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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친한 오빠에서 부담스러운 선배가 된 남자 외 1편

by 무한 2014. 4. 23.

친한 오빠에서 부담스러운 선배가 된 남자 외 1편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나와 친구들이 들어간 쪽의 안전요원은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호루라기를 불며 제지했다. 안전선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리에서 조금만 이탈해도 다시 무리로 들어올 때까지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안전을 위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게 놀 수가 없었다. 꼬꼬마들이 모여 있는 -허리까지밖에 물이 안 오는- 곳에서 멍하니 파도를 바라보고 있어야 그 안전요원이 안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강력하게 제지하는 안전요원의 구역 반대쪽으로 가서 놀았다. 반대쪽 안전요원은 안전선 이내라면 사람들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이건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 내가 통제에 대한 불평을 해도 '안전을 위해서 그런 건데 그걸 따라야지 왜 불만을 갖냐'고 하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여하튼 당시의 나는 그 안전요원이 정말 '안전'을 위해서 그런다기 보다는 '자신의 권한'을 내보이기 위한 방법으로, 또는 통제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 안전요원을 두고

 

"저 XX, 호루라기 부는 데 재미 들렸어."

"다른 쪽은 다 들어가서 놀게 하는데 왜 쟤만 저래?"

"쟤 또 온다. 저쪽으로 가자."

 

라는 이야기를 했다. 뭐, 역시 이건 '안전을 위해서 그랬던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니, 더 길게 적지는 않겠다. 다만, 이렇듯 다 통제하고 금지하고 적발만 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결국 다른 곳을 찾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게 안전요원에 대한 푸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오늘 첫 사연의 주인공인 K군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라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는 걸 밝히며, 출발해 보자.

 

 

1. 친한 오빠에서 부담스러운 선배가 된 남자.

 

K군은 말한다.

 

"그녀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와 자유를 만끽하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걸 복학생인 저는 압니다.

제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녀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녀를 구속하고 속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더라도 다치지 않게 해주는

안전그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아닌 수호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맞으려나요?

저희 학교는 선배의 권한이 크고 강하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제 여자친구가 되면 그녀는 많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 여자친구라는 것만으로도 안전해지게 되는 셈이지요.

또 제가 최고학년인 까닭에 술자리가 많아지지 않도록 통제할 수도 있습니다."

 

난 K군에게 "안전그물 말고 그냥 친한 오빠만 합시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녀의 부모님도 걱정하고 있지 않은 부분들까지 K군이 너무 나서서 걱정하진 말자. 그녀는 어린애가 아니다. 또 그녀 나름대로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아갈 부분이 있는 거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부분들이 있는 것 아닌가. 그녀가 목숨을 건 위태로운 일들을 벌이고 있다면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서라도 그게 위험하다는 걸 말해줘야겠지만, 학교 동기들과 술 마시는 것을 두고 위태롭게 생각하며 '필름 끊겨서 사고 날까봐'라는 이유로 통제하겠다는 건 아무래도 지나친 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K군도 특별한 안전장치 없이 다녔지만 본인의 말대로 '최고학년'이 되었고, K군의 여자동기들도 그녀와 비슷한 신입생시절을 보냈지만 졸업까지 무사히 하지 않았는가.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K군 자신만 스스로를 제어하며 남까지 챙길 수 있는 사람이고 남들은 다 언제든 사고를 낼 수 있는 위태로운 사람들이 아니다.

 

또, 그녀의 남자 동기들이나 K군의 남자후배들을 잠재적 범죄자로만 여기지는 말자. 그들 중에도 분명 K군처럼 그녀를 챙기려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현재 K군은 '그녀와 나'만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전부 들러리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K군이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그들 중 그녀와 연애를 시작할 남자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챙기다 보면 충분히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그녀의 '안전그물'이 되려고 했던 K군은 지붕을 쳐다보며 그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겠지만, 난 그렇게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초반에 K군도 이 관계를 잘 이끌어갔다. 그녀에게 학교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가가기도 했고, 식사 역시 '후배에게 밥 한 번 사주는 것'으로 부담 없이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도 "오빠 우리 오늘 몇 시에 만나요?"하며 적극적인 태도로 이 관계에 임했다. 그렇게 서로의 생활은 생활대로 살아가며 '우리'인 부분을 점점 늘렸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K군은 갑자기 안전그물 타령을 시작하며 그녀의 생활에 간섭을 하고 말았다. 오늘도 술을 마시는 거냐,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 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함께 얼굴을 보게 되는 모임에서는, 그녀의 취한 정도를 살피다가 취했다고 생각되면 얼른 들여보내려고 대기하고 있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지킬 수 있을까요?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게요."

