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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자상하고 착하고 다정다감한데, 돈 빌리는 남친.

by 무한 2014. 7. 21.

자상하고 착하고 다정다감한데, 돈 빌리는 남친.

K양이 내 친누나라면, 난 매일 밤 K양에게 눈물로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을 부탁했을 것 같다. 그는 K양이 알지 못 하는 사이 K양을 파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렇게 파멸로 인도해 놓고도

 

"그래서? 다 내 탓이냐? 네가 잘못한 부분도 분명 있잖아."

"나 때문에 그랬다는 얘기 하지 마라. 너 이럴 때마다 나도 미치겠다."

"파멸이라고 얘기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그만 좀 얘기 해."

 

라며 책임회피를 하거나, K양을 이상한 사람 만들거나, 오히려 K양이 닦달한 까닭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K양은

 

"그래도 정말 그가 잘 되면 다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며 여전히 희망적인 물음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간 그가 보인 행동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했던 말들을 보면 그건 그냥 K양의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그의 어떤 모습 때문에 내가 이렇게 완강히 이별을 권하는지 아래에서 이야기 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글러버린 마인드.

 

그는 '몇 억 더 들고 했으면 이렇게 망하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부터가 에러다. 자본금이 부족하면 시작을 하지 말든가, 아니면 손익계산 후 방법이 없다 싶으면 접는 게 맞는 건데, 그는 자신의 사업이 기운 것이 실력이나 경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더 쏟아 붓질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사실 그가 손익계산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 맞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회사 유지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계산 안 해보고 왜 그 판에 뛰어들었는지가 참 궁금하다. 그렇게 운영도 안 되는 판국에 세금도 내야 하니 문 닫게 생겼다고 말하는 걸 보며, 난 그런 상황이라면 문 닫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현재 손익계산을 해봐서 손해만 입고 있는 상황이며 확실한 비전 대신 '나중에 큰 건 하나 물면'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업은, 잭팟 터지길 바라며 배팅하고 있는 도박과 같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그걸 전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황의 잘못, 거래처의 잘못, 그리고 시기가 좋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말했고, K양은 그 말을 참 쉽게 믿어버렸다.

 

K양이 돈을 빌려준 건, 나도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자상하고, 착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가 '고비'를 만났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돈 빌리는 사람 특유의 어투로

 

"이거보다 더 큰 건도 많이 해봤다. 이거 돈 조금 모자라서 잠시 고비 온 건데,

이것만 막으면 다시 원활해진다. 다음 달에 바로 줄 수 있다."

 

라고 말하며 K양을 안심시켰다.

 

그게 작년 가을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 곧 올해 가을이 찾아올 텐데, 여전히 그는 돈을 갚지 않은 상황이다. 대출 받아서 돈을 빌려준 K양은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원금 지불을 미루며 부쳐주던 이자도 올 초부터는 끊겨, K양이 가족에게 돈을 빌려 이자를 대신 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은 여전히 사귀고 있다. 그는 사업을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사장님'소리를 듣다가 사원으로 일하려니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야기, 자존심 버리고 회사 다니는 중이라는 이야기 등을 한다. 밖에서 보면 어떻게 이런 남자와 아직까지 연애를 하고 있을 수 있는지 단박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늘 그렇듯 사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객관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K양은 화를 내다가도 그가 임시방편으로 사탕발림을 하면 다시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며 넘기거나, 그래도 그가 돈 문제로만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할 뿐 다른 부분에서는 헌신적으로 K양을 위해주는 부분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합리화 해 이해하며 넘겼다.

 

여기까진 우리도 보살의 심정으로 이해해 보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종교의 힘을 빌려보면 그래도 억지로 이해는 할 수 있겠는데, 이래놓고도 상대가 하는 행동이 가관이다. K양과 그의 얼마 전 대화를 보자.

 

상대 - 폰 끊긴다고 연락 왔네…. 폰 비 낼 돈 없는데….

K양 - 자기 폰 없으면 일 하는데 불편하지 않아?

상대 - 큰일이지…. 월급 나올 때까지 해결할 수가 없네. 큰일이야.

상대 - 사업할 때 쓰던 요금이라 꽤 밀렸는데….

상대 - 네가 좀 내줘. 월급날 줄게. 그건 무린가?

K양 - 나도 지금 그럴만한 돈 없어.

상대 - 카드로 내줘. 할부로.

K양 - 자기야. 미안한데 그런 부탁 안 했으면 좋겠어.

K양 - 자기 지금 내 사정 어떤지 알면서…. 말을 너무 쉽게 해.

상대 - 그래. 알았어. 폰 끊기면 연락 못 해서 미리 얘기하는 거야.

