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인연'이라거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이 매뉴얼을 읽지 않아도 좋다. 이 매뉴얼에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인연이나 운명을 앞세워 이별의 용의자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그간 감정들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어 온, 당신과 그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쓰는 매뉴얼이라, 반가움을 짙게 발라 '엉덩이로 이름쓰기'같은 걸 좀 보여주고 싶지만 잠시 후 2010년의 바닷바람을 허파에 집어 넣으러 떠나야 하니 프리허그는 다음으로 미루자.
"오늘 태풍 올라온다고 하던대요?"
나도 안다. 며칠 전부터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일기예보를 보고 있다. 내 여행계획에 지장을 주는 얘기를 하면 기상캐스터 따귀를 올려붙일 '매의 눈'으로 노려보지만, 그렇다고 날씨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을지, 태풍 따위가 내 즐거움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할 지는 내가 결정한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별예보'처럼 찾아온 둘의 갈등을 '다 집어 치우고 싶어.'라고 받아들일지,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는 과정이구나.'라고 받아들일지는 당신이 결정한다.
바로 그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메일로 '현명한 이별방법'을 알려달라거나, '아프지 않게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커플부대원들이 있는데, 그 분들에게는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그런거 업ㅅ다."
자전거만 해도 처음에 타면 엉덩이와 손바닥이 아프다. 동네에서 샤방샤방 타고 다니는 것 말고, 일산에서 출발해 여의도를 찍고 오는 정도로 타다보면 똥꼬에 물집이 잡히는 것 같은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안장의 높이나 자전거 타는 자세가 잘못되어 발생하는 통증이 아니라도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쓰다보면 근육통이 찾아오고, 적응하느라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는 언제 괜찮아 지나요?"라거나 "엉덩이가 안 아프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라는 질문을 여기저기서 해 대지만, 무슨 방법을 쓰든 결국 "참고 타다보면 적응되는 것이 진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전거만 해도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이별에 '왕도'가 있겠는가. 마음에 굳은살 박일 때 까지는 오만 번의 후회를 하고, 소주로 위세척을 하기 마련이다.
이별을 결심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상대'의 모난 모습을 하나 둘 발견하며 회의가 든다거나 저런 모습들을 다 감당하고 계속 사귈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잠시 시간을 내 '상대'가 아닌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길 권하고 싶다.
주변에서 이별을 작정했거나, 따끈따끈한(응?)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다. 상대의 단점이나 허물을 꺼내며 "이 정도면 헤어지는 게 잘 하는 거 아니냐?"라는 뉘앙스로 '참 잘했어요.'도장을 받으려 하는데, '툭하면 울어대고 갈등이 생기면 핸드폰을 꺼두는 상대' 때문에 그간 힘들었다는 사연 하나만 함께 살펴보자.
그녀는 왜 울었을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우는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함께 울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면 울 일도 없지 않았을까? 날씨가 언제나 맑을 수는 없는 것처럼, 연애하며 늘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건데, 우는 모습 하나 때문에 상대를 전부 무채색으로 칠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법'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기분 풀어주기'라는 생각으로 선물이나 이벤트 등의 진통제만 투여했던 것은 아닐까?
핸드폰을 꺼두는 것에 대해서는, "전화 받아. 안 받으면 헤어지자는 걸로 생각할게."라는 문자를 보내거나, "너만 감정 있냐? 나도 감정 있다."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거나, "제발 전화 좀 받아줘."라고 음성메시지를 남기거나, 무작정 집에 찾아가는 것 말고, 둘이 웃으며 얼굴 마주하던 순간에 작은 약속 하나 하는 건 어땠을까? 아무리 감정이 상하고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이 되더라도, '단절'되는 느낌이 나는 '핸드폰 꺼놓기'는 하지 말자고 말이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손잡고 돌아다니며 자리 뜨면 사라질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고 둘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눴어도 이런 상황이 찾아왔을까?