"학교 내에서의 제 위치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을까요?"

"절 부담스러워 하게 된 것 같은데, 혹시 그녀가 저를 스토커처럼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요?"

 

우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해 상황을 억지로 만들려는 행동을 즉시 그만두길 권해주고 싶다. 후배는 K군보다 학년이 낮을 뿐이지 바보도 아니고 들러리도 아니다. 학교 내에서 K군이 선배니까 앞에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지, 뒤에서는 충분히 비웃을 수 있다.(여기다 밝힐 순 없지만 K군과 그녀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 중 하나를 보면, 후배 중 한 사람은 분명 K군을 비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장난을 칠 수 없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내가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도 몇 학번 선배가 내 동기들과 나를 들러리로 세워 뭔가를 꾸미려고 하면, 눈에 빤히 보이는 그 짓을 비웃을 것 같다. 후배들이 앞에서 네네, 형형 거리며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실제로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진 말길 바란다. K군이 무슨 생각으로 폼을 잡든, 그게 폼 잡는 거라는 건 남들도 다 안다.

 

그녀와 후배들도 K군 만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먼저 깨닫길 권한다. K군이 한 "학교 내에서의 제 위치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을까요?"라는 말이나, "그 녀석들(후배들) 입단속은 확실히 시켜놨습니다."라는 말만 봐도, K군은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게 잘 와 닿지 않거든 K군의 신입생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와중에 K군처럼 행동하는 어떤 선배가 있다면, K군은 그를 마냥 존경하며 그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일 것 같은가, 아니면 "쟤 대장놀이 하고 있네."하는 생각을 할 것 같은가? 선배랍시고 후배들에게 군림하려 들며 그 중 자신이 반한 어떤 후배를 대상으로 뭘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면, 그들은 그 선배를 선 바깥에 두게 될 것이다. 지금 그녀의 안전그물이 되어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K군의 입장 자체가 위태로우니, 그들을 먼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길 권한다.

 

 

2. 예의는 참 바른 소개팅남.

 

이건 글쎄, L양이 무슨 실수를 했다거나 잘못한 게 있다기 보다는 상대 남자 분에게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 분이 보이는 태도로 이성을 만난다면 누구와 만나더라도 단단한 관계는 맺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 거래처 확보를 위해 투입되는 영업사원 같은 느낌이랄까. 많은 사람과 얕은 관계를 맺기엔 최적화 된 태도겠지만, 진중하게 서로를 알아가기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우선, 둘의 소개팅을 주선해주신 분이 둘 모두에게 '어른'이신 까닭에 두 사람 모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나누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밝고 활기차다는 것은 장점이 될지 모르겠지만, 대화가 표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치고 만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아래처럼 말이다.

 

남자 - 퇴근 하셨어요?

여자 - 네. ^^ 바로 헬스 가고 있어요~ 이제 곧 퇴근하시겠네요~

남자 - 네. 맞다. 운동 한다고 하셨죠? 저녁에 매일 운동하시는 거예요?

여자 - 네, 가볍게 유산소 하러 가요~ 

남자 - 와, 열심히 하시는 구나. 부지런하시네요. ^^

여자 - (이모티콘 웃음)

남자 - (이모티콘 엄지)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저런 대화만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저러다가 "우리 그때 말한 달달한 거 먹어야죠! 이번 주말 시간 괜찮으세요?"하며 약속을 잡고 만나기도 하는데, 만나고 돌아와서는 또 저런 카톡대화만 계속한다.

