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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힘든데 너까지 이러지 말라며 떠난 남친, 왜 그랬을까?

by 무한 2011. 12. 12.
힘든데 너까지 이러지 말라며 떠난 남친, 왜 그랬을까?
노멀로그 매뉴얼 확인학습퀴즈.

다음 중 남자친구에게 차인 직후 해야 할 행동으로 옳은 것은?

①스팸번호로 등록하고 미니홈피, 페이스북, 카톡 등을 탈퇴한다.
②지금까지 받았던 것들을 소포로 보내고 나머지는 불태운다.
③친구들에게 이별 사실을 알리고 새로운 소개팅을 부탁한다.
④헤어지는 이유라도 확실히 말해달라며 물고 늘어진다.
⑤전화해서 울다 끊거나, 발신자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걸었다 끊는다.


가끔 이 문제에 답이 두 개 아니냐고 묻는 대원들이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는데, 위의 보기 중엔 답이 없다. 노멀로그에서 권하는 '이별 직후 행동'은 바로,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이다. 잠시 연애의 끈을 놓으라는 얘기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매뉴얼들에서 질리도록 설명했으니 여기선 생략하도록 하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 '아무 것도 하지 말 것'이란 얘기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럭저럭 참을 수 있을 땐 참다가, 저녁엔 "이렇게 헤어질 거면 너 왜 나랑 사귄 거야?"라고 묻거나, '마지막 편지'라며 메일을 보내선 안 된다. 말 그대로, 연애에 대해선 당분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다. 이걸 알면서도 결국 실패하고 만 S양. 그녀의 사연을 오늘 좀 들여다보자.


1. 최악의 연애상대, 팔랑귀녀


순간의 감정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상황은 언제일까?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나는 술 취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술 취한 사람은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 목숨을 건다. 어떤 감정이 찾아오든 그 감정을 즉시 표출한다. 술이 깨기 전까지,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집에 데려다 눕혀 놔도, 또 벌떡 일어나서 급히 만날 사람이 생각났다는 얘기 따위를 한다.

팔랑귀를 가진 여자는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하다. 그녀는 남들에게 좋지 않은 얘기를 들을 경우, 그 얘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자신이 손에 쥔 불안을 다른 사람의 확인을 통해 해소하려 한다. 게다가 그녀는 그렇게 확인을 받은 후에도, 다시 좋지 않은 얘기를 들으면 또 불안을 손에 쥔다. 남자의 입장에서 그런 여자는 조여도 계속 풀어지는 나사와 같다.

"연애는 둘이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항상 다른 사람 말에 흔들리잖아.
다음에 만나는 사람에게는 제발 그러지 마."



오죽하면 그가 헤어지는 마당에 저런 얘기를 했겠는가. 저 말은 그가 너무너무 힘들어 결국 비명처럼 지른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S양은 어땠는가? S양이 저 말에 대처한 것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살펴보도록 하고, 우선 '팔랑귀'와 이어진 '불만족'을 먼저 좀 보자.


2. 구멍 난 항아리, 불만족녀


팔랑귀 하나로도 힘든데, 거기에 불만족까지 겹쳐 있다면 이건 정말 어쩔 방법이 없다. 불만족녀가 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대화를 보자.

불만녀 - 우린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적이 없어.
남친 - 우리 주말에 영화 보고 놀았잖아. 왜 그래? 
불만녀 - 그건 그냥 만난 거지 데이트가 아니잖아.
남친 - 네가 생각하는 데이트는 뭔데?
불만녀 - 됐어.
남친 - 매번 그러잖아.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 줘야 해?
불만녀 -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그녀는 불만을 그저 투정으로만 표현한다.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없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그 불만에 대해 상대가 해결책을 제시해도 또 불만이 생긴다. 아래의 대화를 보자. 위의 상황이 잘 풀어졌다고 가정했을 때의 상황이다.

불만녀 -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남친 - 아냐. 화내는 게 아니라, 네가 무슨 데이트를 원하는지 진짜 알고 싶어.
불만녀 - 동네에서만 만나는 거 말고, 좀 멀리도 가고 그런 데이트를 말하는 거야.
남친 - 그래? 그러면 이번 주말에는 삼청동 갔다 오자. 어때?
불만녀 - 됐어. 삼청동은 뭐 하러 가. 내가 말했다고 억지로 가는 건 싫어.



남자는 미쳐버리는 거다. 저 얘기를 하는 불만녀도 편한 건 아니다. 그녀 역시 자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린다. 그러다 지친다. 남자는? 남자는 지치는 건 물론이고 피폐해져간다. 저런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를 만나보면, 바짝 마른 도라지 같은 신경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3. 퀴즈 푸는 커플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가끔 TV를 보다보면 한 사람이 '행동'을 보여주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맞추는 퀴즈게임을 볼 수 있다. 말로 설명하면 금방 맞출 것들도,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만 보여주면, 상대는 엉뚱한 답을 내 놓는다. 그리고 그 엉뚱한 답에 대해, 문제를 내는 사람은

"야, 이걸 왜 몰라? 내가 이렇게 자세히 보여줬잖아. 손에 뜨거워 뜨거워.
흔들고. 핫팩이잖아! 이게 어떻게 호빵이야? 나 참 이해가 안 가네."



따위의 얘기를 한다. S양의 사연을 읽으며 난 저 퀴즈게임이 생각났다. 그냥 "겨울에 쓰는 거. 아이스팩 말고?"라고 말로 하면 간단한 걸, 빨리 맞추라고 닥달 하며 마임만 하고 있는 거다. 그러면서 이 쉬운 걸 못 맞춘다며 화만 내고 있는 사람. 그대라면 그런 사람과 함께 괴상한 퀴즈를 계속 풀고 싶겠는가?

"넌 내가 폭발할 때까지 코너로 몰잖아."


괴상한 퀴즈를 풀던 상대는 결국 폭발한다. S양은 그저 상대가 자길 다독거려주길 바라서, 사랑한다는 걸 더 표현해 주길 바라서,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길 바라서, 남들의 얘기에 흔들릴 때 안심시켜주길 바라서 한 행동들이지만 상대에겐 고문이 된 것이다.

"헤어지고 나니까, 편해."


바짝 마른 도라지 같은 신경을 가지고 있던, 그런 남자들이 헤어지고 하는 얘기다.


자, 위에서 잠시 접어두었던 '팔랑귀'얘기를 마무리 지어보자. 상대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직후 S양은 며칠간 잘 버텼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들에게 차였다는 얘기를 꺼냈고, 친구들은 말했다.

"넌 지금 자책하고 미안해 할 게 아니라, 분노하고 열 받아 있어야 해."
"그렇게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확실히 끝내."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헤어지자고 안 했을 걸. 진지함 없이 만난 거네."



팔랑. 결국 또 S양은 상대에게 묻고 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넌 도대체 나랑 왜 사귄 거야?"


그러면서 또 결국은 '불만족녀'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그때는 어쩌고...", "그게 말이 돼?", "됐다 그만 하자.", "할 말 없나보네.", "그냥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잘근잘근 부서지는 소리 같은 거 안 들리는가? 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어땠을까?

'헤어져서, 정말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이 들지 않았을까? 유효기간이 지난 얘기들을 들이대며 "이땐 네가 이랬잖아."라고 추궁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끝까지 상대를 코너로 몰기만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당장 상대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팔랑귀와 불만족부터 손을 대 보자.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주관을 좀 굳건히 하고, 타인의 행위를 통해서만 기쁨을 얻으려는 습관을 고쳐보자. 원하는 것에 대해 투정밖에 할 줄 모르는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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