상대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상대를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까지는 3분도 안 걸린다. 주변 사람들도 당신 이야기를 듣고 상대에게 성격에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 할 생각인가? 울퉁불퉁한 마음으로 흠잡기 시작하면, 그 누구를 데려다 놔도 성격파탄자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함께 만들어 놓고 상대가 풀지 못했다고 손가락질 하진 말자. 풀지 못한 것은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 정말 최선을 다 했어요." 라고 말하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보자. 장소는 커피숍 앞 길거리 정도로 해두자. 이쪽에서는 어떻게든 문제를 풀려고 달래기도 해보고, 약간 언성을 높이기도 해 보고, 선물도 내밀어 보지만 상대에겐 별 변화가 없다. 눈도 잘 마주치려 하지 않고, "말해. 듣고 있어."정도의 대답만 할 뿐이다. 슬슬 인내심이 전국체전에 나간 느낌이 든다.
자, 여기서 선택이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게 이별이라면, 하자." 따위의 멘트를 날리고서는 쿨한 뒷모습을 보일 수 있고, "우린, 여기까진가 보다."라며 악수를 청할 수도 있다. "할 말 더 없으면 갈게."라며 돌아서는 상대가 점으로 변할 때 까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곤 돌아와 미니홈피의 사진첩을 닫고, 떠오르는 슬픈 문장 하나를 대문에 적어 놓을 수도 있다. 뜬금없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물에 빠졌다.
이런 생각을 했다. 주말에 옥천에서 여자친구와 자전거를 탔는데, 난 여자친구의 뒤에 있었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심을 잃고 오른쪽으로 살짝만 기울어도 저 아래 금강으로 빠지는 위험한 곳을 건널 즈음이었다. 만약, 여자친구가 저 아래 금강으로 빠지면 난 어떻게 할까? 난 수영을 못 하지만 일단 뛰어들 것 같다. 커플부대원 대부분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뭐, 내가 뛰어들었는데 나는 허우적대고 여자친구는 수영해서 물가로 나온 장면도 상상해보고, 뛰어내리는 나와 부딪쳐 여자친구가 실신하는 장면까지 떠올려 본 것은 너무 멀리 나간 상상이지만 말이다.
헤어지자는 말이 목까지 차 오른 것도 위급상황이다. 머릿속으로 그려온 사랑의 수위가 높아져서 허우적대는 것일 수도 있고, 작은 갈등도 큰 바위 처럼 생각되어 그 아래 깔려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 물에 뛰어들어 상대를 구하려 노력할 것 아닌가. 상대가 걱정과 갈등과 속상함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손 흔들지 말자. 그 걱정과 갈등과 속상함으로 뛰어들어 상대를 구해야 할 순간이니 말이다.
