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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크리스마스에 약속 있다는 남친 외 2편

by 무한 2014. 12. 19.

크리스마스에 약속 있다는 남친 외 2편

이번 주에는 이틀을 쉬었더니 사연이 많이 밀렸다. 사연 보내신 분들을 괴롭게 하려고 일부러 미룬 건 아니고, 새로 시작하는 것들에 시간을 들이다 보니 글을 올릴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 동네에선 이제 내가 피우는 담배를 파는 곳이 멸종한 까닭에, 담배를 사려면 두 블록 떨어진-인적이 드문- 편의점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도 지난주까지는 두 갑씩 팔았지만, 이제 일인 한 갑만 파는 까닭에 매일 수행하는 마음으로 언 길을 걸어 그곳에 들러야 한다.

 

내가 피우는 담배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난 군대에서 보급으로 나왔던 '디스'를 피운다. 독한 까닭에 사회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주로 찾으시는 담배인데, 이 할머니 할아버지분들과의 선점경쟁에서 지고 말았다. 어느 할머니께서 실버카(유모차와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걸음 보조 역할을 하며 앉아서 쉴 수 있는 장치가 있다.)에 디스 한 보루를 싣고 가실 때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이제는 디스의 이복형제라 할 수 있는 '디스 플러스'까지 씨가 마르고 말았다. 앞으로 열두 밤쯤 더 자고 나면 담배 값이 두 배로 오른다고 하니, 내년부터는 그만큼 돈을 더 벌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자 각설하고, 금요사연모음 출발해 보자.

 

 

1. 크리스마스에 약속 있다는 남친.

 

연인이라면-장거리 등의 물리적 제약이 있지 않은 이상- 이번 주 금, 토, 일 중에 하루는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연인으로 지낼 필요가 없다. 바빠서? 상대가 72시간 중 이쪽에 몇 시간도 내어줄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다시 사귀든가 아예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게 낫다.

 

"너무 단정하시는 거 아닌가요?

사람마다 연애의 모습은 다 다른 거잖아요.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아도 서로 생각하는,

그런 플라토닉 사랑을 할 수도 있는 건데…."

 

플라토닉 좋다. 그런데 그게 처음엔 둘 다 마음의 초를 켜고 한 달, 두 달에 한 번씩 확인하곤 하는데, 대개 그러다 한 쪽의 초가 꺼져버린다. 그러면 나머지 한 쪽은 다시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난 후에야 만나게 되니 꺼진 걸 보지 못 하고 있다가, 만나서는 확인하고 자신의 초도 꺼 버린다. 미안하지만 난 이걸, 책을 펴서 읽지는 않고 그냥 매일 책표지만 바라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그 '함께 빠진 망상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그대의 청춘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있는 초가 어떻게 꺼져 가나를 경험 차원에서 백일 쯤 만나보는 건 나도 반대 하지 않지만, 상대의 초가 이미 꺼졌다는 걸 알고서도 굳센 생명력으로 1년 4개월, 2년 8개월 뭐 이런 식으로 홀로 노력하진 않았으면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초상화랑 연애하는 게 낫다. 초상화는 최소한 '아직 꺼지지 않은 척'은 하지 않으니까.

 

"답장이 늦었네. 미안. 그때에도 약속이 있어. 미안해!"

 

그대는 고개가 높은 마을에서 지나가는 여행객이 저 고개 너머로 사라져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백구가 아니잖은가. 이쪽에서 12월 2일에 보낸 톡에, 이틀이 지난 12월 4일에야 답장을 하며 고작 저 따위 성의 없는 통보만 하는 남자와는 1초도 더 만나지 말길 권한다.

 

"그래도 전에 남친과 저는 결혼 얘기도 하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악기 가르치는 거 학원 보낸다는 얘기,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도 하고 했었는데…."

 

다 좋은데, 지금과 같은 관계가 계속 유지될 뿐이라면

 

"저녁은 주말에 같이 하자.

난 오늘부터 일이 있어서 내 방에 좀 있을게. 미안!"

