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행한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의 후속편을 적어볼까 한다. 이전 글에서 똑딱이(컴팩트디카)를 거쳐 하이엔드로 갔다가, DSLR까지 이르게 되는 긴 여정을 이야기 했었다. 앞의 이야기를 읽지 않으신 분들도 알 수 있게 오늘은 DSLR로 직행하는 과정까지 포함할 생각이다.
미리 밝혀둔 것 처럼, 이 이야기는 개인적인 상황과 과정을 담고 있으니, '누구나 다 이렇게 된다' 라기 보다는 '이런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라고 읽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1. 아버지의 카메라
DSLR을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는 이들 중 'KTX급의 차표'를 손에 쥐는 이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장롱속에서 득템한 '아버지의 카메라' 되시겠다. 니콘이나 캐논, 혹은 펜탁스의 로고가 찍혀 있는 좀약 냄새 나는 가방속에는 뭔가 비싸보이는 카메라와 렌즈들이 들어있다.
'이건 운명이야'
그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대를 이어(응?) DSLR을 구입하게 된다. 그 카메라들에는 여러 사연이 있지만, 88올림픽을 촬영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구입해 놓으신 필름 SLR카메라거나, 사진에 관심있으신 아버님이 사용하셨던 당시의 명기 FM2(니콘 SLR) 라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한 때 누군가의 보금자리였던 공간은
이젠 폐허가 되어
굳건히 서있던 문마저 떨어져 나와
벽에 기대 쉬고 있습니다
두드리고 열고 잠기던 영광의 시절도 가고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 집의 주인마저 발걸음을 끊었을때
문 앞 풀들이 소근 거리며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운트 되는 (렌즈가 요즘의 DSLR에도 끼울 수 있는) DSLR을 고르고, 렌즈들을 끼워본다.
'렌즈가 몇 개 있으니 렌즈값이 안들잖아. 난 복받은거야. 운명이라고'
컴팩트디카나 하이엔드와는 달리 렌즈를 따로 구입해야 하는 DSLR에서 웬만한 정품 렌즈들은 바디(카메라 본체)보다 비싸다. 하지만 '득템'의 기쁨과 '마운트'의 환희도 잠시, 아버지 카메라 가방에 들어있는 렌즈들은 '수동'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잠시 후에 필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루겠지만, 어지간한 인내와 훈련 없이 MF렌즈를 사용하는 것은 이제 막 컴퓨터를 끄고 켤 줄 아는 사람이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그들도 '렌즈 지름신'이라는 신내림을 받는다.
2. 렌즈만 있다면 먹지 않아도 배불러
쩜팔이 부터 시작해서 이사벨, 사무엘, 아빠만두, 오이만두, 백마, 대포, 백통, 삼식이, 카페렌즈, 60마, 90마, 단렌즈 삼총사, 헝그리 삼총사 등등, 일반인이 보기엔 무슨 암호문 같아 보이는 단어들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옥같은 렌즈의 가격과 자신의 통장잔고를 확인할 것이다.
이제, 남들의 사진을 감상하기 보다는 '뭘로 찍었나'를 살피게 되는 시점이다.
안타까운 일은 여친렌즈(85.4)로 찍은 사진을 볼 경우, 그 렌즈만 사면 자신도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서울대에 수석으로 합격한 한생이 "삼국지를 10번 읽었어요" 라고 하면, 그 다음 날 서점에 삼국지가 품절되는 것 처럼, 사진 동호회나 커뮤니티에 '베스트'로 뽑힌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렌즈와 그들의 렌즈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따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카메라가 찍는게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겁니다. 기계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공이라구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조언을 방어해 내는 합리화 사업단이 출동한다.
'맞아.. 기계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공이 중요한거지.. 하지만 번들렌즈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접사도 안되고, 얕은 심도도 표현할 수 없어, 게다가 새를 찍어도 점처럼 나타나잖아... 다른건 다 몰라도 17-50 정도로 커버할 수 있는 줌렌즈가 필요해.. 이건 정말 필요한거야.. 진리라고..'
다들 그렇게신용불량자가 되어간다 지름신을 영접한다.
겨울 내 그렇게 간절하던 난로는
회사 마당으로 끌려 나오자 숨을 간신히 이어가며
나에게 물었다.