 

남자 - 퇴근하셨겠네요~

여자 - 네 ^^ 이제 곧 퇴근하시겠네요~

남자 - 네. 저녁 맛나게 드세요~

여자 - 네. 저녁 맛있게 드시고 운전 조심히 퇴근하세요~

 

L양이 좀 더 길게 대화를 하려고 해도, 그는 웃으며 그건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이건 그의 직업적인 특성(폰을 오래 보고 있을 수 없는 일)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 지인 중에도 그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지인 역시 대화하다 말고 사라져 버리는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L양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해서인지 몇 분씩 늦게 대답을 하는 것 같은데, 이러다보니 영화 <신세계>에서 최민식의 명대사

 

"이러면 나가린데…."

 

처럼, 둘은 '나가리(화투에서 아무도 3점으로 나지 못하고 판이 끝나는 것)'가 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차라리 둘이 카톡보다는 전화를 통해 연락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게라도 해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했으면 지금과 상황은 많이 달랐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둘이 거의 모든 일을 '나중에'로 미룬 까닭에 점점 연락이 뜸해지다가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L양은 이걸 두고

 

"주선자 분께서 연락처를 주실 때 카톡연락처를 주셔서 저는 그 분 번호도 몰라요.

그 분도 제 번호를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도 한 번 하지 않으셨고요.

제 번호도 묻지 않으셨어요. 친구들은 까인 것 같다고 마음을 접으라고 하는데…."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난 둘이 드물긴 하지만 어쨌든 약속을 잡아 만나왔고, 또 실시간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연락을 취해 왔으니, 그 역시 애초부터 흐지부지 될 생각으로 만난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사실 보통 이런 관계에서는 남자가 리드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위에서 말했듯 그는 좀 산만한데다 직접적 특성으로 인해 정신을 못 차릴 때가 많고, 더불어 주말마다 지인들의 경조사를 챙기거나 몸담고 있는 모임에 참석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기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다. 

 

아직 완전히 끝난 관계는 아니라서, 지금이라도 L양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면 희망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단, 언제 만날 거냐며 질문만 적극적으로 하지 말고, 그것 외에 다른 부분들을 좀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길 권해주고 싶다. 주초부터 이번 금요일에 시간 되냐고만 묻지 말고, 상대가 요즘 새벽기도를 나간다고 하면 무슨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지 등을 묻는 것이다. 또, 상대가 일 때문에 12분 늦게 대답했다고 똑같이 12분 기다렸다 대답하지 말고, 응답이 왔을 땐 바로바로 그 순간을 잡아 대화하도록 하자. 가능하다면 카톡보다는 전화통화를 이용하고 말이다.

 

만날 구실은 많다. 둘이 다음에 하자고 약속한 것만 해도 내가 세기로는 여섯 가지가 되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 "금요일쯤 갈비 먹고 싶을 것 같지 않으세요?" 정도로 말을 꺼내면 된다. 이렇게 물으면 되는 걸 가지고 멀리 떨어져서는 "혹시 이번 주 금요일에 수원에 계세요?"라고 시작해 빙 돌려 묻지 말자. 지름길 놔두고 예의 차리느라 너무 돌아갈 필요 없으니 말이다.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참 재미없고,

과연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금요일에 만나려고 말을 꺼냈더니 철야예배 있다고 하고….

저쪽은 저를 썩…. 그래서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

 

숟가락만 들면 되는 다 차려진 밥상만 기다리지 말고, 지금처럼 재료가 다 갖추어져 있는 상황에선 직접 만들어 보자. 쌀도 있고 물도 있고 밥솥도 있는데, 당장 눈앞에 김나는 밥이 없다고 울상만 짓고 있지 말고 말이다.

 

"무한님은 이 관계가 잘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지금처럼 그냥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으면, 생쌀이 변해 김나는 밥이 될 것 같진 않다.

 

 

끝으로 공감, 소통, 연결 등의 복잡한 질문을 주신 S양께 대답하며 글을 마칠까 했으나, 이거 쓰다 보니까 너무 길어져서 주말특집 매뉴얼 같은 걸로 따로 발행하기로 했다. S양의 질문에 대한 대답 쓰느라 에너지를 너무 소진한 까닭에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마음이 풍요로운 수요일 저녁 보내시길!

 

"그녀를 제가 지켜주고 싶습니다." 차라리 보험을 들어주세요. 실비보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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