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인 줄 알았는데 연애 할 생각 없다는 상대 외 1편
오랜만에 쓰는 매뉴얼이다.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어 그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인터넷 주소창에서도 노멀로그가 저 밑으로 내려가 있다. 손톱도 타자를 치기에 부적합 할 정도로 자라있어 깎고 왔다. 깎고? 깍고? 갑자기 맞춤법도 헷갈린다. 헷갈린다? 헛갈린다?
선풍기를 틀 일이 없어진 것 보니, 가을인가보다. 가을 밤하늘엔 예쁜 별자리가 별로 없어 별을 보기엔 좋지 않지만, 선선한 까닭에 자전거를 타기엔 좋다. 갑자기 웬 계절과 밤하늘, 자전거 타령이냐고 묻지는 마시라. 글 쓰는 게 어색해 이렇게 워밍업 좀 하고 출발하려 늘어놓는 말들이니. 자 그럼, 출발해 보자.
1. 썸인 줄 알았는데 연애 할 생각 없다는 상대.
열 살 무렵, 난 편도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하루는 소변이 너무 마려웠는데, 환자복 바지를 너무 세게 묶어둔 까닭에 풀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바지 허리끈을 풀려고 헤맨 시간 때문에 소변은 더욱 마려워졌고, 난 여기다 설명하기 좀 민망한 자세로 병실까지 달려가 거의 울다시피 부모님께 바지가 안 벗겨진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풀어주시겠다며 내 허리끈을 이어받았는데, 아버지 역시 풀지 못하셨다. 더는 못 참을 것 같아 눈물과 함께 소변이 나오려던 그 순간, 아버지께서는 내 환자복 바지 앞부분을 힘으로 찢으시고는 보온병을 갖다 대 주셨다. 수액을 맞아서인지 소변은 참 한참동안 나왔다.
소변은 잘 봤지만, 걱정이 밀려왔다. 찢어진 환자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건지, 환자복을 찢었다고 병원 관계자에게 혼나는 것은 아닌지, 어린 마음에 그런 것들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병원 관계자에게, 환자복 바지 끈을 잘 풀리지 않도록 만들면 어떻게 하냐, 애가 놀래서 여기까지 뛰어오지 않았냐, 하시며 새 바지를 받아다 주셨다. 그 일이 병원관계자에겐 '진상 보호자'의 모습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내겐 지금까지도 '아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일로 기억되고 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내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었던 아빠의 모습으로.
S군의 사연을 다루며 이 이야기를 한 까닭은,
"저는 누군가를 잘 챙겨주며, 섬세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S군에게서 위와 같은 '박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대의 뒤에서 잘 챙겨주는 것은, 누군가를 시중드는 사람들도 잘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들은 급료를 돈으로 받지만, S군은 급료를 상대와의 연애로 받으려 한다는 차이만 있는 것 아닐까?
언제나 막무가내로 밀고나가라는 것은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와 같이 할 수 있게 만들어 가자. 그래야 나도 즐거운 법이고, 그럴 때 내 매력까지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는 외국인, 난 한국인이라고 해보자. 외국인인 상대가 우리 동네에 놀러왔다. 그럼 난 이곳 지리나 문화를 모르는 상대에게, 상대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만한 일을 제안할 것이다. 내가 아는 좋은 곳에 데려가고, 내가 아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내가 아는 주제에 대해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며 말이다. 그렇지 않고
"넌 뭐 하고 싶어? 넌 뭐 먹고 싶어? 넌 뭐 좋아해?"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보면, 필연적으로 상대는 지루해지며 상대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상대가 해 본 것들만 답습하는 까닭에 재미없어 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리면, 상대에게 내 매력을 보여주긴커녕 시중드는 모습만 보여주게 될 것이고 말이다.
