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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 중인 중국집에서 혼자 밥먹기

by 무한 2012. 2. 8.
치킨게임 중인 중국집에서 혼자 밥먹기
오지랖 때문인지, 아니면 정 많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인지, 난 평소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을 보면

'옆에 가서 얘기하며 함께 먹어주고 싶다.'

는 생각을 종종 했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메뉴로 끼니를 해결하며 서로 시선이 닿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안타까웠다. 마주 앉아 단무지를 공유하며(응?) 

- 짜장면에 고춧가루 뿌려서 드셔 보셨어요? 안 뿌려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 ......
- 왜 말씀을 안 하세요?
-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대략 요따위 대화를 하면 우리의 식사시간은 좀 더 화기애애하지 않을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여하튼 '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는 남의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어제 처음으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오전 열 시가 좀 넘은 시간. 평소 같으면 집에서 브런치로 항정살을 구웠겠지만, 어제는 이사 직후라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하나 사다 먹을까 하다가, 전에 살던 집 우편물 확인도 할 겸 예전 동네의 A중국집으로 향했다.

"지금 식사 안 돼요."


빗자루로 식당 바닥을 쓸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퇴짜라니. 처음으로 용기를 내 혼자 식당에 들어갔는데 퇴짜라니.

난 선천적으로 여린마음을 지닌 까닭에, 퇴짜를 맞고 나오니 길가의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척 하며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몇 걸음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길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동해 주변이 환기되어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꿔 B중국집으로 들어갔다.

1. 중국집 치킨게임.


여기서 잠깐. A중국집과 B중국집은 현재 둘 중 한 가게가 망할 때까지 경쟁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인즉슨, 원래 그곳에서 장사를 하던 A중국집을 B중국집 사장이 인수해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A중국집에서 황당할 정도로 많은 권리금을 불렀고, B중국집 사장은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들어올 순 없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A중국집 바로 옆 핸드폰 가게가 망해 상가가 비자, B중국집 사장은 그곳에 중국집을 열었다. 그러곤 A중국집에서 4500원에 팔고 있는 짜장면을 1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짬뽕과 볶음밥도 각각 3000원과 3900원에 팔았다.

A중국집에서 짜장 한 그릇 먹을 돈으로, B중국집에선 네 그릇을 먹고도 500원이 남는다. A중국집 짜장면에 고기가 좀 더 들어갔다는 점을 제외하곤 두 짜장면엔 별 차이도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어떤 짜장면을 먹겠는가? 종종

"전 중국음식 싫어하는데요."


라고 대답하는 독자들이 있어 깜짝깜짝 놀라긴 하는데, 아무튼 대부분 1000원짜리 짜장면을 택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그랬다. B중국집은 식당 앞까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A중국집은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시간이 세 달 좀 넘게 계속되었다. A중국집은 "저 집과 우리 집은 맛의 레벨이 다르다."며 버텼지만, 사람들은 "맞아. 저 집이 더 맛있지. 여긴 싸게 파는 대신 전분을 좀 많이 넣어. 그래도 네 배 넘게 차이나니 난 천원짜리 먹을래."라며 B중국집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A중국집도 '가격할인'을 시작했다. B중국집과 똑같은 메뉴를 똑같은 가격으로 팔았다. 기한은 둘 중 한 집이 망할 때까지. 덕분에 동네 사람들만 신났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고민할 필요 없이 둘 다 주문해도 다른 중국집 짜장면 한 그릇 먹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정보를 대체 어디서 얻는지 궁금해 하는 대원들이 있다. 정보원의 신변보호를 위해 많은 것을 공개할 수는 없고, J클럽의 단골이 되면 이런 고급정보(응?)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 밝혀두겠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J클럽'이 뭔지 궁금해 하는 대원들이 있을 테니, 'J헤어클럽'이라고 적어두겠다.


2. 이상한 따돌림.


B중국집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서 오세요."


하는 큰 인사소리가 들렸다. 싼 값에 자장면을 파는 까닭에 평소엔 서비스가 별로인 곳인데 무슨 일일까. 게다가 늘 평상복에 앞치마만 두르고 있던 식당 직원 분들이 '중국집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경쟁 때문에 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한 걸까. 의아함을 옆 자리에 앉힌 채 난 짜장밥을 시켰다.

