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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사람에게 일촌신청하는 까치 이야기

by 무한 2011. 10. 13.

양말 두 켤레를 준비한다. 한 양말 속에 다른 양말을 넣고 발목 부분을 묶는다. 간디(애완견, 애프리 푸들)의 훌륭한 장난감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애완견 장난감'들도 사용해 봤지만, 간디는 오직 양말에만 관심을 보인다.

그 날 오전에도 간디와 함께 공원에서 '양말 던지면 물어오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공원을 장악하는 오후 시간에 그 놀이를 하면 아주머니들이 "총각! 이거 말고, 강아지 장난감 팔아. 그거 하나 사서 해."라며 말을 걸어오는 까닭에 난 주로 이른 시간 공원에 간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아주머니들에게

"장난감도 사서 해 봤는데, 대부분 너무 무거워서 잘 물어 오질 못하더라고요.
양말만큼 흥미를 보이지도 않고요.
프리스비 제품도 사서 해 봤는데, 얘가 물어 오기엔 지름이 너무 커요."


라고 대답하면, 아주머니들이 '어, 그래, 네 똥 칼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 네."라고 대답하기도 곤란한 일이다. 그랬다간 아주머니가 생각하는 '애완견이란 무엇인가?', '나의 애완견 이야기', '내가 들은 애완견 에피소드', '애완견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동물병원의 허와 실'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현명한 법이다.

여하튼 '양말 던지면 물어오기'놀이를 몇 번 하고 나니, 간디가 양말에 흥미를 잃었다. 열심히 물어 와도 자꾸 던지니 간디는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난 양말을 던져 놓곤 열심히 "물어와~ 저어기! 물어와!"를 외쳤다. 하지만 간디는 "내가 안 물어오면, 네가 주우러 간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 못들은 척 하며 잔디 냄새만 맡았다. 바로 그 때,

푸다다다닥.

양말 근처로 까치가 날아왔다. 까치는 "개 키우기 힘드시죠? 요즘 개들이 배가 불러서 그래요. 이 양말, 제가 한 번 물어가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양말을 부리로 물어 옮기기 시작했다. 양말이 너무 무거운지 녀석은 양말을 물고 몇 걸음 걷다, 내려놓았다, 다시 몇 걸음 걷길 반복했다.

난 까치가 양말을 물고 날아가 버릴까 걱정돼 양말을 주우러 갔다. 내가 바로 앞에까지 다가갔는데도 녀석은 날아가지 않았다. 녀석은 부리로 양말을 문 채 "제가 가져간다니까 뭐하러 오셨어요. 아무튼 보셨죠?"라고 말하는 듯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솔직히 좀, 무서웠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 근처에서 사고가 있었다. 내가 사고를 당한 건 아니고, 그 동네에 명절을 쇠러 부모님과 함께 온 미취학 꼬꼬마 하나가 사고를 당했다. 그 꼬꼬마는 자기 할머니 댁 근처를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는데, 그러다 옆집 닭장 앞까지 갔다고 한다. 꼬꼬마는 그 또래의 녀석들이 그러하듯 녀석은 장난을 쳤다. 막대기를 하나 주워 닭장 망 안으로 찔러가며 닭들을 괴롭힌 것이다. 닭들이 놀라서 도망가는 것이 즐거웠는지, 꼬꼬마는 웃으며 닭장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로 그 순간, 푸다다다다닥, 콱,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수탉이 꼬마의 눈을 쪼았다. 

삼촌은 그 꼬꼬마의 얘기를 친척 형들과 나에게 들려주며, "앞으로 걘 평생 가짜 눈깔을 넣고 살아야 돼."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난 하얀 구슬 같은 걸 한쪽 눈에 넣고 있는 꼬꼬마를 떠올렸다. 눈 대신 넣고 있는 하얀 구슬은, 꼬꼬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움직였다. 쑤욱, 툭. 꼬꼬마의 눈에서 구슬이 빠졌다. 꼬꼬마는 그 구슬을 집어 입에 넣곤 우물우물 거려 먼지를 제거하더니 다시 꺼냈다. 침을 투, 뱉곤, 그 구슬을 다시 눈에 넣었다. 이런 상상을 왜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꼬꼬마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 이후 나에겐 부리를 가진 동물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다.