만약 S군 썸녀가 S군의 연락을 피하고, S군과 만나지도 않는 상황에서 '연애 할 생각 없다'는 이야기를 한 거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니 걱정은 접어두고 지금처럼 만나서 재미있게 놀길 바란다. 최근에 나온 영화 같이 보고 팥빙수까지 같이 먹을 정도면, 그녀의 말은 '내가 지금 남자친구가 없는 건 내가 연애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야'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러니 그녀의 말 한 마디에 긴장해 주춤하지 말고, S군은 자신의 '관심녀에게 누구나 할 만한 흔한 행동'에서 벗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길 바란다. 뭐 하고 싶냐고 묻지만 말고, '내가 해보니 재밌더라'는 뉘앙스로 상대를 S군의 생활에 초대해 보길 권한다.
2. 그녀와 결혼할 줄 알았는데, 왜 헤어졌을까?
우선, 난 김형이 김형 자신에 대해서 꽤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어. 내가 보기에 김형은 '좋을 때만 좋은 사람'에 가깝거든. 나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며 술잔을 부딪치거나 같이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 지내면 '세상 누구보다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것 역시, 내가 어려울 것 없는 상황이면 그냥 마냥 즐거울 수 있잖아.
중요한 건 '좋을 때 좋은 것'이 아니야.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때에도 얼마나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지. 김형이 여자친구에게 화낼 때 봐봐.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이 여자친구 비꼬고 날 선 말들을 던지잖아. 이게 김형이 그녀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 보면 돼. 김형에겐 '포용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거든. 수틀리면 일단 대립하지, 전혀 너그럽지 않아.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김형은 억울하겠지. 누가 더 많이 희생했냐를 따지자면 비교할 수도 없이 김형이 더 많이 희생했는데 왜 이런 탓까지 들어야 하나, 하고 말이야.
근데 이게 달라. 그녀는 김형과 사랑을 하려고 했던 건데, 김형은 그녀와의 관계를 대인관계로 생각했거든. 사랑을 하려고 했던 거면 왜 김형이 결혼하자는 얘기 꺼냈을 때 빨리 결혼 안 했냐고? 불안하니까. 밖에 있는 나도 이렇게 훤히 보이는데, 그 자리에 있던 그녀가 모르겠어? 정말 그녀와 함께하고 싶어서라는 마음 보다는, 이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더 커서 하는 청혼을?
계산하지 마. 머리로 계산하며 회상하지 말고, 마음으로 더듬어봐. 김형이 논리적이고 딱 떨어지는 거 좋아한다는 거 나도 알겠어.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이 계산적으로 보이거든. 착하긴 착한데 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 갈 때마다 음식도 더 주고 남들 안 주는 후식까지 챙겨주던 단골 식당. 그 식당에서 어느 날 계산하려고 보니 갑자기 카드결제가 안 돼서 만이천원 나중에 좀 드리겠다고 했더니
"외상은 안 됩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말하는 식당주인이 정말 있기는 할까 이해가 잘 안 되지? 그런데 김형이 그렇다니까? 데이트비용의 9할을 김형이 다 내면 뭘 해, 갈등이 생기면 선 긋고 비꼬며 이야기 해 버리는데.
사연에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볼게. 여자친구가 늦잠을 잔데다가 교통정체까지 더해져서 다급해 하던 순간 있잖아. 그때 김형이 한 말을 봐봐.
"앞으로 시간약속은 잘 지키고 그래요."
"잘잘못 따지는 거 싫어하는구나."
"나는 그냥 네가 아침에 잘 못 일어냐는 것 같길래 잘 일어났으면 좋겠어서."
"알았어요. 상황도 모르고 옳은 소리만 찍찍 해대서 미안해요."
"넌 잘못 없어. 넌 항상 옳아."
"내가 뭐 기분 나쁘게 말했어? 앞으로 일찍 일어나는 게 좋다고 얘기한 거지."
"내가 화도 내고 일찍 자라고 몇 번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이게 뭐야? 이건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사람 따귀를 때리는 거잖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김형은
"제 여자친구는 제가 잘못했을 때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저는 좋은 말로 얘기해 준 건데, 저게 왜 잘못이죠?"
