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도 아니고 남도 아닌 지루한 관계 외 2편
집에서 사용 중인 인터넷 전화기가 작년 중순 쯤 고장 났다. 모 회사 제품의 고질적인 문제로 충전이 되질 않았다. A/S 기사님께 여쭤봤더니, 그냥 전화기만 하나 중고로 구입해 사용하라고 하셨다. 이만 원이면 충전문제 없는 전화기를 하나 구입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작년 8월쯤 온라인 중고장터를 찾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 올린 매물이 있기에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답이 없었다. 문자와 전화 연락 모두 되질 않았다. 그래서 쪽지를 하나 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답이 없었다.
가족 모두 휴대폰을 보유한 까닭에 사실 집 전화기를 새로 구입하는 문제는 별로 심각하질 않았다. 당시에 연락이 닿았다면 구입했겠지만, 가까운 곳에 사는 판매자와 연락이 닿질 않아 그냥 접어두었다. 어차피 몇 달 더 지나면 약정기간이 끝날 것이고, 그러면 타 회사로 통신사를 옮기며 전화기도 새로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몇 달이 지나고 난 뒤, 위의 저 판매자에게 문자가 왔다. 전화기를 아직 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난 전화기를 사려는 마음도 접은데다가 약정기간도 다 끝나가던 차라,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자가 왔다. 살 건지 안 살 건지 의사를 밝혀달라는 내용이었다. 난 상대가 몇 달 뒤에야 답장을 한 것처럼 나 역시 몇 달 뒤에 답을 해줄까 하다가, 그냥 안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게 참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첫 번째 사연을 다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했다. 출발해 보자.
늘 얘기하지만, '아는 오빠'나 '아는 남자'같은 카테고리를 좀 만들자. 연락을 주고받는 이성이 생기기만 하면 무조건
등의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 때문에 내가 담배를 못 끊고 있다. 상대가 인사를 하면 이쪽에서 인사를 하고, 상대가 안부를 물으면 이쪽에서 안부를 물어가며 좀 지내보자. 이전보다 가까워지는 중이라고 해서 전부 연애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는 거다.
자주 연락하게 되는 건, 그냥 그 관계가 가장 최근에 가까워진 관계이기 때문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대도 어젯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든 사람과 오늘 아침 안부 인사를 나눌 것 아닌가. 앞으로 계속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연결'된 것이라 생각하자. 전화기 판매자와 내가 '거래'를 위해 연결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연결이 연애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잠깐의 해프닝이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장관리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상대가 그대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해도 그대가 성의 없이 굴면 그 관계는 흐지부지 될 수 있고, 그대가 상대를 별로라고 생각했다가도 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면 연애로 이어질 수 있다. 둘 다 그냥 외롭기 때문에 여러 수다를 떨었던 것뿐이라면, 외로움이 사라짐과 동시에 서로 다시 각자 갈 길 갈 수 있고 말이다.
C양의 말만 들어보면, 잊을만할 때쯤 다시 연락을 해오는 그가 어장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C양이 그 관계를 위해 한 일이라고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톡에 대답을 한 것이 전부고, 이후 상대와 연락이 끊겼을 때 그에게 연락을 한 것은 C양이다.
이걸 서두에서 말한 내 '전화기 구입'에 비유하자면, 판매자인 상대와 구매자인 내가 긴 텀을 두고 "팔렸나요?", "아니요."만 반복하고 있는 것과 같고 할 수 있다. 구매자인 나도 살 거라는 얘기를 하지 않고, 판매자인 상대도 살 거냐고 묻지 않는 상황. 두 사람 모두 상대가 먼저 알아서 얘기를 꺼내주길 바라며 "팔렸나요?", "아니요."만 반복하는 것이다. C양과 상대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라는 대화만 몇 주에 한 번씩 나누는 것이다.
