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남이 남긴 작별을 의미하는 멘트 외 2편
계속 사연을 보내고 있는 P양을 진정시키기 위해, P양에게 전할 이야기를 먼저 좀 적어둘까 한다. 난 P양에게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P양이 원한다는 그 '정서적 공감'은 수준이 너무나 높은 까닭에, 남친에겐 P양과의 대화가 고문처럼 느껴질 것이다. P양은 자신이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세 시간 넘게 릴레이 토크를 할 수 있기에 남자친구에게도 같은 수준의 대화를 요구하는데, 남자친구에겐 그 시간이 '심층 면접'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은 심정이란 얘기다. "취직해서 돈 벌려고."라는 게 솔직한 생각이라 그렇게 말 한 건데, 면접관인 P양은 "단답 말고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말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난 P양이 더 답답하다. 대체 왜 그렇게 남자친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P양이 묻는 건 "내 친구 커플은 부모님이 반대해서 헤어졌대. 자기는 만약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야?" 따위의 질문이 대부분인데, 난 왜 P양이 밥 잘 먹고 나서 남의 얘기 갖고 싸우다 결국 갈등까지 겪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거 짧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으니,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저 대화를 가져다 보자.
남자친구를 대신해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P양과의 대화가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괴로워서 그러는 거다. 저 질문들은 남자에게, 마치 꼬마 아이가 "공룡은 왜 멸종했어? 유성 때문에? 유성이 뭐야? 유성은 왜 생겨? 유성은 어디 있어? 그러면 유성은 또 안 와?"라고 물을 때와 같은 피곤함을 느끼게 만드니 말이다.
P양이 남자친구의 물건을 부순 이야기도 보자. P양이라면, 남자친구가 P양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부숴 놓곤 "화났어? 화 풀어. 얼른 다시 웃어."라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을 수 있겠는가? P양은 남자친구의 물건을 부숴놓고, 그 일로 인해 남자친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는 게 못마땅하다며 집에 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을 때 뭐라고 말했는가?
P양이 생각하는 연애는 무엇이고, 또 남자친구는 무엇인가? 연애는 노예계약이고 남자친구는 노예인가? 이건, P양이 상대의 발 밟아 놓고, 사과 했는데 빨리 기분 안 푼다며 다시 또 밟는 것 아닐까? 난 내게 "더 수다스러워지고, 늘 자신이 '을'이라 생각하며 행동하라."라는 주문을 하는 여자와는 한 계절도 못 만날 것 같은데, P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래 두 문장을 보자.
상식적으로 ⓐ는 '마지못해 쓰겠다는 인사'라는 뉘앙스가 강하고, ⓑ는 '고마워서 하는 인사'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런데 이 상식을 깨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연을 보낸 H양이 그렇다. H양은 회사에서 다른 부서의 남자 A를 칭찬한 적이 있다. 그걸 들은 A의 선배는 A에게 H양과의 소개팅 자리를 주선했다. 첫 만남까진 좋았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H양은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 그 질문을 들은 A의 얼굴은 대춧빛으로 변했고, 주문한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집에 가자며 일어섰다. 그 후 A는 "즐겁고 기뻤습니다. 항상 승리하세요."라는 톡을 끝으로 더 이상 H양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답이 신청서에 뻔히 적혀 있는데 이걸 두고 내게 물으니, 사실 좀 난감하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H양이 상대를 무슨 구직자처럼 대하니, 당연히 짜증났을 거라는 얘기를 하면 될까?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도 H양은 '갑'처럼 굴었다.
