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998년 3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임신 9개월에 접어든 지도 벌써 보름이나 된 숙희씨(가명, 경기도 파주시)는 홀로 집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전광판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남편은 늘 지방출장이 잦았기에, 결혼 1주년도 지나지 않은 숙희씨의 부부는 주말에나 마음놓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자들이 결혼한 후 집에서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요리나 청소 등이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포기'다. 숙희씨도 처음엔 남편에게 자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해 외롭다고 투정을 부려보고, 무섭다고 애원도 해 봤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 하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를 배워가는 남편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포기하면 편해'라는 진리를 깨닫곤 숙희씨도 자신이 그었던 기대치를 지우고 뒤로 몇 보 더 물러 선을 다시 그은 것이다.
'아윽..'
진통이 왔다. 덜컥 겁이 난 숙희씨는 다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빠, 하... 나 배 아파. 흡...
일이 끝나고 관계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남편도 당황했다. "그래?" 라며 다급하게 생각을 쥐어짜던 남편은 초보남편다운 해결책을 꺼냈다.
- 일단 화장실에 가서 똥 싸봐.
난 이 부분을 전해들으며 '병원으로 가라든가, 주변에 연락하라든가, 만사 제치고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숙희씨는 남편의 저 말을 듣고는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 알았어.. 흡...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기 시작한 숙희씨는 평소 변비에 시달리던 것과 달리 순조롭고 만족할만한(응?)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통증이 싹 가셨다고 한다. 일을 마친 숙희씨는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오빠 나 괜찮아졌어.
- 그래? 다행이다. 무리하지 말고 쉬어. 나 내일 일찍 올라갈게.
통화를 마치고 다시 TV에 집중하던 숙희씨에게, 드라마가 끝날 때 쯤 통증이 또 찾아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좀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 괜찮아 진 것을 생각하곤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마치 데자뷰를 경험하든 아까와 비슷한 모양, 형태, 분량의 볼일을 봤고 통증이 사라졌다.
왜 뿌듯함을 느꼈는 지 모르겠지만, 숙희씨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보람찬 일을 마친 사람의 표정을 짓곤 당시의 기분을 '뿌듯했다'고 표현했다. 아무튼 변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만족감 때문인지 숙희씨는 웃으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악...'
새벽 세 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깬 숙희씨는 이번에도 화장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동안 쌓였던 숙변이 모두 나오는 지 또 볼일을 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볼 일은 봤지만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곧 애를 낳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고, 더 전화 거는 일을 포기한 채 지갑만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급했던 지 양말 신을 틈이 없어 슬리퍼만 신고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10분, 20분, 30분,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타려 했지만 차가 모두 사라진 듯 도로엔 찬바람만 불었고, 숙희씨는 기다리다 지쳐 걷기 시작했다. 숙희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4Km 정도는 걸은 것 같다고 한다. 슬리퍼를 신고 걷다 보니 발가락이 얼 것 같았고,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듯 했다. 택시 정류장 부근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아이가 나올 것 같은 고통보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가 아픈 고통이 더 컸다.
너무 추웠기에 숙희씨는 통증이고 병원이고, 일단 몸부터 녹이려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엄마 품처럼 숙희씨를 감싸는 편의점의 온기에 숙희씨는 편의점 알바를 껴안고 울 뻔 했다. 얼었던 몸이 녹자 가장 먼저 배고픔이 찾아왔다. 볼 일을 세 번이나 본 데다 엄청난 거리를 걸어온 까닭에 손이 떨릴 정도로 배고팠다. 같은 편의점에 있던 택시기사 몇 분이 전자렌지 근처에 서서 '미니족발'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두 개나 샀고, 계산을 마친 뒤 전자렌지에 막 데우려고 하는 순간,
'아아악-'
잊고 있던 통증이었다. 이번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택시기사와 편의점 알바가 놀라서 달려왔고, 다급히 숙희씨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숙희씨의 손에는 미니족발이 들려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간호사 손에 이끌려 갈 때에도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놓지 않았다. 분만을 위해 간호사가 숙희씨가 들고 있는 미니족발을 뺏으려 할 때에도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간호사 둘이 달려들었다.
"산모님, 놓으세요. 지금 들어가셔야 돼요."
어쩔 수 없이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놓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딸을 낳았다.
아침이 되자 남편이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문을 연 남편을 본 숙희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숙희씨를 꼭 안아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 오빠...
- 응?
- 나 족발..
- 뭐?
- 나 미니족발 먹고 싶어.
의아해 하는 남편에게 숙희씨는 미니족발이 먹고 싶다는 말만 계속 했을 뿐, 병원까지 오며 일어났던 일을 말하진 않았다. 잠시 후 남편이 사가지고 온 미니족발을 먹으며 숙희씨는 한참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병원에는 분만하기 직전까지 미니족발을 놓지 않았고, 분만 후 미역국을 먹기도 전에 울며 미니족발을 먹은 산모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게 되었다.