난 C양에게 우선, 이 남자를 '아는 오빠'로 분류해 둔 뒤 아무 기대하지 말고 그냥 친하게 지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상대에 대한 호감이 커져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처럼 상대만 분석하려 들지 말고 C양도 먼저 연락을 좀 하길 바란다. 이쪽에서 아무 것도 안 하니 상대 역시 의욕이 사그라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쪽에선 심지어 상대의 카톡에 답장도 안 할 때도 있으면서 "그 오빠는 처음엔 적극적으로 연락을 했는데…." 따위의 얘기는 하지 말자. 호감이 있어서 다가갔다가도, 상대가 무응답과 성의 없음으로 대하면 누구라도 등을 돌리고 마는 법이다.
하나 더. 이미 '흐지부지'라는 결론이 난 상황이라면 C양 역시 미련을 버리길 권한다. C양은 사연에서 몇 번이나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랬다가도 C양은 상대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C양 역시 잊을만할 때쯤이면 다시 연락해 왔다가 황당하게도 다시 성의 없는 태도로 대하는 '어장관리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가 "넌 정말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한 것 역시 C양의 이런 태도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니, 정리하겠다며 연락 끊었다가 다시 또 그를 찔러 보는 행동을 그만두길 권한다.
간부님,
라는 이야기만 하고 계시면 곤란합니다. 간부님께서는 위의 C양과 열 살 차이가 나십니다만, C양과 같은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 2월 15일에 연락을 하셨으면 2월 16일에도 연락을 하셨어야 합니다. 그냥 넋 놓고 계시다가 2월 18일에야 연락하시면 대체 어쩌자는 말씀이신지….
네. 그것도 한 몫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며칠 연락 안 하다가 갑자기 '오빠'에서 '차장님'으로 호칭을 바꿔 부르며 남처럼 대하는 여자는 좀 생뚱맞게 느껴집니다.
간부님, 연애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우리 지금 나이가 떠리(Thirty, 시캐고 발음)를 넘은지도 한참인데,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들이대고 보는 일이 많은 이십대 중반의 연애공식을 적용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십대 중반의 연애가 '숭배의 대상'을 찾는 거라면, 삼십대 중반의 연애는 '동업의 대상'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협력하지 않는 사람과는 더 만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때, 저희 어머니께서 친구관계에 대해
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해관계'라는 부분도 크게 작용을 합니다. 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목에 힘을 주는 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현재 가슴 아파 하는 중입니다. 그냥 만나서 예전처럼 같이 쓸데없는 짓이나 좀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이젠 그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꼭 그 친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연락하면 "무슨 일 있어?"라는 대답을 듣는 일이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조사 품앗이만 하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정마저 그저 비즈니스의 과정이 되어가는 일이 많은 오늘날 이 시점에, 연애에서마저도 상대가 내게 가진 호감의 크기부터 좀 재자며 줄자부터 들이대는 건 참 슬픈 일 아니겠습니까.
간부님, 지금 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개선될 가능성 역시 분명 남아 있습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축하한다며 한 턱 쏘라는 얘기 아니었습니까? 그럼 이제 간부님이 쏘겠다고 연락하면 되는 겁니다. 정말 간단한 해결방법 아닙니까? 108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일부터 100일간 새벽 작정기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문자 하나만 보내면 되는 겁니다. 전에 쏘기로 한 밥 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이번엔, 잘 되길 기대만 하지 말고 잘 되도록 한 번 만들어 봅시다. 능동적으로.
