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경험 충분히 많은 김형에게
김형 말이 맞다고 생각해. 나 역시 그녀가 현재 튕기고 있는 거고, 이건 김형이 내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도 없이 완급 조절만 조금 해도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해. 김형이 그랬잖아.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근데
라는 부분은 글쎄, 잘 모르겠어. 내가 왜 이 부분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오랜 연애를 위해 김형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자.
사연과 카톡대화를 통해 내가 본 김형은 금사빠야. 금사빠 특유의 추격본능과 떠보기, 그리고 기회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 김형의 태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이 '금사빠의 태도'가 김형에겐 큰 문제가 안 돼. 왜? 후광을 비춰주는 다른 조건들이 금사빠의 단점을 가려주고 있거든.
김형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이, 김형의 조건은 외모와 경제력 부분에서 사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좋은 편이잖아. 덕분에 지금까지 누군가와 사귀려고 마음먹었을 때, 냉혹하게 거절 당할 일 없이 무난하게 연애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말야. 그 연애들이 대부분 짧게 끝나고 말았지만, 뭐 이건 당장 김형이 큰 문제로 여기고 있지 않으니 일단 넘어가자.
김형이 툭 터놓고 사연을 보냈으니 나도 툭 터놓고 말할게. 만약 김형의 썸녀가 내게 사연을 보낸 거라면, 난 그녀에게
라는 이야기를 했을 거야. 김형의 행동만 보면 '사귀는 게 급한 남자'일 뿐이거든. 김형의 조건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 모래 위에 집 짓고 며칠 사귀다가 김형의 마음 식는 순간 연애에도 종말이 올 텐데. 김형에게선 상대를 향한 애정, 존중, 배려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어. 그저 맛있는 거 사주겠다, 같이 한 잔 하자 하는 이야기뿐이지.
그런 건 사귀고 나서 차차 알아가며 생기는 거 아니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사귀기 전에 김형이 썸녀에게 하는 행동만 봐도 대략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이 가능하거든. 내 대답은 "그러긴 힘들어 보입니다."야. 내가 예상하는 둘의 연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 해줄게.
김형 '갑'이잖아. 상대가 김형을 '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지금 김형이 상대를 친절하게 대하고 관심을 보이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하는 건 '사귄다'는 승낙을 확실히 받아내기 위해 그러는 거지, 정말 상대를 존중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김형 혹시, 헤밍웨이의 <프랜시스 매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이라는 소설 읽어 본 적 있어? 거기 보면 부자인 매콤버가 젊은 아내에게 우쭐대기 위해 아프리카 사냥 여행을 가거든. 나도 오래 전에 읽은 거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여하튼 '아내를 위해 난 이만큼까지 한다'는 걸 보여주려 매콤버는 아내와 호화 사냥 여행을 가. 내 기억엔 그의 아내도 그에게 큰 애정은 없지만 그가 워낙 부자라서 결혼을 한 어린 여자였던 것 같아.
사냥 여행이라곤 하지만 사실 크게 위험한 건 아니거든. 그곳에서 사냥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준비하고, 참가자는 그냥 방아쇠 정도만 당기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사냥 중 예상치 못한 사자의 포효소리가 들려와. 매콤버는 그 소리에 놀라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지. 그 상황에서 매콤버의 아내를 지켜준 건 프로그램 가이드인 윌슨이야. 포효소리만 났을 뿐 사자가 나타난 건 아니어서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매콤버는 다시 무리에 합류해. 그 사건으로 인해 매콤버는, 지금까지 아내를 위해 뭐든 다 해 줄 것 같이 굴었던 건 '안전한 상황'에서였을 뿐, '위험한 상황'이 되면 자기 자신을 챙기기 바쁜 남자라는 걸 증명하고 만 거지.(이 뒷부분부터가 소설의 재미있는 부분이니까, 스포일러는 이쯤만 할게.)
