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할 생각 없이 만나는 커플 외 2편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였던 폴 발레리가 말했다.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꼬꼬마시절 대학에서 CC를 할 때에는 어차피 결혼도 먼 미래의 얘기고, 만나서 얼굴만 봐도 별 걱정 없이 즐거우니 그냥 그렇게 연애할 수 있다. 그때는 결혼을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하게 될 수 있다고도 막연히 생각할 수 있고, 사귀다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지면 헤어질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시기에 그럴 수 있긴 한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 태도로 살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청춘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또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기 때문이다. 막연히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는 건 '기대'일 뿐이다. 이제 막 서른이 된 한 대원의 20대를 보자.
ⓐ21세 - 학교에서 선배 A와 연애.
ⓑ23세 - 선배 A와 헤어진 후 다른 이성과 썸을 탐. 결실 없음.
ⓒ24세 - 다시 선배 A와 연애.
ⓓ25세 - 선배 A와 헤어진 후 다른 이성과 썸을 탐. 결실 없음.
ⓔ26세 - 왕자님이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선배 A가 다시 옴.
ⓕ28세 - 선배 A와 헤어짐. 선배 A는 다른 여자와 결혼.
ⓖ29세 - 이십대가 끝난다는 생각에 급해져서 다수의 소개팅 했지만 결실 없음.
ⓗ30세 - 왕자님이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고 있음.
내가 저 대원을 진작 만났더라면, 난 '26세' 부근에서 "당장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리고 그냥 익숙한 게 제일 편하다고 해서 그를 다시 만나는 건, 목적지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빨리 오는 열차에 올라타는 것과 같아."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 같다. 플랫폼에서 기다리지 않고 당장 열차를 탔다는 안도감은 있겠지만, 훗날 그 열차의 종착역엔 위기감과 다급함 밖에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얘기와 함께 말이다.
1. 결혼 할 생각 없이 만나는 커플.
S양이 하도 오락가락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난 오빠를 결혼상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오빠는 내가 자기랑 결혼할 거라고 생각함.
ⓑ오빠에게 우리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함. 그럴 거라고 답함.
본인의 태도를 먼저 분명하게 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와 결혼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하자. 신청서를 보면 S양은 그에게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헤어져야 할 사람이라고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상대와 결혼을 하면 정말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묻는다.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랑하는 결혼생활을 꿈꾸는데, 오빠와 그것이 가능할까요?"
저건, 질문을 하는 S양이나 답을 해야 하는 나 두 사람 모두를 피곤하게만 만드는 질문이다. 지금 상태로는 그런 결혼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S양도 알고 있지 않은가. 불안하고 괴로우며, 이해와 위로도 받지 못하는 연애가 결혼했다고 해서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결혼생활로 바뀔 수는 없다. S양이 나서서 개척해 나가고 상대도 돕는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그저 예식장 예약 하는 것만으로 지금의 문제가 전부 해결되지는 않는다.
상대와 '결혼할 생각 없이'만나는 것이, 결국은 S양의 태도에서 드러나고 만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S양은 현재 상대에게 애정이 느껴지지 않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받기만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구는 여자에게 남자가 호의를 접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호르몬의 도움을 받아 연애를 하던 초창기에야 S양이
"나 먼저 잘래. 끊어."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려도 남자친구가 득달같이 달려왔겠지만, 그게 반복되면
"얘는 나에 대한 애정이 있기는 한가?
전부 다 자기 위주의 행동만 하고 난 늘 달래주는 역할만 한다.
얘가 나에게 하는 행동은 화를 내거나 속상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8할이다.
이런 여자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거나, 아니면 속상하다는 얘기만 하는 여자…."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호르몬의 도움이 끝나는 시기가 찾아오면, 남자는 그런 여자를 '정리대상 1순위'로 분류한 뒤 퇴출한다.
어쩌다보니 사귀게 되어서 그냥저냥 연애하다보면, 얼렁뚱땅 결혼해서 대충 사는 루트를 밟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솔직히 난, 지금 상태로는 S양 커플에게 '얼렁뚱땅 결혼'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냥저냥 연애'를 하는 와중에 남자친구가 S양을 짐으로 느끼며 내려놓을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자친구가 비전도 없어 보이고 그에 대한 확신도 들지 않는다면 헤어지자. 그가 결혼상대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면 헤어지면 된다. 그럴 땐 용기를 내 헤어지는 게 답이다. 하지만 S양은 현재 그를 '버려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의지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답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와중에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있다.
