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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매너인지 호감인지 알 수 없는 소개팅남 외 2편

by 무한 2014. 4. 11.

매너인지 호감인지 알 수 없는 소개팅남 외 2편

상대의 행동이 매너든 호감이든 난 J양에게,

 

"제가 여자로 안 보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랑 완전히 격 없이 지내는 사이에요.

둘이 팔짱끼고 돌아다닐 때도 있는데, 진짜 무슨 감정이 이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서로 밥 같이 먹고, 좋은 거 보이면 선물하고, 일 생기면 달려가는 그런 친구예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와는 만나지 않는 게 어떠냐고 묻고 싶다. 그 남자 분은 '자기 포장'이 너무 요란하다. 포장이 요란하다보니, 자기 자신도 뭐가 진짜 자기 모습인지 몰라 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저 말을 하기 이전 그는,

 

"전 사람을 믿지 않아요. 오히려 동물을 믿죠."

 

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자꾸 다른 포장지로 자신을 꾸미다 보니,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가, 베프 얘기를 했다가, 베프와 서로 챙기는 사이라는 얘기를 했다가, 또 자신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을 못 챙기는 타입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한 얘기를 자신이 또 부정하고 마는 것이다.

 

멋져 보이고 싶어서 어느 정도 자신을 포장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는 와중에 진실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부분이 보이는 건 분명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J양은 두 번 만나며 본 그의 모습을 그 사람 자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게 그가 설정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나눠보자.

 

 

1. 매너인지 호감인지 알 수 없는 소개팅남.

 

집중하지 않으며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전에 이 얘기를 상대에게 했었는지 기억 못 하며 또 하게 된다.

 

"자신이 저에게 했던 말을 기억 못 하는 눈치였어요.

지난 번 만남에서 했던 얘기를 조금 다른 버전으로 또 했고,

심지어 어떤 에피소드는 제스쳐까지 똑같이 두 번 했어요.

그 분이 처음 얘기하는 것처럼 말씀하셔서, 저도 아는 척 안 하고 그냥 들었고요."

 

난 그게, 그가 자신이 설정해 둔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두 만남의 간격이 몇 달 이었던 것도 아니고 고작 며칠이다. 그 며칠 사이에 둘이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건, 그가 자신을 J양에게 내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을 주인공으로 하는 <힐링캠프>를 찍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자신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시면서, 상처에 대한 얘기들을….

그런데 저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없는지, 하나도 묻지 않으셨어요."

 

사실 난, 사연을 보내야 할 사람은 J양이 아니라 그 남자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도 자신의 연애가 초반에만 반짝 빛을 발하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이십대 후반을 지났으면 혼자 포즈를 잡는 모습에서 벗어났어야 하는데, 그 분은 여전히 포즈를 잡고 있다. 상대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 매너에 목숨을 거는 모습이라든가, 바쁜 척 하는 것, 그리고 고독한 반항아 연기를 하는 것에 몰입해 있는 듯 보인다.

 

포장지를 벗기면 알맹이가 나와야 하는데, 또 포장지다. 그럼 처음에 현란한 포장을 보고 눈을 빛내던 사람도 몇 번 풀어 보다 실망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뭔가를 같이 하기로 했으면 그냥 같이 하면 되는데, 그 분은

 

"그건 정말이지, 제가 몇 년 만에 해 보는 거네요."

"본 적 없어요? 하아, 제가 보여드릴 게 많네요."

"그거 말고 이건 어때요? 제가 해봤던 것 중에 하나인데…."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어필하려 안달한다. 마음 같아서는 긴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 분이 사연을 보낸 게 아니니 이쯤에서 접어두도록 하자.

 

난 J양에게, 그를 만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보며 만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보통의 여자사람이었으면 그를 만났을 때 "이 분 오춘기 겪고 계신 듯…."하며 안타깝게 생각했겠지만, J양은 연애와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제가 그를 계속 만난다면, 그가 쌓아둔 벽을 넘어 갈 수 있을까요?"

