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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스스로를 괴롭히는 여자에게 연애가 힘든 이유

by 무한 2012. 3. 8.
스스로를 괴롭히는 여자에게 연애가 힘든 이유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얘기지만, 어렸을 적 나에겐 귀신 공포증 같은 게 있었다. 그 공포증은, 방학이 되면 호러물 비디오를 빌려와 우리 집에서 보던 친척 누나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난 귀신, 강시, 좀비, 악령 등의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뒤 화장실에 가기 두려운 건 다들 겪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대부분 며칠 밤이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내겐 그 두려움이 몇 날 밤을 자고 일어나도 없어지지가 않았다.

동네에 있던 조그만 교회도 내 공포증에 한 몫을 담당했다. 당시 난 달란트를 차곡차곡 모아가며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다음 달란트 시장을 휩쓸 생각으로 성경 암송이나 찬송, 대표 기도 등도 도맡아 하며 말이다. 그 때 우리 유년부를 담당했던 교회 선생님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와 기도로 물리쳤다.'는 간증을 들었다. 공포로 금이 가 있던 내 멘탈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저승사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니. 

가동 104호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은, 붕괴된 내 멘탈을 발로 밟아 댔다. 가동 104호에는 교회 차량을 운행하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의 아들이 아팠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증상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회 사람들이 와서 기도로 고치겠다며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던 중 아저씨의 아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했고, 이상한 목소리로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난 '빙의'를 목격한 것이다.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기도를 했고, 아저씨의 아들은 발악을 하며 울다 잠잠해졌다. 다음 날 그 아저씨의 아들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도 다 나았다고 했다. 

위와 같은 일들 때문에 난 유년기를 공포 속에서 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했으며, 볼일을 보든 목욕을 하든 항상 화장실 문을 열어 놨다. 집에 혼자 있지 못했다. 수영장 물속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머리에 샴푸칠을 할 때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감는 순간 무언가가 뒤에 서 있을 것 같았다. 세탁기에서 어떤 여자가 나와 날 쳐다볼 것 같았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한 그 여자도 무서웠지만, 내 얘기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무서웠다. 난 혼자 밤길을 걸을 일이 있을 때면 찬송가를 부르며 뛰어갔다.

여하튼 귀신의 공포에 휩싸인 채 유년기를 보낸 꼬꼬마 얘기는 이쯤하고. 오늘은 좀 다른 종류의 두려움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여성대원들의 얘기를 해보자.


1. 마음 속 비평가.


그대가 그린 그림에 대해 늘 비평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그는 구도가 별로다, 색상이 별로다, 명암처리가 안 됐다, 따위의 이야기만 한다. 그대가 이제 막 스케치만 한 그림에 대해서도,

"뭘 그리려는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은 안 그리는 게 낫다.
스케치 한 것만 봐도 별로인 것 같아 보인다."



라는 심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 비평가의 말들로 인해 그대는 쪼그라들 것이다. 선 하나 긋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고, 대체 어떤 색을 칠해야 할 지 망설이다 붓을 놓게 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려던 그대는, 비평가의 말 때문에 그림을 집어 치우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여성대원들의 마음속엔 그런 비평가가 살고 있다.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일 뿐인 비평가지만, 그 비평가의 설득력은 자기 자신보다 힘이 세다. 듣고 있다 보면 '아, 정말 그렇겠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왜 문자를 먼저 보내? 맘에 안 든다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거 아냐?"
"널 좋아하는데 설마 이렇게 연락을 안 하겠어? 답 나왔잖아."
"쟨 D기업에 다니고 있잖아. 속으로는 너랑 레벨이 다르다고 생각할 걸?"



그림에 대한 평가는 그림을 다 그린 후에 해야 하는데, 비평가의 말들 때문에 중간에 붓을 놓게 된다. 그래놓곤 타인에게 부탁하기 시작한다. 제발 이 비평가가 틀린 거라 말해 달라고. 그 말을 해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상황을 넘기더라도 비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래는 화가 고흐의 말이다.

만약 마음속에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걸" 이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잠잠해진다.

- 빈센트 반 고흐



그대 마음 속 비평가의 입을 닫게 만드는 방법은, 결과까지 가 보는 것 말고는 없다. 그대와 비평가 둘이 결과를 확인하며, 비평가가 그저 염려쟁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평생 비평가의 뒤만 따라다닐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책임과 손을 잡고 끝까지 가 보길 권한다.


2. 부정적인 증거 찾기.
 