상대 - 폰 버리고 다녀야지 뭐. 별 수 없지.

K양 - 부모님께 부탁드려봐.

상대 - 싫어. 가족들한테 뭔 얘기하기 짜증난다.

(이후 남자가 계속 폰 끊긴다고 징징대는 길고 지루한 대화)

K양 - 지금 내 사정이 이런데, 폰비까지 나보고 내달라고 할 줄은 정말 몰랐어.

상대 - 뭐 좀 내주면 어떠냐. 안 줄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좀 내달라는 건데.

상대 - 그리고 폰 끊기면 창피하잖아.

상대 - 아무튼 이게 마지막 연락이니까 내일부터는 자기가 연락해야 해.

K양 - 난 우리 가족들한테까지 돈 빌려서 자기 빌려준 돈 이자 갚고 있어.

상대 - 너무 들어서 외우겠다.

상대 - 너한테 돈 빨리 주고 이 짜증나는 소리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상대 - 날짜대로 다 줄 거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K양 - 너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상대 - 그만하라고. 백 번은 더 들었겠다.

상대 - 그거 하나에 별 소리 다 듣네 진짜.

 

난 위의 대화를 보며 그의 초인적인 뻔뻔함에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사업할 때 거래처 사장들에게나 저렇게 좀 굴지.'라는 생각을 했다. 카톡대화에 나온 그의 '사업시절'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자신이 돈 잘 챙겨주고 대우 잘 해 주니까 거래처 사장들이 자기 말이면 껌뻑 죽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현재 태도를 보면 거래처 사장에게는 돈 못 받아도 '인간적으로 이해'해준다는 식으로 대하고 오히려 그 손해분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요구해 메꿨던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이 손해를 입어도 남들이 박수 쳐주면 그게 칭찬인 줄 알고 좋아하며, 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편하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남자. 이 정도면 '글러버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현실적으로 결혼은 가능한가?

 

그는 K양에게 내년 초에 결혼을 하자고 말한다. 물론 어떻게 결혼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 그건 마치 그동안 그가

 

"돈 생기면 너에게 빌린 돈부터 얼른 해결해 주겠다. 독촉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

 

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뉘앙스로 한 말일 뿐이다. K양은

 

"도대체 그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말하는데, 그건 K양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이며, 심지어 그렇게 말한 남친 자신조차도 어떻게 결혼할 건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에게 '자신의 희망사항을 기정사실화해서 이야기 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그걸 감안해 그의 말을 다시 해석해 보면

 

"우리 내년에 결혼했으면 좋겠다. 초쯤에 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그의 약속이나 확실한 계획이 아니라 그냥 희망사항인 것이다.

 

난 K양에게, 그를 이 정도로 겪어 봤으면 이제 그의 허풍이나 빈말 정도는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가 자신이 다 해결한다고 이야기 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 째라며 누워 버린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그렇게 수도 없이 뒤통수 맞고도 또 맞으면 K양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다. K양이 그에게

 

"그럴 수 없으면서 나한테 왜 그럴 수 있다고 장담했어?"

"해결하겠다고 한 말 거짓말이었어? 나 가지고 논 거야?"

"넌 상황이 바뀔 때마다 말이 달라지잖아.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말하고 또 이래?"

 

라고 수도 없이 이야기 했지만, 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가. 지금까지 둘의 모습을 토대로 내년 초의 모습을 예상해 보면, "왜 결혼하지도 못할 거면서 결혼하자고 했냐."고 K양이 따지고, 상대는 "나도 정말 결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는 게 내 탓이냐. 나도 너 드레스 입혀주고 싶고,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정말 결혼이 가능할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그에게 결혼 준비를 위해 뭘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길 바란다. 적금이라도 붓고 있는 게 있는지를 말이다. 물론 난 현재 휴대폰 요금 미납으로 K양에게 돈 빌리고 있는 그가, 따로 결혼 준비 적금을 붓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겠다.

 

내가 결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궁지에 몰린 K양이 그의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돈을 받아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젠 K양도 더는 돈 빌릴 곳 없어 그의 부모님을 찾아가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의 가족들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상대의 부모님이 K양에게 소리를 지르시고, K양에게 '대책 없다'는 이야기까지 하셨다는 부분이 카톡대화에 등장한다.

 

그 일로 인해 K양은 또 남친과 싸웠다.

