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까지 하는 게 벅차다는 남친, 어떡해?
내가 만나지 않는 친구 중엔, 암흑에너지로 가득 찬 A라는 친구가 있다. A의 카톡 상태메시지는,
"진심으로 원해도 다 소용 없는…."
"술 한 잔 하자고 부르는 사람도 이젠 없네."
"믿는 놈만 바보 되는 거지."
"술 땡기는 날이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등의 암울한 멘트들로 계속 바뀐다. A의 카톡 상태메시지를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A가 상대방의 카톡친구 리스트에서 가장 위에 뜨고자 자기 이름 앞에 'ㄱ'을 붙여 둔 까닭에, 카톡을 확인할 때마다 제일 위에 떠서 어쩔 수 없이 매번 보게 되는 것이다.(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서로 만나지는 않으면서 연락처가 계속 바뀌던 중, 누구도 먼저 바뀐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묻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A에게 위로나 격려를 해주거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 독자 분도 계실 텐데, 다 해봤다. 수년간 여러 방법으로 그를 토닥이고자 많은 친구들이 애썼지만, 그는 그렇게 지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화이팅 해 줄 때만 반짝 기운을 냈을 뿐 자고 일어나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론 A가 365일 내내 저런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니다. 여자친구가 생기거나 하면, 커플사진을 올려가며 이제 행복이 시작이라느니, 늦은 만큼 더 사랑해 주겠다느니 하는 말들을 올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또 A와 연락이 안 되는데, 그러다 헤어지고 나면 A는 다시 친구들을 찾고 자신의 힘듦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나중엔 다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암흑에너지만 발산하고 있던 까닭에 이제는 다른 친구들도 A와 만나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A의 "얼굴 잊어버리겠네. 술 한 잔 해야지."라는 말에 몇 번 나가 A를 만났는데, 나가면 세상 끝난 듯한 분위기로 우울한 얘기만 늘어놓는 A를 보며 '내가 왜 A와 만나지 않기로 했었는지'를 재확인 할 수 있었기에 이제는 '빈말'로만 "그래, 언제 한 번 봐야지."라는 대답을 할 뿐이다.
1. 맹목적인 이해는 무책임은 살찌운다.
내가 서두에 A의 이야기를 적은 것은, 사연을 보낸 K양이
"집에서도 저희 엄마가 아빠 기 세우는 데 달인이라서,
늘 기 세워주는 법을 배우며 살았어요.
그래서 저도 오빠 기를 세워주고자 노력한다고 했는데…."
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행동이, 어떤 이에게는 말 그대로 '힐링'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그저 '도피처'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남친이 주말에 나가서 친구들과 노느라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자기소개서를 못 썼다면, 그건 다급한 상황을 그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환기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그것에 대해
"난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번엔 정말 잘 하려고 했는데….
이러다 보니 해야 할 건 계속 밀리고, 연애까지가 이젠 좀 벅차다."
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덮어두고 토닥토닥하며
"우리 만나는 거 좀 줄여도 되니까, 오빠한테 급한 일 먼저 하자."
라는 이야기 등으로 마냥 위로해선 안 된다.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이해는 상대로 하여금 이쪽과의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을 불러오기도 한다. 매일 지각을 해도 핑계만 잘 대면 다 이해해주는 상사가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K양도 지각에 무감각해지며, 나중엔 10분쯤 늦는 건 늦는 걸로도 생각 안 하게 될 것 아닌가. K양의 남자친구는 K양에게
"내가 힘들어서 친구들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면서 회포도 풀고,
또 욕도 실컷 하고 싶은데 그러면 그 날 해야 할 과제나 준비가 밀리고
그러면 주말에 보기로 한 너를 또 못 보게 되잖아.
난 그게 너에게 너무 미안한데,
그렇다고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느라 전부 밀려서 못 보는 거라고 말하면
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어. 한심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너무 비참하고 자존감이 사라지는 느낌이라서
비겁하지만 당장 어떻게 좀 피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잠수 탔던 거고."
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는데, 그가 저렇게 자학하며 다 털어 놓았다고 해서 마냥 이해를 하려 들진 말길 난 K양에게 권해주고 싶다. 아니, 진심으로 저 부분이 미안하면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답을 구해야 맞는 거다. '상대가 스스로도 괴로워하니까 이쪽에서도 더 이해해줘야 한다'는 결론을 구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맹목적인 이해는 상대의 무책임을 살찌울 수 있다는 걸, 난 K양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 K양 남친에 대한 솔직한 내 생각.
K양이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전부 헤어지라고 말해요.
근데 전 오빠랑 잘 해보고 싶거든요.
누가 누굴 더 좋아하고 이런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빠와 어떤 대화가 필요할지,
또 제가 얼마만큼을 더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요."
라고 말한 까닭에,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하기가 좀 껄끄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K양이 어둠의 골짜기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걸 그냥 둘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니, 내 결론이 K양의 바람과 다르다고 시무룩해 하지만 말고, 내가 이 만남에 반대하는 이유들에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
K양의 남자친구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며
"우리가 1년 정도 만난 연인 사이였으면 좋을 텐데…."
