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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사고 싶게 만드는 신들린 입담 <피철철>

by 무한 2013. 3. 23.
읽으면 사고 싶게 만드는 신들린 입담 <피철철>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만난 '영업의 신'은 세 명이었다. 첫 번째는 내가 꼬꼬마일 때, 우리 동네로 건강식품을 팔러 왔던 아저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업이라기보다는 '사기'에 더 가깝지만, 그 아저씨는 수건을 준다며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즉석 건강상담을 해줬다. 맥까지 짚어가며 신통하게도 병명을 맞춘 걸 보면, 한의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했다거나, 그 방면으로 파고들어 독학을 한 사람 같았다.

어쩌면 진짜 한의사일 수도 있다. 그 정도 영업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찾아다니는 게 나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기막히게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맞히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자신이 팔고 있는 건강식품'을 권했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당한 사람들이 순박한 바보처럼 보이는데, 그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대 역시 당했을 것이다. 맥 잠깐 짚은 뒤 현재 불편함을 겪고 있을 건강문제를 알아맞히고, 가족력까지 짚어내는 남자. 부끄럽지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가 해 준 '건강진단'을 굳건히 믿고 계시다.

"발끝까지 피가 잘 통하지 않으니, 겨울에 발이 시려 고생하시겠네요.
또, 소화기 계통이 매우 연약하신 편입니다.
신경 좀 쓰시면 위에 통증이 있고, 걱정이 많으실 땐 금방 탈이 나시겠네요. 
위와 장이 아기와 같이 연약합니다. 제가 가져온 이 *****를 드시면…."



속이 좀 불편할 때면 언제나 "엄마는 속이 아기처럼 연약해서…."라는 말씀을 하신다. 물론, 평소 내장탕이나 매운 닭발, 아귀찜 등을 드실 땐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탈이 날 때만 그러신다. 여하튼 그 남자가 다녀간 날 저녁, 온 동네엔 욕설과 고함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들이, 몇 박스씩 사 놓은 건강식품을 보고 폭발한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영업의 신은, 채칼을 팔던 남자다. 작년 우리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 며칠간 임시 코너를 맡았던 남자다. 사람들이 장은 안 보고 그쪽에만 모여 있기에, 난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그쪽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와 동시에 난, 대략 30분이 넘도록 그 남자의 채칼 시연에 빠져 들었다.

아이들 볶음밥 해줄 때 채칼 이용하는 방법, 고기 구워 먹을 때 채칼로 양파 얇게 써는 방법, 죽을 만들 때 채칼 사용하는 방법, 요리 잘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채칼 사용 방법, 오이마사지 할 때 채칼 사용하는 방법, 아기자기한 계란찜 할 때 채칼 사용하는 방법…. 난 그의 말을 들으며 자제력을 '진돗개 하나'까지 높여야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벌써 채칼을 집어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위기는 그가,

"요즘 폰으로 검색 다 하실 수 있잖아요. 이거 이름 쳐 보세요.
인터넷 최저가 보다 저렴합니다. 행사라서 이 가격이 가능한 거예요."



라는 말을 했을 때다. 나도 검색을 해 보았는데, 인터넷 최저가보다 만 원 저렴했다. 저 말을 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구니와 카트에 채칼을 담았다. 몇몇 아주머니들은 "아저씨 언제까지 계시는 거예요? 나 또 와서 아저씨한테 배워가야 되는데…."라며 팬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차가운 도시남자처럼

"모레 포항으로 갑니다. 거기 또 오픈하는 마트가 있어서.
내일까지는 있을 겁니다. 내일 아무 때나 오셔서 물어 보세요.
전 여기 마트 소속이 아니라, 이 브랜드에 속해있는 사람입니다.
아, 손 조심 하시구요."