이거 간단하거든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자 1호와 여자 1호가 반동거를 해요. 그런데 회사에서 사내연애 금지거든요. 사내연애가 들통 나면 회사에서 잘려요. 그런 와중에 최형은 둘이 반동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여자 1호에게
라고 말했어요. 여자 1호는 거듭 조심하겠다고 다짐하며 자리를 떠요. 그리고 그 다음날이 되어 최형과 다시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그녀가 말해요. 사실 남자 1호와 사귀는 게 아니라고. 남자 1호가 찾아와서 얘기 좀 하려고 집에 들였을 뿐이지, 반동거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그날 이후로 여자 1호는 최형에게 살갑게 대하기 시작해요. 마실 것도 챙겨주고, 누가 보면 최형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표현도 하죠. 사실, 최형이 거기에 넘어간 것도 이해가 되긴 해요. 회사에서 제일 인기 많은 여자 1호가 최형보고 이병헌 닮았다면서 사적으로 선물까지 주곤 하는데 '이거 뭐지?'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겠죠. 그것도 그녀가 남자 1호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까지 한 상황에서 말이에요.
하지만 최형, 제가 항상 말이 아닌 행동을 보라고 하잖아요. 여자 1호가 매일 만나는 건 누구에요? 남자 1호잖아요. 여자 1호가 최형에게 사적으로 연락한 적 있어요? 여자 1호가 최형에게 밖에서 밥 한 끼 하자고 한 적 있어요? 여자 1호가 최형에게 전화번호 물어본 적 있어요? 없잖아요.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거 그냥 여자 1호랑 남자 1호랑 짜고 쇼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최형이 눈치 챘다는 걸 알았으니 둘이 상의를 했겠죠. 그러던 중 남자 1호가 "일단 전부 다 내 탓으로 돌려라. 그리고 우리가 사귀는 거 아니라고 말해라. 최씨가 고자질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있으니, 사내에서는 앞으로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지내자. 동시에 최씨랑 어느 정도 가까워져서 입단속 할 수 있게 하자."따위의 말을 했을 거고, 지금 그 상황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죠.
내려놓으세요. 김칫국. 그거 그렇게 막 마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여자 1호가 하는 행동들, 그냥 아무 관심도 없는 회사 직원 비행기 태워주는 거랑 같은 거거든요. 호감의 표시가 아니에요. 그리고 최형이 여자 1호의 눈빛 어쩌고 하는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 아무 증거도 없을 때 찾게 되는 게 '눈빛'이거든요. 최형, 눈빛을 제외한 그녀의 모든 행동이 최형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증거들인데, 우리 겨우 '눈빛'이라는 불확실한 증거 하나 가지고 이걸 삼각관계로 엮어서야 되겠습니까?
하아 최형, 저도 슬픕니다. 지금 최형은 들떠서 "좀 더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그녀가 먼저 고백해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면 제가 먼저 대시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저는 "내려놓으시죠. 김칫국."이라는 얘기를 해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것 아니겠습니까.
최형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사실 그들이 최형에게 미안해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거든요. 어떻게 보면 최형은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에 나오는 명대사
라는 말을 착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일 수 있거든요. 이러다 최형이 그녀에게 고백을 하거나, 그녀를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게 되면, 나중에 최형이 무슨 폭로를 하든 그걸 다 최형의 망상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상대가 "최씨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더니, 음해하려고 저러는 것 같다."하면 최형 혼자 바보 되는 거니까요. 우리, 비밀연애 하는 두 사람의 연극에 '직장동료1'로 끼진 말자구요. 이거 삼각관계일 수도 있다는 심증만으로 덤벼들었다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나 눈웃음에 홀리지 말고, 행동을 보세요.
끝으로 소월양, 제가 늘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카톡을 약속 잡는 도구로만 사용하지 말라고. 그냥 카톡을 통해 대화를 하면 되는 겁니다.
지금 상황과 반대로 소월양이 동호회 원로회원인데, 새로 들어온 남자 회원이 계속 저런 연락을 해온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으십니까? 소월양은 "다 같이 만나요.", "모임 때 봬요."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는 계속 소월양에게 궁금한 게 많다며 시간을 내달라고 합니다. 그 요청이 기쁘기 보다는 좀 무서울 것 같지 않으십니까?
