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연애가 힘든 이유는?
작년 이맘때 쯤, 우리 동네엔 큰 갈빗집이 하나 생겼다. 셀프세차장이 있던 곳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 일반 갈빗집 세 개는 합쳐 놓을 정도로 큰 식당이었다. 그 갈빗집은 ‘수제갈비’란 현수막을 여기 저기 붙이고, 요리사가 직접 갈비를 손질하는 사진을 간판에 넣을 정도로 ‘갈비 전문’을 강조했다. 친구들과 그 갈빗집에 처음 갔던 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맛이야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갈비가 너무 비쌌다. 의도적으로 가격표를 그렇게 배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격표는 바깥에서 보기 힘들도록 에어컨 옆이나 TV옆에 숨어 있었다. 그 식당을 찾은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가격표를 발견했을 땐, 볼일을 보고 난 후 휴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표정을 지었다. (애들은 따로 주면 되니 2인 분만 달라고 하던 아내와, 아내의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에게 위로를.) 애써 찾아가야 하는 곳에, 애써 이해해야 하는 가격으로, 아이들의 식사량까지 부인하며 먹어야 하는 갈빗집엔 시한부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식당 문 열 때 받은 화환들이 시들기도 전에 그 갈빗집은 ‘새 메뉴’를 내놨다. 내장탕과 소머리국밥. 원래 만 원짜리 메뉴인데 팔천 원에 준다고 쓰여 있었다. 인근 식당에선 내장탕과 소머리국밥이 칠천 원이었다. 난 ‘왜 할인해서 파는 메뉴가 다른 식당보다 비싼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리고 사 먹지도 않았다.
묻지도, 사 먹지도 않은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그 식당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새 메뉴’가 등장했다. 선지해장국과 뼈해장국. 그 두 메뉴는 마음에 들었기에 나도 몇 번 찾아가 먹었는데, 가서 먹을 때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앞에 선 유태인이 된 느낌이었다. “뼈 두 개만요?”라는 질문을 하는 주인아줌마의 말투와 표정에선 ‘갈빗집에 와서 고작 주문한다는 게 해장국이냐? 다른 메뉴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깍두기 더 달라고 하면 네 놈들 숨통을 끊어 놓겠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다른 손님들도 그런 압박감을 느꼈는지, 다들 나처럼 발길을 끊었다. 그 이후에 추가된 냉면, 국수, 칼국수, 갈매기살, 곱창, 막창, 보리밥 등에 대한 얘기는 생략하자. 어쨌든 그 식당은 몇 달 지나지 않아 ‘갈비천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방대한 메뉴를 가지게 되었다. 시작은 갈비 하나로 미약했지만, 그 나중은 베스킨 라빈스를 뺨칠 정도의 메뉴로 창대해 진 것이다. 그렇게 메뉴를 늘리며 반 년 정도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던 식당은 올 초 한파에 요단강을 건너고 말았다.
자, 갈빗집 얘기는 이쯤하고, 이젠 저 ‘갈비천국’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에 대해,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비싼 갈비’의 컨셉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런 갈빗집을 필요로 하는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 장소를 고집할 거라면 ‘비싼 갈비’의 컨셉 대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갈빗집 주인은 ‘일단 오픈하면 결과가 나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는지 그곳에 그 갈빗집을 열었고, 결국 그렇게 퇴장을 했다.
그저 감정 하나에 의지해 막연히 ‘저지르면, 결과가 나오겠지’라며 행동하는 것은 갈빗집 주인과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회원들의 공통점이다. 교차로에서 잠시 신호대기 하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차 문을 열고 타려한다면 겁먹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급히 차를 좀 얻어 타야 한다면 노크를 하고, 목적지를 묻고, 사정을 설명하자. 눈앞에 차가 있다고 해서 다짜고짜 문부터 열지 말고 말이다.
갈빗집 주인과 금사빠 회원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자신의 바람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때면 ‘퍼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갈빗집 주인을 보자. 그는 갈비를 찾는 손님이 없자 끊임없이 새 메뉴를 내걸었다. 하지만 그렇게 ‘갈비 전문’이라는 현수막이 부끄러울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님은 없었다. 손님이 왜 없는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대책 없이 퍼주기만 한 것이다.
금사빠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이성교제’란 메뉴를 걸었다가 반응이 없으면 ‘술이나 한 잔’이란 메뉴를 건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영화나 한 편’이나 ‘밥이나 한 번’등의 메뉴를 건다. 그렇게까지 서서히 메뉴를 늘려가다 결국, ‘연락만이라도 할 수 있는 사이’라든가 ‘나 혼자라도 지켜보는 사이’등의 이야기를 하며 스러져 간다.