'이 까치도 내게 달려들어 눈을 쪼진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간디야~ 일루와!"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탐색견 놀이'를 하고 있던 간디를 불렀다. 내 앞에 까치가 있는 걸 발견한 간디는, '으아니, 왜 까치랑 놀고 있는 거야! 까치가 있는 저 자리, 저 자린 내 자리여야 해.'라며 질투심에 사로잡혀 달려왔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간디를 보며, 까치는 푸드득, 날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난 양말을 주은 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까치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양말을 던지면 또 까치가 올까 궁금해진 난 벤치 바로 앞에다 양말을 던졌다. 푸드드드득.

'또...또 왔어!'

까치는 양말을 물고 날 쳐다봤다. "제가 물기를 바라고 던진 거 맞죠?"라고 말하는 듯했다. 난 까치와 교감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은혜 갚은 까치>에 나오는 선비의 기분이랄까. 난 멍하니 까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까치는 양말을 내려놓곤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게 다가와선, 내 발에 자기 발을 올려 두었다.

[까치님이 일촌신청을 하였습니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는 너랑 놀 수가 없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았으니까.". 까치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놀다 보면 길들여지고, 뭐, 그런 거죠. 인생 피곤하게 따져가며 살 필요 있나요? 그나저나 먹을 거 좀 없어요? 어제 저녁부터 굶었는데."

까치는 푸득, 날아서 벤치 위로 올라왔다. 그리곤 내가 벤치 위에 올려 둔 간디의 배변봉투를 부리로 뒤적거렸다. "여기 뭐 먹을 거 들은 거 아니에요? 구수한 냄새 나는데. 좀 풀어 봐요. 같이 좀 먹고 삽시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까치에게 줄 만한 먹을거리가 없었다. 배변봉투를 뒤적거려도 먹을 게 나오지 않자 까치는 다시 푸득, 날아서 내 팔에 앉았다.

'으힉! 설마 내 눈을 쪼는 건 아니겠지?'

무서우면서도, 놀라웠다. 내 팔에 앉은 까치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언젠가 놀이동산에서 '새 모이주기 체험'을 할 때 봤던 애완조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까치 부리 길이가 그 애완조들 머리길이 만했다. "먹을 거 있으면 좀 같이 먹자니까요."라고 말하는 듯, 까치가 내 손 등을 쪼았다.

'으히익!'

난 소스라치게 놀라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까치도 놀랐는지, 푸득, 날아서 벤치 밑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왜 그래요? 내가 더 깜짝 놀랐네. 해치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 까치는 다시 다가왔다. 그리곤 푸득, 날아서 내 어깨에 앉았다.

'정말 위험하다. 녀석은 이제 내 눈 바로 옆에 있어.'

녀석이 무슨 짓을 할 지 몰라 난 얼어붙어 있었다. 난 안경을 쓰고 있기에, 녀석이 쪼으려 해도 한 번에 눈이 공격당하진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까치는 내가 긴장했다는 걸 눈치 챘는지,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귓불을 부리로 간질이기 시작했다.

'하..하지마. 기분이 이상해.'

까치가 귓불을 간질이는 경험을 한 적 있는가?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경험해 보길 권한다. 긴장이 사르르 녹으며 온 몸의 털이 일어선다.

난 까치에게 먹을 걸 좀 챙겨다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간디를 집에 데려다 놓은 뒤, 옥수수와 과자를 좀 가지고 나오기로 했다. 내가 부르자 간디는 "으아니, 저 까치 자식이 또 저기 놀고 있네."라며 질투심에 불타 달려왔다. 간디에게 목줄을 해 주고 집에 가려는 데도 까치는 계속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난 까치가 눈을 쪼을 수 있다는 걱정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기에, 녀석을 어깨에서 떼어 놓고 싶었다. 어깨를 털자 녀석이 땅에 내려앉았다. 난 까치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먹을 거 가져올게."