미안하지만, 이건 그냥 예의가 없는 거다. '보면 보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의 태도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H양이 자신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선배에게 들었기에, 최대한 H양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두 번째로 만나보니, 선배의 말과 달리 H양은 '그냥 흘리듯이' 칭찬을 한 거라고 말하고, 다짜고짜 자신에게 어떤 확신이 있기에 소개팅 자리에 나왔냐고 묻는다. 뜬금 없이 이쪽을 팬클럽 회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까지 H양을 만날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닥 희망적으로 생각되진 않지만, H양이 이 오해를 풀고 싶은 거라면 상대에게 먼저 연락해 보길 권한다. 연락해서 H양의 호감을 표시하면, 이전의 일들에 대해 장황하게 변명하지 않아도 자연히 '오해'로 분류될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H양이 '그에게 오해라는 걸 설명한 뒤 다시 그가 나에게 충성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내게 질문을 한 거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등받이에 기댄 채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여자와 만나고 싶어하는 남자는 없으니 말이다. 호감이 있다면 얼른 그 의자에서 일어서 그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가원씨, 저는 올 겨울에 눈꽃을 접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대문에 나가 배경이 될 벨벳 천을 사오기도 했고, 매크로 렌즈와 익스텐션 튜브, 링플래시도 구비해 두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벨벳 천에 눈을 받은 뒤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올 때마다 저는 뭔가 하고 있었습니다. 공쥬님(여자친구)을 만나러 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나중으로 미루기도 했고,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눈이 내려 글을 다 쓰고 찍겠다며 미루기도 했습니다. 밖에 나가 있던 중에 눈이 내려 나중에 집에 있을 때 찍겠다며 미루기도 했고, 내리는 눈이 함박눈이 아니라 싸라기 같은 눈이라 미루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전
라며 미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지금은 입춘도 훌쩍 지나버렸고, 앞으로 눈이 더 올 지 안 올지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으로 계속 미뤄둔 까닭에 결국 눈꽃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분명 눈은 몇 번이나 왔었는데, 전 '최적의 순간'만 기다리다가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이성을 대하는 가원씨의 태도가, 제가 눈꽃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태도와 비슷합니다. 가원씨 역시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좀 더 친해지고, 낯설음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오면 그때 상대를 자연스럽게 대하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가원씨 역시 썸남을 놓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여러 신호를 보내고 또 가원씨에게 직접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가원씨는
하는 생각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넘겨버리고 맙니다. 여기서 보기엔 분명 둘이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가원씨는 흘려보내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히 상대는 별 반응이 없는 가원씨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꼭 둘이 친해야만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전에, 뭔가를 같이 하다 보면 친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원씨와 저는 현재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우리가 가까워지려면 치맥을 함께하든, 영화를 같이 보든, 동대문에 같이 나갔다 오든, 뭐 그런 걸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계시면 곤란합니다. 제 조카가 중학생인데, 요즘 애들은 이성에게 주말에 맥도널드 가자는 데이트 신청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학원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는 얘기도 아주 자연스레 건네고 말입니다. 시대가 이런 시대인데, 가원씨 혼자 남녀칠세부동석 하고 있으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가연씨가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또 그와 잘 되길 바라고 있는 오늘날 이 시점에, '왠지 너무 사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사귀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오로지 내 템포만 고집하는 것은 상대를 지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꼭 사귀는 게 아니라도 영화 정도는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높게 세운 두려움과 불신의 벽은 그만 허무시고, 최소한 '동성친구'에게 보일 수 있는 호의 정도는 상대에게 보여주시길 권합니다. 좀 늦었지만, 발렌타인 초콜릿이요? 그런 건 고민할 필요없이 그냥 주면 되는 거였습니다. 큰 의미를 담은 거창한 선물로 말고, 인도여행 가서 사온 립밤 나눠주듯이 그냥 그렇게 주시면 되는 겁니다. 오늘은 부담 없이 상대에게 먼저 연락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짤방 중에
라는 문장이 적힌 짤방이 있었다. 난 저 말을 자신의 연애에 한 번 대입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누군가와 사귀다 이별한 이후에는 '그러지 말 걸, 내가 좀 더 잘 할 걸, 그땐 내가 참을 걸, 좀 더 다정하게 대할 걸.'하는 후회를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연애를 시작하면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대원들이 많다.
오늘 매뉴얼 첫 사연의 주인공인 P양 역시, 헤어지고 나면 '생각해 보니까, 날 기쁘게 해주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남자에게 아무 것도 아닌 질문만 하다 그걸 계기로 헤어졌네. 그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보다, 그 순간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거에 더 집중할 걸….'라는 후회를 할 것 같지 않은가? P양의 이전 연애들이 끝난 후 설마 P양이
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 "무한님 어떤 와플 드시나요? 유명한 건가요?" 아저씨가 와서 파는 거예요. 천오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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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사연을 보내고 있는 P양을 진정시키기 위해, P양에게 전할 이야기를 먼저 좀 적어둘까 한다. 난 P양에게
"남자친구에게, 여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P양이 원한다는 그 '정서적 공감'은 수준이 너무나 높은 까닭에, 남친에겐 P양과의 대화가 고문처럼 느껴질 것이다. P양은 자신이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세 시간 넘게 릴레이 토크를 할 수 있기에 남자친구에게도 같은 수준의 대화를 요구하는데, 남자친구에겐 그 시간이 '심층 면접'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회사를 선택한 이유와 자세한 지원 동기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은 심정이란 얘기다. "취직해서 돈 벌려고."라는 게 솔직한 생각이라 그렇게 말 한 건데, 면접관인 P양은 "단답 말고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말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는 누가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노란색이라고 답한 이후에
왜 노란색을 좋아하는지, 노란색의 제품들은 뭐뭐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노란색을 좋아해서 생긴 에피소드 같은 것까지 말하거든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제가 물으면 '노란색'이라고 답하는 게 끝이에요.