메뉴의 인기가 없으면 ‘통 큰 제안’을 하는 것도 문제다. 무작정 가격만 내리면 손님이 많아질 거라 착각하는 갈빗집 주인처럼, 금사빠 회원들은 밥을 사거나 선물을 하면 상대의 마음이 자신을 향할 거란 착각을 한다. 그리곤 그게 착각이라는 것도 모른 채,
라는 생각만 하며 다음 ‘퍼주기’를 준비한다. 자신의 정체성도 잊은 채 계속해서 메뉴를 늘려가는 갈빗집 주인처럼, 금사빠 회원들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인지도 불확실한 채로 그저 열심히만 한다.
둘의 공통점 중 하이라이트는 ‘압박’이다. 이건 위에서 말한 ‘퍼주기’와도 관련이 있는데, 둘은 부탁하지도 않은 퍼주기를 스스로 해 놓고는 그걸 받으려고 하면 ‘것 봐. 이럴 줄 알았어.’라며 함정수사를 마친 형사의 표정을 짓는다.
먼저 영화표 있다며 영화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해 놓고, 상대가 토요일은 어렵고 혹시 일요일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라는 대답을 했다는 대원이 있었다. 그 대원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좋을지 모르겠다. 저건 데이트신청이 아니라, 싸우자고 멱살을 잡는 것과 같다. 설마 저 말을 들은 상대가,
라는 대답을 할 거란 기대라도 하고 있는 건가? 상대의 멱살을 잡아놓곤, 큰 절 받길 기대하고 있는 대원들 때문에 난 총 맞은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외에도 ‘눈치주기’나 ‘가르치기’등의 기술을 사용해 상대를 압박하는 대원들이 있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 보자. 내가 그대에게 펜을 하나 주며, 그 펜의 희소성과 높은 가격, 그리고 그 펜을 사기 위해 내가 한 노력을 설명하곤 계속해서 그 펜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해보자. 펜을 선물해줘서 고맙다는 대답도 한 두 번이지, 계속되는 내 얘기에 그대는 펜을 던져버리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펜이 필요 없다는 그대를 붙잡곤, ‘그래도 이 펜을 받아야 하는 101가지 이유’같은 걸 설명하고 있으면 짜증이 날 거고 말이다. 그런 행위들은 결국 상대의 ‘스팸처리’를 부를 뿐이란 걸 잊지 말자.
갈빗집이 나간 자리엔 한우식당이 들어왔다. 그 한우식당은 ‘농장과 식당을 같이 하는 집’이라는 슬로건으로 ‘소 잡는 날은 간, 천엽 서비스’와 ‘점심특선, 식사류 반값’이라는 행사를 시작했다. 갈빗집 간판도 다 떼지 않은 채 그 위를 현수막으로 가리거나 시트지를 덧대어 붙인 허술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부에 마루를 만들고 바깥쪽에 테라스를 만들어 확장했을 정도로 식당은 장사가 잘되었다.
상대에게 고백하기 전에, 상대가 누군지를 먼저 알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연애만 하려고 달려드니 무지개를 쫓는 기분이 드는 거 아닌가. 운이 좋아 그 고백이 연애로 이어졌다 하더라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의 연애는 금방 이별의 역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보내고, 또 금방 사랑에 빠져 다른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그 역시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거고 말이다.
난 그대가 너무 쉽게 사랑에 목숨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숨 걸고 사랑할 거라던 상대에게 퇴짜 맞은 후, 이제 당분간 연애는 안하고 몸을 만들겠다며 헬스클럽에 등록한 대원이 있었다. 그는 퇴짜를 맞기 일주일 전, 관심녀의 단짝친구에게 대시를 했던 전과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헬스클럽에 등록한 대원은 이번엔 정말 '제대로' 대시하고 싶은 여자를 발견했다며 또 메일을 보냈다.
그가 보낸 세 메일은 '기대와 실망의 롤러코스터 시승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롤러코스터에 앉아 그는 북과 장구를 치며 풍악을 울린다. 그냥, 씨끄러울 뿐이다. 그대가 망원경으로 상대를 보려 하는 이상, 상대와는 단 한 발짝도 가까워질 수 없을 거다. 들키지 않으려 망원경으로 상대를 관찰하는 일은 그만 두고, 이젠 뚜벅뚜벅 걸어가 인사라도 해 보자.
라고 말이다.
▲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또,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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