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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사랑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여자.

by 무한 2014. 2. 25.
사랑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여자.
이렇게 해 봅시다. 내가 K양의 남자친구가 되었다고 가정을 하는 겁니다. 그 뒤에 내가 K양에 부탁할 것들, 들려줄 이야기들, 같이 고민해 볼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제가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많은 솔로부대원들을 전역시킨 사람이니 한 번 믿어 봐도 괜찮을 겁니다. 출발해 봅시다.


1. 도와주오.


당장은 마음의 문이 안 열리는 문제가 있더라도, 안에 있는 K양이 최소한 '문을 열려는 시도'는 해야 저도 도와줄 수 있는 거라는 얘기를 해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과거의 여러 상처들 때문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문 앞까지는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제게 K양 역시 '문을 열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밝혀줘야 합니다. 지금처럼 '난 과거의 기억들로 인해 갇혀있어.'라고 생각한 채 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저는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는 K양에게 지쳐 발걸음을 돌리고 말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 한 번 하지 않는 K양을 보며, K양의 구남친처럼

"넌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같다."


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또 K양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져, 문 앞에서 누군가의 발소리만 들려도 겁을 먹게 될 것이고 말입니다. 

저는 말을 아끼는 안동 장(張)씨 집안의 후손인데다가 장남인 까닭에, 오프라인에서는 '요점'을 위주로 대화를 합니다. 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누군가를 만나도 과하게 반가워하거나 입에 발린 말을 해서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것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오해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최대한의 반가움을 표현한 것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만남에 별 감흥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말을 아끼는 것과 갈등이 생기면 내가 혼자 감당해 버리는 것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는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게 말하기 불편한 것들 까지도 대개 다 털어 놓고 있습니다. 그간 '저 사람도 내 마음 같겠지.'라고 생각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지금은 상대가 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닫힌 그 문이 열리길 바라는 게 맞다면, K양은 문 앞까지 다가와서 저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제가 손잡이를 반대로 돌려 보라고 말하면 K양이 돌려보기도 해야 하고, 번호키 잠금장치가 잠긴 건 아닌지 확인해 달라고 하면 K양이 확인해 주어야 합니다. K양이 그렇게 안에서 절 도와준다면, 저 역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밖에서 문을 열기 위해 애를 쓸 겁니다. 하지만 K양이 제 말에 응답하지 않은 채, 문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저 혼자 문을 부수고 들어와 주길 바란다면-또는 그 문 밖에서 언제까지고 기다려주길 바란다면- 저는 그 문 앞에서 떠나고 말 것입니다.


2.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


제 지인 중 하나는 자신의 차를 팔아버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몇 년 전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 적 있는데, 그 사고 이후 차는 수리했지만, 애정이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차가 굴러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수리만 하고 있으며, 세차를 하거나 액세서리를 다는 일 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는 더욱 볼품없이 되어버렸고, 주인이 자신의 차를 그렇게 다루니, 차를 타는 사람들 역시 그 차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발을 올리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그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삶 역시, 지인의 자동차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됩니다. 자동차야 팔고 새로운 것을 살 수 있지만 인생은 그럴 수 없기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인생은 오래 방치된 자동차처럼 부서지고 망가져 갈 뿐입니다.

전 K양에게서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K양은 겉으로는 아무 상처도 없는 사람인 듯이 애써 연기하느라 지쳤으며, 속으로는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에도 중독될 수 있다는 걸 아십니까?

전체를 놓고 보면 좋았던 추억, 행복했던 추억, 즐거웠던 추억들도 분명 있는데, 그런 것들은 접어둔 채 계속해서 불행한 추억, 감추고 싶은 추억, 지우고 싶은 추억들만 펼쳐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들 중엔, 자신의 SNS에 우울증 진단서 같은 글만 써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상한 행동도 계속 하다 보니 전문적이 되어서, 식이 끝난 남의 결혼식장에서 떨어진 꽃잎 같은 걸 찍은 뒤 암울한 멘트와 함께 올리는 일도 있습니다. 보다보면