"날, 버릴건가요?"
첫 만남의 은색 테잎이 옛날 이야기처럼 너덜거리는 난로가 물었고
난 뭐라 말할거리를 찾지 못한채
당황해 회사 사무실로 들어와버렸다.
여름이 되었고 또
너는 이제 낡아
어쩔 수 없다고 수없이 속으로 자위했고
난로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소리도 없이 죽어갔다.
하지만 광각렌즈를 구입하면 망원렌즈가 갖고 싶고, 망원렌즈를 구입하면 접사가 하고 싶다, 그 때마다 찾아오는 지름신은 같은 신이지만, 깨닫지 못한다, 그리곤 역시 같은 대사를 읖조린다.
'이 렌즈는 정말 필요한거야.. 이게 없으면 찍을 수 없다고..'
그렇게 회사원 김모씨는 새를 찍기위해 대포를 구입하기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 최모씨는 60마를 지르기도 한다. 유부남이라면 위험천만한 '마누라 속이기'를 감행하면서도 비자금을 마련하고, 보너스라도 받는 날에는 눈물을 흘리며 중고장터를 찾는다. 장기 할부를 끊으며 '한달에 3만원씩만 내면 되는건데..뭐..' 라는 생각을 가진 회사원, '예술은 배고픈거야.. 라면만 먹으며 버티고..일단 지르자' 라고 생각하는 대학생, 그렇게 렌즈는 늘어간다.
3 부수기재의 구입, 그리고 진리의 말씀
부수기재의 구입에 대해서는 지름신과 별반 다를 것 없으니, 짧게 열거만 하겠다.
실내에서 치뤄지는 돌잔치나 결혼식을 촬영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플래시가 필요하고, 어디 놀러가서 풍경을 찍거나 야경을 담으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지금 있거나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연인과 셀프샷을 찍으려면 유선리모콘이나 무선리모콘도 있어야 하고,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는 동안 배터리가 모자랄지도 모르니 확장배터리 겸용 세로그립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 혹시나 내 작품에 태양빛이 새어 들어와 잘못될지 모르니 렌즈 후드도 있어야 하고, 정품스트랩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안나는 경우가 있으니 사제스트랩으로 바꿔야 한다. 접사렌즈를 샀다면 부족한 광량을 채우기 위해 링플래시도 사야 하고, 집에서 소품을 촬영하거나 작은 사물들을 찍기 위해서는 미니 스튜디오 장비도 사야 한다. 또한 이 비싼 카메라와 장비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가방은 비싸더라도 인정받고 유명한 것으로 사야 하고, 집에서 카메라를 보관하다가 렌즈에 곰팡이가 필 수 있으니 제습용품을 사거나 아예 보관용 제습기를 구매해야 한다. 멀리 여행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때는 혹시 메모리가 부족해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외장용 백업장치나 대용량 추가 메모리를 더 구입해야 한다. 방금 찍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바로 뽑아 준다는 휴대용 포토프린터도 여건이 되면 질러야 한다.
남들 눈에는 '어? 좋은 카메라네?' 로 별다를 것 없이 보이겠지만, DSLR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악세사리나 카메라의 기종, 그리고 달려있는 렌즈가 마치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정도로 정확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횡단보도에 마주서서 서로 눈싸움 하듯이 말이다.
'뭐, 저런 사람들이 많겠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변에 DSLR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사진생활을 하느라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되냐고 말이다. 대다수는 경차 하나 살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고 답해줄 것이다. 원당에 있는 종마목장에 사진을 찍으러 놀러갔을 때, 내 옆에서 사진을 찍던 두 남자의 렌즈가 각각 660만원 짜리랑 490만원 짜리였다. 렌즈 두개만 합쳐도 당장 뉴 아반테를 신차로 뽑을 수 있는 가격이란 얘기다.
마음에 난 구멍에
맞지 않는 돌맹이 하나 끼워 놓고는
다 되었다, 생각했다
겨울이 되자
그 시린 바람이 마음에 불었다
부수기재를 구입할때, 동호회나 커뮤니티에서 듣게되는 진리의 말씀이 있다.