무한님은 제 답답함 이해 가시나요? 제 남자친구의 정서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거죠?"
왜 노란색을 좋아하는지, 노란색의 제품들은 뭐뭐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노란색을 좋아해서 생긴 에피소드 같은 것까지 말하거든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제가 물으면 '노란색'이라고 답하는 게 끝이에요.
무한님은 제 답답함 이해 가시나요? 제 남자친구의 정서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거죠?"
난 P양이 더 답답하다. 대체 왜 그렇게 남자친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P양이 묻는 건 "내 친구 커플은 부모님이 반대해서 헤어졌대. 자기는 만약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야?" 따위의 질문이 대부분인데, 난 왜 P양이 밥 잘 먹고 나서 남의 얘기 갖고 싸우다 결국 갈등까지 겪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거 짧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으니,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무슨 말이 듣고 싶으십니까?
저 대화를 가져다 보자.
P양 - 내 친구 커플은 부모님이 반대해서 헤어졌대.
자기는 만약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남친 - 부모님을 설득해야겠지.
P양 - 아니, 설득을 한다 안 한다 말고,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남친 - 음, 좋진 않겠지.
P양 - 좋지 않아서, 어떻게 할 건데?
남친 - 그래도 설득을 해봐야지.
P양 - 난 실망해서 우리 관계까지도 회의적으로 보일 것 같은데, 자긴 안 그럴 것 같아?
남친 - 글쎄, 부모님이 아직 잘 모르셔서 그런 걸 수도 있는 거니까.
P양 - 부모님이 모르긴 왜 몰라. 다 아시면서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야, 나는.
남친 - 설득해야지. 그나저나 날씨 이제 많이 풀렸어.
P양 -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또 말을 돌리네.
남친 - 응? 아, 미안해. 말 돌린 게 아니라. 저 대화가 끝난 줄 알고….
P양 - 어딜 봐서 저 대화가 끝났는데?
난 분명 부모님이 다 아시면서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잖아.
남친 - 그러니까, 난 설득 하겠다고 답했잖아.
P양 - 아까부터 설득, 설득, 설득. 나랑 대화하는 게 귀찮아?
남친 - 아니, 난 내 생각을 물어봐서 말 한 건데….
P양 - 진짜 자기랑은 깊은 대화가 안 된다.
남친 - 미안해. 깊은 대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P양 - 매번 노력한다고 하면서 달라지는 게 없어.
자기는 만약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남친 - 부모님을 설득해야겠지.
P양 - 아니, 설득을 한다 안 한다 말고,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남친 - 음, 좋진 않겠지.
P양 - 좋지 않아서, 어떻게 할 건데?
남친 - 그래도 설득을 해봐야지.
P양 - 난 실망해서 우리 관계까지도 회의적으로 보일 것 같은데, 자긴 안 그럴 것 같아?
남친 - 글쎄, 부모님이 아직 잘 모르셔서 그런 걸 수도 있는 거니까.
P양 - 부모님이 모르긴 왜 몰라. 다 아시면서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야, 나는.
남친 - 설득해야지. 그나저나 날씨 이제 많이 풀렸어.
P양 -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또 말을 돌리네.
남친 - 응? 아, 미안해. 말 돌린 게 아니라. 저 대화가 끝난 줄 알고….
P양 - 어딜 봐서 저 대화가 끝났는데?
난 분명 부모님이 다 아시면서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잖아.
남친 - 그러니까, 난 설득 하겠다고 답했잖아.
P양 - 아까부터 설득, 설득, 설득. 나랑 대화하는 게 귀찮아?
남친 - 아니, 난 내 생각을 물어봐서 말 한 건데….
P양 - 진짜 자기랑은 깊은 대화가 안 된다.
남친 - 미안해. 깊은 대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P양 - 매번 노력한다고 하면서 달라지는 게 없어.
남자친구를 대신해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P양과의 대화가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괴로워서 그러는 거다. 저 질문들은 남자에게, 마치 꼬마 아이가 "공룡은 왜 멸종했어? 유성 때문에? 유성이 뭐야? 유성은 왜 생겨? 유성은 어디 있어? 그러면 유성은 또 안 와?"라고 물을 때와 같은 피곤함을 느끼게 만드니 말이다.
