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붙잡아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남친 외 2편
요즘 이게 유행인가? 소 잃고, 아니 남자친구 잃고 외양간 고치는 여성대원들의 사연이 하루에도 몇 통씩 도착하고 있다. 사람만 다를 뿐 그 레퍼토리는 대개 비슷하다.
ⓐ그에게 반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잘하는 게 보기 좋아 사귐.
ⓑ지극정성으로 연애를 돌보는 그가 대견함. 결혼 얘기도 이때쯤 함.
ⓒ전과 달리 남자친구가 전력을 다하지 못함. 남친을 채찍질 함.
ⓓ남자친구가 지침. 이쪽에선 "더더더더더더!"를 연발하며 무서운 얼굴로 협박함.
ⓔ몇 번 헤어졌다 만났다 함. 헤어졌다가도 이쪽에서 잡으면 남친이 잡힘.
ⓕ더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남친 단호박 빙의.
ⓖ찾아가고, 매달리고, 애원해도 남친이 안 잡힘.
ⓗ남친의 매정함을 탓하거나, 기다릴 테니 돌아오라고 여지를 남겨둠.
이게 ⓓ나 ⓔ정도에 사연을 보내면 손을 쓸 수가 있는데, 이미 상대가 이쪽의 인간성에 대한 실망을 했다거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한 후라면 아무래도 돌리기가 어렵다. 매뉴얼에는 다 적지 않았지만, 상대가 단호박이 될 때쯤이면 그가 미워 그에게 부모욕, 동물욕, 숫자욕 등을 한 경우도 있고,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이쪽에서 먼저 뺨 때리듯 상대를 모욕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욕이나 모욕을 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답정너'의 태도로 상대를 밀어붙인 까닭에 상대가 완전히 질려버린 경우도 있다. 어제 발행한 지현씨의 사연과 같은 경우인데, "어쨌든 내가 지금 아프고 슬프니 이건 네 잘못."이라는 태도로 상대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상대는 "너는 어떻게 끝까지 그러냐? 그래. 내가 나쁜 놈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1. 눈물로 붙잡아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남친.
주변에 S양과 같은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남자가 있다면, 어느 날 그 남자를 포함한 지인들이 모였을 때
"얘 게임 진짜 못 해. 나보다 점수도 낮아."
라는 이야기를 해보길 바란다. 그 얘기를 들은 상대는 죽을 때까지 S양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자다가도 일어나 S양의 말을 떠올리며 이를 갈 것이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S양의 명치를 정말 세게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게임 얘기라 잘 와 닿지 않는다면, 내가 모임에서 S양을 두고
"얘 입 진짜 못 생겼어. 내 입이 저러면 난 당장 교정부터 했겠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보자. S양이 자신을 개그소재로 삼아도 마냥 즐거워하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라면, 저 말을 한 나를 평생 증오하며 저 말이 떠오를 때마다 분노가 끓어오를 것 같지 않은가? 나중에 내가 잘못을 뉘우친 뒤 울며 사과한다고 해도, 저 말을 들었던 기억은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전까지는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말이다.
S양이 행동들이, 남자친구에겐 저렇게 받아들여졌던 거다. 돈 없는 남친 때문에 데이트가 초라한 걸 서운해 하고, 헤어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욕을 하고, 헤어진 이후엔 어른들께 전화 하겠다고 협박했던 행동들. 그것으로 인해 그의 자존심은 뭉개졌고, 그에게 S양은 '답답하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난 S양에게, S양 남친은 정말 착하고 젠틀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무슨 이유로든 조금이라도 그를 비난하지 말길 권한다. S양은 어제 매뉴얼에서 다룬 지현씨처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얘는….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남자친구의 마지막 메일만 보더라도 그가 S양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절제와 인내로 그 메일을 써내려갔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마지막 배려를 여지라 착각하며 매달리지만 말고, 그가 하고 있는 얘기들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는 S양 때문에 너무 아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거기에 대해 S양은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되는 거다. 하지만 S양은 '모두 사과한다. 그러니 돌아와라.'라며 사과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걸 요구하고 있고, 그의 상황과 사정은 생각하지 않은 채 헤어졌다는 사실을 힘겨워 하며 마음대로 그를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고 있다.