 

하는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다. 또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을 액면가 그대로 믿으며 그에게 상처가 많아 보인다느니, 챙겨주고 싶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늘 얘기하지만 그의 말보다는 행동에 무게를 두고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난 그가 현재 보이고 있는 매너 역시 초반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일시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니, 그것만 가지고 그를 정의하지 말고 길게 두고 보며 판단하길 바란다. J양이 내 여동생이었으면 "너 요즘 방청객 알바 나가?"라는 돌직구를 던졌겠지만, 여동생이 아니니 끝까지 다 보고 판단하라는 이야기만 적어두도록 하겠다.

 

 

2. 볼수록 답답한 남친의 외모.

 

글쎄 이건,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날 좋아해 주는 남자'라는 이유로 남자친구를 선택해서 사귄 것 같은데, 볼수록 남친이 특이하게 생겼다는 생각만 들고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든다면 헤어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은 저보고 연애에 대한 로망을 버리라고 해요.

아니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가 원하는 대로 입혀주고 고쳐주래요."

 

로망을 버려서 해결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냥 알고 지내는 남자들보다 남자친구 외모가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고,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한숨만 나고, 점점 연락도 받기 싫어지고 있다면 그건 로망을 버린다고 해결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근데 오빠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면 오빠가 폐인이 될 것 같아서 말 못 하겠어요."

 

이런 상태로 계속 사귀는 게, 오히려 상대를 더 폐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대화를 보니 남자친구 성형하는 것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그냥 연애를 내려놓길 권한다.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스타일 변화를 시도하겠다며 남친 데리고 쇼핑 다니다

 

'데이트가 매번 오빠 변신을 위한 쇼핑이 되고 마네.'

 

하는 생각이 나 결국 이런 건 알아서 좀 사 입고 신으라고 짜증까지 낸 것 같은데, 그와 뭔가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손톱만큼의 설렘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얼른 내려놓도록 하자. 솔직한 마음을 밝히면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봐 '나도 좋아하는 척'하며 만나는 건 둘 모두에게 시간낭비일 뿐이다. 다음번엔 그저 날 좋아한다니까 아무 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귀지 말고,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과 사귀길 권한다. 그리고 사연을 보낸 U양이 염려하는 것과 달리, 남친은 헤어져도 절대 폐인이 되지 않을 테니 괜한 걱정 말고 헤어지길 바란다.

 

 

3. 여자로 덜 느껴진다는 남친.

 

해안가로 올라와 죽은 돌고래들의 집단 자살이, 맹목적으로 리더를 따른 결과라는 설을 언젠가 들은 적 있다. 돌고래들은 리더가 가는 방향으로 모두 뒤따르는 특유의 사회성을 지니고 있는데, 리더가 몸이 아파 해변가를 향해 돌진하면 다른 돌고래들도 뒤따랐다가 죽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저는 남자친구의 리드를 따르는 타입입니다."

 

난 M양의 저 태도가, 이번 연애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간 M양의 뜻에 따라 맞춰주고, M양에게 헌신하며, M양이 바라는 대로 이끌어준 남자들과 만날 때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남자친구는 M양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선적이고 지배적인 방향으로 연애를 이끌어가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M양이 그의 뜻에 따르지 못하면 그건 고스란히 'M양의 잘못'이 되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의 리드를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M양의 태도를 남자친구가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한 말을 보자.

 

"넌 너무 편안하게 느껴져서 스킨십 하려는 욕구도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너랑 만나는 게 좋긴 한데, 애교나 끼를 못 부리는 것이 아쉽다."

"넌 질투도 하지 않는다. 쿨 한 척 하지 말고 질투를 좀 했으면 좋겠다."

 

M양이 만약 내 여동생이었다면, 난 M양에게

 

"야, 이건 또 무슨 아름다운 경우야?

쟤가 말하는 건 옆에 와서 꼬리 치라는 이야기 밖에 더 돼?

쟤가 너보고 질투 안 한다고 뭐라고 할 때 한 행동이 뭐야.

