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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강아지와고양이

애견용품 판매의 여왕(콩고물 아줌마) 이야기

by 무한 2012. 10. 15.
애견용품 판매의 여왕(콩고물 아줌마) 이야기
어제도 또 당했다. 이번만은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콩고물 아줌마의 '산파술'에 당하고 말았다. 콩고물 아줌마는 한 대형마트 애견코너에서 일하는 분이고, '산파술'은 소크라테스가 애용했다는 대화법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짧게 예로 들면 아래와 같다.

소크라테스 - 용기가 무엇입니까?
라케스장군 - 전쟁터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
소크라테스 - 그럼 후퇴했다가 다시 참전해 이기는 경우는 용기가 없는 것입니까?
라케스장군 - 어쨌든 용기란 어려운 상황에서 참아가며….
소크라테스 - 무작정 참기만 하는 것은 무모함 아닙니까?
라케스장군 - …….



콩고물 아줌마도 저 '산파술'을 사용하는데, 그 산파술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이 글은 아줌마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2년간 애견용품을 구매하며 정이 든 아줌마에 대한 소개 정도로 읽어 줬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콩고물 아줌마의 산파술
 

아줌마가 사용하는 산파술은 아래와 같다.

아줌마 - 고객님, 다른 사료는 인절미에 콩고물 묻히듯 영양소를 묻히기만 한 거예요.
             제가 지금 추천하는 사료. 이 사료야 말로 제대로 된 사료입니다. 고객님.

무한 - 그런데 세일하는 다른 사료랑 가격 차이가 두 배나 되네요?
아줌마 - 제가 말씀드렸죠, 고객님. 저건 콩고물이고, 이게 값은 조금 더 나가도 진짭니다.
            싸다고 저런 사료 먹이시겠어요? 
            이걸 아셔야 해요, 고객님. 영양이 반밖에 안 되니, 가격도 반이겠죠.
            요즘 사과가 한 알에 사천 원이에요, 고객님.  
            사과 두 알 안 먹는다 생각하시고, 이 사료로 하세요. 강아지를 생각하셔야죠.
무한 - 음….
아줌마 - 제가 강아지를 10년 키우다가 얼마 전 보냈어요. (아줌마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저도 교육 받기 전엔 몰랐거든요. 몰라서 아무 사료나 먹이고….
            조금만 일찍 이 사료를 알았더라면….
            싸다고 아무 거나 먹이지 않고, 기능성 성분이 풍부한 이 사료를 먹였더라면….

무한 - 음, 안 먹거나 그러진 않겠죠?
아줌마 -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도 이건 정말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고객님.
무한 - 그럼 그걸로 하나 주세요.
아줌마 - 네. 정말 잘 고르신 거예요, 고객님.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좋은 제품을 소개하고 싶어 노력하는 판매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줌마가 소개해 준 사료를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가 먹지 않아 다 버린 적도 있으며, 아줌마가 소개했던 사료가 반값에 할인상품으로 나올 때도 있다는 거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아줌마가 사용하는 무(無)논리 대화법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2. 논리의 뒤통수를 치는 달변


대화를 설명하기 전 미리 알려두고 싶은 것이 있다. 아줌마가 늘 나를 '고객님, 고객님'하고 부르는데, 그건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날 기억 못해서 그러는 거다. 2년간 그 아줌마에게 애견용품을 구입했는데, 아줌마는 날 기억하지 못하신다.(어제 사료를 사 왔는데, 아마 오늘 다시 가서 사료를 사도 아줌마는 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할 것이다.)

아줌마 - 사료 찾으시나요, 고객님?
무한 - 네. 좀 보려고요.
아줌마 - 고객님, 그쪽은 일반 사료입니다. 이쪽을 보세요.
            이 사료들이 진짭니다. 아이들 섭생이 중요한 건 아시죠?
            일반 사료들은 인절미에 콩고물 묻히듯 영양소를 발라만 놓은 거고,
            이쪽의 기능성 사료들이 정말 영양소가 풍부한 사료들입니다.

무한 - (일반사료 귀퉁이를 가리키며)근데 전에, 이 사료 권해주셨었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아, 제가요?"라며 좀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줌마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내 말을 받아쳤다.

아줌마 - 물론 그 사료도 좋긴 좋습니다, 고객님. 그땐 이 사료가 나오기 전이였죠. 
             그 사료에도 부족한 영양소가 있어서 이 사료에 다 넣었습니다. 
             이 사료야 말로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도 다 잘 먹는 사료입니다.

무한 - 전에 다 잘 먹는다고 하셔서 사갔는데, 하나도 안 먹어서 다 버렸어요.



역시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 그래요?" 라며 안타까운 표정이라도 잠시 짓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줌마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지체 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줌마 - 안 먹죠? 당연히 안 먹습니다, 고객님.
            그 사료는 영양에만 신경 썼지 아이들 입맛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자 보세요, 고객님. 이거 하나 남았죠?
            이게,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서 판매 1위입니다. 하나 남았어요.
            거기다 또 지금 할인하고 있어서 그 사료랑 같은 가격입니다. 
            같은 가격에 영양소는 더 풍부하고, 아이들이 잘 먹기까지 하는데
            어떤 걸로 선택하시겠어요, 고객님. 당연히 이걸로 선택하셔야죠.
무한 - 전에는 영양이 반이라 가격도 반이라고 하셨었잖아요?