정말 미안하지만 난 김형이 저 매콤버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거든. 김형은 썸녀가 김형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또 둘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잘 알아. 썸녀가 김형에게 한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김형은
라고 말하잖아. 물론 나도 김형의 분석엔 동의해. 그런데 그렇게 썸녀와 다 터놓고 말하는 것 대신 썸녀의 행동에 그저 '속아주는 척'을 해 버리면, 김형은 사귀는 내내 연기를 해야 하거든.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그런 연기를 하면서는 절대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야. 힘들다고 할 때 위로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상대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뭘 사주거나 상대가 좋아할 만한 걸 해주는 걸로 풀 수도 있고 말야. 근데 그냥 그게 다야. 그러다 김형이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싫증을 느끼면 상대는 찬밥신세가 되거나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될 거고, 또는 상대의 조율 시도에 대해 김형이
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즉시 이별이 찾아올 거야. 그저 상대의 말에 쿵짝을 맞추기 위해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답하는 것과, 정말 고양이를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잖아. 그저 상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답하고, 또 액션까지 취하느라 고양이를 입양한 어느 대원이 있었는데, 그 대원은 헤어지자마자 고양이를 '처치곤란'으로 생각하더라고.
우리끼린데 또 아니라고는 하지 말자. 그녀를 향한 김형의 열정이 거짓이라는 소리가 아니야. 김형에게 그저 그 열정만 있을 뿐이란 얘기지. 김형이 정말 그녀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그녀가 김형에게 준 선물에 대해 "이건 이러이러한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그녀가 제게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 선물에 관심을 가지고 잠시라도 들여다봤을 테니까.
김형, '자상한 오빠'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같이 술 마시다가 고백해서 그 날 저녁에 스킨십 진도 나가려 하는 지금의 태도 말고, 썸녀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그녀의 입술만 보지 말고,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여 들어보자고.
두 손을 다 써서 나이차를 세야 할 만큼 썸녀가 김형보다 어리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가 김형보다 어른스럽거든. 김형이 급하게 들이대니까 쉼표를 찍잖아. 그걸 썸녀가 밀당한다거나 계산한다고만 생각하진 마. 빨리빨리 데이트하고 진도를 나가고 싶은 김형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가 머리를 쓰는 걸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행동 안에는 김형과 몇 달 만나다 바이바이 하지 않으려는 썸녀의 뜻이 담겨있기도 해. 김형이 입술부터 내밀며 다가오니까 썸녀의 촉이 김형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물러서는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김형. 썸녀가 김형보다 어리다고 해서 김형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어린애 다루듯이 썸녀를 대하지도 말고. 지금이야 썸녀가 어리니 마냥 꼬마처럼 보이겠지만, 김형이 썸녀보다 어렸을 때 지금 썸녀 나이였던 누나들을 생각해 봐. 당시에 그 누나들은 크고 어려운 존재로 보였을 거 아냐. 썸녀도 마찬가지라고. 어리다고 어리석거나 어리숙하지 않아. 만약 지금 운이 좋아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더라도, 김형이 그녀를 기만하는 한 '오래도록 서로 아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잊지 마.
하나 더. 정말 김형이 썸녀와 오래도록 서로 아끼며 사랑하고 싶은 거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청사진을 그려나가. 난 그녀가 걱정되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김형이
라고 말 한 부분에서 고개를 저었어. 김형은 사실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 한 거잖아.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이거 대단히 중요한 거야. 썸녀가 김형의 저 말을 듣고 김형의 고백을 받아들인다는 건, 김형을 믿고 시작하는 거니까.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데 그럼 뭐라고 말하냐고? 그냥 그대로 말 해.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해. 그게 옳은 거야. 잘 생각해 봐. 김형하고 나하고 제주도를 가는데, 김형이 비행기 표를 끊고 나니까 10만원 밖에 안 남아. 우리는 제주도에 10일을 있어야 해. 숙박비 하기도 벅차겠지? 그런 상황에서 김형이 내게 돈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고민을 털어놨는데, 내가
라고 말했어.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가서는 나 역시 "나도 돈 부족한데 어떡하지?"하고 있어. 이런 상황일 때 김형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다음에도 또 같이 여행가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려 지금 대충 둘러댔다간, 훗날 상대에게 완전한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 김형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완전한 실망을.