다른 여자 쳐다보면서 가슴 크다고 말한 거잖아.

리드가 어쩌고 맞추는 게 어쩌고 하기 전에,

이 연애를 왜 하고 있나를 생각해 봐봐.

이건 네가 맞춰가지 못 하는 게 아니고, 쟤가 이상한 거야.

걔 구여친들은 애교도 잘 부리고 끼도 잘 부렸다고?

지금 그 말에 넘어가서 '나는 왜 못 그럴까'하고 있으면,

너까지 이상한 여자 되는 거야.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잖아.

다 네 부족함과 모자람이 문제라고 말하면 사귀지 말자고 해.

왜 이상한 남자 옆에서 사육만 당하고 있어? 고민할 가치도 없어. 버려."

 

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 같다. 내가 사연을 읽으며 가장 답답했던 건, 남친이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를 해도 M양이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정말 내가 이상한 여자인가?'하는 생각을 하는 부분이었다. 딱 한 마디라도 내가 M양이 되어 할 수 있다면,

 

"그럼 넌 얼마나 잘 하고 있는데? 넌 남자친구로서 완벽하다고 생각해?"

 

라는 얘기를 꼭 했을 것 같다. 평소에 M양이 뭐든 남자친구의 의견이라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또 남친이 하는 일들은 그게 발가락을 후비는 일이라도 특별하고 위대하게 보다보니, 둘은 연인이 아니라 지도자와 추종자의 모습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그가 "내 구여친은 내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걸 이해했다. 걔는 그만한 믿음을 보여줬는데, 넌 왜 못 보여 주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도, M양은 '정말 내가 이해심이 부족한가?'하며 흔들리고 있을 것 같다.

 

"저희는 왜 서로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일까요?

감정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더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답은 간단하다.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M양의 남친은 언제든 "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라며 이별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M양은 이번 행동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봐 전전긍긍 하고 있다. 관계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소통이 안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남친이 M양을 존중하지 않으면, M양 역시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길 권해주고 싶다. 자존감이 바닥난 채 헤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매달려 있는 여자는, 남자에게 완구처럼 여겨질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들에 맞출 생각을 하지 말고 둘 다 비슷한 존재감을 가진 채로 연애하길 권해주고 싶다. M양은 앞으로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더라도 이런 순간이 오면 그때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 무섭다고 하는데, 현남친처럼 구는 남자를 또 만나게 된다면 그 역시 보내는 게 맞는 거다. 다른 여자 칭찬하는데 왜 질투하지 않냐는 괴상한 소리 하는 남자는, 그에게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고 보내길 권한다.

 

 

금요사연모음은 웬만하면 블링블링한 이야기들로 채우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셋 다 이별을 권하는 사연을 발행하게 된 것 같다. 고민을 담은 사연이 아닌 까닭에 매뉴얼로 발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 더는 남자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친구 결혼식에서 남친을 만난 대원, 동물병원 갔다가 연애를 시작한 대원, 첫사랑을 SNS에서 만나 사귀게 된 대원, 작년 이맘때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가 올 초에 청첩장을 보낸 대원들이 보낸 '밝은 사연'들도 많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그대도 어서 '밝은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내게 염장 사연을 보내주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티스토리에서 새로 추가한 기능인 '밀어주기' 배너를 포스팅에 달아 볼 예정이다. 블로거에게 커피 한 잔 쏠 수 있도록 만든 기능이라는데, 해보지 않고 왈가왈부 하는 것보다 일단 해보고 티스토리 측에 피드백을 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렇게 달게 되었다. 아무 말 없이 덩그러니 달아 둘 게 아니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적어두었다.

 

자, 이렇게 또 한 주가 지났다. 글을 올려두고 공원에 나가 새들을 유혹해야 하는 까닭에 여기서 줄일까 한다. 어제 나가서 모이 놔두고 기다렸는데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한 마리라도 날아와 모델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길!

 

 

"근데 새 사진은 왜 찍으시려 하는 건가요?" 찍고 싶으니까요.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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