사랑은 잠시 접어두고, 우정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둘이 친해지는 것은 상당히 쉽다.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나오고, 뭘 하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연락을 해서 계획을 잡고 둘이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업'만 봐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닌가. '그래, 너라면 믿고 함께 할 수 있다.'라거나 '우리 대박 한 번 내자.'라며 시작한다. 거기까진 "덕칠아 놀자~"라는 일곱 살 때 마음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건 그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거다. 살아오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고 함께 여행 가던 그때의 마음으로 여전히 만나고 있는가? 세월의 풍화작용과 크고 작은 갈등들로 인해 부서진 부분도 있을 것이고, 믿었던 녀석이 뒤통수를 후려친 경우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 두 사람 마음의 싱크로율이 생각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안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정보다 기대가 큰 사랑의 경우 실망의 위험이 더 높고, 이성간의 차이를 두 사람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여자의 변덕' 하나만 가지고도 '이별해야 할 이유'를 여러 개 만들어 낼 수 있단 얘기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기 힘들어 하는 남자의 특성상 인터넷 서핑하며 전화 받다가 건성건성 대답하고 침묵이 길어지는 것을 '마음이 변했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말이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연애를 지속하는 것에 비해 쉽다. 지름신이 왔을 때처럼, 물불 가리지 않으며,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대상에 대한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게 되지 않는가. 그 마음이 사라지고 난 후엔 어떻게 되는가? 카메라는 먼지를 먹고 있고, 애지중지하던 핸드폰은 새 핸드폰이 도착하면 받게 될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샤방샤방 입고 다닐 생각으로 산 옷은 옷장 속에 들어가 당신의 "입을 옷이 없어."라는 멘트만 듣고 있지 않은가?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면 찾게 되는 핑계가 결국 "우린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아닌가. 사랑은 그 맞지 않는 곳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모난 곳 없이 잘 맞는 인연을 원하겠지만, 그건 그저 사랑을 공짜로 가지고 싶은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짜증내고 싶은 것 다 내도 흔들림 없는 사랑을 원한다면 '엄마'를 떠올려보자. 당신은 그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못된 얼굴 한 적 있지 않은가. '연인'이 아니라 '엄마'를 찾는 거라면 할 말 없지만,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연애'라면 그 맞지 않는 부분을 채워갈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까닭에 이미 선배 커플부대원들이 경험한 갈등이나 남녀의 차이, 그리고 '이건 정말 다른 사람은 이해 못 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남들도 겪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날씨처럼 바뀌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고 말이다.
무작정 지금 하고 있는 연애를 지속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위에서 얘기한 '감정'과 '믿음'과 '이해'에 대한 부분들이 뿌리째 뽑혀나간 경우도 있을 거고, 상대가 노력하길 포기했다면 일방적인 희생이 있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노예'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지 말고 함께 해보자. 연애를 혼자 시작하지 않았듯, 갈등의 순간들도 함께 해결해 보자는 얘기다. 마음에 태풍이 불어 상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이라며 묘사하지 말고, 마음이 잔잔했던 시기도 떠올려보자. 사랑 고백에 마음이 부풀고, 함께 라는 것에 하늘을 걷는 기분을 느꼈던 순간도 분명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그렇게 쉽게 상대를 '성격파탄자'로 이야기 할 순 없을 것이다.
난 올해 토마토를 길러봤는데, 길게 못자라고 줄기가 옆으로 퍼진 녀석들도 많고, 그 때문에 햇볕을 못 받아 시원찮은 토마토를 매단 나무들이 많았다. 근처 다른 분이 심은 토마토는 사람 키를 넘겨 자라며 주렁주렁 토마토를 매달았는데 말이다. 그 분과 내 토마토의 차이는 뭐였을까? 난 주말에 가끔 생각나면 들어가 밭은 둘러봤고, 그 분은 일과처럼 토마토를 돌봤다. 심는 과정은 같았지만, 난 대를 세워줘야 하는 시기에 게으름을 피웠고, 중간 중간 가지치기에도 소홀했다. 당신의 연애는 어떤가? 사랑을 심을 때만 열정적으로 달려들고, 그 후에는 그저 방치하지 않았는가? 그리곤 이제 와서 이 사랑은 내가 생각하던 사랑이 아니라며 '인연'이나 '운명'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서 다 얘기하긴 힘들지만 이별을 말하기 전 아주 잠깐만, 실망을 침묵으로 전달한 적은 없는지, 화났다는 것을 행간에 숨겨 문자를 보낸 적은 없는지, 짜증났다는 것을 괜찮다는 말로 바꿔 알리지는 않았는지, 상대에게 불에 댄듯한 고통을 안겨줘 놓고 '우는 상대'에 대한 불평만 하지 않았는지, 당신 때문에 상대의 마음이 부서졌는데 오히려 상대의 성격이 이상하다며 손가락질 하진 않았는지, 당신에게 했으면 못 참을 만한 행동을 상대에겐 쉽게 하지 않았는지, 정도 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 재미있는 여행기로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그 때까지 두근두근 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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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매뉴얼이라, 반가움을 짙게 발라 '엉덩이로 이름쓰기'같은 걸 좀 보여주고 싶지만 잠시 후 2010년의 바닷바람을 허파에 집어 넣으러 떠나야 하니 프리허그는 다음으로 미루자.