헤어질 용기는 없는데 상대는 마음에 들지 않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 난 해줄 말이 없다. 애정을 갖고 상대와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나, 아니면 용기를 내 헤어지는 것 둘 중 하나를 S양은 선택해야 한다. 폰이라고 해보자. 폰 액정에 금이 가서 글자 보기가 불편하면, 폰 유리를 수리하거나 폰을 바꿔야 할 것 아닌가. 그 두 가지 선택 중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금 간 것 때문에 글자가 잘 안 보여서 짜증나요. 글자 잘 보이게 하는 방법 없나요? 어차피 버릴 폰이니까 수리하는 거 말고 방법이 없는지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면, 방법이 없는 거다.
2. 도도한 지나씨.
지나씨, 난 기회가 된다면 지인들과 지나씨를 데리고 6박 7일의 산악캠핑을 다녀오고 싶어. 다 준비된 캠핑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필요한 건 전부 다 그곳에서 마련해야 하는 서바이벌 캠핑 말이야. 그러면 우리는 대소변도 그곳에서 봐야 할 것이고, 좋은 단백질 공급원인 벌레도 잡아먹어야 할 거야. 씻기 어려워지면 몸에서 냄새도 날 거고, 첫 날 하고 간 화장도 이틀 지나면 번져서 쌩얼이 다 드러날 거야.
그러고 싶어. 그러면서 우리가 '특별하고 대단할 것 없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걸 함께 느끼고 싶어. 그게 내가 여기에 수만 단어를 써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지금의 지나씨는, 혹 누군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방귀라도 끼게 되면, 그것 때문에 상대가 지나씨를 놀리거나 얕잡아 보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 잠도 못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난 지나씨가 현재의 썸남을 두고
"(오빠는 제가 자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나는 오빠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라고 말하는 게, 좋지 않은 행동일까요?"
라고 묻는 게 참 답답해. 왜 그렇게 남이 지나씨를 어떻게 볼 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거야? 또, 지나씨는 상대가 지나씨를 우습게 보거나 얕잡아 볼까봐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거나 일부러 더 의식적으로 행동하잖아.
썸남은 적군이 아니야. 지나씨는 본인이 실수하거나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얕잡아 볼까 걱정하는데, 그렇지 않아. 아군은 그 실수를 덮어주거나 이해해주지. 또 그런 모습을 보며 오히려 지나씨를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도 있어. 그 모습을 귀엽게 생각할 수도 있고.
상대도 지나씨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나거나 다가가 봐. 지나씨가 한 행동을 썸남이 그대로 했다면, 지나씨는 분명 상대를 차단했을 수 있거든. 물론 지나씨는 상대에게 장난을 거는 타입이 아니니까,
"저는 절대 상대에게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랬다고 가정해 보자고. 지나씨가 장난을 걸거나 농담을 했는데, 상대가 정색하면서 그걸 부정해. 그럼 지나씨도 민망해 질 거 아냐.
"예전에 썸남이 있었을 때, 그 썸남이 지었던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오빠가 짓더라고요.
뭐라고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분명 기분이 약간 나쁜 것 같으면서 상심한 듯한 표정…."
직설적으로 말해도 돼? 그거, 지나씨가 찬물 끼얹으니까 정 떨어져서 나오는 표정이야.
지금 지나씨에게 가장 절실한 건, 상대에게 단답을 하느냐 아니면 관심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흘려 현상황을 중화시키느냐 하는 게 아냐. 피아식별이 먼저 돼야 해. 적군과 아군은 구별해야 할 거 아냐. 난 지나씨가 내 편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웃자고 얘기를 꺼냈는데, 지나씨는 날 향해 방아쇠를 당겨.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겠어? 아군에서 바로 적군 되는 거지.
충격적이겠지만, 밖에서 보면 지나씨는 마냥 도도한 여자로 보이지 않아. 도도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로 보여. 누가 카톡을 보내도 지나씨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을 때에는 열어서 확인해 보지 않는다고? 썸남도 그걸 알기에 이제는 답이 없으면 그러려니 하며 맞춰서 보낸다고? 근데 그러면 지나씨 자신이 힘들 때 톡으로 수다 떠는 건 뭐야? 혼자 꼿꼿하게 있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썸남에게 털어놓는 건 또 뭐고? 이거 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상대가 나처럼 굴면, 난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것만 생각해 보면 돼. 지나씨가 힘든 일이 있어서 카톡을 보냈는데, 상대가 '원칙'을 고수하며 자기 할 일 다 하고 나서야 답을 해. 그럼 기분이 어떨까?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그 사람이 그런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저도 이해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지 말고, 진짜 솔직한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 봐.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자기 편한 시간에는 시시콜콜한 얘기 꺼내 놓지만, 지나씨 편한 시간에는 아예 카톡 확인조차 안 한다면 기분이 어떨지도 생각해 보고.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더 전에 공자가 말했잖아. 좀 바꿔서 말하자면,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은 상대에게 행하지 말라고. 상대에게 일부러 푼수짓 하며 우스운 모습 보일 필요까진 없지만, 우리 모두 인간이니까 인간적인 모습도 좀 보여주자고. 그냥 좋다고 말하면 될 걸 가지고 일부러 "나쁘진 않네요."라고 말하진 말고.
