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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번호 받고 분위기 좋았는데 다 망친 남자 외 2편

by 무한 2014. 10. 17.

번호 받고 분위기 좋았는데 다 망친 남자 외 2편

찬수야, 이거 모르면 심각한 거야. 곱셈을 이해 못한 상태에서 방정식을 풀려는 거랑 같은 거니까. 찬수 너의 멘트들이 왜 상대방에겐 충격과 공포가 되는지, 아래에서 딱 봐봐.

 

 

1. 번호 받고 분위기 좋았는데 다 망친 남자.

 

찬수 네가 그녀와 연락하기 시작해 이 관계를 망치기 시작하기까지는 네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어. 나이 얘기 나온 직후 그녀가 말 놓아도 된다고 하자, 넌 이렇게 말했지.

 

"그럼 말 놓을까? ㅋㅋ

너도 불편하지 않으면 말 놔도 된다 ㅋㅋㅋ"

 

난 남잔데도 저 멘트 보는 순간 확 깨더라. 상대는 너랑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의 후배도 아니고, 군대 후임도 아니잖아. 그런데 넌 말을 놓자마자 괴상할 정도로 혼자 편해져서는, 상대가 기분 나쁠 말들까지 하고 말아버려.

 

"그때 너 츄리닝 입고 완전 편하게 있더라ㅋㅋㅋㅋ"

 

혹시 술 마시고 카톡한 거야?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렇게 멘트를 막 던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맨 정신으로 그러기 힘든 일인 것 같은데, 그날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찬수 너의 말투도 괴상해.

 

"좋은데 개 멀어 ㅋㅋㅋㅋ"

 

그냥 여기까지만 딱 봐봐. 처음에 네가 상대에게 번호를 달라고 할 때 넌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였어. 덜덜 떨면서 나쁜 사람 아니니 연락처 줘도 된다는 얘기를 할 때, 넌 그녀에게 흥미롭게 보였을 거야. 첫 시작까지도 괜찮았어. 다짜고짜 학교와 사는 곳 묻는 등의 호구조사 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여하튼 그녀도 잘 받아줘서 무난하게 넘어갔어.

 

그런데 말 놓기 시작한 이후 넌 완전 다른 사람처럼 돌변한 거야. 순수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아. 투박하고 마초냄새 나는 복학생 같다고 할까. 난 그녀가 자신은 현재 누굴 만날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널 밀어낼 때 네가 한 대답에도 경악했어.

 

"(중략)그게 좀 부담이었나 보네. 알겠다.

그래도 가끔 안부 묻고 그러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 ^^"

 

상대는 군대 후임이 아니라니까? '알겠다' 대신 '알겠어'라고 말하면 뭔가 잘못될 것 같아?

 

"저녁은 먹었나??"

 

대신 "저녁 먹었어?"라고 물을 수 있는 거잖아. 찬수 너처럼 말하는 남자랑 대화하고 싶어 할 여자는 찾기 힘들 거야. 기껏해야 의무적으로 봐야하는 동아리 후배라든가, 아니면 같이 알바 하는 곳의 '아는 여자 동생' 정도가 그런 말투에도 형식적으로 대답해 주겠지.

 

이게 끝이 아니야.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어. 넌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네가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해. 상대는 곧 시험이 있으니 그거 끝나고 보자고 말했는데, 넌 거기다 대고

 

"에이 그럼 너무 늦잖아~ 다음 주 중 어때?"

 

라고 말해. 그 말에 상대는 힘들 것 같다고 대답했는데, 넌 시간이 지나자 또

 

"우리 이번 주에 보기로 한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ㅎㅎㅎ"

 

라며 막무가내로 들이대. 역시 상대가 다시 한 번 거절하자, 넌

 

"공부할 게 많다니 어쩔 수 없지 ㅠㅠ"

 

라는 대답을 해. 상대의 상황이나 사정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만나는 것'에 혼자 꽂혀서는, 계속해서 저런 이야기만 해 버리는 거야. '못 만나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음 날엔 또

 

"그럼 시험 끝나고 우리 만나는 거지? 뭐 먹고 싶음?"