"오늘 태풍 올라온다고 하던대요?"
나도 안다. 며칠 전부터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일기예보를 보고 있다. 내 여행계획에 지장을 주는 얘기를 하면 기상캐스터 따귀를 올려붙일 '매의 눈'으로 노려보지만, 그렇다고 날씨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을지, 태풍 따위가 내 즐거움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할 지는 내가 결정한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별예보'처럼 찾아온 둘의 갈등을 '다 집어 치우고 싶어.'라고 받아들일지,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는 과정이구나.'라고 받아들일지는 당신이 결정한다.
바로 그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1. 당신을 볼 것인가, 상대를 볼 것인가.
메일로 '현명한 이별방법'을 알려달라거나, '아프지 않게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커플부대원들이 있는데, 그 분들에게는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그런거 업ㅅ다."
자전거만 해도 처음에 타면 엉덩이와 손바닥이 아프다. 동네에서 샤방샤방 타고 다니는 것 말고, 일산에서 출발해 여의도를 찍고 오는 정도로 타다보면 똥꼬에 물집이 잡히는 것 같은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안장의 높이나 자전거 타는 자세가 잘못되어 발생하는 통증이 아니라도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쓰다보면 근육통이 찾아오고, 적응하느라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는 언제 괜찮아 지나요?"라거나 "엉덩이가 안 아프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라는 질문을 여기저기서 해 대지만, 무슨 방법을 쓰든 결국 "참고 타다보면 적응되는 것이 진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전거만 해도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이별에 '왕도'가 있겠는가. 마음에 굳은살 박일 때 까지는 오만 번의 후회를 하고, 소주로 위세척을 하기 마련이다.
이별을 결심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상대'의 모난 모습을 하나 둘 발견하며 회의가 든다거나 저런 모습들을 다 감당하고 계속 사귈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잠시 시간을 내 '상대'가 아닌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길 권하고 싶다.
주변에서 이별을 작정했거나, 따끈따끈한(응?)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다. 상대의 단점이나 허물을 꺼내며 "이 정도면 헤어지는 게 잘 하는 거 아니냐?"라는 뉘앙스로 '참 잘했어요.'도장을 받으려 하는데, '툭하면 울어대고 갈등이 생기면 핸드폰을 꺼두는 상대' 때문에 그간 힘들었다는 사연 하나만 함께 살펴보자.
그녀는 왜 울었을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우는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함께 울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면 울 일도 없지 않았을까? 날씨가 언제나 맑을 수는 없는 것처럼, 연애하며 늘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건데, 우는 모습 하나 때문에 상대를 전부 무채색으로 칠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법'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기분 풀어주기'라는 생각으로 선물이나 이벤트 등의 진통제만 투여했던 것은 아닐까?
핸드폰을 꺼두는 것에 대해서는, "전화 받아. 안 받으면 헤어지자는 걸로 생각할게."라는 문자를 보내거나, "너만 감정 있냐? 나도 감정 있다."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거나, "제발 전화 좀 받아줘."라고 음성메시지를 남기거나, 무작정 집에 찾아가는 것 말고, 둘이 웃으며 얼굴 마주하던 순간에 작은 약속 하나 하는 건 어땠을까? 아무리 감정이 상하고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이 되더라도, '단절'되는 느낌이 나는 '핸드폰 꺼놓기'는 하지 말자고 말이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손잡고 돌아다니며 자리 뜨면 사라질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고 둘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눴어도 이런 상황이 찾아왔을까?
