것을 보면 후자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건 그가 타지로 나와 학교를 다니고, 또 자취방을 구하고 할 때 타인에게 얼마나 의지를 했었나를 알아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의 학교 입학과 자취방을 구하는 것 등을 그의 부모님이 해 주신 거라면, 그는 그냥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유가 뭐든 간에, 여하튼 연애를 할 때에는 협력해야 한다. 며칠 전 TV를 보다보니 '은퇴 후 창업한 부부들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거기서 불화를 겪는 부부로 소개된 남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난 할 줄 몰라요. 할 줄 모르는데 하라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죠.
전 평생 나가서 일하던 사람인데, 가정 일에 대해 뭘 알겠어요?
그런데 와이프가 일 안 도와준다고 뭐라고 하니까 저도 짜증이 나는 거죠."



남편의 은퇴 후 퇴직금으로 커피숍을 차린 부부는, 둘이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는 일은 공평하지가 않았다. 커피숍에서는 아내가 거의 일을 다 하고 남편은 책을 봤다. 손님이 몰려 앉아 있을 자리가 없으면 남편은 슬그머니 밖에 나가서 체조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TV를 보고 아내는 저녁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을 했다.

R양은 후년에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난 둘이 결혼을 하면 저런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스럽다. R양은

"헤어질까도 생각해봣지만, 제가 언래(원래) 외로움을 타는 성격에
**에 와서도 사람을 그리워 하고, 또 얼마나 외로운지 알기 때문에
헤어지는 건 너무 무서워요. 이 모든 걸 포기할 수가 업어요(없어요)."



라고 말했는데, 난 둘이 후년에 결혼한 후 대략 50년 동안을 R양이 '철의 여인'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무섭다. R양의 남자친구는 꽃다발 준비 같은 걸 '할 줄 모르는 일'이라 말하며 R양에게 꽃다발 한 번 안 건네주고, R양이 뭔가를 하자고 하기 전까진 그냥 가만히 방에 누워 사타구니나 긁고 있을 텐데,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R양에게 묻고 싶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


3. 결혼은 좀 더 생각해 본 뒤에 하면 안 될까?


아래는 R양이 내게 한 질문이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 아님 남자가 봐도 이상한거일가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제가 봐도 남자가 이상하네요."라고 말해도 R양은 헤어지지 못한다. 이미 남자친구의 강요로 인해 R양의 동선은 축소되었고, 남자친구 이외의 사람과는 대부분 관계가 끊겼다. 좀 나쁘게 말하자면, R양이 '남자친구의 새장'에 들어앉게 된 것이다. 그는 R양의 대인관계에 간섭해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관계들을 조율했고, R양의 전화기를 검열하였으며,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거 다 소용없다. 우리 둘만 잘 지내면 된다."라며 R양을 세뇌했다.

이런 와중에 내가 더 염려스럽게 생각하는 건, R양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주변사람이나 부모님께 설명할 때에는 현명함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내가 '부모님의 반대'를 겪는 대원들에게 권했던 방법이긴 한데, 여하튼 R양이 주변 사람들에게 남자친구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그들 또한 남자친구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말해둔 까닭에, R양이 이 연애에서 겪는 어려움과 갈등에 대해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만약 R양이 헤어진다고 하면 다들 만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R양이 내 여동생이었으면 결혼이고 뭐고 오늘 당장 강제귀국을 시켰을 것 같다.

"넌 왜 맨날 아프냐?"


라고 말하는 남자와 결혼은 무슨 결혼인가. 걔는 안 아픈 여자와 결혼하도록 놔두라고 하고,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비행기로 날아가 R양을 데리고 왔을 것 같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는데 만약 R양이 그 남친과의 이별에 힘들어 하고 있으면,

"야, 이거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냐.
따지고 보면 너 걔가 좋아서 사귄 게 아니라
타지에서 같은 고향 사람 만나 놀다가 사귀게 된 거잖아.
걔랑 같이 노는 것도 사실 재미없고, 대화도 건조하게 느껴졌지만
당장 거기서 걔 말고는 대안이 없으니까 일단 사귄 거잖아.
네가 살아온 방식 전체를 부정하며 자기 입맛에 맞추라고 하고,
너보고 왜 맨날 아프냐며 짜증내는 남자는, 너에게 맞지 않는 구두야.
결혼? 지금 결혼하면 그 구두 평생 신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어?
걔한테 책임감이 있길 하냐, 아니면 널 존중하길 하냐.
지금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 때문에 안타까워서 다시 만나려 하지 말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꼭 걔랑 다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



라는 이야기를 해줄 것 같다. 하지만 R양은 내 여동생이 아니니 이렇게 까진 할 수가 없고, 결혼하는 건 좀 더 생각해 본 뒤에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남자친구가 R양의 부모님께는 이미 인사드렸고, 이제 R양이 남자친구 부모님 뵈면 바로 날짜를 잡게 될 것 같은데, 우물쭈물 하다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결혼해 버리진 않길 바란다.


난 R양에게

"네가 왜 그 나라에 가 있는 건지를 떠올려봐.
뭘 위해서 왔고, 그러려면 지금 뭘 해야 하는 건지도 생각해 봐.
그와 연애를 시작한 이후 넌 네 삶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원하는 삶을 살았어.
그러다보니 이제는 네가 왜 그 나라에 가 있는지 잘 모르게 되었을 정도야.
넌 분명 홋카이도로 가고 있었는데, 가던 도중 그를 만나서
그가 가려는 나가사키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
그럼 너는 뭐가 되는 거지? 너라는 사람은 왜 존재하는 거지?
네가 정말 네 자신에게 신경 쓴다면, 
옆에 누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까지 두렵진 않을 거야.
네가 누군지, 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봐. 그게 먼저고, 연애는 그 다음이야.
연애는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가는 거니까.
목적지가 다른 사람을 만나 그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걸 잊지 마."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또 R양과 남자친구는 아이를 낳으면 키울 자신이 있네 없네 하는 이야기로도 갈등을 겪었던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이 사람과 우리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아이는 분유 값, 옷 값, 교육비 등으로만 기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가정'이라는 화목한 요람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재 R양이 남자친구로 인해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불안전한 관계 속에서, 그런 요람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중요한 것들'을 먼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혼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 빠른 길이 아닌 바른 길로 가 보자.



"남친이 사랑한다고 하는데도 전 뭔지 모르게 외로워요." 새장에 갇힌 연애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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