게다가 그 모임에서 소월양이 보여준 이미지는, 활발하며 밝고 명랑한 소녀의 이미지였습니다. 그게 열 몇 살짜리 꼬마가 그러면 귀여워 보일 수 있지만, 이십대 중반의 여자가 그러면 쉽게 광분을 하는 타입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랍니다. 방방 뜨는 모습이 타인에게는 가벼워 보일 수 있기에, 소월양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하루 이내로 모든 동호회원들에게 '둘이 만났다는 사실'이 퍼질 수 있다는 염려가 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소월양이야 당연히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닌데요?"라고 하시겠지만, 상대는 소월양이 그런 여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모임에서 친해진 다른 오빠가 소월양에게
라는 이야기를 한 걸 소월양은 '편하게 생각해서 한 농담'으로 받아들이던데, 저 말 속에는 뼈가 있습니다. 아무리 친해졌다 하더라도 처음 만난 남자가 처음 보는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소월양에게 했다는 것 자체가, 소월양 캐릭터가 '왈가닥'으로 자리 잡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글쎄요. 시작하자마자 소월양이 "자, 난 매달리는 역할을 해야지."라며 상대에게 만나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까닭에, 사실 전 이게 좋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친목이 중시되는 동호회인 까닭에 그가 소월양을 냉정하게 밀어내거나 확고하게 거절하지 않고, 조금만 거리를 둔 게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소월양은 현재 상대에게 남아 있는 '의무적 호의'마저도 다 소진해버릴 작정으로 매달리시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이 기회를 활용해 상대와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로 하여금 '이젠 의무적 호의도 베풀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으로 만들진 마시기 바랍니다.
다짜고짜 만나달라는 요청만 하기보다, 차라리 상대가 사는 곳 근처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게 어떠십니까? 그런 뒤엔 자연히 동네 이야기로 이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지 않습니까? 오늘부터는 무작정 달려드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하나씩 차분히 풀어가는 캐릭터로 그를 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 매뉴얼에서 하얗게 불태운 까닭에, 오늘 맺음말은 쉽니다.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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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사용 중인 인터넷 전화기가 작년 중순 쯤 고장 났다. 모 회사 제품의 고질적인 문제로 충전이 되질 않았다. A/S 기사님께 여쭤봤더니, 그냥 전화기만 하나 중고로 구입해 사용하라고 하셨다. 이만 원이면 충전문제 없는 전화기를 하나 구입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작년 8월쯤 온라인 중고장터를 찾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 올린 매물이 있기에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답이 없었다. 문자와 전화 연락 모두 되질 않았다. 그래서 쪽지를 하나 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답이 없었다.
가족 모두 휴대폰을 보유한 까닭에 사실 집 전화기를 새로 구입하는 문제는 별로 심각하질 않았다. 당시에 연락이 닿았다면 구입했겠지만, 가까운 곳에 사는 판매자와 연락이 닿질 않아 그냥 접어두었다. 어차피 몇 달 더 지나면 약정기간이 끝날 것이고, 그러면 타 회사로 통신사를 옮기며 전화기도 새로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몇 달이 지나고 난 뒤, 위의 저 판매자에게 문자가 왔다. 전화기를 아직 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난 전화기를 사려는 마음도 접은데다가 약정기간도 다 끝나가던 차라,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자가 왔다. 살 건지 안 살 건지 의사를 밝혀달라는 내용이었다. 난 상대가 몇 달 뒤에야 답장을 한 것처럼 나 역시 몇 달 뒤에 답을 해줄까 하다가, 그냥 안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게 참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첫 번째 사연을 다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했다. 출발해 보자.
1. 썸도 아니고 남도 아닌 지루한 관계
늘 얘기하지만, '아는 오빠'나 '아는 남자'같은 카테고리를 좀 만들자. 연락을 주고받는 이성이 생기기만 하면 무조건
"그 오빠는 제게 매일 연락을 하는데, 이거 이성으로 보는 거 맞죠?"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하면 어장관리인 거죠?