상대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상대를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까지는 3분도 안 걸린다. 주변 사람들도 당신 이야기를 듣고 상대에게 성격에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 할 생각인가? 울퉁불퉁한 마음으로 흠잡기 시작하면, 그 누구를 데려다 놔도 성격파탄자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함께 만들어 놓고 상대가 풀지 못했다고 손가락질 하진 말자. 풀지 못한 것은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2. 던져 버릴 것인가, 감싸 안을 것인가.
"전 정말 최선을 다 했어요." 라고 말하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보자. 장소는 커피숍 앞 길거리 정도로 해두자. 이쪽에서는 어떻게든 문제를 풀려고 달래기도 해보고, 약간 언성을 높이기도 해 보고, 선물도 내밀어 보지만 상대에겐 별 변화가 없다. 눈도 잘 마주치려 하지 않고, "말해. 듣고 있어."정도의 대답만 할 뿐이다. 슬슬 인내심이 전국체전에 나간 느낌이 든다.
자, 여기서 선택이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게 이별이라면, 하자." 따위의 멘트를 날리고서는 쿨한 뒷모습을 보일 수 있고, "우린, 여기까진가 보다."라며 악수를 청할 수도 있다. "할 말 더 없으면 갈게."라며 돌아서는 상대가 점으로 변할 때 까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곤 돌아와 미니홈피의 사진첩을 닫고, 떠오르는 슬픈 문장 하나를 대문에 적어 놓을 수도 있다. 뜬금없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물에 빠졌다.
이런 생각을 했다. 주말에 옥천에서 여자친구와 자전거를 탔는데, 난 여자친구의 뒤에 있었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심을 잃고 오른쪽으로 살짝만 기울어도 저 아래 금강으로 빠지는 위험한 곳을 건널 즈음이었다. 만약, 여자친구가 저 아래 금강으로 빠지면 난 어떻게 할까? 난 수영을 못 하지만 일단 뛰어들 것 같다. 커플부대원 대부분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뭐, 내가 뛰어들었는데 나는 허우적대고 여자친구는 수영해서 물가로 나온 장면도 상상해보고, 뛰어내리는 나와 부딪쳐 여자친구가 실신하는 장면까지 떠올려 본 것은 너무 멀리 나간 상상이지만 말이다.
헤어지자는 말이 목까지 차 오른 것도 위급상황이다. 머릿속으로 그려온 사랑의 수위가 높아져서 허우적대는 것일 수도 있고, 작은 갈등도 큰 바위 처럼 생각되어 그 아래 깔려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 물에 뛰어들어 상대를 구하려 노력할 것 아닌가. 상대가 걱정과 갈등과 속상함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손 흔들지 말자. 그 걱정과 갈등과 속상함으로 뛰어들어 상대를 구해야 할 순간이니 말이다.
3. 사랑은 공짜가 아니다.
사랑은 잠시 접어두고, 우정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둘이 친해지는 것은 상당히 쉽다.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나오고, 뭘 하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연락을 해서 계획을 잡고 둘이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업'만 봐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닌가. '그래, 너라면 믿고 함께 할 수 있다.'라거나 '우리 대박 한 번 내자.'라며 시작한다. 거기까진 "덕칠아 놀자~"라는 일곱 살 때 마음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건 그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거다. 살아오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고 함께 여행 가던 그때의 마음으로 여전히 만나고 있는가? 세월의 풍화작용과 크고 작은 갈등들로 인해 부서진 부분도 있을 것이고, 믿었던 녀석이 뒤통수를 후려친 경우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 두 사람 마음의 싱크로율이 생각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안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정보다 기대가 큰 사랑의 경우 실망의 위험이 더 높고, 이성간의 차이를 두 사람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여자의 변덕' 하나만 가지고도 '이별해야 할 이유'를 여러 개 만들어 낼 수 있단 얘기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기 힘들어 하는 남자의 특성상 인터넷 서핑하며 전화 받다가 건성건성 대답하고 침묵이 길어지는 것을 '마음이 변했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말이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연애를 지속하는 것에 비해 쉽다. 