 

이라는 소리를 듣는 결혼생활이 될 수 있다. 사연을 보낸 S양의 생일에 남친은 연락도 하지 않았고, 그는 결혼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게 많다며 몸 만들러 갈 시간은 있어도 S양 카톡에 대답할 시간은 없지 않았는가. 이건 여자를 잘 모르고 무뚝뚝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만 알고 무관심해서 그런 거다. 그런 남자가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지는 걸 눈이 짓무를 때까지 보고만 있진 말자. 이쪽에서 만남과 관심을 구걸하도록 놔둘 뿐 아니라 이젠 그렇게 구걸해도 "미안!"이라며 방치해 두는 그 사람을, 이제 그만 놓길 바란다.

 

 

2. 성공해서 다시 만나자는 남친.

 

안녕 지영씨. 사연을 보낼 때에는 이렇게 결과나 결론만 보내주면 안 돼. 이런 건 친구들한테 '나 좀 위로해줘.'라는 걸 부탁할 때나 하는 거지, 정말 '오답노트'를 만들고 싶다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보내줘야 해. 내게 필요한 건 둘이 만나온 이야기인데, 지영씨는 이별 소감문을 보내줬더라고.

 

그래도 아예 못 쓰게 생긴 사연은 아니야. 내 지인 중에 공인중개사인 지인이 있는데, 난 그 지인과 어느 집에 집들이를 갔을 때 놀란 적이 있어. 하는 일이 공인중개사라 그렇겠지만, 그는 집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더라고. 집을 집이 아닌 물건으로 봐. 여긴 남향이 아니네, 어디로 부터 얼만큼 떨어져 있네, 입구까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네, 저 쪽에 뭘 짓고 있네, 같은 걸 보더라고. 길을 지나가다가 큰 송전탑을 보고도 그걸 부동산과 관련된 가치를 따져 이야기 하고 말이야.

 

나도 그간 연애사연을 만 편 이상 읽었더니, 포장을 여러 겹 한 이야기를 봐도 대략의 사정이 읽힐 때가 있어. 물론 이게 좋은 재주는 아닌 것 같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방해가 되거든. <동백꽃>같은 소설을 읽으면서도 '점순이를 위한 연애매뉴얼'같은 게 떠올라.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했던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남자 3호의 치명적인 실수 세 가지> 같은 걸 마음속으로 떠올리게 되고 말이야. 근데 이게 신기하게 맞아떨어져서 재미있었던 적도 있어. 그간 노멀로그 독자 중 <짝>에 출연한 분이 세 분 있는데, 그 분들과 카톡대화를 하다보면 방송을 보며 내가 캐치한 그들 사이의 완력과 누군가의 여우짓, 헛발질 등이 꼭 맞을 때가 있더라고. 여하튼 그건 그렇고, 내가 포장을 벗겨가며 발견한 이 관계의 문제점에 대해 말해줄게.

 

우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원인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고 하면 난 이렇게 적을 거야.

 

- 예쁜 꽃인 여친, 돌아다녀야 하는 남친.

 

지영씨가 한 말 중엔

 

"전 데이트를 위해 최고로 예쁜 모습으로 기다렸지만…."

"그가 바빠도 저는 외로운 티, 힘든 티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이라는 말이 있어. 난 저 말을 듣고, 지영씨가 예쁜 꽃과 같다고 생각했어. 화분에 담아 집에 놔두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정도로 예쁜 꽃인 거야. 그런데 남친은 내일 수원, 모레 목포에 다녀와야 하는 남자인 거지. 그는 개인적인 사정상 늘 기말고사를 앞둔 다급한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동행할 수 없기에 집에 두어야 했던 화분이 계속 생각 나.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는, 예쁜 꽃이 담긴 그 화분 말이야.

 

지영씨는 내게 이별 한 후 둘이 주고받은 카톡만 보냈는데, 남자친구는 그 카톡에서도 지영씨의 '스트레스'와 '건강', '잡생각'을 걱정하고 있어. 아마 연애 중 지영씨가 남친을 많이 의지했기에, 남친도 그게 벅찼었나봐. 그래서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어떻게 하라느니, 잡생각이 들 땐 어떻게 하라느니 하는 조언을 지영씨에게 한 것 같아.

