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수 많은 매뉴얼을 연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의 뻔한 밀당에도 정신줄을 놓거나 상대의 어장에 들어가 헤엄치고 있는 대원들이 있어 가슴이 아프다. 그런 대원들 중 대부분이 여린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남에게 피해 안 주며 열심히 살고 있는 대원들이라 더 가슴이 아프다.
겨울철, 얼어버린 호숫가에 초췌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는 갈대 같은 대원들. 이 대원들을 위해 오늘은 "거기 밖에서 떨지 말고, 들어와서 몸 좀 녹이세요."라며 핫초코를 건네는 기분으로 그 대처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무게중심 잡은 후 출발해 보자.
기본적으로, "애인처럼 굴지만 사귀자고 하지 않는 남자"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대원들은, 거래로 치자면 이미 '선입금'을 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물건을 받기도 전에 미리 돈을 보내듯 이미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줘 버린 거다.
선입금을 했는데, 상대가 물건을 보내지 않아 똥줄이 타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시기의 마음상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금을 해약해 최신형 카메라를 하나 질렀는데, 쇼핑몰 정보창에는 '입금 확인중'만 일주일 째 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분명 수차례 해당 상점으로 전화를 걸고, '피해보상'에 관련된 글을 검색하며, 일상의 모든 신경을 그 '거래'에 쏟을 것 아닌가. 거래는 구매취소를 눌러 돈을 돌려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피해보상까지 받을 수 있겠지만, 연애엔 그런 거 없다.
그런 까닭에 이 시기엔 "확실한 대답을 듣겠다."며 상대를 추궁하거나 떠보며, 마음의 환불이나 피해보상을 받으려고 하지 말길 권한다. 그동안 상대가 분명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충분한 '여지'를 남기거나, 사귀는 사이처럼 행동했는가? 그 부분에 대한 답을 상대에게 들으려 하지 말고, '그가 다른 여자에게도 나에게 한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연애가 막 시작되려는 상황에서 '다른 여자에게도'라는 생각을 한다면 피해의식과 망상에 시달릴 위험이 있지만, '선입금'을 했는데 상대에게서 소식이 없는 경우라면 이 방법을 사용해 먼저 보낸 당신의 마음부터 찾아와야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상대에 대한 자리를 줄이는 것이다. 세상에 '상대'와 '나' 이렇게 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상대가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대표적인 멘트를 일단 몇 개 정리하자.
"나 나쁜 남자야. 나랑 사귀면 네가 힘들어 질 거야. 그러니까 좋아하지 마."
"연인이 되면 언젠가 헤어질 수 있잖아. 너랑은 그러기 싫으니까, 연애는 하지 말자."
그러니까, 위의 멘트들을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참 괜찮기는 한데 당신에게 반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시기에 그래도 괜찮다며 상대가 깔아놓은 '면죄부'를 인정하고 연애를 시작해 버리면 머지않아 눈물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면죄부'를 꺼내들 것이고, 당신은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알콜과 일촌을 맺게 된단 얘기다.
솔로부대원들이 무서워하는 '밀당'에 비유하자면, 상대의 저 신호는 당신이 밀어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시작하는 연애는 '노예계약'이 되고, 당신에겐 상대의 모든 행위를 다 이해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고난이 시작된다.
스스로 나쁜 남자라고 말하는 남자는 나쁜 남자로 인정하자. 나쁜 남자란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닌 '상황'의 문제인 까닭에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농사를 빨리 시작하고 싶다고 겨울에 모내기를 하는 농부는 없지 않은가. 상대가 '면죄부'를 내려놓고 마음으로 다가올 때 까지 '상대'보다 '나'에 더 관심을 두고, '나'를 더 사랑하자.
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제 상대에게서 '자유로워지기'로 마음먹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자. 당신이 일산에, 상대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간 둘의 대화는,
당신 - 일산? 왜?
상대 - 그냥. 근데 갈까 말까 생각 중이야.
당신 - 뭐야. 놀러오려고 했던 거야?
상대 - 응. 그럴까 했지. 저녁에 뭐해?
당신 - 나? 그냥 집에 있지 뭐. 왜? 만나자고?
상대 - 아니, 봐서 시간 괜찮으면 만나도 되고.
당신 - 일산 오면 연락해. 저녁 같이 먹자.
상대 - 가게 되면 연락할게. (이 이후로 연락두절)
대략 이런 식의 진행이 많았을 것이다. 자기가 필요한 시간에 연락해서는 이쪽의 마음을 책 페이지 넘기듯 아무렇게나 넘겨보고, 확인이 끝나면 아무렇지 않게 덮는 일의 연속. 분명 그 시간엔 상대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나 느낌을 마구 뿜어대며 다가왔기에 당신이 '이건 사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상대의 이런 연락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마음은 먹었지만 상대에게 연락이 오면 또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대원들을 위해 예문을 적자면 이렇다.
당신 - 그래? 약속 있나 보네. 재미있게 놀아~
상대 - 아냐. 약속 있어서 가는 거 아냐.
당신 - 응. 암튼 잼나게 놀다가.
상대 - ......
이전 대화 이후 상대가 연락두절 되었던 것과 달리, 이와 같은 대처 후에는 저녁에 상대의 연락이 오게 될 것이다. 필요할 때 마음껏 연애의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창고가 닫힌 이유가 무엇인가 상대는 궁금증에 시달리게 되고, 갑자기 바뀐 상황에 겁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다시 예전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내미는 당근을 덥석, 물곤 다시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선 절대 안 된다. '사람'이 바뀌려면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잠깐 바뀌었다가 다시 돌아간다면, 상대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상대에게 실천을 통해 보여주자. 그럼 분명, '사람'이 바뀔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기대지 말자. 연락오길 기다리고, 고백해 주길 기대하고, 스스로 서지 못해 상대에게 기대려 하는 행동들이 상대로 하여금 당신을 24시간 아무 때나 찾을 수 있는 편의점으로 생각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여린마음이라 거절을 잘 못하고, 남에게 상처가 될까봐 심한 말 못하는 성격들이 더해지면 최악의 경우 상대는 당신을 24시간 열려있는 놀이터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거절한 건 거절하고, 자를 건 자르고, 닫을 건 닫자. 영화 <부당거래>에서 주양의,
라는 대사처럼, 당신을 희생해가면서 까지 계속 호의를 베풀어 값싸게 만들지 말자. 당신이 상대보다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위하기 시작하면, 자연히 상대도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위할 것이다. 그를 향해 계속 흘려보내던 마음의 물줄기를, 이제 스스로를 향해 돌려 놓자. 그게 애인처럼 굴지만 사귀자고 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확실한 대처방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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