난 내가 결정타를 날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내가 날린 결정타를 사뿐히 뛰어올라 잡았다. '공을 멀리 치긴 했지만, 내가 잡았으니 너는 아웃.'이라고 말하듯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줌마 - 고객님. 저희는 마트에 있는 애견코너잖아요. 
            돌아가면서 모든 제품에 할인을 하게 되어 있어요.
            이 제품은 안 팔려서 세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판매 1위 한 제품이라고.
            판매 1위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세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무한 - …….
아줌마 - 보세요, 고객님. 저희가 통조림도 팔아요.
            그런데 전 통조림 구매하시라고 권하지 않잖아요.
            아이들이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그러는 거예요.
            고객님. 제가 강아지를 10년 키웠어요.
            지금은 보냈는데, 제가 영양에 대한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줌마 눈에 눈물이 핑 돈다.)
무한 - 그, 그걸로 주세요.

 

시원한 답변을 들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 순간 나는 이미 아줌마에게 설득당해 구매를 하고 있다.             


3. '콩고물'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위의 대화를 보며 이미 눈치를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아줌마의 '판매전술'은 대단히 단순하다. 그 단순한 전술들 중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인절미에 콩고물' 비유인데, 때문에 나와 공쥬님(여자친구)은 아줌마를 '콩고물 아줌마'라고 부른다. 아줌마가 지키는 애견코너에서 물건을 구입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줌마의 '레퍼토리'는 변함이 없다. 대표적인 레퍼토리 두 가지만 살펴보자.

A. 인절미에 콩고물

다른 사료들은 영양소를 콩고물 묻히듯 묻히기만 해 놓았다는 얘기를 할 때 쓰인다. 아줌마는 본인이 추천하는 사료를 제외하고 모든 사료를 '콩고물 사료'로 부른다. 안타까운 것은 아줌마가 추천했던 사료도 몇 달 뒤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콩고물 사료'가 된다는 점이다.

B. 판매 1위. 하나 남은 제품.

애견용품 코너에 진입하면 아줌마가 왼편에 서 있다. 그 옆으로 사료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판매 1위 제품'은 늘 아줌마의 손이 닿는 왼쪽 끄트머리에 있다. 그리고 세일 상품은 중간쯤에 전시되어 있고, 세일 상품의 대형포장(12Kg)은 아줌마가 소개하는 제품 제일 밑 칸에 있다.

대개 고객들은 애견용품 코너에 진입한 후 왼편의 비싼 사료를 지나쳐 중간으로 접어든다. 그러다 세일품목을 볼 때 즈음 아줌마가 말을 걸어온다. 아줌마가 '판매 1위 제품'에 대한 긴 이야기를 끝낼 즈음, 가격이 두 배나 차이나는 것에 대해 고객들이 갈등을 한다. 바로 그 때, 아줌마는 오른팔을 뻗어 제일 아래 칸의 대형포장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가격으로 치자면, 이런 콩고물 사료가 훨씬 싸죠. 12Kg인데, 가격이 이것 밖에 안 하잖아요."라며 고객을 흔든다. 고객이 망설이면 '판매 1위 제품'을 밀어서 뒤로 넘어뜨린다. "보세요. 하나 밖에 안 남았잖아요."라고 말하면서. 보통 이쯤에서 아줌마에게 설득당해 그 제품을 구입한다.

그런데 구입 후 매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와 보면, 그 자리에 '판매 1위 제품'이 한 봉지 다시 나타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마술일까?


콩고물 아줌마와 만난다면, 그대도 아줌마가 추천하는 사료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판매전략 따위는 둘째 치고,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아줌마와의 대화는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아니라, '녹음해 놓은 것을 듣고 있는' 느낌이다.

"네 그렇죠, 고객님."
"안 먹죠? 안 먹습니다. 고객님."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콩고물이라고요, 고객님."



아줌마의 목소리가 큰 까닭에,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싸움이 난줄 알고 쳐다본다. 과장된 몸동작과 추임새처럼 빠지지 않고 이어지는 '고객님'이라는 멘트. 게다가 아줌마에게 질문이라도 한 번 했다간, 10분을 우습게 뛰어 넘는 '사료 강의'가 이어지기 때문에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옆 원예코너의 아줌마가 다가와

"아니, 어쩜 그렇게 설명을 잘 해?"


라며 놀리듯 물어봤는데, 콩고물 아줌마는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 못하곤

"내가 설명을 잘 하긴 뭘 잘해.
그냥 난 제품에 대해서 공부하고, 
강아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떤 제품이 강아지에게 좋을 지 찾아보는 거지.
또 고객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을 소개해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직접 비교해 보고, 고객님들이 잘 아실 수 있도록…."


 
이라며 길고 진지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아줌마 특유의 순수함을 가진 캐릭터라 미워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이번에 사료를 사오기 전, 이 사료가 어느 회사 제품이냐고 물어봤을 때 아줌마가 잠시 멈칫 하곤 'D회사' 제품이라고 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E회사' 제품이었다. 또, 간디는 가정식 위주로 먹이는 까닭에 큰 상관은 없지만, 아줌마가 추천해 준 제품은 칼슘과 인의 비율 때문에 좋지 않은 평을 듣고 있던데, 다음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아줌마는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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