 

'여자의 말'에 익숙하지 않는 남자들이 보통 그렇긴 해. 여자는 회사에서 있었던 '짜증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남자가 "아오 김과장 그 나쁜 놈."하며 맞장구를 쳐주길 원했던 건데, 그걸 '문제'로 받아들인 남자는 당장 '해결'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며 진지하게 이직을 권하거나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거든. 공정한 판사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김과장도 잘못이지만, 너도 잘못이 있다."라며 여자로 하여금 깊은 빡침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말이야. 다툼이 거의 없었다는 지영씨의 말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지영씨 커플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되었던 것 같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연애란 좋은 거야. 그런데 '나에게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연애라는 건 상대에겐 벅찬 연애일 수 있거든. 남자친구의 입장에선 이 연애가 지영씨를 달래주고 지영씨의 바람을 이루어줘야 하는 '일'로 느껴지진 않았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먼 길을 업고 가다보면 지치게 되는 거잖아. '외로운 티, 힘든 티 안 내려고 노력'했다는 건, 다시 업어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만 했다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말이야. 차라리 같이 걸었으면 어땠을까 싶어.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착한 유기'같은 건 없는 까닭에 모두 그를 욕하겠지만, 이게 지영씨에겐 그렇게 가볍지 않은 연애였으니 지영씨의 연애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오답노트를 작성했으면 좋겠어.

 

 

3. 열 살 어린 그녀, 호감일까?

 

제 지인 중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오래 몸담고 있던 회사를 나오신, 사십대 중반의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형님께서 서울 어디어디 음식점으로 오라고 하셔서 전 몇 해 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음식점에 도착해 그 형님의 이름을 대면 종업원이 어느 방으로 안내 하는 식당이었는데, 저는 요리사가 직접 와서 자신이 한 음식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그런 식당을 그때 처음 가 봤습니다. 와인도 서빙하시는 분이 한 잔 한 잔 따라주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음식점이었습니다. 메뉴판에는 제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보던 가격에 '0'이 하나씩 더 붙어 있었고 말입니다.

 

그 형님은 회사에 다닐 때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친해지면 그런 곳에 함께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여직원들이 그 형님의 직함을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합니다. 제가 갔던 그 음식점도, 여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싶다며 말했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나는 여기 세 번째 와보는 거야.

애들이 내 카드 가지고 가서 여기 많이 왔지."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그 형님은 가는 모임마다 이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성으로서의 인기는 아니었고, 그 형님과 친해지면 잡지에서나 보던 차를 탈 수 있고 어쨌든 가까이 지내면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될 일은 없으니 꽤 많은 여성들이 나이 차이가 나도 '오빠'라고 호칭하며 따랐습니다.

 

확실히 후광효과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저는 그 형님을 보며 실감했습니다. 그 형님이 가지고 다니던 작은 LED라이트가 있었는데, 그 라이트를 본 사람들은 '저건 분명 비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 라이트를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라이트는 인형뽑기에서 뽑은 중국산 라이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님이 그 라이트를 꺼내면 '나도 저거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등갈비 집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그런 라이트를 꺼냈다면 "야, 인형 뽑기 좀 그만 해."라고 말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 형님은 유머에 소질이 없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구술하는 유머감각을 가졌다고 할까요.

 

"어제 운전을 하는데, 차 창문을 잠깐 열었더니 나방이 들어왔다.

그래서 난 종이를 찾아 내쫓으려 했는데 종이가 없어서 넥타이를 휘둘러 쫓았다."

 

정도의 유머를 구사합니다. 보통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로 나온 남자가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여자들은 그 남자가 나방을 내쫓았듯 그를 내쫓고 싶어 할 겁니다. "나방과 함께 사라져라."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형님이 저런 이야기를 하면, "넥타이로요? 아 어떡해. 하하하."하며 즐거워하는 여자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전 혹시 그게 그분들의 대뇌변연계에 문제가 생겨 웃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제 결론을 이해할 것 같지 않으십니까? 결혼식을 앞둔 한 여직원은, 누가 보면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걸로 충분히 오해할 만큼 저 형님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저 형님도 살짝 오해하셨지만, 훗날 그건 다 '축의금' 때문이었다는 게 밝혀지긴 했습니다. 저야 당연히 옆에서 보며

 

"그녀는 호의 120%로 리액션만 해 줄 뿐이잖아요. 이건 관심이 아닙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말입니다. 이 정도면 답이 되었을 테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사연을 두 편 더 다루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여기까지만 써야 할 것 같다. 메모해 둔 사연 두 편은 내일 발행하기로 하자.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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