김형이 악한 사람처럼 보여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 이 부분에 대해 지금 생각해 보지 않으면, 김형의 '좋은 조건'이라는 게 평생 김형의 발목을 잡을 수 있거든. 이대로는 누군가와 오래 만나는 게 불가능해. 상대가 김형을 더 좋아하면 김형은 따분해져서 '갑'의 입장만 고수하게 될 수 있고, 아니면 다툼이 생겼을 때 김형이 은연중에 '갑'의 입장에서 말하다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애초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모든 연애의 유효기간이 김형의 인내심에만 달려있게 되는 거야.
내가 김형에 대해 오해한 거 아니냐고? 김형, 썸녀가 천천히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 김형이 김빠져서 지금 연락도 안 하고 있잖아. 이 정도면 청진기 안 대도 진단 나오는 거 아냐? 지금 김형에게 썸녀는, 김형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냥 팽개쳐 둘 수 있는 존재야. 다 해줄 것처럼 들이대도 썸녀가 빨리 승낙하지 않으니까, 김형은 '그래, 나도 너 아쉽지 않다.'라는 본심을 드러내듯 남처럼 굴고 있잖아. 자꾸 튕기면 고백할 용기를 잃을 수 있다며 은근히 으름장 놓는 남자. 그런 남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김형 학교 다닐 때 <방망이 깎던 노인> 읽어 봤을 거 아냐. 거기 유명한 대화 나오잖아.
저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김형은 주인공, 썸녀는 노인이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인공의 후회 기억나?
그러니까 "얼마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연락할까요?"하고 나한테 묻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얼른 썸녀에게 연락해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라고. 알았지?
▲ 일주일째 연말결산 예고만 해서 죄송합니다. 내일은 꼭! 기필코! 추천으로 힘 좀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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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말이 맞다고 생각해. 나 역시 그녀가 현재 튕기고 있는 거고, 이건 김형이 내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도 없이 완급 조절만 조금 해도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해. 김형이 그랬잖아.
"솔직히, 상담을 드리지 않아도
제가 어떻게든 다시 엮어 갈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제가 어떻게든 다시 엮어 갈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근데
"그녀와 오래도록 서로 아끼며 사랑할 수 있는 연인이 되고 싶기에…."
라는 부분은 글쎄, 잘 모르겠어. 내가 왜 이 부분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오랜 연애를 위해 김형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자.
1.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 할 거야.
사연과 카톡대화를 통해 내가 본 김형은 금사빠야. 금사빠 특유의 추격본능과 떠보기, 그리고 기회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 김형의 태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이 '금사빠의 태도'가 김형에겐 큰 문제가 안 돼. 왜? 후광을 비춰주는 다른 조건들이 금사빠의 단점을 가려주고 있거든.
김형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이, 김형의 조건은 외모와 경제력 부분에서 사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좋은 편이잖아. 덕분에 지금까지 누군가와 사귀려고 마음먹었을 때, 냉혹하게 거절 당할 일 없이 무난하게 연애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말야. 그 연애들이 대부분 짧게 끝나고 말았지만, 뭐 이건 당장 김형이 큰 문제로 여기고 있지 않으니 일단 넘어가자.
김형이 툭 터놓고 사연을 보냈으니 나도 툭 터놓고 말할게. 만약 김형의 썸녀가 내게 사연을 보낸 거라면, 난 그녀에게
"그 남자와의 연애는 한 겨울 밤의 해프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을 거야. 김형의 행동만 보면 '사귀는 게 급한 남자'일 뿐이거든. 김형의 조건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 모래 위에 집 짓고 며칠 사귀다가 김형의 마음 식는 순간 연애에도 종말이 올 텐데. 김형에게선 상대를 향한 애정, 존중, 배려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어. 그저 맛있는 거 사주겠다, 같이 한 잔 하자 하는 이야기뿐이지.
그런 건 사귀고 나서 차차 알아가며 생기는 거 아니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사귀기 전에 김형이 썸녀에게 하는 행동만 봐도 대략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이 가능하거든. 내 대답은 "그러긴 힘들어 보입니다."야. 내가 예상하는 둘의 연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 해줄게.