겨울이 되어 잎을 다 떨군 나무를 붙잡고 애원해봐야 다시 잎을 내지 않는 것처럼, S양의 남친 마음에도 겨울이 찾아왔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봄이 오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S양이 현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단호하게 S양을 밀어낸 남자친구가 S양 메일함에 간헐적으로 로그인을 하는 걸 보면 그도 오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있는 듯하다. 그러니 '요구'를 생략한 사과의 메일을 쓴 채 임시저장함에 저장해 보길 권한다. '보내지 못한 편지'작전인데, S양으로 인해 남자친구가 입었을 상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적어둔다면, 그의 꽁꽁 언 마음이 녹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잠깐만, 근데 남자친구가 보낸편지함에서 S양이 노멀로그에 사연 보낸 거 본 뒤에, 여기 들어와서 이 글을 읽는 건 아닐까? 그러면 우리 작전 나가린데…(응?).
2. 여중여고여대, 휘아.
휘아씨, 이거 말이 다르잖아? 사연 신청서를 읽으며 난 휘아씨가 여중여고여대 출신의 철벽녀라고 생각했는데, 뚜껑 열어보니까 황진이 급의 여자가 있네?
사람이 확 바뀌면 안 돼. 어르신들 말씀에도 사람이 확 바뀌면 죽는다잖아. 휘아씨의 경우는 '수동적인 여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능동적인 여자'로 급변하려고 하다가 망친 거야.
"(야한 영화 본다는 상대의 말에)오빠 많이 고팠나보네."
이게 뭐야? 저건 능동적인 대화참여가 아니라, 그냥 저질스런 얘기 하는 거잖아. 남들은 대개 수동적인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두 계단 쯤 올라선 적극성을 보이기 마련인데, 휘아씨는 여덟 계단을 한 번에 뛰어 올라가. 그래서 뭔가 좀 이상해지거든.
"인터넷으로 사람 구해줘?"
"요즘 어플로도 사람 잘 만나잖아. ㅋ"
"스을슬 입질이 왔구만~"
저런 이야기를 하는 여자를 누가 철벽녀로 보겠어?
이번 사연에서 휘아씨가 보인 가장 큰 문제는 '한 술 더 뜬 것'이야. 상대가 드립을 쳤을 땐 적당히 웃어 주거나, 비슷한 수위의 드립으로 리액션을 해주면 되는 거거든. 그런데 휘아씨는
'겨우 그 정도의 멘트를 드립이라고 치냐? 내가 오늘 네 배꼽 빠지게 해주겠다.'
라는 각오로 상대에게
"뭐무어뭐어뭐 뭐또뭐뭐 뭐또뭐또~ 오빠 개드립 칠 생각 하고 있지? ㅋㅋㅋ"
하고 있거든. 이거 뭐야 무섭잖아. 이번 사연만 놓고 보면 휘아씨는 절대 철벽녀가 아니야. 그리고 수위 높은 드립을 하면 남자는 그 여자가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거든. 휘아씨는 자신에게 원나잇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이 많았다고 했는데,
"오빠 많이 고팠나보네."
라는 이야기를 하면, 상대도 그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잖아. 휘아씨는 저걸 '농담 따먹기'라고 말하는데, 상대는 남자야.
"오늘도 영상 한 편 땡기고 잘라고? ㅋㅋㅋ"
라는 이야기를 막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여자들끼리야 저런 얘기하면서 웃을 수 있지. 근데 이성한테 저런 멘트를 던지면, 이성은 '얘는 이런 쪽에 완전히 개방적인가보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그런 와중에 휘아씨는 상대에게 마음이 있으니 그가 저녁에 부르면 나가고, 상대는 늦은 시간에 불러내도 나오는 휘아씨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오늘부터는 휘아씨의 카톡대화가 전부 저장된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나눠봐. 그걸 누구든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러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겠다'며 수위 높은 드립 치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일상적인 대화를 수위 높은 드립으로 치환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데(특히 '흔드는' 얘기 하다가 그쪽으로 끌고 가는 건 거의 신동엽 수준), 드립을 치고 싶어도 좀 참길 바라. 썸남이랑 길거리 걷다가 횟집 수족관에 있는 개불보고 영감이 떠올랐다고 막 드립치고 그러면 안 돼. 수위 높은 드립은 둘이 사귄지 1년 넘는 날부터 치기로 나랑 약속하자. 알았지?
3.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장거리 커플.
A양처럼 망부석이 되어가는 대원들이 있어 나는 슬프다. A양이 내 여동생이었다면,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이 헤어지라는 얘기를 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단 한 번을 오지 않는 그 남자.
