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댓글과 방명록을 통해 커플부대에 입성했음을 밝혔던 (구)솔로부대원들이 이제는 커플부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 중 대부분은 '자신이 상상하던 연애'와 '현실의 연애'에 대한 차이에 관한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나무꾼'인 줄 알고 사귀었는데, 이제 보니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나무꾼 같다며, 늘 바쁘다는 남자친구와 사귀며,
"남자친구에게 무관심해지는 방법은 없나요?"
이런 질문까지 하고 있다. 오죽 힘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해질 수 있는 방법까지 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 매뉴얼에서는 '바쁜남자 대처법'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솔로부대에 몸 담고 있더라도 알아야 하는 내용이 있으니, "난 생물학적인 남자친구가 없으니 괜찮아.(응?)" 라며 스킵하지 말길 바란다.
'남자는 이렇다'거나 '여자는 이렇다'로 정의하고 싶진 않다. 글의 진행상 인용하는 부분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특성'정도로 생각하자. 바쁜남자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여자사람만 있는게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1.관심 2.이해 3.존중 4.헌신 5.공감 6.확신
남자가 받고자 하는 것
1.신뢰 2.인정 3.감사 4.찬미 5.찬성 6.격려
- 존 그레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중에서
위의 인용문만 보고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여자가 동성친구들과 '커피숍'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남자 둘이서 커피숍에 가는 것은 '식사'정도의 의미를 빼놓곤 드물다는 것이다. 남자들끼리라면 PC방이나 당구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승부를 내거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얘기다. 매뉴얼을 통해 몇 번 이야기 한 것 처럼 여자들은 어느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 기분전환이 되지만, 남자의 경우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엇갈린다. 아래의 상황을 보자.
여자 - 오늘 미용실에서 머리 했는데 너무 마음에 안 들어.
남자 - 그럼 다음부터는 다른 미용실로 가.
여자 - 원래 나 담당하던 실장이 휴무라서 다른 사람이 했거든 그런데...
남자 - 실장 나오는 날 하지 그랬어?
여자 - 나중엔 그래야지 아무튼 그 사람이 말을 엄청 시켜대는데...
남자 - 먹으면서 얘기해. 식겠다.
앞으로 두 사람이 나누게 될 대화의 종말은 예측이 가능하다. 분명 "넌 항상 이런 식이잖아."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라는 말이 등장할 것이다. 여자사람들이 봤을 때엔 남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입장에선 남자가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차이점을 매뉴얼의 소제목으로 내 놓은 까닭은, '바쁜남자'에 대해 살펴볼 땐 서로가 추구하거나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 남자가 신뢰나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모두 이해하란 얘긴 아니다. 무작정 '나라면 이럴텐데'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자는 거다.
최근 바쁜남자와 헤어진 J양(29세, 백수)은 연애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둘 다 직장을 그만 둔 상태였거든.. 그렇게 늘 붙어다녔는데..
그 사람이 취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
회사에서 집에 보내 줄 생각을 안하는 거야.. 그래도 많이 이해했지..
상황이 그런 거 잖아.. 그냥..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다는게..
그게 가끔.. 좀 그렇더라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늦게 오고.. 어느 때는..
그 문자에 대한 답은 전혀 없고.. 다음 날 그냥 형식적인 아침인사 문자가 오고..
나나 그 사람이나 참 많이 노력하고 서로 맞춰 가며 노력했지만..
사그라드는 모닥불처럼.. 그렇게 끝났어..
실업자 400만명 시대에 이 얘길 꺼내는 것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연애를 하며 한 쪽의 여유시간이 많아진다면 굽 높이가 다른 신발을 신은 것 만큼이나 쉽게 지친다. 무언가 다른 것으로 그 여유시간을 활용하는 중이라면 큰 문제는 없지만, 상대방에게 온통 마음이 쓰여 있다면 하나 하나 '실망'할 수 있는 요소들이 보일 것이다. 특히 1번에서 이야기 한 '나라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문자라도 한 통 보낼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당신을 괴롭힐 것이고, '내가 보고 싶다면 아무리 피곤해도 달려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상대의 고질적인 "이따가 전화할게." 라는 멘트도 한 몫 한다. 전화한다고 해서 이쪽은 목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상대의 연락이 없는 것. 게다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하는 상대라면 문자를 확인한 뒤 나중에 연락하려고 마음만 먹었다가 잊고 말 것이다. 이런한 모습들에 '날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둘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간다.
더 슬픈 일은, 이 과정이 '집착'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다림은 의심을 낳게 되고, 의심은 당신의 일인극을 돕는다. 집착의 단계에 접어들면 제어가 불가능하다. 상대가 노력해도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고 괴로움은 커지게 된다. 혼자 상상하고 혼자 비참함을 느끼며 혼자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스스로 그것을 안다고 해도 마음이 달려나가는 것을 막기가 힘들다. 이 시기엔 전력으로 마음 쏟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먼저, 바쁜남자 중에는 나쁜남자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사연을 보내주신 한 여성분은 바쁜남자를 2년 간 만났는데, 만날 때에는 늘 여자의 시간을 배려하지 않고 남자가 편한 시간에 연락을 해서 데이트를 했으며 늘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선호했다고 한다. 아무리 바쁜 남자라도 당신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는 바쁜남자가 아니라 나쁜남자 라고 할 수 있다.
▲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 이미지검색)
상대방이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잘 하지 못 한다면, 혼자 끙끙 앓을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그 '연락없음'의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필요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무조건 상대가 하는 만큼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한 시간을 상대는 모를 수도 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는 사람은, 앉아서 박수만 치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모르는 것 처럼 바쁜남자의 행동이 상대에겐 어떻게 느껴지는 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단 얘기다. 내 귀를 파주는 사람이 너무 깊숙히 귀후비개를 넣었을 때 '아~ 아퍼!' 라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당신에게 여유시간이 많다면 휑한 마음의 빈공간에 다른 것들도 넣도록 하자. 위에서 말했듯이 굽 높이가 다른 구두가 있다면 깔창이라도 하나 더 넣으라는 얘기다. 다만, 그 '바쁜이유'가 '남자의 취미생활' 같은 이유라면 둘의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권한다. 주말이면 아저씨가 아줌마 집에 놔두고 낚시 가는 201호 부부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서운하다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왜 서운한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좋고, 화를 내기 보다는 왜 화가 났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틀간 연락을 하지 말아보라는 얘기나, 당연히 당신에게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 주말에 선약이 있다며 튕겨보라는 이야기는 적지 않겠다. 지금 바쁜남자와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둘 다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만 적어 두겠다.
그리고 이건 예외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수 있는 커플들 때문에 꺼내기 조심스러운 이야긴데, 바쁘다는 이유로 일주일 이상 연락을 못하는 커플이 있다면 그 바쁘다는 분은 자제력이 대단하거나 연애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커플이 있었는데, 그 커플에게 둘의 그런 사랑이 가능한 것은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란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너무 확신을 한 까닭인진 몰라도 몇 달 후에 둘 다 가슴을 뛰게 할 다른 사랑을 찾아갔지만 말이다.
사귀기 전에는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길 권한다. 매뉴얼에서 지겹도록 하는 얘기지만, 날이 맑고 바람이 좋은 날 순항하는 것은 쉽다. 그러니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불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살펴 보잔 얘기다. 둘의 앞에 넓은 진흙탕이 있으면 당신에게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당신의 손을 꼭 잡고 건널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길 기원한다.
▲ 손가락버튼과 추천버튼을 누르면 당신을 안고 건널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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