스티커 모으기가 취미이며, 달리기 하는 게임의 캐쉬충전 해 주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꼬마. 곧 중학생이 되는 그 꼬마는 우리집에 종종 놀러오는데, 학교 운동회를 하면 늘 계주 대표로 나갈 정도로 잘 달리고 피자나 치킨보다 족발을 더 좋아한다. 뱃속에서 다 듣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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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윽..'
진통이 왔다. 덜컥 겁이 난 숙희씨는 다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빠, 하... 나 배 아파. 흡...
일이 끝나고 관계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남편도 당황했다. "그래?" 라며 다급하게 생각을 쥐어짜던 남편은 초보남편다운 해결책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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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부분을 전해들으며 '병원으로 가라든가, 주변에 연락하라든가, 만사 제치고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숙희씨는 남편의 저 말을 듣고는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 알았어.. 흡...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기 시작한 숙희씨는 평소 변비에 시달리던 것과 달리 순조롭고 만족할만한(응?)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통증이 싹 가셨다고 한다. 일을 마친 숙희씨는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오빠 나 괜찮아졌어.
- 그래? 다행이다. 무리하지 말고 쉬어. 나 내일 일찍 올라갈게.
통화를 마치고 다시 TV에 집중하던 숙희씨에게, 드라마가 끝날 때 쯤 통증이 또 찾아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좀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 괜찮아 진 것을 생각하곤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마치 데자뷰를 경험하든 아까와 비슷한 모양, 형태, 분량의 볼일을 봤고 통증이 사라졌다.
왜 뿌듯함을 느꼈는 지 모르겠지만, 숙희씨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보람찬 일을 마친 사람의 표정을 짓곤 당시의 기분을 '뿌듯했다'고 표현했다. 아무튼 변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만족감 때문인지 숙희씨는 웃으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악...'
새벽 세 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깬 숙희씨는 이번에도 화장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동안 쌓였던 숙변이 모두 나오는 지 또 볼일을 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볼 일은 봤지만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곧 애를 낳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고, 더 전화 거는 일을 포기한 채 지갑만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급했던 지 양말 신을 틈이 없어 슬리퍼만 신고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10분, 20분, 30분,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타려 했지만 차가 모두 사라진 듯 도로엔 찬바람만 불었고, 숙희씨는 기다리다 지쳐 걷기 시작했다. 숙희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4Km 정도는 걸은 것 같다고 한다. 슬리퍼를 신고 걷다 보니 발가락이 얼 것 같았고,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듯 했다. 택시 정류장 부근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아이가 나올 것 같은 고통보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가 아픈 고통이 더 컸다.
너무 추웠기에 숙희씨는 통증이고 병원이고, 일단 몸부터 녹이려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엄마 품처럼 숙희씨를 감싸는 편의점의 온기에 숙희씨는 편의점 알바를 껴안고 울 뻔 했다. 얼었던 몸이 녹자 가장 먼저 배고픔이 찾아왔다. 볼 일을 세 번이나 본 데다 엄청난 거리를 걸어온 까닭에 손이 떨릴 정도로 배고팠다. 같은 편의점에 있던 택시기사 몇 분이 전자렌지 근처에 서서 '미니족발'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두 개나 샀고, 계산을 마친 뒤 전자렌지에 막 데우려고 하는 순간,
'아아악-'
잊고 있던 통증이었다. 이번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택시기사와 편의점 알바가 놀라서 달려왔고, 다급히 숙희씨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숙희씨의 손에는 미니족발이 들려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간호사 손에 이끌려 갈 때에도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놓지 않았다. 분만을 위해 간호사가 숙희씨가 들고 있는 미니족발을 뺏으려 할 때에도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간호사 둘이 달려들었다.
"산모님, 놓으세요. 지금 들어가셔야 돼요."
어쩔 수 없이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놓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딸을 낳았다.
아침이 되자 남편이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문을 연 남편을 본 숙희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숙희씨를 꼭 안아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 오빠...
- 응?
- 나 족발..
- 뭐?
- 나 미니족발 먹고 싶어.
의아해 하는 남편에게 숙희씨는 미니족발이 먹고 싶다는 말만 계속 했을 뿐, 병원까지 오며 일어났던 일을 말하진 않았다. 잠시 후 남편이 사가지고 온 미니족발을 먹으며 숙희씨는 한참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병원에는 분만하기 직전까지 미니족발을 놓지 않았고, 분만 후 미역국을 먹기도 전에 울며 미니족발을 먹은 산모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게 되었다.
스티커 모으기가 취미이며, 달리기 하는 게임의 캐쉬충전 해 주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꼬마. 곧 중학생이 되는 그 꼬마는 우리집에 종종 놀러오는데, 학교 운동회를 하면 늘 계주 대표로 나갈 정도로 잘 달리고 피자나 치킨보다 족발을 더 좋아한다. 뱃속에서 다 듣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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