(둘은 아직 100일도 안 된 커플이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할 노력이 많다는 의미)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난 1년이든 2년이든 간에 방치해 두는 순간 연애는 말라 죽어가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K양의 남친은 마치 적금을 붓듯 1년 정도 사귀었으면, 나머지 1년 정도는 그간 모아 놓은 애정을 K양이 알아서 인출해 쓸 수 있게 방치해 두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여기서 보기엔 그가 '해 본 적도 없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 어려운 일이 뭐 있겠는가. 저건
'이십대가 되어 한 달에 80만원씩만 저축을 했어도 지금 1억이 있을 텐데….'
'고등학교 때 정말 마음잡고 공부했으면 지금 난 의사가 되어 있을 텐데….'
'내게 지금 10억 정도만 있어도 뭘 하나 시작해 볼 수 있을 텐데….'
하며 상상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하라고 해봐도 못 할 수 있고, 그 상황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K양의 남자친구는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불만족을 표출할 뿐, 정작 자신이 현재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K양이 톡을 보내면 읽기만 한 뒤 대답을 하지 일들까지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에 TV를 보다가 무명시절을 오래 보낸 한 배우의 연애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랜 무명생활로 인해 지금의 아내이자 당시의 여자친구인 부인에게 연애 중 밥 한 번 제대로 사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출연하던 영화인지 연극인지에 소품으로 나온 귤인지 오렌지인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걸 여자친구에게 주고 싶어 가방에 몰래 챙겨서는 여자친구를 만나 전했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그 모습을 보고 그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고 말이다.
그런데 K양의 남자친구는 어떤가? 저 배우나 K양의 남자친구나 현 상황이 어려운 건 같지만, 마음으로라도 자신의 연인을 생각하고, 또 작은 것으로라도 여자친구를 위해주려고 하는 지점에선 분명 다르지 않은가? 당장은 뭘 해줄 수 없으니 미안해서 잠수를 탄다? 난 그런 남자의 경우, 훗날 모든 게 안정적인 상황에 놓였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태도에는 별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K양이 내 여동생이었다면,
"오빠에게 잘 자라는 소리를 들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라는 이야기를 한 순간 헤어지길 권했을 것 같다. 상황이 힘들다고 징징거리면서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고, 또 그렇게 순간순간 우선순위를 바꾸어 버린 까닭에 해야 할 일이 밀리면 그것에 대한 희생을 여자친구에게 요구하는 남자. 이걸 또 '남친 기 세워주고 싶다'는 K양은 전부 이해하며 양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다간 집도 절도 없어지고 말 거라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난 K양의 남자친구가 이 연애를 '교양수업'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싶다. 그에게 자신의 삶인 공부나 가족, 친구 등은 '전공수업'이니 필수로 해야 하는 건데, 그런 와중에 '교양수업'인 연애까지 하려니 벅찬 생각이 들어 '교양수업은 출석 정도만 성실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K양이 몇 번이나 이야기 한 것에 대해 -알았다고 대답만 하곤- 실천하지 않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직 100일도 안 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K양에게
"지금 내 상황이 좋지 않기도 하고, 여하튼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면,
그냥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결혼할 즈음이 됐을 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라고 한 이야기 역시, 난 앞서 말한 '교양수업'의 연장에서 생각했기에 나온 말이라고 본다. '스키'라는 교양수업 같은 건 당장 매달려 A학점을 받지 않더라도, 대학 졸업한 뒤 다시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당장은 전공에 열중해야 할 때니, 그러느라 교양수업에서 낙제하더라도 어쩔 수 없고, 나중에 여유 되면 다시 배워보겠다는 생각 정도를 하는 것 같다.
난 이런 와중에, K양이 그의 엄마가 되어
"우쭈쭈 우리 아들, 엄마가 설거지 하는 소리 때문에 공부하는데 방해됐지?
미안해 아들. 엄마가 마트 가서 시간 보내다가 너 공부 끝나면 들어올게."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았으면 한다. 노력도 좋고 이해도 좋고 충분한 대화도 좋고 다 좋지만,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이해만으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를 K양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K양은 내게 필요하다면 자신이 더 포기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지금도 벌써 K양이 포기하고 양보한 것들은 그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여기서 더 포기하고 양보하면 이 관계에서 K양이 설 자리는 손바닥만큼도 되지 않을 텐데, 그렇게까지 해가며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K양의 바람과 다른 결론을 내서 참 미안하다. 그러나 '연인'이라는 간판을 걸고 그걸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쪽에서 혼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그걸 운영해 나가다간 훗날 K양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기에 이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K양이 그렇게 노력하는 와중에도 상대는 "안 되면 폐업하지 뭐. 나중에 다시 오픈하면 되니까."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라면, 답이 없다. 어디서 얼마나 더 빚을 내 이 연애를 지켜가야 하나를 고민하기 전에, 그에게 과연 이 관계를 함께 지키고 돌볼 생각이나 의지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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