잠시 후 난, B중국집의 과잉친절과 이상한 태도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되었다. 맛집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서 촬영을 나와 있었던 것이다. 주방에서 촬영을 하던 제작진이 홀로 나왔다. 그 중 방송작가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방송작가 - 안녕하세요. S방송사에서 나왔는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가 식사하시는 모습을 좀 찍어도 될까요?
무한 - 아니요.



갑자기 당한 거절에 당황했는지 방송작가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방송작가 - 식사하시는 거 딱 한 컷만 찍을 게요. 좀 도와주세요.
무한 - 죄송합니다.



방송작가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식당 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주방을 힐끔 바라봤는데, 주방장이 음식을 내주는 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내 짜장밥에 침을 뱉는 건 아니겠지. 이어서 다음 손님이 들어왔고, 방송작가는 그 사람에게 가서 촬영 동의를 구했다. 그 손님은 흔쾌히 촬영을 승낙했다. 그 다음엔 부부로 보이는 손님이 들어왔는데,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화장까지 고쳐가며 적극적으로 촬영준비를 했다. 촬영을 거부한 나만 따돌림을 당하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짜장밥이 나왔고, 난 이상한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빛의 속도로 짜장밥을 흡입했다. 그 와중에 내 옆자리에 앉은 부부는 촬영에 들어갔다. 

아줌마 - 여기 해물도 엄청 많이 들어갔네.
방송작가 -  말씀은 안 하셔도 돼요. 식사하시는 것만 찍을 게요.  
아줌마 - 아, 네... 근데 TV보면 한 마디씩 하던데...
방송작가 - 저흰 영상만 필요해서요.
아줌마 - 네. 근데 이거 언제 방송 나와요?
아저씨 - 아 얼른 먹기나 해.



아줌마는 설레발 담당, 아저씨는 커트 담당.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3. 스타가 되고 싶은 할아버지.
 

짜장밥을 다 먹어갈 때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창가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방송작가를 불렀다.

할아버지 - 어이.
방송작가 - 예.
할아버지 - 이거, 다른 데 가서 또 찍나?
방송작가 - 이번 주는 이 촬영이 끝이고요. 다음 주에 또 있어요.
할아버지 - 명함 하나 줘.
방송작가 - 예?
할아버지 - 다음에 찍을 때 내가 갈 테니까. 명함 하나 줘.
방송작가 - 아, 제가 명함은 안 가지고 다니고요.
               모집해야 할 땐 저희가 인터넷으로 하거든요.
할아버지 - ......
방송작가 - ......
할아버지 - 그럼 이게 내 번호니까. 다음에 찍을 때 연락 해.
방송작가 - 아... 네.



할아버지는 신문 속에 들어있던 전단지 귀퉁이에 전화번호를 적어 방송작가에게 건넸다. 그러곤 무슨 요일 몇 시에 방송에 나오는 지를 세 번 물어 확인 한 후, 가게를 나가셨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뜨자 식당 직원들이 속닥거렸다.

직원1 - 저 할아버지가 그때 그 할아버지 맞지?
직원2 - 응. 맞아.
직원1 - 참 나.
직원2 - 히히히.



뭐야. 궁금하잖아. 저 할아버지가 무슨 할아버지라는 거야. 말을 해야지. 아 궁금해. 아 궁금해. 아 궁금해. 날 궁금하게 만들어서 죽일 생각인 거야. 따돌림 당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왜요? 무슨 할아버진데요?"라고 물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식당 직원들에게 이미 공공의 적이 된 상황. 아 궁금해.

짜장밥을 다 먹고 계산한 뒤 "잘 먹었습니다."하며 나오는데, 직원들은 담합을 한 듯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도 다음에 오면 "저 사람, 그 때 그 사람이지?"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 밥 한 번 먹기, 힘들다.


그나저나 그 할아버지는 무슨 사건이 있었길래 '그때 그 할아버지'가 된 걸까. 아 궁금해.

<덧>
포털에 보니, 990원 중국집으로 뉴스가 떠 있네요. 방송에 나오는 중국집은 윗 글의 B중국집 입니다. B중국집은 990원, A중국집은 1000원 이거든요. 뭐, B중국집도 부가세 10원 받겠다며, 1000원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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