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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어장관리 하는 여자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

by 무한 2012. 4. 30.
어장관리 하는 여자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
대학시절, 내가 '롬멜'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자로 치자면 '바람둥이'라는 닉네임이 꼭 맞는 여자다. 그녀가 일으키는 바람을 나는 '무역풍'이라 불렀는데, 그녀가 남자에게 곁을 주고 먹을 걸 얻어내거나 고민을 털어 놓곤 위로를 받는 일을 잘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엔 나에게도 다정하고 선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가 '롬멜'이라는 별명의 뜻을 알려준 뒤로 그녀는 내게 본래의 얼굴만을 보여줬다.

- 근데 롬멜 뜻이 뭐야?
- 롬멜? 독일군 장군 이름이야. 별명이 '사막의 여우'야.
- 야! 너.



울림소리라서 예쁘다고 할 땐 언제고. 여하튼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의 보호와 사랑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남자를 헌신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우연히 그녀가 남자선배에게 선물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작은 귀고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생명을 구해준 남자가 앞에 있는 것처럼 감격해 했다. 차를 몰고 다니는 또 다른 남자선배에게는 인형 뽑기로 뽑아 온 듯한 인형을 하나 선물하고 그 남자선배를 기사처럼 부리기도 했다. 그 선배는 인형을 일 년 내내 룸미러에 매달아 놨다.

그녀는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녀가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의 연애가 위태위태하다고 말했다. 데이트 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고, 늘 싸웠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남자선배들은 그녀가 헤어지기만 하면 자기 차례가 오리라고 생각했는지, 열심히 위로하는 척 하며 헤어지라는 얘기를 해대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나누던 술자리의 술값도 물론 그 남자선배들이 계산했고 말이다.

이게 이렇게 멀리서 보면 딱 진단이 나오지만, 막상 저 상황에 처해 리포트 도와주고 앉아 있으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 진다. '뭐야, 이거 어장관린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녀가

"오빠 고마워요. 웃는 것도 버겁지만... 오빠 말대로 힘 내 볼게요."


라고 문자 하나 보내면 다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이다. 생물학적 아빠가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나이 좀 있는 남자들에겐 '아빠, 아빠' 거리고, 출첵을 소홀히 하는 남자가 생기면 "오빠 자요?" 따위의 문자로 툭툭 찔러 다시 성실한 출첵 하도록 만드는 여자. 그런 여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대원들이 부쩍 늘었기에 오늘 매뉴얼을 적는다. 출발해 보자.


1. 뭘 주고, 뭘 받았나?


제목 그대로다. 그녀에게 뭘 주고, 뭘 받았나를 찬찬히 살펴보길 바란다. 가끔 사연에다가

"그녀가 절 어장관리 하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뭘 사달라고 한 적도 없고,
가끔 그녀가 먼저 저에게 커피를 사주기도 합니다."



라고 적어서 보내는 일등 참치 대원들이 있다. 커피를 증거로 내세우는 그 대원들을 안아주고 싶다. 서두에서 말한 어느 선배가 '내가 인형뽑기에서 뽑았어도 누구 줘 버릴 듯한 인형'을 선물로 받고 감격하던 것처럼 그 대원들은 커피에 감격한다. 그녀가 밥이라도 샀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혐의를 찾기 곤란하다면 통신 쪽으로 눈을 돌려서 살펴보자. 그대의 통화 목록에 찍혀 있는 그녀와의 연락기록 중 '수신'이 많은가 '발신'이 많은가? 아, 미안하다. 통화 한 적은 거의 없으리라는 걸 잠시 잊었다. 그대의 문자메시지 함에 '수신메시지'가 많은가 '발신메시지'가 많은가? 요즘은 카톡이 대세니 대화가 늘 노란색으로 시작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도 좋다.

난 종종 자신이 어장관리를 당하는 것이 아닌지를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3일간의 연락두절'을 권한다. 그 말에 몇은 적잖이 놀라며 "지금 당장은 내가 연락 안 하면 끝이지."라고 답한다. 그럼 연락을 안 해도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해 오는 때는 언제란 말인가. 평생을 두고 그런 적이 오기는 한단 말인가. 연락을 하지 않아 보겠다며 마음을 먹은 지인들도 대개 하루를 넘지 못한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겠기에 형식적인 안부라도 묻고 상대에게 답이와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3일을 버텨 '먼저 연락이 오는 일 없음'을 확인한 지인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실험을 왜 했는지 목적을 잊은 듯 "연락은 오지 않았어. 하지만 더 노력해 봐야지."라며 다시 연락을 하고 만다.

자동차를 살 때에는 연비를 따지고, 기름을 넣을 때에는 싼 주유소를 찾으면서 연애에서만은 "1리터에 10미터만 가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눈물겹다. 자신의 순애보나 봉사정신을 극한까지 시험해 볼 목적이라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은 훗날 여자에게 쩔쩔매고, 헌신부터 들이미는 스타일로 굳어져 그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2. 입장이 바뀌어도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가?