 

따위의 이야기를 해. 이러니까 당연히 상대는 연락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거지. 아무 친분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한 번 만나 달라고 조르는 영업사원을 대하는 느낌이니까. 찬수 너의 행동은 그냥 연애가 급해서 막 들이대는 남자처럼 보여. 상대가 곤란한 일을 겪다가 겨우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너는

 

"진짜 다행이다 ㅠㅠ 근데 우리 말 놓기로 한 거 잊었음? ㅋㅋㅋㅋ"

 

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니까. 내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어디서 그 일이 있었던 건지,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다른 문제는 없는 건지를 물을 것 같아. 근데 넌 그녀가 겪은 일 따위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빨리 가까워져서 만나고 사귀는 것'에만 열중한 나머지 "말 놔라, 만나자, 왜 답장 안 하냐." 따위의 이야기만 계속 한 거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줄게. 넌 그녀와 연락한 열흘 동안 그녀에게 이름조차 묻지 않았어. 시간 낼 수 있냐고만 물어봤지. '24세, 여자'인 그녀와 잘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인간적인 관심은 전혀 없었어. 그건 누가 봐도 '그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여자'가 필요한 사람의 태도야. 그녀도 그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을 거고 말이야. 이게 찬수 네가 '처음엔 분명 좋았는데 대체 왜 틀어진 걸까요?'라고 건넨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2. 심남이와 18일에 마지막으로 스친다는 H양.

 

H양에겐 내가 뭐 더 해줄 말이 없을 것 같다. 먹는 걸 사가서 말을 트겠다는 작전도 훌륭하고, 연습을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그와 엮이겠다는 계획도 나무랄 데 없다. 다만, H양은 자신이 수강생 대표가 아닌 까닭에 조교역할을 하는 심남이에게 나서서 들이대는 것도 눈치 보이고, 또 어색하지 않으려면 '수강생 전체'와 '운영진 전체'의 회식처럼 되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다며 걱정하는 중이다.

 

난 H양에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좀 더 철판을 깔아도 괜찮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H양이 폰을 버스정류장에 두고 온 걸 버스를 탄 뒤에 깨달았는데, 자신 때문에 버스가 중간에 서야 하는 것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그냥 가진 않을 것 아닌가. 심남이에게 다가가는 건 버스를 세우는 일보다 훨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수강생 대표도 아닌데 수강생을 대표하는 듯한 질문을 조교인 남자에게 하고 있다'는 뒷말이 나올까 두려워 가만히 있지 말고, 한 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그 순간을 붙잡길 권한다.

 

필요하다면 그에게 다짜고짜 물어도 된다. H양의 입장에선 본인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번호를 묻는 걸 그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것인데,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강생이 교육과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묻고 싶으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내가 어느 연수의 운영진으로 있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 내게 "저도 사진기 사려고 하는데, 사기 전에 톡으로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라고 묻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렇게 '단도직입'의 자세로 나가면 오히려 간단한 걸, 일부러 자리를 만들고 가까운 테이블에 앉도록 노력하는 것에 헛힘을 쏟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질러갈 수 있으면 질러가자.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을 한 건 아니라는 얘기를 적어두고 싶다. H양이 좀 더 과감해져도 문제없다는 얘기를 한 것이지, 그린라이트가 분명하니 들이대라는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고 말이다. 그 이유는, H양이

 

"그가 굳이 그쪽을 잡고 알려줄 필요도 없었던 것인데,

제 손이랑 은근하게 부딪히는 그쪽을 잡고 알려준 것 보면,

그냥 그래도 나를 싫어하진 않겠구나 하고 느낀 거…."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이미 상당량의 김칫국을 복용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여고나 여대를 나온 대원들에게서 종종 보이는 증상으로,

 

"그런데 마침 그때 그가 똭! ㅎㅎㅎㅎㅎ

제 착각일까요? 착각이겠죠?

아니, 착각이 아닐 수도 있어요.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뭐 착각이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 알지만 그냥 한 번 빠져보고 싶네요. ㅎㅎㅎㅎ"

 

라며 판타지에 흠뻑 빠진 채 북과 장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때문에 물론 나도 H양이 잘 되어 핑크빛 러브스토리를 내게 보내주길 바라지만, 지나친 김칫국 복용은 설레발과 헛발질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도 이렇게 미리 해주고 싶다. 과감하되 여유롭게, 설레되 앞서나가진 않게, 그렇게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응?) 다가가 보시길 권한다.

 

 

3. 다가가자니 부담될까, 안 다가가자니 영영 멀어질까.

 

소영씨의 사연은, 소영씨가 상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기에 벌어진 일이야. 특별히 들이댄 것도 아닌데 왜 부담스럽냐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난 이걸 '<키다리 아저씨>의 환상이 만들어 낸 부담'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소영씨의 경우가 딱 그래.

