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대학교에 입학하는 여동생을 위한 연애매뉴얼

by 무한 2011. 1. 26.

사촌 여동생에게 보내는 글인 까닭에 이번 글은 편지쓰듯 편하게 작성하겠습니다. 이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촌들도 많을 텐데, 명절에나 가끔 보게 되는 사촌 오빠가 이렇게 깝치는 게 미안하구나. 그래도 가끔은 생각지도 않았던 사촌들의 한 마디가 '십자드라이버'의 역할을 할 때도 있으니, 이 글은 공구통에 넣어 뒀다가 맨손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꺼내 사용하길 바란다.

노트북이나 DSLR을 더 원할 텐데, '학점 잘 받는 법'도 아닌 '대학연애매뉴얼' 따위를 써 주는 것이 또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 매뉴얼은 네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인터넷도, 사진도, 공부도 재미없을 때 '휴대폰 충전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두고 싶다. 연애는 삶의 한 축을 돌려주는 동력이 될 수 있단다. 이 동력이 고장 나면 망망대해에서 마음만 동동 떠 표류할 수 있으니, 네가 청춘의 미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매뉴얼을 작성한다.

그렇다고 연애 얘기만 할 수는 없으니, 대학생활에 대해서는 '개근'에 힘쓰길 바란다는 부탁도 함께 적어 둔다. 그 어떤 이유가 있든,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가기만 해도 대학생활의 8할은 성공한 거란다. 대학생활에 취하지 말고, 대학생활을 취하길 바란다. 그것 말고는 별로 중요한 것이 없기에 자잘한 이야기들은 구정이나 추석에 만나 뻘줌하게 나눠보도록 하자.

자, 그럼 대학생 솔로, 커플부대원이 보내온 사연과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엑기스들을 집대성한 대학연애매뉴얼, 출발하자.


1. 마음이 없다면 명확하게 밝혀라


말 많은 남자 선배나 남자 동기의 대시를 받을 경우, 마음이 없다면 절대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지 말길 바란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에, 이성으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따로 만나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그런 행동들은 훗날 네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일'로 돌아와 너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단다.

이를테면, 넌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상대는 그런 너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사람들에게 네가 '어장관리' 한다고 이야기 하거나, 둘이 사귀는 사이인양 여기저기 이야기 하고 다닌 까닭에 정말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너와 가까워지기 어렵게 만든다거나, 너와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너와 잘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학과 모임에 나가도 억지로 옆에 앉게 된다거나 뭐 그런 일들 말이다. 이런 일들은 4년 내내 그 사람들과 마주쳐야 하는 대학생활에서는 치명적인 일이란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로 인해 학과 사람들과 멀어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며, 심한 경우 '발 없는 말'을 열심히 기르고 있는 상대 때문에 휴학하는 경우도 있단다. 그런 상대와는 아무리 대화를 해 봐야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너를 '나쁜 사람' 만들려고 할 뿐이니, 이런 진흙탕에 발 들여 놓지 않도록 애초에 마음을 명확하게 밝히길 바란다.


2. 여행은 몰라도, 동거는 절대 하지 마라


너나 나나 이제 어른인 까닭에 어차피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자취방에서 외박을 하거나 동거는 하지 말길 권한다. 둘 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속삭일 시간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여행을 가라. 여행이 부담스럽다면 자취방이 아닌 그 어디라도 좋으니 절대 그의 자취방에서 외박을 하거나 동거를 하지 말길 권한다.

동거를 시작하는 순간, 그의 자취방은 네 연애의 무덤이 될 수 있단다. 잠깐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곧 권태로운 날들이 시작될 것이며, 상대에게 추리닝 입고 가기 어려운 '백화점'이었던 넌, 슬리퍼 질질 끌고 언제든 갈 수 있는 '편의점'처럼 될 위험이 있다. 외박이나 동거로 인해 상대는 점점 나무늘보 화 되어갈 것이며,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이별' 밖에 없다. 네가 "나무늘보 같은 상대라도, 함께 할 수 있으면 괜찮아."라고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상대가 나무늘보의 역할을 때려치우기 위해 너에게 먼저 이별을 이야기 할 거란다. 난 네가 이십대의 첫 연애를 나무늘보와 하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3. 좋아한다면, 존경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생겨날 수 있는 거란다. 만약, 눈이 많이 와 네가 우산을 쓰고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비주얼이 괜찮은 한 남자가 "인문대학까지만 같이 쓸 수 있을까요?"라며 네 우산 속으로 뛰어들면 또 그냥 마음이 두근 반 세근 반 하며 '인연'이나 '운명'같은 단어가 떠오를 수 있단 얘기다.