"한 방에 가"
이 말씀은, 사진의 선배들께서 비싼 렌즈 할부를 치르며 몸소 깨달으신 법문이다. 그들은 이미 서드파티(카메라 제조사에서 만든 용품이 아닌 타사에서 만든 호환 용품)의 렌즈들을 샀다가.
'아.. 서드파티 렌즈라서 사진이 이따윈가?'
이런 고뇌를 겪으셨다는 얘기다. 가격면에서 저렴한 서드파티를 택했다가 순정으로 갈아타는(팔고 새로 구입하는) 사람들은 많다. 자신하며 찍어줬던 친구의 결혼식 사진이 엉망인 것을 보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기보다는 '플래시'에 있다거나 '렌즈'에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서드파티의 제품을 샀다가 중고로 팔곤 순정으로 갈아타곤 한다. (이와는 별도로, 무조건 순정이 좋다는, 순정애호가 들도 있다)
나도 현재는 서드파티의 렌즈를 가지고 있지만, 이 렌즈의 AF(자동초점)가 종종 안드로메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관계로 전원을 껐다가 켜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런 문제로 '못 찍는 사진'이 생기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내 생의 '결정적 순간'을 이런 렌즈의 오류로 망칠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생각은
'아.. 역시 순정으로 바로 갔어야해...'
라는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
4. 이상한 징후
내일 이어질 마지막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이제 DSLR를 3개월쯤 사용했다면 서서히 권태라는 입질이 올 것이다. 어렸을 적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새 장난감이 슬슬 질리는 것 처럼 말이다. 이쯤되면 이상한 징후들이 시작되는데, 그 중 첫번째는 DSLR계의 '지식인'이 되는 증상이다.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카메라, 혹은 렌즈라 하여도 수 많은 사용기를 읽은 후라 웬만한 제품에 대해서는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확립하였으며, 마흔 살에 혹하지 아니하였고..." 중에 '서른살'에 속한다는 얘기다.
써보지 않은 렌즈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달고, 사람들은 순수하게 그 말을 받아들인다. 가끔 진짜 해박한 전문가와 설전이 붙기도 하는데, 걱정할 것 없다.
"님이 찍은 사진을 좀 보여주시죠?"
이 얘기가 나오면 둘 다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골프채를 40년간 만들었다고 골프를 잘 치는 것이 아니듯, 사진기와 렌즈, 그리고 부수기재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다. 고로, 사진으로 증명하자고 하면 찬물 끼얹듯 열기가 식게된다.
이제 막 DSLR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거나 그들의 구매를 도울 일도 생길 것이다. 카메라와 렌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그 주변인들은,
"와.. 정말 잘아네. 고마워. 최고야"
라고 이야기 하겠지만, 결국 알고보면 보급기 중 브랜드를 따져 가격에 맞는 걸로 소개해 준 것 뿐이다. 그리고 역시 진리의 말씀.
"처음엔 번들렌즈랑 쩜팔(50.8)로 시작해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진기를 사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 번들과 쩜팔의 조합은 2012년(응?) 이후에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곤, 자신의 권태를 이겨낼 단렌즈 삼총사와 필카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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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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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팩트디카나 하이엔드와는 달리 렌즈를 따로 구입해야 하는 DSLR에서 웬만한 정품 렌즈들은 바디(카메라 본체)보다 비싸다. 하지만 '득템'의 기쁨과 '마운트'의 환희도 잠시, 아버지 카메라 가방에 들어있는 렌즈들은 '수동'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잠시 후에 필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루겠지만, 어지간한 인내와 훈련 없이 MF렌즈를 사용하는 것은 이제 막 컴퓨터를 끄고 켤 줄 아는 사람이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그들도 '렌즈 지름신'이라는 신내림을 받는다.
2. 렌즈만 있다면 먹지 않아도 배불러
쩜팔이 부터 시작해서 이사벨, 사무엘, 아빠만두, 오이만두, 백마, 대포, 백통, 삼식이, 카페렌즈, 60마, 90마, 단렌즈 삼총사, 헝그리 삼총사 등등, 일반인이 보기엔 무슨 암호문 같아 보이는 단어들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옥같은 렌즈의 가격과 자신의 통장잔고를 확인할 것이다.
이제, 남들의 사진을 감상하기 보다는 '뭘로 찍었나'를 살피게 되는 시점이다.