자긴 밥 굶고 있으면서 남의 밥상 반찬 걱정하는 대원들도 많다. 고달프기로 따지면 남자친구 있는 여자의 어장에 있는 자신이 더 고달프면서,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여자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녀가 남자친구 때문에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이럴 때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뭐가 있나요?
무한님이 보시기에 그녀 남자친구의 속마음은 뭔 것 같나요?"



라고 물어오며 나까지 그 반찬 걱정에 끌어들이려는 대원들도 있다. 그런 대원들은 그 여자의 남자친구가 연락을 잘 하지 않거나,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그녀를 소중히 대하지 않았다는 일들을 가지고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것 마냥 흥분한다. 세상에 그보다 더 나쁜 놈은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연애 하다보면 다툴 수도 있는 법인데,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헤어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듯 말한다.

위로의 창구를 연애와 별개로 가지고 있는 여자는 언제든 위로의 창구를 유지하려 한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지금은 그대가 그 위로의 창구 상담원을 하고 있으니 걱정 없겠지만, 그대가 그녀의 연인이 된다면 어떨까? 그대와의 연애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위로 받을 또 다른 창구를 그녀가 가진다면?

상대가 남자친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그대에게 꺼내 놓았다고 해서 그걸 '특별함'으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그건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털어 놓기 그닥 어렵지 않은 얘기들이다. 또한 그 이야기들에선 '남자친구의 문제점'은 크게 부각되고 본인의 힘든 상황에 에누리가 붙는 까닭에 실제와는 많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야기를 털어 놓은 상대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명랑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얘기를 들은 대원 혼자 심각해 져서는 "이건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야. 해결책을 찾자."라며 오지랖을 최대한으로 펼치고 있다. 자기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데 말이다. 불러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이고 싶다.


3. 사귀기 싫다는데 무슨 가능성?


작년 여름, 한 여당대표가 25.7%의 투표율을 두고 '사실상 승리'라고 말 한 것이 유머 커뮤니티의 개그소재가 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점심시간 전까진 회사에 있었으니 사실상 출근" 등의 '사실상' 시리즈를 만들어 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 자위하는 모습을 비꼰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논리를 연애에 적용하는 대원들이 있다. 고백을 했다가 거절의 말을 들었으나 "난 너 싫어. 꺼져."라는 강한 거절이 아니었으니, 사실상 자신의 고백이 받아 들여 진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대원들이다. 그들이 내미는 '사실상 성공'의 증거는 아래와 같다.

- 상황이 좋지 않아서 거절한다고 했다. 상황이 좋아지면 결과는 다를 것이다.
- 남자친구와 끝나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헤어지면 내 차례가 온다.
- 날 좋은 오빠로 생각한다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내가 남친이다.
- 사귀었다가 헤어질까봐 못 사귄다고 했다. 안심만 시키면 연애 시작이다.
-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이제 날 이성으로만 보게 하면 된다.



그 긍정적 태도와 포기를 모르는 열정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까지 부정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그대가 당한 건 거절이다. 싫어, 아니, 안 해, 됐어, 안 그래도 돼, 사양할게 등의 의미를 포함한 거절이란 얘기다. 하지만 '사실상 성공'을 주장하는 대원들을 막무가내다.

"저는 일단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어떻게든 그녀를 잡고 싶어요.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기다리고 있을 생각인데, 그 동안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요?"



그녀가 댄 핑계가 뭐든 마음이 딱 그만큼이라는데, 놀이기구 타려 줄 서듯 서서 기다리면 차례가 올 거라 생각하는가? 설마 상황이 좋지 않아서 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를 정말 믿고 있는 건가? 난 그대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 상황에 처해도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대 생각은 어떤가? 사귀기 싫다는 사람들 두고 가능성 따지며 아까운 청춘을 흘려보내는 일은 그만 두자.


평소의 자신으로 돌아와 그녀를 대하길 권한다. 상대에게 착한남자로 보이기 위해 그간 타인에게 베풀어 본 적 없는 친절을 베풀거나, 스스로도 벅찬 일들을 하는 건 바보같은 짓일 뿐이다. 며칠 전 노멀로그 애독자 '저그'님은 이런 댓글 남겨주셨다.

헌신적이고 충성스런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면
여배우들은 다들 팬과 사귀게요 ㅎ



엄마 생신 선물로는 백화점에서 세일하는 만 원짜리 스카프 사면서, 좋아하는 연예인한테 기십만 원짜리 시계 사서 보내는 팬이 되진 말잔 얘기다. "오빠가 내 남자친구였으면 어떨까."라며 떡밥을 뿌리거나, 약속 잡아서 사람 설레게 만들고 지가 또 약속 취소해 사람 마음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그녀. 작별인사도 할 것 없이 뒤로 돌아 넓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길 바란다. 그대가 내민 증거가 정말 확실하다면, 그녀가 뒤 쫓아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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