P양이 남자친구의 물건을 부순 이야기도 보자. P양이라면, 남자친구가 P양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부숴 놓곤 "화났어? 화 풀어. 얼른 다시 웃어."라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을 수 있겠는가? P양은 남자친구의 물건을 부숴놓고, 그 일로 인해 남자친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는 게 못마땅하다며 집에 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을 때 뭐라고 말했는가?
"내가 실수해 놓고 이러는 게 적반하장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넌 내가 너한테 뭔가 화가 나서 토라져 있으면 풀어줘야겠단 생각이 안 드나봐?
그냥 넌 내가 알아서 풀리길 기다리는 것 같아."
넌 내가 너한테 뭔가 화가 나서 토라져 있으면 풀어줘야겠단 생각이 안 드나봐?
그냥 넌 내가 알아서 풀리길 기다리는 것 같아."
P양이 생각하는 연애는 무엇이고, 또 남자친구는 무엇인가? 연애는 노예계약이고 남자친구는 노예인가? 이건, P양이 상대의 발 밟아 놓고, 사과 했는데 빨리 기분 안 푼다며 다시 또 밟는 것 아닐까? 난 내게 "더 수다스러워지고, 늘 자신이 '을'이라 생각하며 행동하라."라는 주문을 하는 여자와는 한 계절도 못 만날 것 같은데, P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소개팅남이 남긴 작별을 의미하는 멘트.
아래 두 문장을 보자.
ⓐ주신 거니까, 잘 쓸 게요.
ⓑ감사합니다. 잘 쓸 게요.
ⓑ감사합니다. 잘 쓸 게요.
상식적으로 ⓐ는 '마지못해 쓰겠다는 인사'라는 뉘앙스가 강하고, ⓑ는 '고마워서 하는 인사'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런데 이 상식을 깨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연을 보낸 H양이 그렇다. H양은 회사에서 다른 부서의 남자 A를 칭찬한 적이 있다. 그걸 들은 A의 선배는 A에게 H양과의 소개팅 자리를 주선했다. 첫 만남까진 좋았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H양은
"전 그냥 흘리듯이 한 칭찬인데, 이렇게 소개팅까지 하니 신기하네요."
"소개팅에 나오시기까지, 저에게 어떤 확신 같은 게 있으셨어요?
저와 소개팅을 하시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같은 거요."
"소개팅에 나오시기까지, 저에게 어떤 확신 같은 게 있으셨어요?
저와 소개팅을 하시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같은 거요."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 그 질문을 들은 A의 얼굴은 대춧빛으로 변했고, 주문한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집에 가자며 일어섰다. 그 후 A는 "즐겁고 기뻤습니다. 항상 승리하세요."라는 톡을 끝으로 더 이상 H양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제게 실망을 한 걸까요? 아니면 저에게 뭔가 오해를 한 걸까요?
저는 이 분과 정말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이 분과 정말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답이 신청서에 뻔히 적혀 있는데 이걸 두고 내게 물으니, 사실 좀 난감하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H양이 상대를 무슨 구직자처럼 대하니, 당연히 짜증났을 거라는 얘기를 하면 될까?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도 H양은 '갑'처럼 굴었다.
"토요일 약속에 대해선 제가 확답을 안 하고 노력해 본다고 했죠.
약속이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결국 토요일에 못 만났고,
그래서 평일에 만나는 걸로 다시 조정했죠."
약속이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결국 토요일에 못 만났고,
그래서 평일에 만나는 걸로 다시 조정했죠."
미안하지만, 이건 그냥 예의가 없는 거다. '보면 보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의 태도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H양이 자신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선배에게 들었기에, 최대한 H양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두 번째로 만나보니, 선배의 말과 달리 H양은 '그냥 흘리듯이' 칭찬을 한 거라고 말하고, 다짜고짜 자신에게 어떤 확신이 있기에 소개팅 자리에 나왔냐고 묻는다. 뜬금 없이 이쪽을 팬클럽 회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까지 H양을 만날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닥 희망적으로 생각되진 않지만, H양이 이 오해를 풀고 싶은 거라면 상대에게 먼저 연락해 보길 권한다. 연락해서 H양의 호감을 표시하면, 이전의 일들에 대해 장황하게 변명하지 않아도 자연히 '오해'로 분류될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H양이 '그에게 오해라는 걸 설명한 뒤 다시 그가 나에게 충성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내게 질문을 한 거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등받이에 기댄 채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여자와 만나고 싶어하는 남자는 없으니 말이다. 호감이 있다면 얼른 그 의자에서 일어서 그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3.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가?