3. 100일을 못 넘는 연애만 하는 여자.
이 사연은 답이 명확하다. N양이 100일을 넘지 못하는 연애만 하게 되는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차례대로 살펴보자.
A. 호감도 없는데 사귀니까.
N양이 한 말을 보자.
"연락하는 게 귀찮고, 오빠가 오글거리는 말 하는 게 싫어서
배터리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연락을 잘 안 했어요."
연애는 당연히 만나는 게 기쁘거나 대화하는 게 즐거운 상대와 해야 하는데, N양은 그냥 '나 좋다는 남자'와 일단 연애를 시작해 버린다. 상대에게 관심도 없고, 호감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건 마치 동네 문화센터에서 '러시아어 무료교육'을 한다고 하니,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일단 등록을 해 버리는 것과 같다. 공짜라서 등록은 했지만 사실 배울 생각도 없고, 러시아어를 잘 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결국 수업은 N양에게 지루해져 버린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결석하는 날이 많아져 버리고, 그곳 러시아어 선생님은 수업에 방해가 되는 N양의 태도 때문에 결국 '수강 취소 권유'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만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귀찮은 상대와 연애를 일단 시작해 버리니, 이별은 필연적이다.
B. 다른 남자가 있으니까.
역시 N양이 한 말을 보자.
"A라는 남자애가 있어요. 전 얘랑 엄청 친해요. 아빠나 친오빠 같은 존재예요.
만나거나 대화하거나 같이 여행가는 것도 얘랑 가면 편해요.
남친들이랑 사귈 때도 남친보다 얘가 더 믿음직스러웠고요."
그럼 A랑 사귀면 된다. 그런데 N양은 A를 '엄청 친한 이성친구'로 둔 채 위에서 말했듯 자신에게 대시하는 남자와 연애를 한다. 남친들이 그 A를 두고 화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여자친구가 한 주에 몇 번씩 만나서 같이 공부하고 여행도 간다는 친구가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남자다. 이런 상황에서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A가 남자라고 말하면 오빠가 신경쓸까봐 제가 처음엔 선의의 거짓말을 했어요."
그건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사기이자 공갈이다. 이게 반대 상황이라면 N양이 상대의 뺨을 후려쳐도 이상할 것 없는 일 아닌가. 남친이 한 주에 몇 번씩 만나고 같이 여행도 같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훗날 그 친구가 여자라는 게 밝혀지면 N양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더불어 전남친이 연락을 해 온다고 해서 다 만나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N양은 거절이라는 걸 못 하는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남친이 A와의 만남을 줄이라고 해서 줄였다가 A가 화를 내면 다시 A에게 맞추겠다고 말하고, 그러는 와중에 전남친이 연락을 해오면 전남친과 만나서 논다.
"그걸 두고 오빠가 그렇게까지 화내진 않았어요. 막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요."
좋아하니까. 상대는 정말 N양을 좋아했던 거니까 혼자 속상해 했을 뿐 헤어지지 못했던 거다. 물론 그러는 동안 N양에 대한 신뢰는 하락했고, 실망은 커져갔다. 그렇게 피로가 계속 쌓여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 그가 이별을 말한 것이고 말이다.
C. 골탕 먹이려고 하니까.
위와 같은 일들로 인해 상대는 N양에 대한 마음을 접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더는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너는 너의 길을 가라.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이렇게 사귀다 헤어지면 마는 거고 뭐.'라는 마음으로 연애에 임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N양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다. 전과 달라진 그의 태도에 서운한 것이 많아지고, 무조건 예찬해주던 전과 달리 심드렁하게 말하는 그의 말들에 섭섭함을 느낀다. N양이 한 말을 보자.
"저도 화가 나서, 일부러 답장을 늦게 하거나 반항을 했어요."