흐지부지 되는 것 같다가 명절 같은 때에만 다시 연락이 되는데…."
"뭐하냐고 묻는 남자의 심리는 뭐죠? 제 마음을 떠보려고 하는 건가요?"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하면 어장관리인 거죠?
흐지부지 되는 것 같다가 명절 같은 때에만 다시 연락이 되는데…."
"뭐하냐고 묻는 남자의 심리는 뭐죠? 제 마음을 떠보려고 하는 건가요?"
등의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 때문에 내가 담배를 못 끊고 있다. 상대가 인사를 하면 이쪽에서 인사를 하고, 상대가 안부를 물으면 이쪽에서 안부를 물어가며 좀 지내보자. 이전보다 가까워지는 중이라고 해서 전부 연애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는 거다.
자주 연락하게 되는 건, 그냥 그 관계가 가장 최근에 가까워진 관계이기 때문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대도 어젯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든 사람과 오늘 아침 안부 인사를 나눌 것 아닌가. 앞으로 계속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연결'된 것이라 생각하자. 전화기 판매자와 내가 '거래'를 위해 연결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연결이 연애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잠깐의 해프닝이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장관리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상대가 그대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해도 그대가 성의 없이 굴면 그 관계는 흐지부지 될 수 있고, 그대가 상대를 별로라고 생각했다가도 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면 연애로 이어질 수 있다. 둘 다 그냥 외롭기 때문에 여러 수다를 떨었던 것뿐이라면, 외로움이 사라짐과 동시에 서로 다시 각자 갈 길 갈 수 있고 말이다.
"그 오빠는 처음엔 적극적으로 연락을 했는데,
그 이후엔 점점 줄어들었고, 또…."
그 이후엔 점점 줄어들었고, 또…."
C양의 말만 들어보면, 잊을만할 때쯤 다시 연락을 해오는 그가 어장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C양이 그 관계를 위해 한 일이라고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톡에 대답을 한 것이 전부고, 이후 상대와 연락이 끊겼을 때 그에게 연락을 한 것은 C양이다.
이걸 서두에서 말한 내 '전화기 구입'에 비유하자면, 판매자인 상대와 구매자인 내가 긴 텀을 두고 "팔렸나요?", "아니요."만 반복하고 있는 것과 같고 할 수 있다. 구매자인 나도 살 거라는 얘기를 하지 않고, 판매자인 상대도 살 거냐고 묻지 않는 상황. 두 사람 모두 상대가 먼저 알아서 얘기를 꺼내주길 바라며 "팔렸나요?", "아니요."만 반복하는 것이다. C양과 상대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상대 - 남자친구 생겼어?
C양 - 아니요.
C양 - 아니요.
라는 대화만 몇 주에 한 번씩 나누는 것이다.
난 C양에게 우선, 이 남자를 '아는 오빠'로 분류해 둔 뒤 아무 기대하지 말고 그냥 친하게 지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상대에 대한 호감이 커져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처럼 상대만 분석하려 들지 말고 C양도 먼저 연락을 좀 하길 바란다. 이쪽에서 아무 것도 안 하니 상대 역시 의욕이 사그라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쪽에선 심지어 상대의 카톡에 답장도 안 할 때도 있으면서 "그 오빠는 처음엔 적극적으로 연락을 했는데…." 따위의 얘기는 하지 말자. 호감이 있어서 다가갔다가도, 상대가 무응답과 성의 없음으로 대하면 누구라도 등을 돌리고 마는 법이다.
하나 더. 이미 '흐지부지'라는 결론이 난 상황이라면 C양 역시 미련을 버리길 권한다. C양은 사연에서 몇 번이나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랬다가도 C양은 상대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C양 역시 잊을만할 때쯤이면 다시 연락해 왔다가 황당하게도 다시 성의 없는 태도로 대하는 '어장관리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가 "넌 정말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한 것 역시 C양의 이런 태도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니, 정리하겠다며 연락 끊었다가 다시 또 그를 찔러 보는 행동을 그만두길 권한다.