'이 사람은 왜 자신이 마음에 곰팡이가 가득 피어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런 사람과는 그 누구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을 텐데, 그걸 모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K양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만, 겉으로만 내보이지 않을 뿐 속으로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K양은 그런 생각들을 1년쯤 숨기고 있다가, 1년 정도 사귄 뒤에 털어 놓을 생각이라고 했는데, 저는 반대합니다. 그 이야기 중 절반은 K양이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만 가져도 자연히 해결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몽땅 싸잡아서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K양이 말하는 과거 일들은 '과거에 벌어진 일''과거에 벌어져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에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내가 과거 탓으로 단정해 놓은 일'도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여행을 갔는데 공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겨우 해결하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여행지에 갔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배터리를 챙겨오지 않은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더 화가 날 수는 있겠습니다만, 배터리가 없는 것까지도 모두 공항에서의 일이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전 K양에게 이걸 먼저 분류하는 작업을 해달라고 요청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K양이 믿지 않게 된 일이라면, 저 역시 K양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저 K양의 불신과 의심과 무심함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해선, 저 역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K양을 안심 시키려 노력은 하겠지만, K양은 결국 제 노력조차도 의심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말 테니 말입니다. 


3.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전 K양에게, 부모님 역시 작디작은 하나의 사람일 뿐이라는 얘기도 해줄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도 실수를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으로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믿어 온 대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 부모님도 있지만, 가정을 팽개치고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사는 부모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에 대해선 나몰라라하며 권위만 앞세우는 부모도 있고, 자식에게 질투를 느낀 나머지 학대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또 분명 자기 자식이지만 누가 봐도 티가 날 정도로 편애를 하는 부모도 있고, 자식의 팔을 꺾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K양은 본인의 이야기에 대해

"제 가정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전 가족과 관련된 일에 대해선 침묵하고, 또 숨깁니다."



라고 말했는데, 그건 리액션일 뿐, 그들이 그것에 대해 K양 만큼이나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을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남의 가정에서 벌어진 경악할 만한 이야기'가 아무리 심각하다고 해도, 그건 결국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K양의 가정사를 두고두고 떠올리며 계속 심각하게 생각할 사람은, 제가 보장하는데,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K양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K양이 저에게

"제 가정사는 이러이러해요. 충격과 공포죠?"


라고 이야기 한다면, 저는 그 순간에는 심각한 얼굴로 K양을 토닥여주겠지만, 그 다음날과 다다음날까지 우울한 기분으로 계속 K양의 이야기를 떠올리진 않을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제게 더 다급한 일들이 떠오를 것이며, K양과는 주말에 뭐 하고 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K양이 염려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달리, 저는 그 회색빛의 K양 과거사를 질질 끌고 가지 않을 거란 얘깁니다. 전 K양의 과거와 사귀고 있는 게 아니라 현재의 K양과 사귀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날들은 미래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우리도 이제 꼬꼬마가 아닙니다. 충분히 부모님과의 관계를 조율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미 시도한 적 있고 또 성공한 부분이기에 K양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시행착오 및 과거의 실수들에 대해 '초보 부모'였기 때문에 벌인 일들이라 생각한다 말하고, 지금부터라도 합심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며 고백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고 해도, 손을 잡고 저런 이야기를 하며 부탁하는 자식의 뺨을 때리진 않을 것입니다. 그 많은 시간을 한 집에서 함께 살며 손을 잡은 적이 몇 번 없다는 것 역시 K양이 새롭게 깨달을 수 있으니, 꼭 시도해 보길 권할 겁니다. 부모님의 권위에 상처내지 않으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니 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작업들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K양은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또 전과 다를 바 없는 아픈 마지막을 경험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대는 꼼짝도 하지 않는 K양에게 지쳐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또 삶에 대한 애정이 없는 K양의 태도에 질려 등을 보이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물어봐도 말을 돌리기만 하는 K양에게 벽을 느껴 떠날 것입니다.

끝으로 K양 자신의 인생에 대해 비평가가 되기에 앞서 조력자가 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일단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돕고, 비평은 그 후에 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에 한 번 소개 한 적 있는 고흐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마음속에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걸" 이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잠잠해진다.
If you hear a voice within you say "you cannot paint,"
 then by all means paint, and that voice will be silenced
 

-Vincent van Gogh-


마음 속 비평가에게 "Not yet."이라고 저 대신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한님 오늘 화요일이라 와플 드시겠네요!" 요태까지 날 미행한고야?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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