2. '을'인 척 하는 연애.
김형 '갑'이잖아. 상대가 김형을 '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지금 김형이 상대를 친절하게 대하고 관심을 보이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하는 건 '사귄다'는 승낙을 확실히 받아내기 위해 그러는 거지, 정말 상대를 존중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김형 혹시, 헤밍웨이의 <프랜시스 매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이라는 소설 읽어 본 적 있어? 거기 보면 부자인 매콤버가 젊은 아내에게 우쭐대기 위해 아프리카 사냥 여행을 가거든. 나도 오래 전에 읽은 거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여하튼 '아내를 위해 난 이만큼까지 한다'는 걸 보여주려 매콤버는 아내와 호화 사냥 여행을 가. 내 기억엔 그의 아내도 그에게 큰 애정은 없지만 그가 워낙 부자라서 결혼을 한 어린 여자였던 것 같아.
사냥 여행이라곤 하지만 사실 크게 위험한 건 아니거든. 그곳에서 사냥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준비하고, 참가자는 그냥 방아쇠 정도만 당기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사냥 중 예상치 못한 사자의 포효소리가 들려와. 매콤버는 그 소리에 놀라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지. 그 상황에서 매콤버의 아내를 지켜준 건 프로그램 가이드인 윌슨이야. 포효소리만 났을 뿐 사자가 나타난 건 아니어서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매콤버는 다시 무리에 합류해. 그 사건으로 인해 매콤버는, 지금까지 아내를 위해 뭐든 다 해 줄 것 같이 굴었던 건 '안전한 상황'에서였을 뿐, '위험한 상황'이 되면 자기 자신을 챙기기 바쁜 남자라는 걸 증명하고 만 거지.(이 뒷부분부터가 소설의 재미있는 부분이니까, 스포일러는 이쯤만 할게.)
정말 미안하지만 난 김형이 저 매콤버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거든. 김형은 썸녀가 김형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또 둘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잘 알아. 썸녀가 김형에게 한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김형은
"그런 이미지를 보완하려고 그녀가 그 행동을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잖아. 물론 나도 김형의 분석엔 동의해. 그런데 그렇게 썸녀와 다 터놓고 말하는 것 대신 썸녀의 행동에 그저 '속아주는 척'을 해 버리면, 김형은 사귀는 내내 연기를 해야 하거든.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그런 연기를 하면서는 절대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야. 힘들다고 할 때 위로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상대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뭘 사주거나 상대가 좋아할 만한 걸 해주는 걸로 풀 수도 있고 말야. 근데 그냥 그게 다야. 그러다 김형이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싫증을 느끼면 상대는 찬밥신세가 되거나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될 거고, 또는 상대의 조율 시도에 대해 김형이
'맞춰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즉시 이별이 찾아올 거야. 그저 상대의 말에 쿵짝을 맞추기 위해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답하는 것과, 정말 고양이를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잖아. 그저 상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답하고, 또 액션까지 취하느라 고양이를 입양한 어느 대원이 있었는데, 그 대원은 헤어지자마자 고양이를 '처치곤란'으로 생각하더라고.
우리끼린데 또 아니라고는 하지 말자. 그녀를 향한 김형의 열정이 거짓이라는 소리가 아니야. 김형에게 그저 그 열정만 있을 뿐이란 얘기지. 김형이 정말 그녀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그녀가 김형에게 준 선물에 대해 "이건 이러이러한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그녀가 제게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 선물에 관심을 가지고 잠시라도 들여다봤을 테니까.
3. '오래도록 서로를 아끼기' 위해 필요한 것.
김형, '자상한 오빠'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같이 술 마시다가 고백해서 그 날 저녁에 스킨십 진도 나가려 하는 지금의 태도 말고, 썸녀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그녀의 입술만 보지 말고,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여 들어보자고.