 
지구 종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난 개인적으로 외계인이나 고대문명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검색을 하다 종말에 관한 커뮤니티까지 흘러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가서 글을 몇 개 읽고 사진 자료나 동영상 자료를 보면, 내일이라도 당장 통조림 따위를 사서 벙커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대지진, 화산 폭발, 어느 고문서에 나온 예언이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들, 태양의 이상 징후, 외계인의 흔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일 등등. 그 커뮤니티에선 그러한 일들이 모두 지구종말을 암시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와 비슷한 일이 연애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벌어진다. '종말'만 '연애의 종말'로 바뀌어서 말이다. 실제의 사건 보다 에누리가 더 많이 붙은 얘기부터 시작해 보고 들은 것에 분노와 염려를 덧붙인 이야기들. 그건 실제로 외계인을 만난 적은 없으면서 외계인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외계인을 만난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들과 비슷하다. 그곳에서 남들이 늘어놓은 연애의 끔찍한 면만을 보고 들으며, 연애는 끔찍하고 이성은 전부 배신 보균자일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에서의 연애가 잘 될 리 없다. 상대와 꾸준히 연락을 하던 중, 바쁜 상황이라 짧게 보낸 상대의 답문에 '성의 없음' 판정을 내린다. 야근을 해서 힘들다는 상대의 말을 듣곤 '그래서 나랑 카톡 하는 게 귀찮다는 얘긴가? 연락하지 말라는 얘긴가?'라는 생각을 한다. 상대에게서 '날 안 좋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부분'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대원들에겐 '변화'가 가능한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스모그가 찾아와도 비가 내리면 다시 맑아지고, 오염된 하천도 물 스스로의 자정작용으로 인해 깨끗해 지지 않는가.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벙커에 들어가 숨지 말고, 부지런히 흐르길 권한다. 고인 물보다 흐르는 물에서 자정작용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니 말이다.


3. 뿌리 깊은 외톨이 의식.


외톨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저 사람은 날 싫어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출발한다. 아직 본 적도 없는 상대의 화난 얼굴을 떠올려 보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언젠가는 이 사람도 나에게 짜증을 내거나 날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반한 까닭에 이것을 잠시 잊었더라도, 관계가 덜컹 거릴 때면 기가 막히게 이 생각부터 찾아서 든다.

매뉴얼을 통해 지겹도록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슬픈 생각만 하고 앉아 있으니 슬픈 일만 벌어지는 거라고.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사실 그대가 '슬픈 상황'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한 부분도 있지 않은가. 상대 몰래 슬퍼할 준비를 해 가며 말이다.

외톨이 의식을 가진 대원들은 아무리 신어도 때가 타지 않는다는 신발을 찾고 있기에,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눈앞에서 신발을 흔들어 대며 "이건 절대 때가 타지 않아. 내가 장담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덥석, 그 신발을 사 버린다. 아무리 신어도 때가 타지 않는 신발 같은 게 어디 있는가. 결국

'이럴 줄 알았어. 이 신발도 마찬가지야. 때가 타잖아. 신발.'


이라며 독방에 들어가 운다. 그러다 좀 나아지면 또 금방 그 사실을 잊곤, '때가 타지 않는 신발'을 외치는 사람에게 신발을 구입하고 만다.

낡지 않는 신발 없듯, 사람도 감정도 변해간다. 절대 변하지 않을 사람을 찾지 말고, 함께 낡아 갈 사람을 찾기 바란다. 그 주름, 그 자국, 그 헌 곳을 모두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사람. 어느 날 그대가 싫어질 수 있다면, 또 어느 날 그대가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다. 비도 맞고 눈도 맞고 바람도 맞아가며 우리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모셔둘 신발은 그만 찾고,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길 바란다.


끝으로, 신발은 신고 돌아다니기로 한 후 발생하는 문제들을, 사연으로 적어 보내는 대원들에게 몇 가지 바라는 점들을 적어두고 싶다. 먼저, 그대와 상대의 신상을 간략하게나마 적어줬으면 좋겠다. 신입 사원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보낸 남자대원.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걸 밝히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 다음으로, 카톡 대화나 메일 등은 전문을 다 보내줬으면 좋겠다. 한국말은 끝까지 다 들어봐야 아는 것 아닌가. '하지만'이나 '그런데' 등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앞의 문장만 보내면 역시 곤란하다. 또, 적어도 A4용지 한 장 이상의 사연을 보내줬으면 좋겠다. 신세 한탄 같은 것만 몇 줄 있고 별 내용이 없는 사연이 많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를 생략한 채 '이건 뭐죠?'만 물으면 마찬가지로 곤란하다.

'노멀님'이나 '노멀로그님'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다. 어차피 그런 사연은 안 읽으니.(응?) 농담이고, 내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로 모든 사연을 빠짐없이 읽고 있으니, normalog@naver.com 으로 망설이지 말고 사연을 보내주길 바란다. 후라이데이가 코앞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에 들어가는 건 아직도 좀 무섭다.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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