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다는 남친 외 1편
모든 결정권이 상대에게 가 있는 관계는, 어떤 상황이든 간에 잘못된 연애다. 종종 상대가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거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언제나 그의 스케줄에 이쪽 스케줄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뭐가 어떻든 간에 상대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에 대해 이쪽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배부른 '갑'과 아쉬운 '을'의 연애일 뿐.
1.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다는 남친.
난 N양의 사연을 읽는 내내 자존심이 상했다. 이젠 N양을 손이 아니라 발을 사용해 밀어내는 듯한 N양 남친의 태도에 화가 났으며, 남친의 간판에 기가 죽어서는 그가 어린애 대하듯 N양을 대해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한 N양에게도 답답함을 느꼈다. 이게 무슨 임금님의 승은을 받으려 목만 빼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현 상황에서 만약 N양의 남친이
"근데 난 다른 여자들을 더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하고 한눈을 파는 것보다는, 그 전에 미리 경험해 보는 게 좋잖아.
뭐, 네가 그걸 이해해 줄 수 없다고 하면 우린 여기서 헤어져야겠지.
난 너에게 솔직하고 싶어서 내 마음을 이렇게 다 오픈하는 거야.
우리가 정말 인연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내가 다시 돌아와 우리가 사귄다면, 우린 인연이 맞는 거겠지."
라는 이야기를 하면 N양은 어떻게 반응할 생각인가? N양이 지금까지 보인 태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난 N양이 남친의 저 말에 넘어가 그를 기다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아쉽고 절실해도 상대가 사람인지 괴물인지는 구별하자. 시험 때문에 바쁘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락하는 걸 이해하라고 하고, 만남 역시 한 달에 한 번 보는 걸 이해하라고 하면서 만나면 숙소 잡기에 바쁜 남친. N양이 연락을 참고 참다가 둘의 추억이 담긴 곳을 지날 때 연락을 했더니, 부담된다는 소리를 하며 "난 이제 너 못 챙겨줘."라는 소리만 하고 있는 남친. 이건 그냥 괴물이다.
"전 모쏠로 살다가 지금의 남친을 만나서 사랑 받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남친과는 처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대화도 잘 통했고,
똑똑한 그 사람에게 전 끌렸습니다.
그가 연애에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아니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전 그에게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N양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다. 이건 회사에 비유하자면 N양이 '주 6일 근무, 월급 100만원, 식대 없음, 야근수당 없음, 휴가 없음, 4대보험 가입 안 됨'의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건데, 그러면서 사장이 처음에 N양에게 한
"지금은 회사가 어려워 좋은 조건을 맞춰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회사를 키워가 보자.
그럼 나중에 네가 한 고생도 다 보답 받고, 신입들 들어와 일도 편해질 것 아니냐."
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는 것과 같다. 현재 사장은
"회사가 더 어려워 졌다. 현재 월급을 주기도 힘든 수준이다.
일단 이번 달은 40만원만 받고, 나머진 상황 나아지면 받는 걸로 하자."
라는 이야기까지 N양에게 한 상태며, 사장 자신은 이번에 새 차를 뽑았다고 보면 된다.
상대가 완전한 갑이 되어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사연은 그간 꽤 많이 받아 보았는데, 이 사연은 그 중에서도 TOP5에 들며 '을이 갑에게 찍소리 못 하고,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갖다 대고 있는 사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첫 연애인 까닭에 N양은 이 연애에 대해
"그의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저에게 소홀한 걸까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이건 연애가 아니라 거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수준의 관계니 그만 나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이별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하더라도 만나서 말을 해야 할 텐데, 만나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 나오려면 도망쳐야 하는 거지, 격식 갖춰 좋은 옷 입고 맞절하며 끝낼 게 아니다. 상대는 이쪽을 거의 조종하다시피 하는 상황이고, N양은 그가 "이 정도의 기다림도 힘들다고 한다면, 우린 헤어지는 게 맞는 거겠지."라는 이야기를 하면 다시 납작 엎드려 "소인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높으니, 오늘부로 상대를 차단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도망치길 강력하게 권한다.
2. 미래가 안 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여자.
내가 만약 K양에게,
"남친을 위해 마카롱을 한 번 만들어 보세요."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K양의 반응은 어떨지가 궁금하다. 신청서와 카톡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K양은,
"권태기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그래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겠네요.
그런데 남친은 마카롱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제가 쿠키나 빵을 만드는 것에 취미가 없다는 걸 남친도 알아요.
그러니 그렇게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뭔가 자연스럽게 권태기를 극복해 나갈 방법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
그게 문제다. K양은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며 똑똑하기까지 한데,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K양의 시각으로 금방 파악하고 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빨리 설정한다. 더불어 K양은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며
"전 모든 것을 약간 역으로 생각해서 분석하려 하는 편입니다.
일기 쓰고, 분석하고, 문제와 해답을 잘 정리해 놓아야 마음이 편하고요."
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난 K양의 이런 특징들이 '거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한계'를 만드는 치명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K양이 남친에 대해 설명하며 한 이야기를 잠시 보자.
"남친은 진지한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식으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이런 거.
생각 나누는 걸 좋아하나 봐요.
약간 이상주의자 같은 면을 보일 때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제가 봤을 때는 좀 멘탈이 약하고 섬세한 것 같아요."