가원씨, 저는 올 겨울에 눈꽃을 접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대문에 나가 배경이 될 벨벳 천을 사오기도 했고, 매크로 렌즈와 익스텐션 튜브, 링플래시도 구비해 두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벨벳 천에 눈을 받은 뒤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올 때마다 저는 뭔가 하고 있었습니다. 공쥬님(여자친구)을 만나러 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나중으로 미루기도 했고,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눈이 내려 글을 다 쓰고 찍겠다며 미루기도 했습니다. 밖에 나가 있던 중에 눈이 내려 나중에 집에 있을 때 찍겠다며 미루기도 했고, 내리는 눈이 함박눈이 아니라 싸라기 같은 눈이라 미루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전
'나중도 있으니까 뭐. 지금은 사진 찍을 최적의 순간은 아니잖아.'
라며 미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지금은 입춘도 훌쩍 지나버렸고, 앞으로 눈이 더 올 지 안 올지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으로 계속 미뤄둔 까닭에 결국 눈꽃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분명 눈은 몇 번이나 왔었는데, 전 '최적의 순간'만 기다리다가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이성을 대하는 가원씨의 태도가, 제가 눈꽃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태도와 비슷합니다. 가원씨 역시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건 좀 더 친해진 후에…."
"아무래도 그러기엔 좀 낯선 사이라서…."
"그건 좀 더 친해진 후에…."
"아무래도 그러기엔 좀 낯선 사이라서…."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좀 더 친해지고, 낯설음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오면 그때 상대를 자연스럽게 대하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가원씨 역시 썸남을 놓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여러 신호를 보내고 또 가원씨에게 직접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가원씨는
'아직 서로 밥도 같이 한 번 안 먹은 상태인데….'
하는 생각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넘겨버리고 맙니다. 여기서 보기엔 분명 둘이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가원씨는 흘려보내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히 상대는 별 반응이 없는 가원씨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꼭 둘이 친해야만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전에, 뭔가를 같이 하다 보면 친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원씨와 저는 현재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우리가 가까워지려면 치맥을 함께하든, 영화를 같이 보든, 동대문에 같이 나갔다 오든, 뭐 그런 걸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같이 영화를 보는 건,
왠지 너무 사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왠지 너무 사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러고 계시면 곤란합니다. 제 조카가 중학생인데, 요즘 애들은 이성에게 주말에 맥도널드 가자는 데이트 신청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학원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는 얘기도 아주 자연스레 건네고 말입니다. 시대가 이런 시대인데, 가원씨 혼자 남녀칠세부동석 하고 있으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가연씨가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또 그와 잘 되길 바라고 있는 오늘날 이 시점에, '왠지 너무 사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사귀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오로지 내 템포만 고집하는 것은 상대를 지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꼭 사귀는 게 아니라도 영화 정도는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높게 세운 두려움과 불신의 벽은 그만 허무시고, 최소한 '동성친구'에게 보일 수 있는 호의 정도는 상대에게 보여주시길 권합니다. 좀 늦었지만, 발렌타인 초콜릿이요? 그런 건 고민할 필요없이 그냥 주면 되는 거였습니다. 큰 의미를 담은 거창한 선물로 말고, 인도여행 가서 사온 립밤 나눠주듯이 그냥 그렇게 주시면 되는 겁니다. 오늘은 부담 없이 상대에게 먼저 연락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짤방 중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라는 문장이 적힌 짤방이 있었다. 난 저 말을 자신의 연애에 한 번 대입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누군가와 사귀다 이별한 이후에는 '그러지 말 걸, 내가 좀 더 잘 할 걸, 그땐 내가 참을 걸, 좀 더 다정하게 대할 걸.'하는 후회를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연애를 시작하면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대원들이 많다.
오늘 매뉴얼 첫 사연의 주인공인 P양 역시, 헤어지고 나면 '생각해 보니까, 날 기쁘게 해주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남자에게 아무 것도 아닌 질문만 하다 그걸 계기로 헤어졌네. 그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보다, 그 순간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거에 더 집중할 걸….'라는 후회를 할 것 같지 않은가? P양의 이전 연애들이 끝난 후 설마 P양이
'이 남자는 구제불능이야. 헤어지길 잘 한 거지. 공감능력에 문제가 있는 남자였어.'
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 "무한님 어떤 와플 드시나요? 유명한 건가요?" 아저씨가 와서 파는 거예요. 천오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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