그 당시엔 정말, 까치가 내 말을 알아들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까치에게 줄 옥수수와 과자를 챙겼다. 트위터로 까치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인증샷'을 요구하길래 카메라도 챙겼다. 그런데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라, 충전을 좀 한 뒤 나가기로 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점심을 먹었다. 먹을거리와 충전이 다 된 카메라를 들고 다시 공원으로 갔다. 

공원은 이미 수많은 아주머니들과 애완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전에 까치를 만났던 벤치엔 두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고, 잔디밭에선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뛰어다니며 서로의 똥꼬냄새를 맡고 있었다. 까치는 없었다. 난 공원을 한 바퀴 돌며 까치를 찾았지만, 까치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있는데도 계속 까치 생각이 났다. 까치가 팔에 앉던 그 묵직한 느낌. 그리고 귓불을 간질이던 부리(응?). 아무튼 그 날은 하루 종일 까치생각만 했다. 웹에서 까치에 대한 정보를 뒤적이고, 혹시 까치를 기르는 사람이 있나도 찾아보면서.

다음 날, 난 다시 공원을 찾았다. 그 시간 그 자리. 까치가 있었다. 녀석은 뒷짐을 지고 꾸벅 꾸벅 인사하며 날 반겼다. "아니, 어제 금방 오신다고 해 놓고 왜 안 오셨어요? 한참 기다리다가 개들이 하나 둘 몰려오길래 딴 데 가 있었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난 기쁜 마음에 준비해 간 옥수수와 과자를 내밀었다.



▲ 내가 준 옥수수를 쪼아 먹고 있는 까치.


"까치가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제 그 까치인지 어떻게 아나요?"라고 묻는 독자들이 있을 지 모르지만,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건, 수많은 애프리 푸들 가운데서 간디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거다. 그렇게 녀석에게 옥수수와 과자를 주고 있는데, 한 꼬마가 막대기를 들고 다가왔다. 꼬마는 "우와- 까치- 까까까-"하면서 까치에게 막대기를 휘둘렀다.

꼬마의 할아버가 뒤에서 "하지 마. 아저씨 사진 찍잖아. 하지 마. 일루와."라고 말했지만, 꼬마는 계속해서 까치를 괴롭혀댔다. 나도 "까치 때리면 까치가 물어."라고 꼬마에게 겁을 줬다. 하지만 꼬마는 "물어요? 까악- 까까까. 물어."하면서 더 흥분해 까치에게 막대기를 휘둘렀다. 꼬마의 할아버지만 없었어도 "이 자식, 너도 한 번 당해봐라."라며 막대기를 꼬마에게 휘두르고 싶었다. 아니면 "까치 괴롭히면 까치가 네 눈을 파먹을 거다. 그럼 넌 평생 가짜 눈알을 끼고 살아야하지. 평생! 그래도 좋다면 더 괴롭혀 보시지."라고 말해 주든가.

까치는 꼬마가 계속 괴롭히자 나무 위로 올라갔다. 까치는 나를 보며 "쟤 좀 말려 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도 방법이 없었다. 난 할아버지가 꼬마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길 바랐지만, 할아버지는 꼬마가 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만 보고 계셨다.



▲ 막대기 휘두르는 꼬마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간 까치.


까치가 나무 위로 올라가자, 꼬마는 나무를 흔들고 막대기를 던졌다. 결국, 까치는 "나중에 뵙죠. 저 꼬마 때문에 너무 피곤하네요."라고 말하듯 꾸벅, 인사를 하곤 날아가 버렸다.


그 날,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들과 까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난 아주머니들에게 이 은밀하고 황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는데, 아주머니들은 이미 그 까치를 알고 있었다. 그 까치는 나에게 한 행동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한다고 했다. 그렇게 일촌신청을 하곤, 팔이나 어깨에 앉는 애교를 부린 뒤 먹이를 얻어간다고 했다.

'그건, 어장관리잖아...'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에 배신감까지 들었다. 나쁜 까치. 그렇게 설레게 해 놓고선. 귓불은 왜 그렇게 간질여 댄 거야!(응?) 허탈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니 간디가 반겨줬다. 간디는 나를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다.

"것봐. 나만한 애완동물 없지? 까치한테 마음 흔들리지 말고, 있을 때 잘해."

라고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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