 

"너랑 너네 가족, 나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거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하며 말이다. 그걸 남친은 "나는 욕해도 되지만 우리 가족은 욕하지 마라."라고 받았는데, 전과 달리 그 정도의 으름장으로 해결될 사항이 아닌 걸 파악하자 바로 꼬리를 내려 "다 내 탓이다."라며 자폭을 했다. 그러자 K양은 자신이 말 심하게 한 것 같다며 사과하고, 언제나처럼 아무 것도 해결된 것 없이 마무리만 훈훈하게 되었다.

 

그와 결혼해서 사는 것 자체야 크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식 올리고 혼인신고 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모두 고려해서 생각해 보면, 그 결혼이 두 사람에 행복을 약속해 주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가족들은 K양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중이고, K양은 그의 가족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상황이며, 그는 지금이야 K양에게 빚이 있으니 할 말도 못 하고 있지만 사연 곳곳에서 '돈만 갚고 나면 그 짜증나는 소리 못 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찾아볼 수 있으니,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무작정 사과만 하고 있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또 K양은 이혼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이라고 할 수 있는

 

"너랑 너네가족 진짜…."

 

라는 이야기를 화가 날 때면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그 태도 역시 둘의 관계를 끝내는 촉매가 되리라 나는 생각한다.

 

 

3.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괜찮은 사람인데 돈 문제가…."

 

경기도 파주에 살고 있는 이택근씨(57세, 가명)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는 남에게 베풀고 헌신하며 남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발 벗고 나서서 앞장선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은 세상에 딱 다섯 사람, 그의 가족과 부모님뿐이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까먹은 부모님의 돈이, 지금 돈으로 20억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사업을 하겠다며 부모님의 땅을 지원 받아 야금야금 까먹은 것이 그 정도다. 이젠 그의 부모님께도 콩이나 좀 심을 정도의 작은 밭 밖에 안 남았는데, 그런 지금도 그는 그 밭을 팔아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형제들과의 연은 진작 끊어졌다. 그 역시 저 위에서 말한 K양의 남친과 같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자신이 돈이 없어 자식이 원하는 걸 못 사주자 "삼촌한테 사달라고 해. 작은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라며 들이대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부모님의 재산을 다 녹인 것도 모자라 형제들에게까지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빌리려 하다 기피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가 참 불쌍하기는 하다.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한 방'을 노리며 살아왔는데, 욕심이 크다 보니 별 말도 안 되는 일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나무를 왕창 사다가 길에 심어 놓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동네 아저씨들과 술 마시다 듣고는 나무를 사다 심거나, 동창회에 나가 돈을 쓰며 동창들의 환심을 사 놓으면 사업에 이용할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헛돈을 쓰고 돌아다니는 식으로 말이다. 난 밖에서 그를 지켜보는 입장이니 그가 불쌍하게만 보이지만, 그로 인해 '투자금'을 만드느라 신용불량자가 된 그의 아내는 결코 그렇게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난 솔직히 '이성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하는 말에 휘둘릴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파주에 뭐가 생긴다'는 식의 정보를 들고 와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했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가 파주시민이라는 것 말고는 파주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허풍을 강하게 부리는 까닭에 '동창 중 시청 직원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좀 더 깊게 들어가 질문을 하다 보면 그 동창이라는 사람이 '파주에 뭐가 생긴다'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으며, 동창과 그가 동창회에서 "너 몇 반 누구지? 너 기억난다."라는 이야기를 나눈 것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그렇게 저지르고 난 뒤 결국 발생하게 된 문제는 그의 부모님이나 아내가 떠맡게 되었다.

 

글쎄, 행복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이택근씨나 이택근씨 가족의 행복도가 평균 이하일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현재 이택근씨는 통일에 대비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이상한 그 사업을 이택근씨의 아내는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말하면서도 출근 하는 그에게 도시락을 싸준다. 그게 아무 가능성 없는 일이고 이택근씨의 '백수 위장법'에 속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남편의 헛발질에 희망을 한 번 더 걸어보고 싶은 그녀의 마음. 그걸 보며 난 '부부라는 것은 아름답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하지만, 이렇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많이 아프기도 한 사례는 이택근씨 부부 하나로 끝났으면 한다. 그래서 난 K양의 연애에 반대한다.

 

K양의 남친은 헤어진 구여친에게도 채무관계가 얽혀 있다. 그래서 여전히 구여친에게 돈을 보내고 있는데, 그게 밀리자 구여친은 K양에게 연락을 해 대신 갚아줄 것을 요구했다. K양은 남친 구여친의 이런 행동을 보고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내게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 가장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K양의 남친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그가 '빚은 없다'고 한 말이 난 믿기지 않는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의 이름으로는 대출을 안 받고 K양의 명의만 이용한다는 건데, '내 돈은 아깝고 네 돈은 안 아까운'사람과는 만나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정말 나쁜 남자였다면, 저랑 벌써 헤어졌겠죠.

