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자, 여린 마음을 매력으로 바꾸는 방법
난 예민한 피부 때문에 늘 고생을 한다. 이런 얘기를 지인들에게 하면 "으아니! 그렇게 건장한 자네가 예..예민한 피부라니!"라며 식은땀을 흘리곤 하지만, 새 신발을 신으면 신고식처럼 경험하게 되는 물집이나 어색한 자세로 조금만 움직여도 벌겋게 부어오르는 피부 때문에 괴롭다. 길거리에 있는 '야구 배팅 연습장'에 들어가 방망이만 몇 번 휘둘러도 손에 물집이 잡히니 말이다.
아침부터 여기다 내 예민한 피부 얘기를 깨알같이 적으려는 건 아니고, 예민한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괴로워 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자 피부 얘기를 좀 적어봤다. 우리 '여린 마음 동호회'회원들이 누구인가, 바로 마음이 예민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마음이든 피부든 예민하면 아프기 쉽다. 겁먹기 쉽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라는 말에, 또 한 번 상처받기 쉽다.
성격개조를 하네 처세술을 익히네 하며, 마음에 보호필름 붙이고 가면 쓰는 일은 그만 두어도 좋다. 맞지 않는 옷을 남들 보기 좋으라고 억지로 입었다간 탈이 나기 마련 아닌가. 여린 마음도 매력이다. 그 매력을 숨겨둔 채 남들 따라 하기에 열 올리지 말고, 그 매력을 더 보일 수 있게 창을 내자.
...(중략)...
님 그려 하 답답할 제면 여닫어나 볼까 하노라
- 작자 미상
자, 그럼 창 좀 내보자.
아는 사람에게 상자를 몇 개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중 일부에는 '취급주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고 해보자. 그대는 일반상자와 '취급주의'스티커가 붙어 있는 상자 중 어느 상자를 더 조심스레 옮기겠는가? 뭐가 붙어 있든 신경 안 쓴다고 하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취급주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 박스는 아무래도 좀 더 조심해서 다루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취급주의'스티커만 붙여도 '조심해 주세요.'라는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왜 상대에게 강한 상자인 척 하거나, 상대가 깨뜨리면 책임을 물을 준비만 하고 있는가. 강철로 만든 박스에 넣더라도, 깨지기 쉬운 여린 마음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강한 척 하다가 결국 마음이 깨져 버리면, 마음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파편에 찔려 괴로운 법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그대를 일반 상자처럼 대하는 상대가 있다면 '깨지기 쉬우니, 조심해 주세요.'라고 알리자. 그대의 그 부탁은 상대의 '조심성'을 일깨움과 동시에, 남자 특유의 '부탁 처리 프로세서'를 가동시켜 그대에게 더 집중하는 효과를 이끌어 낼 테니 말이다.
여린 마음 동호회 회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확인 받아야만 자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그 신중함은 훌륭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만약의 경우'에 대해 묻는 일이 잦아진다면, 상대는 그대를 수동적이며 늘 염려하는 사람으로 인식해 버릴 위험이 있다.
늘 염려하고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아야만 안심하는 사람에 대한, 집단의 평가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본명도 모르고, 서로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염려와 불안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점점 '짐'취급을 받게 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한 두 번은 손 내밀며 도와주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나중엔 '부담'이란 낙인이 찍힌 채 집단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이 많다. 그렇게 변두리로 밀려나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변했어.'라든가 '첫 모습은 다 가식이었나.', 혹은 '여기서도 또 이래.'라며 벽을 향해 돌아 앉게 된다.
그 모습은 여린 마음 동호회 회원의 연애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불안에 시달리며 확인받으려 하다, 결국 칼자루를 쥔 상대에게 무릎을 꿇은 채 목을 내미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뭐, 오랜 여린 마음 동호회 생활 끝에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갖게 된 대원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도 결국 상대에게 문자나 메일로 저주를 퍼붓는 소심한 복수를 할 뿐이다.
확인은 후불제로 하자. 몇 번 만나보고, 대화도 나눠보고 그런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사귈 것도 아니면서 연락을 했다든가, 전화 통화를 했다고 체포되는 거 아니다. 둘의 간격을 세 걸음 이내로 좁혀 더 알아보자. 상대의 마음을 선불로 받으려 하면, 아직 확인 받지 못한 것에 계속 마음이 쓰여 집중도 할 수 없는 법이다. 그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하는 염려 속에서 맴돌다 부정출발을 하거나, 주저앉아 버리진 말자. '확인 후불제'를 사용하면, 그대에게 '마이너스'였던 염려가 '플러스'인 신중함으로 바뀔 것이다.
사람은 라디오와 비슷하다. 딱딱한 뉴스만 보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의 채널을 조금만 조정하면 달콤한 방송이 나온다. 어느 주파수에 익숙하냐에 따라 다를 뿐이지, 한 가지 채널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대가 여린 마음에 익숙할 뿐이지, 그렇다고 과감한 행동을 전혀 못 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안녕하세요'채널로 맞춘 후 점점 자신에게 익숙한 채널로 옮겨간다. 그런데 이 '안녕하세요'채널이라는 게, 일반 채널과는 가깝지만 '여린 마음'채널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안녕하세요' 채널이 91.9라면, 일반채널이 89.1, 그리고 '여린 마음' 채널은 107.7이라고 할까.
거리상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여린 마음'채널에서는 가사가 없는 노래들이 주로 나온다. 어느 모임에 가든 별 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거나, 때로는 자신에게서도 벗어나 그 모임을 구경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경우엔, 애써 일반채널에 맞춰가며 스스로도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형편없는 대화를 나누기보다, 상대를 주파수를 '여린 마음'채널에 맞춰보길 권한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도 '여린 마음'채널은 분명 있다. 89.1에서 107.7로 변경할 땐, 채널을 계속 올려 91.9를 통과 한 뒤 더 올리는 것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얘기도 좀 꺼내고 싶었는데, 요즘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까닭에 무슨 말인지 모를까봐, 그 얘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한 지인이 연애에서 '남들처럼'하려다가 넘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원목을 투박하게 잘라 만든 커다란 테이블과 언제든 통기타 연주가 가능한 무대가 있는 '라이브 카페'같은 사람이었는데, 남들이 "그런 건 유행이 지났고, 요즘은 깔끔한 인테리어로 단장하고 바리스타가 있는 커피 전문점이 대세."라고 하는 말에,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새 메뉴판을 걸어 놓았다. 그러나 투박한 테이블과 세련된 커피잔은 불협화음을 냈고, 통기타 연주가 가능한 무대는 그저 쓸모없는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대도 혹시, 자신의 매력이 될 수 있는 여린 마음을 그저 연애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그 여린 마음으로 피해의식과 오해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위에서 얘기한 부분들을 토대로 잘만 손보면, 그 여린 마음은 '신중함'이 될 수 있고, 또 상대의 여린부분도 생각해 줄 수 있는 '배려'가 될 수 있다. '슬픈 예감'만을 수신하는 안테나를 조절하면, '달콤한 미래'에 대한 계획도 짤 수 있고 말이다. 자, 그대 이제, 상대가 들을 수 있게 볼륨부터 좀 높여 보지 않겠는가?
▲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면, 카세트에 공 테이프 넣고...저작권 위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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