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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씨다. 이런 날에는 공원에 나가 할머니들과 허리 돌리는 운동기구를 하며 "허유~ 총각이 잘하네 할할할"(할머니는 '할'이라 웃는다.)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지만, 이 좋은 날씨도 백지처럼 느끼고 있을 몇몇 솔로부대원들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친구가 어느 여자사람에게 고백을 했는데, 처음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데요.
며칠이 지나도 대답이 없어서 친구가..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얘길 했나봐요.. 그랬더니.. 싫은 건 아닌데..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이거야 말로 희망고문 아닌가요?.. 포기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귄다는 것도 아니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완전 어색해져 버렸어요.. 말 건네기도 전보다 조심스럽고..
이럴 땐 다시 고백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은 건가요?
제 얘기는 아니고, 친구 얘기에요.

- 신병목씨(29세, 이름 거꾸로 읽지 마세요)가 남겨주신 사연


우선, 시캐고의 부킹대학에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할 경우, 그 고백이 연애로 이어질 가능성을 29.42%로 분석했다. 유난히 헷갈리는 문제를 두고 답을 고민했을 때, 결국 오답을 적어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리고 '싫은 건 아닌데, 연애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한 경우,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연애에 지독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이전 사람이 최악 이었던지, 혹은 최고 였던지 둘 중 하나인 사례다. 둘째, 연애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이건 집안환경이라든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라든지 하는 연애 외적인 요소가 더 크다. 연애를 안해도 인생에 아무 무리가 없는 사례다. 셋째, 이쪽에 확 반할만큼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반했다면 첫째 둘째 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다시 고백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은 건가요?" 라고 적어주셨는데, 이 질문에는 무조건 포기하라는 답변을 달고 싶다. 질문만 놓고 보자면 이쪽도 상대에게 완전히 반하진 않은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뭔가를 이루려는 것이나 몇 번 해보다가 안되면 때려 치우는 거야 사람의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이 상황에서 고백이냐 포기냐의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백 후에 확답을 못 받았다고 마음 접을 생각하는 지구력이라면, 일찍 접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1. 변명하지 말 것


상대에게 고백을 하고 퇴짜를 맞았을 때, 그냥 장난으로 해 본 소리라든지 실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얘기로 인해 어색한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겠지만, 상대를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냥 한 번 찔러 본 거라면 할 말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대의 대답에 대한 어떤 변명도 하지 말길 권한다. 고백은 상대에게 기쁨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쪽에서 혼자 만들어낸 거대한 고민덩어리를 상대에게 패스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해 주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도의 인사면 된다.

퇴짜에 대한 복수로 상대에게 상처를 내려 하는 것 역시 최악의 선택이다. 매뉴얼의 서두에서 나온 이야기만 보더라도 진지하게 타인의 고백에 자신의 답을 들려준 여자는 '희망고문기술자'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것에 대해 '미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혼자 멋대로 키워 놓은 부담을 건네놓고 상대가 받지 않으면 '어장관리자'로 낙인을 찍거나 '된장녀'등으로 묘사하는 것,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어쩔 수 없이 변명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응?) (출처-이미지검색)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경우, 바라던 것이 이루지지 않았을 때 더욱 적대심을 가지는 경우들은 흔하다. 가지고 싶던 물건이 상품으로 걸린 이벤트에 참가했다가 당선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을 경우 행사를 주최한 곳은 물론 연관된 곳에 까지 악감정을 가지기도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상황을 모면하려 변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를 합리화 시키려 상대를 나쁜사람이라 얘기하지 않길 권한다.


2. 상대를 종교로 만들지 말 것


거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스스로 침몰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은 미련과 후회와 절망감 등 시시각각 밀려오는 좌절을 겪고 있는 중이라면, 소주 한 병 원샷하고 시원하게 토해내라고 등을 두드려 주겠지만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공개된 공간에 올리거나 타인에게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면 그때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좌절 후에는 재기의 다짐이든 절망의 기록이든 시인 부럽지 않은 글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얘기를 상대도 볼 수 있는 공간들에 올려두거나, 타인에게 말했을때, 그 글을 본 상대는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았으니 고백을 받아주겠다는 얘기를 할까? 그런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 당신이 적게되는 글에 상대는 의아해 하며 심지어 무서움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왜? 당신은 점점 상대와는 다른 상상의 인물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



▲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출처-사진에표기)


글을 적거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시원해 질 진 모르지만, 당신과 상대의 관계는 안드로메다로 가 버린다. "내 탓이지, 나라도 나란 놈이랑 사귀고 싶지 않을거야." 따위의 이야기들을 적어가며 당신은 '피해자' 상대는 '가해자'가 되어 버린다. 얼굴 마주보고는 하지도 못할 "아무 것도 못하고 하루의 반을 넋 놓고 보내지만, 그래도 말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이런 자빠링을 시작한단 얘기다. 그 증세를 보이고 있을 때, 누군가 "힘내세요.." 라거나 "진실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안타까워요.." 이런 추임새를 넣으면, 점점 더 악화 될 것이다. 그래, 이미 상대는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슬픔을 위해 슬퍼하지 말라는 이야기 이전 매뉴얼에서도 몇 번 이야기 했지만, 그 늪에 빠지게 되면 거기서 나올 의욕이 점점 사라진다. 마치 오랫동안 집에서 백수생활을 하다가 새로 직장을 알아 볼 때 처럼 미뤄두고 싶거나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뭐가 현실이고 뭐가 상상인지 구별을 못해 과거의 기억들을 왜곡시키기도 하니, 솔로부대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병이다. 