 

이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걸 자신이 가진 이미지에 가져다 맞춘다는 거야. 그러면서 맹목적으로 칭찬을 하고,

 

"역시 오빠는 내가 생각한 사람이었어요!"

 

같은 이야기를 해. 소영씨가 한 말들을 봐봐.

 

"그거 되게 전문적인 인상을 줘요."

"오빤 결정하면 바로 실행할 것 같아요."

 

저건 팬클럽 회원이 스타에게 칭찬일색의 말을 늘어놓는 것과 같은 거거든. 저게 어쩌다 한 번 등장하면 그건 '칭찬'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소영씨의 경우는 상대와의 대화 8할이 저런 리액션이야. 스타를 모시고 인터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영씨는 충실한 방청객이 되어 '오오~', '우와~', '아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말하지만 리액션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야. 리액션 밖에 없다는 게 문제인 거지.

 

나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해볼게. 소영씨가 노멀로그의 글들을 읽다가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카톡으로 말을 거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첫 만남에서야 칭찬과 립서비스가 오갈 순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소영씨가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내 일상을 전부 체크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난 분명 부담스러워질 거거든.

 

"오늘 글은 몇 시쯤 올리실 건가요?"

"주말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어제 올리신 글 중 이러이러한 문장이 좋았어요."

"예전에 ****에 올리신 글도 있더라고요, 그거 발견해서 읽었어요."

"대화 글 색을 보라색으로 하실 때도 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보통 글 쓰실 땐 얼마쯤 걸리시는지 궁금해요."

"요즘 읽고 계신 책이 뭔가요?"

"글에 등장했던 J군이나 H군은 요즘도 만나시나요?"

"수요일에 글 안 올리셨으니 이번 토요일엔 글 하나 더 올리실 건가요?"

"별 사진 찍으러 주로 어디로 가시는지 궁금해요."

"밤 막걸리 얘기 하셨는데, 그거 어디서 주문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라며 쏟아내는 소영양의 질문폭격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혹시 호기심에 가득 찬 꼬꼬마들이 "왜요?"라는 질문을 계속 하는 걸 경험해 본 적 있어? 꼬꼬마들이

 

"구름은 왜 움직여요? 바람 때문에요?

바람은 왜 불어요? 기압이요?

기압은 왜 생겨요? 온도요? 온도는 왜 달라요?

태양은 왜 빛나요? 수소는 어떻게 만들어 졌어요?"

 

라는 질문을 계속 이어 나가면, 피하고 싶어지잖아. 그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나쁜 것도 아니고 예의 없는 것도 아닌데, 그냥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져.

 

상대와 단 둘이 만났을 때의 느낌에 대해 소영씨가 말한 것을 봐봐. 소영씨는

 

"상대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봐서 당황했으나, 그래도 좋았음."

 

라고 적었잖아. 내가 보기엔 그 '의외의 면모'라는 게 사실 심남이의 실제 성격인 거거든. 그런데 소영씨는 소영씨가 가진 '심남이의 이미지'가 심남이 자체일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소영씨가 '심남이의 이미지' 앞에서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가도, 현실의 심남이가 소영씨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하자 소영씨는 지금까지의 호의와 친절을 다 접고 잠시나마 '연락두절'을 해 버렸잖아. 이거 문제 있는 거야. 평소엔 납작 엎드려 있다가 갑자기 어느 땐 태도를 확 바꿔 상대와의 연을 끊으려 하지 말고, 어느 정도 평균을 유지해. 그냥 친구와 지내듯 그렇게 지내면 되는 거야. "역시 오빤 대단해요.""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죠?"라는 극단을 오가지 말고 말이야.

 

난 소영씨가 사연 신청서에 적은 내용 중,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는 부분에

 

"어른들과 많이 대화해 본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음."

 

이라고 적은 부분이 이 관계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생각해. 소영씨 말투는

 

"네, 맞습니다. 그럼요. 어르신 말씀이 옳아요.

역시 어르신의 조언을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하는 말투거든. 상대와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 같은 건 완전히 접어두고, 그저 연장자 앞에서 웃으며 '네네' 하듯 말하는 것 같아. 이게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에는 '참 참하고 똘똘하고 예의바르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는 화법이겠지만, 친구나 연인과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면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나 진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리액션 해주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앞으로는 상대와 동등한 입장에서 솔직한 생각을 말하며 대화해봐. 그래야 상대도 그 대화에서 방청객이 아닌, 소영씨라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드디어 불금이 돌아왔다. 다들 하얗게 불태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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