2. 아이고, 간부님.
간부님,
"저는 남자 만날 때는 촉이 어느 정도 맞는 편이었고,
저한테 관심이 있는지 여부는 연락이나 만나는 횟수로 구분할 수 있어요."
저한테 관심이 있는지 여부는 연락이나 만나는 횟수로 구분할 수 있어요."
라는 이야기만 하고 계시면 곤란합니다. 간부님께서는 위의 C양과 열 살 차이가 나십니다만, C양과 같은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 2월 15일에 연락을 하셨으면 2월 16일에도 연락을 하셨어야 합니다. 그냥 넋 놓고 계시다가 2월 18일에야 연락하시면 대체 어쩌자는 말씀이신지….
"두 번째 만남 이후에 제가 혼자 마음을 정리한답시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것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정말 안 좋아요."
그것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정말 안 좋아요."
네. 그것도 한 몫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며칠 연락 안 하다가 갑자기 '오빠'에서 '차장님'으로 호칭을 바꿔 부르며 남처럼 대하는 여자는 좀 생뚱맞게 느껴집니다.
"그 대답 이후에 그가 다시 연락을 하지 않기에 당황했습니다.
통상 소개팅 후 여자가 마음에 들면 남자가 매일 문자라도 하는 게 정상이니까요."
통상 소개팅 후 여자가 마음에 들면 남자가 매일 문자라도 하는 게 정상이니까요."
간부님, 연애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우리 지금 나이가 떠리(Thirty, 시캐고 발음)를 넘은지도 한참인데,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들이대고 보는 일이 많은 이십대 중반의 연애공식을 적용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십대 중반의 연애가 '숭배의 대상'을 찾는 거라면, 삼십대 중반의 연애는 '동업의 대상'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협력하지 않는 사람과는 더 만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때, 저희 어머니께서 친구관계에 대해
"너희가 지금은 같은 동네 살고 또 매일 보니까 친하게 지내지만,
나중이 되면 각자 직장 때문에 바쁘고,
이사를 가거나 가정을 꾸리면 그것 때문에도 멀어지는 경우가 있단다."
나중이 되면 각자 직장 때문에 바쁘고,
이사를 가거나 가정을 꾸리면 그것 때문에도 멀어지는 경우가 있단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해관계'라는 부분도 크게 작용을 합니다. 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목에 힘을 주는 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현재 가슴 아파 하는 중입니다. 그냥 만나서 예전처럼 같이 쓸데없는 짓이나 좀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이젠 그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꼭 그 친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연락하면 "무슨 일 있어?"라는 대답을 듣는 일이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조사 품앗이만 하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정마저 그저 비즈니스의 과정이 되어가는 일이 많은 오늘날 이 시점에, 연애에서마저도 상대가 내게 가진 호감의 크기부터 좀 재자며 줄자부터 들이대는 건 참 슬픈 일 아니겠습니까.
간부님, 지금 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개선될 가능성 역시 분명 남아 있습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축하한다며 한 턱 쏘라는 얘기 아니었습니까? 그럼 이제 간부님이 쏘겠다고 연락하면 되는 겁니다. 정말 간단한 해결방법 아닙니까? 108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일부터 100일간 새벽 작정기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문자 하나만 보내면 되는 겁니다. 전에 쏘기로 한 밥 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이번엔, 잘 되길 기대만 하지 말고 잘 되도록 한 번 만들어 봅시다. 능동적으로.
3. 최형, 그게 삼각관계가 맞을까요?
이거 간단하거든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자 1호와 여자 1호가 반동거를 해요. 그런데 회사에서 사내연애 금지거든요. 사내연애가 들통 나면 회사에서 잘려요. 그런 와중에 최형은 둘이 반동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여자 1호에게
"사내 규칙은 잘 알고 있지 않냐.