라며 여운을 남겼다. 홈쇼핑 쇼호스트가 믹스커피라면, 그는 카라멜 마끼아또 정도 되는 판매자였다. 착착 달라붙는 사투리와 정제되었으면서도 절대 모자람 없는 멘트들. 거기에 능청과 채칼을 다루는 손기술이 더해지니, 그 날 마트를 들른 거의 모든 사람들의 장바구니엔, 채칼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세 번째로 만난 영업의 신, 그가 바로 오늘 소개할 '피철철'이라는 닉네임의 뽐뻐('뽐뿌'라는 사이트의 회원)다.


1. 판매자도 아니면서 물건을 소개하는 독특한 포지션.
 

오늘의 주인공은 판매자가 아니다. 판매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순수한 소비자인데, 다른 소비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이 구입한 물건 중 '가성비'가 좋았다거나, 다른 물건과 비교해 월등히 뛰어난 제품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소개글을 쓴다. 때문에 그가 소개하는 물건들은, 각 상품들끼리 아무 연관도 없다는 특징이 있다. 아래는 지금까지 그가 소개한 일부 물품의 리스트다. 

- 다리미 
- 투약병
- 터보라이터 
- 낙하산 줄 
- 넥 워머 
- 부대찌개 재료 
- 오뎅과 우동다시, 면발



이렇게 적어 놓으면 '아, 그냥 상품후기를 좀 재미있게 쓰는 사람인가 보다. 난 뭐 저런 게 필요 없으니, 들어가서 읽어 볼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의 글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맞아. 이건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어. 투약병 100개 바로 주문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투약병의 설명 중 일부를 보자. 

요즘 아웃도어다 캠핑이다 매장 가보면 세상에 그런 바가지가 없어요.
양념통 세트 좀 살라하면 지나산도 좀 저렴한 것도 돈 만원~~좀 좋아보인다 싶으면
한세트에 이삼만원 우스워요...지나국 출신 주제에 분수를 모르는거죠.

근데 그런것들도 식용유나 간장 담으면 요실금 걸린 개새끼마냥 질질 싸고 댕겨요.

지나국은 애초에 고무나 실리콘 패킹이 안들어가면 뭔가 완전히 방수가 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의지가 없어요...의지는 커녕 그정도 싸가지도 없어요

- <싸나이를 위한 투약병 100병(5,200원+추가금)> 중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애로사항'을 그는 가려운 곳 찾아 긁듯 시원하게 긁어 준다. 욕설과 비속어가 일부 포함되며,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장들도 있지만, 노멀로그 독자라면 그 정도는 스스로 필터링 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소개하게 되었다.


2. 신들린 입담.


맛보기로, 주인공의 글 중 내가 풉-, 하고  터졌던 부분을 옮겨둘까 한다.

[1]
제가 목토시, 바라클라바도 여러가지 사봤습니다만...
일반 시중에 돌아다니는 바라클라바는 죄...작습니다. 저처럼 모자 59호 쓰던 사람은
왠만큼 늘어나기 전 까지는 흡사 스타킹을 쓰고 다니는 기분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스판기가 많은것들은...통풍이 잘 안되지요...숨쉬기 괴롭습니다.
통풍 안되는데 숨쉬다 보면 축축해지고 얼고...
(겨울에)산에서 보면...영문 모르는 여자들이 보면...
"어머 십알 산에서 밀가루 처먹고 내려오나봐~ "
이렇게 됩니다.

- <싸나이를 위한 저렴 따땃한 넥워머, 바라클라바> 중에서

[2]
가난한 대학시절....군바리 시절...부대찌개 집에가서 소주 참 많이 먹었었습니다.
둘이와도 넷이 와도 2인분 시켜서 좀 먹다 사리 채워넣고 다데기 넣고 육수 추가, 김치 추가...
바닥이 보인다 싶으면 또 사리 시켜서 다데기 넣고 육수 추가 ....무한반복의 미덕을 즐기다 보면
굉장히 알딸딸해져서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소주병이 왠지 뿌듯해보이고  
옆테이블에 젊은 처자라도 앉아 있을라 치면....어찌 합석이라도 해보자 선후, 친구들끼리
속닥거리다 실없이 소주잔만 비우고 그깟 깡다구도 없다고 서로를 힐난하던...아름다운 기억....