지름신이 왔을 때처럼, 물불 가리지 않으며,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대상에 대한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게 되지 않는가. 그 마음이 사라지고 난 후엔 어떻게 되는가? 카메라는 먼지를 먹고 있고, 애지중지하던 핸드폰은 새 핸드폰이 도착하면 받게 될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샤방샤방 입고 다닐 생각으로 산 옷은 옷장 속에 들어가 당신의 "입을 옷이 없어."라는 멘트만 듣고 있지 않은가?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면 찾게 되는 핑계가 결국 "우린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아닌가. 사랑은 그 맞지 않는 곳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모난 곳 없이 잘 맞는 인연을 원하겠지만, 그건 그저 사랑을 공짜로 가지고 싶은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짜증내고 싶은 것 다 내도 흔들림 없는 사랑을 원한다면 '엄마'를 떠올려보자. 당신은 그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못된 얼굴 한 적 있지 않은가. '연인'이 아니라 '엄마'를 찾는 거라면 할 말 없지만,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연애'라면 그 맞지 않는 부분을 채워갈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까닭에 이미 선배 커플부대원들이 경험한 갈등이나 남녀의 차이, 그리고 '이건 정말 다른 사람은 이해 못 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남들도 겪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날씨처럼 바뀌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고 말이다.
무작정 지금 하고 있는 연애를 지속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위에서 얘기한 '감정'과 '믿음'과 '이해'에 대한 부분들이 뿌리째 뽑혀나간 경우도 있을 거고, 상대가 노력하길 포기했다면 일방적인 희생이 있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노예'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지 말고 함께 해보자. 연애를 혼자 시작하지 않았듯, 갈등의 순간들도 함께 해결해 보자는 얘기다. 마음에 태풍이 불어 상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이라며 묘사하지 말고, 마음이 잔잔했던 시기도 떠올려보자. 사랑 고백에 마음이 부풀고, 함께 라는 것에 하늘을 걷는 기분을 느꼈던 순간도 분명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그렇게 쉽게 상대를 '성격파탄자'로 이야기 할 순 없을 것이다.
난 올해 토마토를 길러봤는데, 길게 못자라고 줄기가 옆으로 퍼진 녀석들도 많고, 그 때문에 햇볕을 못 받아 시원찮은 토마토를 매단 나무들이 많았다. 근처 다른 분이 심은 토마토는 사람 키를 넘겨 자라며 주렁주렁 토마토를 매달았는데 말이다. 그 분과 내 토마토의 차이는 뭐였을까? 난 주말에 가끔 생각나면 들어가 밭은 둘러봤고, 그 분은 일과처럼 토마토를 돌봤다. 심는 과정은 같았지만, 난 대를 세워줘야 하는 시기에 게으름을 피웠고, 중간 중간 가지치기에도 소홀했다. 당신의 연애는 어떤가? 사랑을 심을 때만 열정적으로 달려들고, 그 후에는 그저 방치하지 않았는가? 그리곤 이제 와서 이 사랑은 내가 생각하던 사랑이 아니라며 '인연'이나 '운명'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서 다 얘기하긴 힘들지만 이별을 말하기 전 아주 잠깐만, 실망을 침묵으로 전달한 적은 없는지, 화났다는 것을 행간에 숨겨 문자를 보낸 적은 없는지, 짜증났다는 것을 괜찮다는 말로 바꿔 알리지는 않았는지, 상대에게 불에 댄듯한 고통을 안겨줘 놓고 '우는 상대'에 대한 불평만 하지 않았는지, 당신 때문에 상대의 마음이 부서졌는데 오히려 상대의 성격이 이상하다며 손가락질 하진 않았는지, 당신에게 했으면 못 참을 만한 행동을 상대에겐 쉽게 하지 않았는지, 정도 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 재미있는 여행기로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그 때까지 두근두근 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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