안타까운 일은 여친렌즈(85.4)로 찍은 사진을 볼 경우, 그 렌즈만 사면 자신도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서울대에 수석으로 합격한 한생이 "삼국지를 10번 읽었어요" 라고 하면, 그 다음 날 서점에 삼국지가 품절되는 것 처럼, 사진 동호회나 커뮤니티에 '베스트'로 뽑힌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렌즈와 그들의 렌즈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따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카메라가 찍는게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겁니다. 기계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공이라구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조언을 방어해 내는 합리화 사업단이 출동한다.
'맞아.. 기계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공이 중요한거지.. 하지만 번들렌즈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접사도 안되고, 얕은 심도도 표현할 수 없어, 게다가 새를 찍어도 점처럼 나타나잖아... 다른건 다 몰라도 17-50 정도로 커버할 수 있는 줌렌즈가 필요해.. 이건 정말 필요한거야.. 진리라고..'
다들 그렇게
겨울 내 그렇게 간절하던 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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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버릴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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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었고 또
너는 이제 낡아
어쩔 수 없다고 수없이 속으로 자위했고
난로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소리도 없이 죽어갔다.
무한의 네쇼날동네그래픽 중 하나
하지만 광각렌즈를 구입하면 망원렌즈가 갖고 싶고, 망원렌즈를 구입하면 접사가 하고 싶다, 그 때마다 찾아오는 지름신은 같은 신이지만, 깨닫지 못한다, 그리곤 역시 같은 대사를 읖조린다.
'이 렌즈는 정말 필요한거야.. 이게 없으면 찍을 수 없다고..'
그렇게 회사원 김모씨는 새를 찍기위해 대포를 구입하기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 최모씨는 60마를 지르기도 한다. 유부남이라면 위험천만한 '마누라 속이기'를 감행하면서도 비자금을 마련하고, 보너스라도 받는 날에는 눈물을 흘리며 중고장터를 찾는다. 장기 할부를 끊으며 '한달에 3만원씩만 내면 되는건데..뭐..' 라는 생각을 가진 회사원, '예술은 배고픈거야.. 라면만 먹으며 버티고..일단 지르자' 라고 생각하는 대학생, 그렇게 렌즈는 늘어간다.
3 부수기재의 구입, 그리고 진리의 말씀
부수기재의 구입에 대해서는 지름신과 별반 다를 것 없으니, 짧게 열거만 하겠다.
실내에서 치뤄지는 돌잔치나 결혼식을 촬영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플래시가 필요하고, 어디 놀러가서 풍경을 찍거나 야경을 담으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지금 있거나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연인과 셀프샷을 찍으려면 유선리모콘이나 무선리모콘도 있어야 하고,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는 동안 배터리가 모자랄지도 모르니 확장배터리 겸용 세로그립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 혹시나 내 작품에 태양빛이 새어 들어와 잘못될지 모르니 렌즈 후드도 있어야 하고, 정품스트랩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안나는 경우가 있으니 사제스트랩으로 바꿔야 한다. 접사렌즈를 샀다면 부족한 광량을 채우기 위해 링플래시도 사야 하고, 집에서 소품을 촬영하거나 작은 사물들을 찍기 위해서는 미니 스튜디오 장비도 사야 한다. 또한 이 비싼 카메라와 장비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가방은 비싸더라도 인정받고 유명한 것으로 사야 하고, 집에서 카메라를 보관하다가 렌즈에 곰팡이가 필 수 있으니 제습용품을 사거나 아예 보관용 제습기를 구매해야 한다. 멀리 여행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때는 혹시 메모리가 부족해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외장용 백업장치나 대용량 추가 메모리를 더 구입해야 한다. 방금 찍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바로 뽑아 준다는 휴대용 포토프린터도 여건이 되면 질러야 한다.
남들 눈에는 '어? 좋은 카메라네?' 로 별다를 것 없이 보이겠지만, DSLR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악세사리나 카메라의 기종, 그리고 달려있는 렌즈가 마치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정도로 정확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횡단보도에 마주서서 서로 눈싸움 하듯이 말이다.