이쯤 되면 이 연애를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다. 남친은 남친 대로 마음이 떴고, N양은 N양대로 상대를 골탕 먹여 응징하려고 한 까닭에 연애만 덩그러니 혼자 남아 시한부에 접어들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 그가 비명처럼 질렀던 말을 보자.
"넌 내가 뭘 제안해도 싫다고 하고, 만날 수 있는데도 안 만난다는데,
네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라."
결국 남친도 N양이 연애를 대하는 것처럼,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연애에 임하게 되었다. N양의 모습과 똑같이 연락도 귀찮아하고, 만날 의지도 보이지 않으며, N양이 뭘 제안해도 싫다고 말한 것이다. 그걸 두고 N양은
"오빠가 그래서 저는 상처 받았어요."
라고 말한다. 바로 그거다! 상대도 그동안 N양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오빠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전 오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거나,
아니면 이유 없이 제가 싫어진 거라 생각했죠.
저는 오빠에게 헤어질 거면 만나서 정리하자고 했는데 오빠는 거절하더군요."
남친이 N양처럼 굴어 N양이 상처를 받았으면 깨달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N양은 끝까지 혼자 합리화만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이 연애로 인해 더 아플 사람은 남자친구인데, N양은 본인 아픈 것만 생각하며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사실 헤어질 구실은 N양이 8할 이상 제공한 건데, 헤어지자고 한 건 남친이니 N양 자신이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 같다.
"오빠에게 연락 오는 일은 없겠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N양이 '버림받은 여자'의 입장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보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 하세요. 연애는 좋아하는 사람과 하시고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끝으로 구여친 관련 사연을 보낸 원제씨에게, 원제씨는 7살 연하의 구여친보다도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원제씨가 내 지인이었다면.
"뭐가 그렇게 무서워?
네가 구여친한테 보낸 카톡 봐봐. 뭐가 보여?
분 단위로 점점 더 찌질해지고 있는 남자가 하나 보이지 않아?
내가 보기에 넌 거절당하거나 퇴짜 맞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
상대가 금요일 일요일 시간 된다고 했잖아.
그럼 그 중 하나 택해서 밥 한 번 먹으며 얼굴 보면 되는 거야.
그런데 넌 뭐라고 했어? 내일 안 되냐고 물었지?
내일이 무슨 요일이야? 수요일이잖아. 월화수목금토일 몰라?
당장 상대가 대답해준다고 들떠서 정신줄 놓지 말라고.
그리고 떠보는 것 좀 그만해. 내가 다 짜증나더라.
만나서 다시 받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좋아하는 남자 생긴 거 아니냐고 묻고,
그거 진짜 구질구질해. 넌 계속 두드려 보고만 있잖아.
말로 다 확인하고 만나려고? 상대가 안 받아준다고 하면 안 만날 거고?
이제 이별 후 앙금도 다 가라앉고 어느 정도 감정도 풍화작용을 겪어서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땐 분명 기회가 있었거든.
근데 네가 저러면서 비겁하게 간보고 자꾸 떠보니까
상대는 '맞다. 이런 남자여서 헤어졌던 거지.'하며 밀어내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 같다. 나머지 대화들을 봐도 원제씨는 '상대는 나와 다시 만날 의사가 있는가?'라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대화를 할 뿐, 상대가 전하고 있는 그쪽 소식에 대해서는 "응, 그래.", "잘 됐네."정도의 리액션만 하고 만다. 나라면 상대가 유럽여행 계획중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이것저것 물어봤을 것 같은데, 원제씨는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하며 만날 약속만 잡으려 한다. 그럴 땐 유럽여행을 주제로 대화를 하다가,
"이런 건 만나서 들어야지. 너 돈가스 좋아하잖아. 안 먹은 지 꽤 된 거 아니야?"
라며 자연스레 약속을 잡으면 되는 거다. 최대한 가볍게 물어봐야 상대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원제씨는 상대가 만나자는 말에 승낙을 해도 "진짜 만나 주는 거야? 내가 만나서 술 마시다가 너보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어쩌려고?"라며 없는 부담도 만들어서 주고 있으니…. 그러다 상대가 밀어내면 "그래. 알았다."따위의 실망이 잔뜩 묻어나는 말만 하고…. 이러니 잘 될 수가 있을까?
"무한님, 제가 물어본 건
그녀의 카톡 남김말이 저에게 보내는 신호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거니까
그것만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것은, 신호가, 아닙니다.
▲ 거문고자리 유성우 극대 시즌이고, 오늘 밤하늘 예보 좋습니다. 별똥별 한 번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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