그러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돈을 안 갚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제가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붙잡고 있으며,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현재 데이트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K양이 대고 있는데, 이렇듯 돈 빌려주고 데이트 비용 내주며, 휴대폰 요금을 대신 좀 내달라고 말해도 계속 연인으로 남아 있을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쁘게 보자면, "내가 안 주고 싶어서 안 주는 거냐. 나도 지금 죽겠다."라는 얘기를 하면 K양이 남의 신세를 져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너랑 연락이 안 되는 게 너무 답답하다. 폰을 살려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하면 미납금을 대신 내줄 가능성이 높으니 그게 참 편해서 계속 연애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행복하게 해주는 걸로 보답을 해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는 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가 "폰 요금 좀 내달랬다가 별 소릴 다 듣네.", "너한테 돈 빨리 주고 이 짜증나는 소리 좀 안 들었으면 좋겠어.", "그만하라고. 백 번은 더 들었다."따위의 이야기를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여자친구가 자기 때문에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걸 나 몰라라 하고 있지도 않을 거고 말이다. 이런 행동들을 종합해서 보면, 그와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게 바로 보이지 않는가? 이런 일들을 겪고도 여전히 '내년 초에 결혼' 같은 대책 없는 약속만 믿고 또 반년쯤 똑같은 싸움을 계속 할 예정인가?

 

"카드로 내줘. 할부로."

 

만약 둘이 결혼을 하면, 상대에게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일상처럼 듣게 될 거라 나는 생각한다. 그 요구에 거절하면, 그가 돈 안 빌려주는 자기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것처럼 K양에게도 짜증을 낼 것이고 말이다. 돈이 없다고 얘기하면 카드 긁어서 결제해달라고 하는 남자. 얼마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별 소리를 다 한다고 얘기하며 다음 주 내로 해결한다고 말하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해결 못 하고 있는 남자. 돈 많이 벌어 기분 내며 살고 싶은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그가 풀어내는 그 꿈 얘기 같은 것에 휘둘리지 말고, 그의 행동을 보기 바란다. 그의 행동은 '무책임' 딱 세 글자로 요약되니 말이다.

 

 

K양이 남친에게 한 말 중, 내가 이 사연을 보는 시각과 같은 말이 있다.

 

"넌 온갖 어려움은 다 나한테 떠맡겨 놓고, 왜 화까지 나한테 내는 거야?"

 

난 바로 저게, 만약 둘이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난 K양처럼

 

'그 사람도 잘 하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낭만적인 해석은 못 하겠다. 자신이 빌려간 돈 때문에 여자친구 신용불량자 될 위기에 놓이고 카드는 정지 되었는데, 그 와중에 폰 끊기면 창피하니 밀린 요금 좀 대신 내달라고 말하는 남자가 '잘 하려고 노력'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진심이 저렇다면, 빚 독촉 때문에 괴로우니 빨리 좀 해결해 달라는 K양의 말에 "너한테 돈 빨리 주고 이 짜증나는 소리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하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K양은 남친에게서 '돈 문제'만 빼면 정말 괜찮은 남자라고 말하는데, 난 이게 '돈 문제' 딱 하나와만 연관이 있는 사연이 아니라고 본다. 일단 저지르고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뒤처리는 남에게 맡기는 문제, 약속한 거 왜 안 지키냐고 하면 너는 왜 재촉 하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문제, 이것도 해주겠다 저것도 해주겠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는 나중에 내가 안 해주고 싶어서 안 해주는 거냐고 배째라고 나오는 문제, 처음 신세를 질 때에는 이런 신세까지 져서 미안하다고 말하다가 나중엔 이왕 신세 지는 김에 좀 더 지겠다고 드러눕는 문제, 아침에는 힘 빠지니까 점심에는 일하고 있으니까 저녁에는 자기 전이니까 그런 시간에 책임을 묻는 건 좀 피해달라고 말하는 함구령의 문제….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난, '이제 나이도 있는데 이 사람 놓치면 더 좋은 사람 못 만날까봐'라는 고민 중인 K양에게 이별을 권한다. 남들보다 결혼이 몇 년 늦었다고 균열을 못 본 체하며 결혼하면, 나머지 몇 십 년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결혼생활 하며 지내게 될 수 있다. 늦었으니 얼른 파종해야 한다며 돌밭에 그냥 씨를 뿌린 농부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당장은 씨를 다 뿌렸다며 홀가분해 하겠지만, 남들이 추수를 끝낼 때까지 후회의 눈물만 흘리지 않을까? 난 K양이 남은 생을 울며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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