K양이 역으로 생각해 분석한다는 그것이, 달리 보자면 상대의 한계를 규정한 채 상대를 딱 '그만큼의 인간'으로만 보게 되는 문제를 낳는 것이다. 게다가 K양은
"저는 스스로 항상 상냥하고 밝게 대화하기,
남자친구가 잘 했을 때에는 칭찬해주기,
내 기분에 따라서 남자친구에게 막대하지 않기,
남자친구가 나를 서운하게 하려고 할 때 흔들리지 않기,
라는 연애방침을 두고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 역시 달리 보자면 K양이 규정한 울타리 속에서 남친을 어르고 달래기만 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 저게 나쁜 의도인 것은 절대 아니지만, 장기를 열 판 두면 열 판 내리 져주는 것과 같기에 권태로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틀린 것도 맞다고 해주고, 사실은 정말 기쁜 것도 아니면서 기쁜 척 해주고, 뭐 그런 행동들이 상대에게도 느껴지고 말 테니 말이다.
남친이 하는 말들을 K양이 자신의 잣대로 잰 후, 그것의 진위까지 판단해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된다. 어느 날은 K양의 남친이 K양과의 사진을 보고, 또 둘이 함께 찍은 동영상을 보며 추억에 잠겼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그 얘기를 들은 K양은
'정말 그랬을까?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나에게 연락을 하지.'
라는 생각으로 남친의 감성적인 이야기를 이성으로 받아버렸다. 때문에 K양은 K양대로 그걸 '빈말'이라 여기며 계속 부족함을 느꼈고, 남친은 남친대로 K양의 '그래요. 참 잘했어요.' 정도로만 받아주는 리액션에 실망하고 말았다. 이러다 보니 남친에게선 K양에게 뭔가를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K양은 점점 불성실해지는 그의 태도를 보며 내게
"그가 연락을 해도, 전과 달리 대화의 질이 낮은 이야기들만 하게 되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K양이 말하는 '대화의 질이 낮아졌다'는 것은, 더 이상 남친이 '집에 돌아와 흥분된 얼굴로 부모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는 아이'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난 K양의 친구고, K양은 취미로 사진을 찍는다. K양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게 와서는 자랑을 하는데, 난 늘 "그래, 잘 찍었네. 점점 실력이 느는 것 같아."라는 대답을 해준다. K양이 뭔가 고칠 부분을 물어봐도, 난 "잘 찍었어. 특별히 더 고칠 부분은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난
'그런데 쟨 사진에 왜 이렇게 매달리는 거지?
저걸로 돈 벌 것도 아닌데, 많은 경비 지출하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때문에 K양이 하는 말에도 난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맹목적인 긍정의 대답'을 해 줄 뿐이다. 이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K양도 더는 내게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K양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 거라 나는 생각하는데, K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K양에게,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연애를 구경만 하고 있진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남친에 대해 생활기록부를 써야 하는 것 아니고, 남친의 장단점을 분석한다는 명목 하에 편견을 가진 채 색안경을 끼고 남친을 바라봐선 안 되는 거다. 내가 상대를 '너'로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 '우리'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정말 '우리'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K양처럼 남친이 전처럼 꽉 찬 대화를 하지 않는다거나 연락을 성실히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언제 남친이 연락을 하나 보겠다며 이쪽에서는 연락하지 않은 채 지켜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이쪽에서는 멀리 떨어져 앉은 채 남친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성실하다고 여기진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흄은 아니지만, 이 글로 하여금 K양을 독단의 꿈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커플부대에 갓 입대한 대원들이 많아졌는지, 솔로부대원들의 사연은 줄고 커플부대원들의 사연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 중엔
"남친 선물 사려고 하는데 뭘 사면 좋은가요?"
"빼빼로 데이에 직접 빼빼로 만들어서 줄까요?"
"연말에 무슨 데이트를 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는 대원들도 있는데, 니들 둘이서만 소고기 사먹으러 다닐 거면서 나한테 무슨 부위 먹으면 맛있냐고 묻지 말라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응?) 농담이고, 선물은 되도록 '그 선물을 매달 해도 부담 없을 정도'인 수준해서 하길 권해주고 싶다. 용두사미 보다는 '점층법'으로 늘어나는 게 나으니 말이다. 선물의 종류를 물어 본 것이라면, 아무래도 요즘 같은 시기엔 '방한용품'이 나을 것 같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커플 목도리도 좋고, 커플 장갑도 좋을 것 같다.
빼빼로 데이엔 만들어서 주든 사서 주든 다 괜찮으니 둘이서 잘 먹고 잘 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고, 연말 데이트로는 '매년 있는 공연'을 함께 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잘 찾아보면 연말에 늘 하는 공연들이 몇 개 있다. 나도 공쥬님(여자친구)과 한 해에 한 번씩 보는 공연들이 몇 개 있는데, 공연의 내용은 같지만 이전 해에 우리가 함께 봤던 느낌과 '링크'가 한 번 더 걸리기에 우리 연애가 좀 더 풍성해지는 기분이 든다.
여행지를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링크'가 걸리는 곳을 가길 권한다. 누군가가 '어디 좋더라'해서 무작정 찾아가는 것보다는, 저번에 오죽헌 다녀왔으면 이번엔 자운서원 가보고, 뭐 그런 식으로 하면 된다.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고, 자운서원은 율곡의 아지트이자 율곡과 부모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물론 상대가 이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을 수 있으니, 분위기 전환용 근처 맛집과 특산물을 알아두는 센스도 필요하고 적어두겠다. 유적지는 좀 고리타분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대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가보면 안다. 선사시대 유적지를 제외하고는 대개 다 명당에 들어앉은 까닭에 풍경이 좋은 곳도 많고, 요즘 같은 때엔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감탄이 나오는 곳이 많다. 솔로부대원이라도, 커플부대원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미리 답사를 다녀오는 것도 좋으니 주말엔 낙엽 향 맡으러 한 번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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