'뭐, 저런 사람들이 많겠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변에 DSLR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사진생활을 하느라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되냐고 말이다. 대다수는 경차 하나 살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고 답해줄 것이다. 원당에 있는 종마목장에 사진을 찍으러 놀러갔을 때, 내 옆에서 사진을 찍던 두 남자의 렌즈가 각각 660만원 짜리랑 490만원 짜리였다. 렌즈 두개만 합쳐도 당장 뉴 아반테를 신차로 뽑을 수 있는 가격이란 얘기다.
마음에 난 구멍에
맞지 않는 돌맹이 하나 끼워 놓고는
다 되었다, 생각했다
겨울이 되자
그 시린 바람이 마음에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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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기재를 구입할때, 동호회나 커뮤니티에서 듣게되는 진리의 말씀이 있다.
"한 방에 가"
이 말씀은, 사진의 선배들께서 비싼 렌즈 할부를 치르며 몸소 깨달으신 법문이다. 그들은 이미 서드파티(카메라 제조사에서 만든 용품이 아닌 타사에서 만든 호환 용품)의 렌즈들을 샀다가.
'아.. 서드파티 렌즈라서 사진이 이따윈가?'
이런 고뇌를 겪으셨다는 얘기다. 가격면에서 저렴한 서드파티를 택했다가 순정으로 갈아타는(팔고 새로 구입하는) 사람들은 많다. 자신하며 찍어줬던 친구의 결혼식 사진이 엉망인 것을 보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기보다는 '플래시'에 있다거나 '렌즈'에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서드파티의 제품을 샀다가 중고로 팔곤 순정으로 갈아타곤 한다. (이와는 별도로, 무조건 순정이 좋다는, 순정애호가 들도 있다)
나도 현재는 서드파티의 렌즈를 가지고 있지만, 이 렌즈의 AF(자동초점)가 종종 안드로메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관계로 전원을 껐다가 켜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런 문제로 '못 찍는 사진'이 생기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내 생의 '결정적 순간'을 이런 렌즈의 오류로 망칠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생각은
'아.. 역시 순정으로 바로 갔어야해...'
라는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
4. 이상한 징후
내일 이어질 마지막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이제 DSLR를 3개월쯤 사용했다면 서서히 권태라는 입질이 올 것이다. 어렸을 적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새 장난감이 슬슬 질리는 것 처럼 말이다. 이쯤되면 이상한 징후들이 시작되는데, 그 중 첫번째는 DSLR계의 '지식인'이 되는 증상이다.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카메라, 혹은 렌즈라 하여도 수 많은 사용기를 읽은 후라 웬만한 제품에 대해서는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확립하였으며, 마흔 살에 혹하지 아니하였고..." 중에 '서른살'에 속한다는 얘기다.
"모아레 현상이 심하다고 알려진 렌즈군요, 가끔 사람을 보라돌이처럼 찍어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AF가 안드로메다로 가기도 하는데, 웬만하면 한 방에 순정으로 가시는게 나을겁니다. 겉 표면 도색도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해서 잘 벗겨지는데 렌즈 안으로 들어가면 골치아파 집니다. 한 방에 가세요"
써보지 않은 렌즈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달고, 사람들은 순수하게 그 말을 받아들인다. 가끔 진짜 해박한 전문가와 설전이 붙기도 하는데, 걱정할 것 없다.
"님이 찍은 사진을 좀 보여주시죠?"
이 얘기가 나오면 둘 다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골프채를 40년간 만들었다고 골프를 잘 치는 것이 아니듯, 사진기와 렌즈, 그리고 부수기재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다. 고로, 사진으로 증명하자고 하면 찬물 끼얹듯 열기가 식게된다.
이제 막 DSLR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거나 그들의 구매를 도울 일도 생길 것이다. 카메라와 렌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그 주변인들은,
"와.. 정말 잘아네. 고마워. 최고야"
라고 이야기 하겠지만, 결국 알고보면 보급기 중 브랜드를 따져 가격에 맞는 걸로 소개해 준 것 뿐이다. 그리고 역시 진리의 말씀.
"처음엔 번들렌즈랑 쩜팔(50.8)로 시작해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진기를 사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 번들과 쩜팔의 조합은 2012년(응?) 이후에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곤, 자신의 권태를 이겨낼 단렌즈 삼총사와 필카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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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를 털어간 꼬꼬마에게 보내는 글
방금 경험한 네이트온 메신저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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