내가 아니라 다른 상급 직원들에게 들켰으면 어쩔 뻔 했냐.
앞으로는 알아서 조심히 행동하길 바란다."
내가 아니라 다른 상급 직원들에게 들켰으면 어쩔 뻔 했냐.
앞으로는 알아서 조심히 행동하길 바란다."
라고 말했어요. 여자 1호는 거듭 조심하겠다고 다짐하며 자리를 떠요. 그리고 그 다음날이 되어 최형과 다시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그녀가 말해요. 사실 남자 1호와 사귀는 게 아니라고. 남자 1호가 찾아와서 얘기 좀 하려고 집에 들였을 뿐이지, 반동거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그날 이후로 여자 1호는 최형에게 살갑게 대하기 시작해요. 마실 것도 챙겨주고, 누가 보면 최형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표현도 하죠. 사실, 최형이 거기에 넘어간 것도 이해가 되긴 해요. 회사에서 제일 인기 많은 여자 1호가 최형보고 이병헌 닮았다면서 사적으로 선물까지 주곤 하는데 '이거 뭐지?'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겠죠. 그것도 그녀가 남자 1호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까지 한 상황에서 말이에요.
하지만 최형, 제가 항상 말이 아닌 행동을 보라고 하잖아요. 여자 1호가 매일 만나는 건 누구에요? 남자 1호잖아요. 여자 1호가 최형에게 사적으로 연락한 적 있어요? 여자 1호가 최형에게 밖에서 밥 한 끼 하자고 한 적 있어요? 여자 1호가 최형에게 전화번호 물어본 적 있어요? 없잖아요.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거 그냥 여자 1호랑 남자 1호랑 짜고 쇼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최형이 눈치 챘다는 걸 알았으니 둘이 상의를 했겠죠. 그러던 중 남자 1호가 "일단 전부 다 내 탓으로 돌려라. 그리고 우리가 사귀는 거 아니라고 말해라. 최씨가 고자질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있으니, 사내에서는 앞으로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지내자. 동시에 최씨랑 어느 정도 가까워져서 입단속 할 수 있게 하자."따위의 말을 했을 거고, 지금 그 상황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죠.
"무한님, 그녀가 남자 1호와 잠깐 만났던 건 맞지만,
그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랑 가까워지게 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에게 마음이 있지만,
저는 그녀와 그가 반동거를 했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녀 자신이 너무 쉬운 여자가 되는 것 같아서 제게 못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녀에 대한 제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니 망설이는 것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남자 1호와 계속 끝나고 같이 퇴근하는 건,
그를 그냥 아는 남자로 두고 친하게 지내는, 그런 것 아닐까요?"
그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랑 가까워지게 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에게 마음이 있지만,
저는 그녀와 그가 반동거를 했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녀 자신이 너무 쉬운 여자가 되는 것 같아서 제게 못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녀에 대한 제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니 망설이는 것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남자 1호와 계속 끝나고 같이 퇴근하는 건,
그를 그냥 아는 남자로 두고 친하게 지내는, 그런 것 아닐까요?"
내려놓으세요. 김칫국. 그거 그렇게 막 마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여자 1호가 하는 행동들, 그냥 아무 관심도 없는 회사 직원 비행기 태워주는 거랑 같은 거거든요. 호감의 표시가 아니에요. 그리고 최형이 여자 1호의 눈빛 어쩌고 하는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 아무 증거도 없을 때 찾게 되는 게 '눈빛'이거든요. 최형, 눈빛을 제외한 그녀의 모든 행동이 최형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증거들인데, 우리 겨우 '눈빛'이라는 불확실한 증거 하나 가지고 이걸 삼각관계로 엮어서야 되겠습니까?
하아 최형, 저도 슬픕니다. 지금 최형은 들떠서 "좀 더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그녀가 먼저 고백해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면 제가 먼저 대시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저는 "내려놓으시죠. 김칫국."이라는 얘기를 해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것 아니겠습니까.