두 손을 다 써서 나이차를 세야 할 만큼 썸녀가 김형보다 어리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가 김형보다 어른스럽거든. 김형이 급하게 들이대니까 쉼표를 찍잖아. 그걸 썸녀가 밀당한다거나 계산한다고만 생각하진 마. 빨리빨리 데이트하고 진도를 나가고 싶은 김형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가 머리를 쓰는 걸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행동 안에는 김형과 몇 달 만나다 바이바이 하지 않으려는 썸녀의 뜻이 담겨있기도 해. 김형이 입술부터 내밀며 다가오니까 썸녀의 촉이 김형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물러서는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김형. 썸녀가 김형보다 어리다고 해서 김형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어린애 다루듯이 썸녀를 대하지도 말고. 지금이야 썸녀가 어리니 마냥 꼬마처럼 보이겠지만, 김형이 썸녀보다 어렸을 때 지금 썸녀 나이였던 누나들을 생각해 봐. 당시에 그 누나들은 크고 어려운 존재로 보였을 거 아냐. 썸녀도 마찬가지라고. 어리다고 어리석거나 어리숙하지 않아. 만약 지금 운이 좋아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더라도, 김형이 그녀를 기만하는 한 '오래도록 서로 아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잊지 마.
하나 더. 정말 김형이 썸녀와 오래도록 서로 아끼며 사랑하고 싶은 거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청사진을 그려나가. 난 그녀가 걱정되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김형이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니다. 사귀면서 생각하자."
라고 말 한 부분에서 고개를 저었어. 김형은 사실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 한 거잖아.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이거 대단히 중요한 거야. 썸녀가 김형의 저 말을 듣고 김형의 고백을 받아들인다는 건, 김형을 믿고 시작하는 거니까.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데 그럼 뭐라고 말하냐고? 그냥 그대로 말 해.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해. 그게 옳은 거야. 잘 생각해 봐. 김형하고 나하고 제주도를 가는데, 김형이 비행기 표를 끊고 나니까 10만원 밖에 안 남아. 우리는 제주도에 10일을 있어야 해. 숙박비 하기도 벅차겠지? 그런 상황에서 김형이 내게 돈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고민을 털어놨는데, 내가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냐. 일단 제주도 가서 생각하자."
라고 말했어.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가서는 나 역시 "나도 돈 부족한데 어떡하지?"하고 있어. 이런 상황일 때 김형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다음에도 또 같이 여행가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려 지금 대충 둘러댔다간, 훗날 상대에게 완전한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 김형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완전한 실망을.
김형이 악한 사람처럼 보여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 이 부분에 대해 지금 생각해 보지 않으면, 김형의 '좋은 조건'이라는 게 평생 김형의 발목을 잡을 수 있거든. 이대로는 누군가와 오래 만나는 게 불가능해. 상대가 김형을 더 좋아하면 김형은 따분해져서 '갑'의 입장만 고수하게 될 수 있고, 아니면 다툼이 생겼을 때 김형이 은연중에 '갑'의 입장에서 말하다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애초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모든 연애의 유효기간이 김형의 인내심에만 달려있게 되는 거야.
내가 김형에 대해 오해한 거 아니냐고? 김형, 썸녀가 천천히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 김형이 김빠져서 지금 연락도 안 하고 있잖아. 이 정도면 청진기 안 대도 진단 나오는 거 아냐? 지금 김형에게 썸녀는, 김형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냥 팽개쳐 둘 수 있는 존재야. 다 해줄 것처럼 들이대도 썸녀가 빨리 승낙하지 않으니까, 김형은 '그래, 나도 너 아쉽지 않다.'라는 본심을 드러내듯 남처럼 굴고 있잖아. 자꾸 튕기면 고백할 용기를 잃을 수 있다며 은근히 으름장 놓는 남자. 그런 남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김형 학교 다닐 때 <방망이 깎던 노인> 읽어 봤을 거 아냐. 거기 유명한 대화 나오잖아.
노인 -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주인공 -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요?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 -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주인공 -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요?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 -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저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김형은 주인공, 썸녀는 노인이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인공의 후회 기억나?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그러니까 "얼마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연락할까요?"하고 나한테 묻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얼른 썸녀에게 연락해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라고. 알았지?
▲ 일주일째 연말결산 예고만 해서 죄송합니다. 내일은 꼭! 기필코! 추천으로 힘 좀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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