라고 말하겠지. 이래서 나랑 김형이랑 대화가 안 되는 거고, 김형 여자친구와 김형도 대화가 안 되는 거야. 김형은 김형 자신을 무결점이라 여기거든. 김형은 술자리 늦어지면 연락하기로 한 거 아홉 번 지키고 한 번 못 지켰는데, 그럼 9 : 1 이니까 당연히 그간의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아무 소리 말고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거든. 출장문제도 그래. 김형 직업이 해외로 출장 가는 직업인 거라 어쩔 수 없는 건데, 왜 출장 가는 게 김형 탓인 것처럼 말하냐는 투야. 자신에 대해서는 철벽방어를 하고, 남에겐 먼지 하나 묻어 있어도 즉결심판을 하지.
내가 김형의 사연을 읽으며 참 신기하게 생각 한 건, 김형이
"저는 저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차분한 여자를 원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김형은 그 반대의 행동을 했다는 거야. 여자친구가 김형에게 한 심한 말이나 이해 안 되는 행동들에 대해 얘기하는 건 잠시 접어두고, 그녀가 김형처럼 행동했다면 김형은 과연 어땠을지 생각을 해 봐봐. 내가 하나 걱정되는 건, 김형은 그녀에게 주지 못 했지만 그녀는 김형에게 신뢰를 준 까닭에 김형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여유로울 수 있을 수 있다는 점이야.
"저는 여자친구가 나가서 돌아다니고, 이성들 만나고,
SNS로 그들과 대화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할까봐 걱정되긴 해. 이건 뭐랄까, 탈무드에 나오는 굴뚝 청소한 두 아이의 이야기처럼, 얼굴에 숯검정이 묻은 아이는 얼굴이 멀쩡한 아이를 보며 자신의 얼굴이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오히려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 입냄새만 해도 그렇잖아. 정작 양치를 하는 쪽은 입냄새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입냄새를 맡은 상대방인 경우가 많잖아. 남들에게서 입냄새가 안 나니, 입냄새가 나는 사람은 자신에게서도 입냄새가 안 난다고 생각하곤 하지.
김형. 그녀가 김형에게 '연락'문제로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기도 했던 건, 단순히 '출석체크'의 의미만 갖는 것도 아니고, 김형이 그녀의 지시대로 매순간 보고하는 삶을 살길 바라서도 아니야. 그건 김형의 마음 절반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걸 그녀가 본능적으로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랬던 거야.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김형은 또
"그럼 각서 같은 거라도 써서 그녀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나가서 실수라도 하면,
그땐 그녀가 하라는 대로 뭐든 다 하겠다는 각서라도 써서요."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난 김형에게, 관심과 사랑은 몰아서 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난 화분을 키우고 있는데, 제때 물을 안 주거나 매일 적당한 광량을 쏘여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그렇게 시들다가 자라나기를 포기해 바짝 말라 버리는 시기가 오면, 그땐 밤에 인공조명을 켜주고 물을 양동이 째 들이부어 그간 못 준 사랑과 관심을 줘도 살아나지 않지. 그녀도 그랬던 것 같아. 그녀는 이 관계에서 시들어가며 비명을 지르다 결국 김형을 포기한 거야.
글쎄 모르겠다. 김형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 글을 읽고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에서 벗어나 '그녀가 얼마나 속상했을지'를 돌아보게 된다면 김형 스스로 방법을 찾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잘못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네?'라며 계속 잘잘못을 또 따지겠지.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더 할게. 그녀 같은 여자를 또 만나는 게 쉽다면 난 이렇게 길게 글을 적지 않았을 거야.
최근 들어 눈알을 굴리다 어느 지점을 보면, 갑자기 눈알을 누군가 꽉 쥐어짜는 느낌이 든다. 오른쪽 눈의 통증이 특히 심한데, 아무래도 장시간 모니터를 보고 있어서 그런 건 것 같다는 자가진단을 해 보았다. 요 며칠 눈에 좋다는 블루베리를 먹으며 좀 쉬었더니 괜찮아졌는데, 증세가 다시 나타나면 안과에 가봐야겠다. 검색을 해보니 이게 안구건조증 증상과 비슷하던데, 마음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영화를 아시면 추천 부탁드린다.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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