왠지 터질것 같은 가슴, 어디 하소연 할데도 없어 혼자 걷다 느낀 미친듯한 허기.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같이 한 잔 할 사람도 없어 홀로 들어간 식당, 부대찌개 일인분에 소주 일병
진득한 찌개 국물에 털어 마시던 소주 한잔.....쌉싸름 꼬질 꼬질한 기억...
 
- <싸나이를 위한 부대찌개의 정석 - 식재료 모음> 중에서

[3]
대한민국에 사는 한...적어도 남자는 라이타를 살 일이 없습니다.
술먹다 보면 빤짝이 슬림핏 양복 입은 형들이 사탕이랑 나눠주죠..
식당 카운터에 보면 대리운전 라이터 깔려있죠..

심지어 운 더럽게 좋은 날이면 레걸급 언니들이 "오ㅃ화~~꼭와~"하면서
방긋! 웃으면서 나눠주는 라이터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이런 라이타 따라갔다간...

떨리는 손으로 하얀 신용카드 영수증을 부여잡고
"어쩐지 십알~어제는 억세게 운이 좋더니만..."
머 이런 꼴 날수 있습니다. 싸나이라면 풋풋한 눈웃음에 만족하는겁니다.

- <싸나이라면 터보라이터> 중에서


입담에 넘어간 사람의 솔직한 심정은, 주인공의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
이딴게 왜 나한테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사 고 싶 다....

[2]
와......나... 진짜 나한테 하나도 필요없는건데
나도 모르게 결제할뻔했네;;

- <싸나이를 위한 덕용 낙하산줄>에 달린 댓글 중에서


주인공은 군생활을 군악대에서 한 뒤, 지금은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회사원이다.


3. 유적지 링크


주인공의 닉네임(피철철)으로 검색하면 그가 작성한 모든 글을 볼 수 있는데, 검색은 뽐뿌에 회원가입을 해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아직 '뽐뿌'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가입하기를 그닥 권하고 싶지 않다. 뽐뿌에 가입하는 순간, 적금통장을 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가입과 동시에 '배대지', '몰꼬리', '해피머니신공', '굴비카드엮기' 등의 단어에 익숙해 질 것이고, 택배 아저씨와 의형제, 또는 의남매를 맺을 확률이 높다. 여하튼 주인공이 남긴 글 중에, 뜨거운 반응이 있었던 글 몇 개를 아래에 링크해 두겠다.

싸나이용 다리미 ◀ 클릭
싸나이라면 터보라이터 ◀ 클릭
싸나이의 로망! 멀티툴 거버 ◀ 클릭
싸나이를 위한 투약병 ◀ 클릭
싸나이를 위한 저렴 따땃한 넥워머, 바라클라바 ◀ 클릭
싸나이를 위한 덕용 낙하산줄 ◀ 클릭
겨울 싸나이를 위한 오뎅과 우동다시, 우동면발 ◀ 클릭
싸나이를 위한 강력한 단조 가위, 칼 등 ◀ 클릭
싸나이를 위한 부대찌개의 정석-식재료 모음  ◀ 클릭


내가 주인공의 글을 처음 읽은 게 작년 12월 이었다. 읽고 나선,

'저렇게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글을 써도 된다면,
나도 진짜 재미있는 후기를 쓸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또 내 자랑 하는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시켜놓은 원두가 있어서 그 후기를 사이트에 올렸다. 이마트 커피, 코스트코 커피 등과 비교해 '비방용(비 방송용) 후기'를 적었다. 이건 진짜 내 자랑 하는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구입후기 이벤트에 1등으로 당첨되어 3개월 치 커피를 받았다. 아 진짜 이거 자랑하는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여하튼, 글이 많지 않아 다 읽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으니, 링크를 타고 들어가 구경해 보시길 권한다. 주말반 독자 분들의 작은 즐거움이라도 될 수 있길 바라며!



"무한님도 뽐뿌 중독이신가요? 최근에 사신 물건은?" 잠시만요. 지금 결제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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