"처음 사건이 너무 미안해서 제게 한 접대성 멘트들일 수도 있는 건가요?"
최형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사실 그들이 최형에게 미안해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거든요. 어떻게 보면 최형은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에 나오는 명대사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
라는 말을 착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일 수 있거든요. 이러다 최형이 그녀에게 고백을 하거나, 그녀를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게 되면, 나중에 최형이 무슨 폭로를 하든 그걸 다 최형의 망상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상대가 "최씨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더니, 음해하려고 저러는 것 같다."하면 최형 혼자 바보 되는 거니까요. 우리, 비밀연애 하는 두 사람의 연극에 '직장동료1'로 끼진 말자구요. 이거 삼각관계일 수도 있다는 심증만으로 덤벼들었다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나 눈웃음에 홀리지 말고, 행동을 보세요.
끝으로 소월양, 제가 늘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카톡을 약속 잡는 도구로만 사용하지 말라고. 그냥 카톡을 통해 대화를 하면 되는 겁니다.
"오빠 언제 시간되시나요? 우리 봐야죠~"
"오빠 저 오빠랑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이번 주말에 오빠 많이 안 바쁘시면, 뵐 수 있을까요? 토요일 괜찮으세요?"
"오빠 저 오빠랑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이번 주말에 오빠 많이 안 바쁘시면, 뵐 수 있을까요? 토요일 괜찮으세요?"
지금 상황과 반대로 소월양이 동호회 원로회원인데, 새로 들어온 남자 회원이 계속 저런 연락을 해온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으십니까? 소월양은 "다 같이 만나요.", "모임 때 봬요."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는 계속 소월양에게 궁금한 게 많다며 시간을 내달라고 합니다. 그 요청이 기쁘기 보다는 좀 무서울 것 같지 않으십니까?
게다가 그 모임에서 소월양이 보여준 이미지는, 활발하며 밝고 명랑한 소녀의 이미지였습니다. 그게 열 몇 살짜리 꼬마가 그러면 귀여워 보일 수 있지만, 이십대 중반의 여자가 그러면 쉽게 광분을 하는 타입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랍니다. 방방 뜨는 모습이 타인에게는 가벼워 보일 수 있기에, 소월양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하루 이내로 모든 동호회원들에게 '둘이 만났다는 사실'이 퍼질 수 있다는 염려가 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소월양이야 당연히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닌데요?"라고 하시겠지만, 상대는 소월양이 그런 여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모임에서 친해진 다른 오빠가 소월양에게
"근데 나, 너 감당이 안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한 걸 소월양은 '편하게 생각해서 한 농담'으로 받아들이던데, 저 말 속에는 뼈가 있습니다. 아무리 친해졌다 하더라도 처음 만난 남자가 처음 보는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소월양에게 했다는 것 자체가, 소월양 캐릭터가 '왈가닥'으로 자리 잡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글쎄요. 시작하자마자 소월양이 "자, 난 매달리는 역할을 해야지."라며 상대에게 만나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까닭에, 사실 전 이게 좋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친목이 중시되는 동호회인 까닭에 그가 소월양을 냉정하게 밀어내거나 확고하게 거절하지 않고, 조금만 거리를 둔 게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소월양은 현재 상대에게 남아 있는 '의무적 호의'마저도 다 소진해버릴 작정으로 매달리시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이 기회를 활용해 상대와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로 하여금 '이젠 의무적 호의도 베풀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으로 만들진 마시기 바랍니다.
다짜고짜 만나달라는 요청만 하기보다, 차라리 상대가 사는 곳 근처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게 어떠십니까? 그런 뒤엔 자연히 동네 이야기로 이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지 않습니까? 오늘부터는 무작정 달려드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하나씩 차분히 풀어가는 캐릭터로 그를 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 매뉴얼에서 하얗게 불태운 까닭에, 오늘 맺음말은 쉽니다.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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