3. 타인의 평가를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이 매뉴얼에서 가장 힘주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퇴짜맞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라는 거다. 지난 매뉴얼에 어느 분이 달아주셨던 댓글 처럼, "전 키도 작고, 못 생겨서 이런 거 아무리 봐도 여자친구가 안 생겨요." 라고 단정짓지 말길 바란다. 

막연히 희망만 가지란 얘기가 아니다. 현재까지 3억2천5백만 권 이상이 팔린 <해리포터>는 1997년 영국의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이야기의 전개가 길고 느리다."며 모두 출판을 거절 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은 131번째 접촉한 출판사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으며, 39개 언어로 번역되어 8백만 독자를 사로잡았다. 당신의 매력 역시 아직 발견한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몇 사람에게 퇴짜를 맞았다고 그걸 자신의 한계로 여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얘기해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가? 인터넷 영상 보고 마술 몇 개 배워서 밥 먹으며 재연하는 거? 아니면, 고백에는 이벤트가 뒷받침 되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들 다 하는 촛불로 길 만들어 놓은 거? 큰 인형 선물한 거?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밥 먹은 거? 같이 영화 본 거? 재미있다는 이야기 몇 개 외워서 들려준 거? 아는 연얘인 얘기 한 거? 만나서 뭘 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마음 속에 누군가 들어와도 좋은 보금자리를 보여준 적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칭찬, 미소, 리액션 이따위 얘기들 다 접어 놓고 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신의 매력을 발견해 줄 사람을 만날 때 까지 몇 번이고 고백만 하라는 건 아니다. 출판이 거절당한 작가들이 "ㅅㅂ 내 천재성을 알지도 못하면서" 따위의 얘기를 하며 좌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다시 고쳐쓰는 시간을 가졌듯, 가장 당신다운 것들을 찾아보길 권한다. 전혀 요란하지 않게 차근차근 해 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랑 안 사귄다면 너는 아웃." 만 외치지 말고, 길게 보자.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막상 실제로 그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괄약근의 힘이 풀어질 것이다. 연애랑 별로 관련이 없는 얘기를 잠시 하자면, 나 역시 기대하고 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방에서 혼자 글루미 선데이를 찍고 있는 날이 있다. 그때마다 꼭 찾아보는 글이 있는데, 당신도 이 글을 읽으며 무거운 절망을 그만 내려두었으면 한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이름도 쓸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 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 징기스칸의 명언 (이라고 알려진 글)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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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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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의리형2010.01.29 15: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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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드자이너김군2010.01.29 15: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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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의 명언 ..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cezanne7202010.01.2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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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새 쌓인 하얀 눈을 바라보며, 무한님의 글 공감합니다!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절절히 와 닿네요!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규에요2010.01.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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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징키스칸의 글..하하하~
좋네요.

역시나 좋은글! 감사해요^^

지나가다2010.01.2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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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게 있는데, 저 위에 어떤 님 댓글 보니까 마음에 들어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셨는데도, 그래도 그러면서 신호를 주시는 거겠죠? ^^
일단 찔러보는 남자가 아니라면 어떤 상황에서 고백하는 지 모르지만 그래도 같은 회사라던지 아니면 모임, 학교 뭐 이런 상황이라면 그 분도 나름 리스크를 걸고 말씀하시는 거니 ㅋㅋ

조금만 신호를 주시면 남자들도 재촉을 하지 않고 여기도 마음이 있겠거니 하면서 천천히 다가가지 않을까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ㅎ

발란스~!!!2010.01.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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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노멀님 글을 오랫동안 읽어 온 한 잉여입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보네요.
정말 오늘 이 글은 제대로 제 가슴 속에 들어오네요.
'당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가?'
읽고 소름돋았습니다 (소름쟁이~)

2010.01.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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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2010.01.3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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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2010.01.3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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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하악하악2010.02.0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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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멋있다
마지막에 한 말이 젤 멋있네요
당신이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란거
좋네요

일년째자취중2010.02.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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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글을 쓰게 되네요..

마지막 칭기스칸 문구를 읽고는...........

감동을 받아서......

무한님은 역쉬.. 필력이 뛰어나시네요..

저 시는 오려서... 내 맘 속에 담아둘께요..
퍼갑니다.~ㅋ

칭기즈칸 명언이2010.05.0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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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칭기즈칸의 명언이 아니라
일본의 평론가 기라타니 고오진의 시라고 합니다
하도 멋들어지게 쓰니까 사람들이 종종 혼동하더라고요

스매싱2010.06.2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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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읽고 정신이 확 드네요..

너굴이2010.07.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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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터넷검색으로 노멀로그 글을 보게되었는데
정말 도움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항상감사2010.12.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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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힘든데 좋은글 읽고 갑니다..이글을 읽고나니까
나도 시간을 달라고할때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줄것을
하고 조금 후회가 되네요..
아무튼 마지막글에 감동받고 댓글 남기고 이만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십시요 ^^

무도리2013.04.0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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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사람.... 이로군요~~~~화이팅~~~

고향만두2015.05.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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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고 싶은 마음만 앞설때 자주 찾아봅니다. 도움이 많이 되네요~

정가비2016.05.1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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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늘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코만도2017.08.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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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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