편도로 4시간 걸리는 거리를 늘 A양이 찾아가야지만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에러다. 상대가 이동에 제약을 받는 군인도 아니고, 엄청난 사업을 하고 있어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보통의 사람인데, A양이 그의 동네에 찾아가 만나다 보니 그냥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 동네에 찾아가서도 데이트 루트는 늘 같다. 가던 곳에 가고, 먹던 곳에서 먹고, 자던 곳에서 자고…. 그러다가도 그는 일이 생기면 모텔에 A양을 혼자 두고 일을 보러 가 버린다. 한 달에 한 번 이런 만남을 가질 뿐인 연애를 대체 왜 이어나가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부모님의 아바타인 그 남자.
난 그가 스스로 뭘 결정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는 A양과 만나기로 한 경우-위에서 말한 대로 A양이 그의 동네로 찾아가기로 한 경우-에도 부모님이 뭔가를 시키시면 A양과의 약속을 취소한다. 그렇게 되면 둘은 다음 달이나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집에서는 부모님이 계시니 전화통화를 못 하고, 부모님이 외박을 허락하시지 않으니 멀리까지 나가지 못한다. 그 효심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내 여동생이 이런 남자와 만난다고 하면 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까지 반대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하고 난 이후 효도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여전히 부모님의 그늘에서 아바타로 충실히 살고 있을 뿐인 모습이다. 부모님이 스케줄을 정해주시고 난 이후의 시간에만 데이트를 계획할 수 있는 남자. 그마저도 부모님이 다시 스케줄을 조정하시면 단 한 번의 고민 없이 A양과의 데이트를 취소하는 남자. 난 A양이 그와 좀 더 사귀다가 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의 부모님께서 A양과 사귀는 걸 반대하시면 어떨까 궁금하다. 그러면 그는 A양에게 사과하며 헤어지자 할 것 같은데, A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아직 사귀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며,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불만을 가진 것에 대해 '제가 불만족녀일까요?'하며 자책만 하고 있는 A양이 나는 선인장처럼 느껴진다. 그가 주는 최소한의 관심과 사랑으로 A양은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제 그것마저도 더 줄이려고 하고 있다. 며칠 전엔 A양이 연락을 해도 답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생겼을 정도로 말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도 될까? 남자친구에게 이 연애는 그냥 이 상태로 딱 좋은 연애다. A양은 가끔 좋은 곳에서 데이트도 해보고 싶고, 손잡고 등산도 해보고 싶고, 도시락도 싸서 놀러도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남자친구는 A양이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동네로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고, 연락하면 잘 받아주며, 바쁘다고 말하면 징징거리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A양을 원하는 것이다.
A양이 미련할 정도로 착한 거다. 언젠가 TV를 보니까 다친 상처가 다 썩어 들어갈 때까지 종교적 믿음으로 신의 은총만을 바라며 치료를 받지 않고 기다리던 사람이 있던데, A양이 딱 그런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좋을 땐 좋으니까, 그리고 나중엔 더 좋아질 수 있으니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A양은 선인장, 망부석이 된 것이다.
사과와 애정표현, 그리고 사람 착한 것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길 권한다. 좀 다른 경우지만, 만약 A양이 정말 사람 착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사는데, 그는 의협심과 정이 많아 보증도 잘 서고 자기 먹을 거 안 먹으며 남을 챙긴다고 해보자. 자기 집 기둥까지 뽑아다 남을 도와줄 정도로 착한 그 사람과 살면, 결국 그 가정은 무너지고 만다. 이 함정에 빠지지 말자. A양이 늘 그의 동네로 가야만 그를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불평했을 때, 그가 눈물로 사과를 하며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해도, 결국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똑같은 상황만 유지되면, 사람이 착하든 순수하든 그것과 관계없이 그와의 연애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게 맞다. 상대가 악하지 않고 착해도, 충분히 사람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A양이 알아서 다 하는 이대로가 그냥 딱 좋을 뿐, 더는 뭘 같이 하고 싶은 게 없는 남자. 4시간 걸리는 거리를 온 여자친구에게 "내가 오늘 외박하면 어머니께서 안 좋아하실 거야."라며 A양 혼자 모텔에서 자라며 놔두고 가는 남자. A양이 그에게 가지 않으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생이별 하게 되며, 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한 번도 A양을 보러 온다고는 안 하는 남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러다 A양이 '철의 여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화창한 5월에 여자친구를 방치해두는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길 바란다.
하얗게 불태운 관계로 오늘 배웅글은 생략할까 한다. 다들 불금 보내시길!
▲ 빙수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꼭 먹어봐야 하는 빙수 있으면 댓글로 소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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