대학은 청춘들이 모여 있는 곳답게, 연애욕구의 밀도도 상당히 높은 곳이란다. 시험기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캔커피와 번호를 건네는 사람도 있을 거고, 강의를 듣는데 수업시간 내내 네 얼굴을 대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거고, 하굣길에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와 커피를 한 사발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물론,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너에겐 분명 일어날 거라 확신한다.

마음이 말랑말랑한 이십대 초반에는 '인연'이나 '운명'이란 단어에 민감한 까닭에 이러한 들이댐을 '인연'이나 '운명'으로 착각하기가 쉽단다. 뭐, 서로 상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틀린그림찾기'하며 끝나는 것이 꼬꼬마 시절의 연애이긴 하지만, 네가 막연히 '인연'이나 '운명'에 사로잡혀 큰 그림만 그리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거든, 그 사람을 존경할 수 있는지도 천천히 생각해 보길 권한다. 다른 이들이 무작정 그 나이엔 그냥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얘기하지만, 단순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것은 족발을 먹겠다며 청계천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과 같단다. 족발을 먹으려면 장충동으로 가야지, 헌책과 공사용 공구들이 즐비한 곳에서 열심히 돌아다녀봐야 다리만 아픈 것 아니냐. 장충동으로 가는 일이 바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란다.

그 시기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훗날 네 인생이 바뀔 수 있단다. 난 컴퓨터 자판을 칠 때 오른쪽 쉬프트 키를 눌러야 하는 것도 늘 왼쪽 쉬프트 키를 누르며 쳐왔기에 지금도 타자를 질 때엔 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단다. 이처럼 이십대의 첫 연애는 컴퓨터 자판을 치는 습관처럼 앞으로의 네 연애를 길들일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잡기를 익히느라 등록금을 당구장 같은 곳에 갖다 바치거나 세상을 무작정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감사할 줄 알고 성실하며 무엇보다 널 존중해 주는 사람과 만났으면 한다.


4. 캠프파이어를 오래 하려면 장작을 아껴라
 

연애의 시작은 캠프파이어와 같단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모닥불을 둘러싸고 벌이는 놀이 말이다. 그 즐거움의 유효기간은 모닥불의 수명과 같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즐거움을 느끼느라 정신줄을 놓아 버리면, 장작을 계속 더 넣게 되고 결국 모닥불은 활활 타올랐다가 금방 꺼진단다. 

진짜 연애는 바로 이 모닥불이 꺼진 후에 시작된단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동안 '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만들지 못한 커플들이 모두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이고, 캠프파이어의 종료와 함께 잊혀지게 되는 거란다. 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 <성경>에서 사랑에 대해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라는 이야기를 첫 문장으로 내세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제 막 이십대의 첫 연애를 시작했다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서로 헤어져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못내 아쉽겠지만, 그런 시간들이 둘의 마음을 발효시켜 사랑으로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서로의 생활도 접어두고 만나는 연애는 모든 장작을 다 쏟아 붓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네 모든 신경을 연애에만 집중하게 되면, 그 연애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널 지탱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자꾸자꾸 사랑의 마음이 커질 때에는 그 마음을 상대에게 모두 쏟을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네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것들, 그리고 너 자신에게 나눠줄 수 있길 권한다. 이 불우한 사촌오빠에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도 좀 사주고 말이다.(응?)


실수해도 괜찮다. 난 군대에 있을 때 '사진'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사회에 나와 처음 사진을 찍을 땐 렌즈캡을 열지 않은 채, "아오, 이거 카메라가 불량인가?"라며 셔터스피드와 조리개, 그리고 ISO만 한참 조정했다. 그 후에도 어두운 곳에서 찍다가 밝은 곳에 나가 찍으며 ISO를 조정하지 않았던 일이라든가, AF-C로 간디(애완견)를 찍곤 다시 AF-S로 조정하지 않아 계속 사진의 핀이 나갔던 일이라든가 하는 실수를 했다. 그런 실수들은, 누구의 조언이나 책으로 공부한 것들 보다 효과적으로 각인이 된다. 그러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란 얘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사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아름다운 꽃 같은 네가, 그 나비와 벌과 바람과 태양과 함께 살며 환하게 피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입학, 축하한다. 




▲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그 짙은 청춘을 만끽하고 있을 때, 경비아저씬 "학생 나와!" 라고 말했지.(응?)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