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다 온 여자후배에게 관심 있는 남자
사연을 열 번 넘게 읽었는데, 어렵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이미 확고하게 이쪽을 '좋은 오빠'로 정해 놓은 거 같아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어렵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과 달리 모든 남자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자인 까닭에, 이쪽에선 계속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해 무릎 꿇은 채 쫓아갈 수 있다.
그 '고맙다는 얘기'부터 풀어가 보자.
몇 년 전, 친구의 친구, 친구의 후배, 뭐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캠핑장에 간 적이 있다. 지인들과 어울려 고기를 구워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런 자리에선 대개 처음 고기를 구운 사람이 계속 고기를 굽게 되기 마련이다.
고기를 구운 건 내 친구 J였다. J는 말 수가 적으며, 어딜 가든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가장 먼저 나서서 하는 우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목받고자 튀려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차를 탈 때 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난 집 가까우니까 걸어가도 돼. 너희들이 타고 가."라고 말하는 스타일의 친구였다.
여하튼 J가 한참 고기를 굽고 있는데, 친구의 후배인 Y양이 밥과 반찬이 담긴 접시와 캔맥주를 J에게 가져다주었다. 고기 굽느라 못 먹는 것 같다며 챙겨준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고기가 타기 시작했다. J가 Y양만 뚫어져라 보며 의식하는 관계로 고기 굽는 것에 집중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봤다. Y양 쪽으로 가는 고기 접시에 가장 잘 익은 고기가 수북하게 담기는 것을. 며칠 후 J가 말했다.
이거 참 슬픈 이야기라 여기에 적기가 좀 그렇긴 한데, 결론만 말하면 Y양은 훗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와 사귀었다. 친구들이 J와 그녀를 이어주려 했지만,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거절했다. J는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에게 마음이 있던 게 아니면 왜 그 날 자신을 챙겨주고 눈을 자꾸 마주쳤냐는 거였다.
다정한 여자를 처음 만나 본 남자들은 저런 착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주 쉬운 예로, 또래의 이성 헤어디자이너가 일하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할 때, 그 헤어디자이너가 질문을 조금만 길게 해도 모태솔로남의 심장은 급하게 뛸 것이다. 만약 그녀가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는 주변 수영장의 강습 시간표와 가격을 알아봐 주겠노라는 말까지 할 것이다. 상대는 '수영장 정보'나 얻어들을 겸 가볍게 꺼낸 말인데, 듣는 모태솔로남은
라는 생각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놓고는 내게 "헤어디자이너에게 고백하려 합니다."라며 사연을 보낸다. 아, 저 위에서 말한 Y양에게 '캠핑장에서 J를 챙겼던 이유는 무엇인가, 시선교환은 왜 했는가'에 대해 친구가 물어본 적 있다. Y양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사연의 주인공인 P군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간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온 P군 입장에선 이 말이 충격적이겠지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P군에게 했다는 감사인사는, 롤링페이퍼에 한 줄 적어준 칭찬의 말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 이후 그녀의 모든 행동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그냥 '다정한 여자'인 것이다.
너무 낙심하진 말길 바란다. 그저 그녀가 '다정한 여자'라서 그간 친절과 미소를 보인 것이라 하더라도, 웃으며 대화하고 서로 칭찬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니 앞으로 가까워지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P군에게선 모태솔로남의 향기가 너무 진하게 난다. 이대로 나가다간 그녀로부터 '부담스러워요'라는 말을 듣거나, '답장 없음'을 경험하게 될 게 뻔하다. 거기까지 몰린 후 다급한 마음에 고백하겠다고 나서면 '좋은 오빠동생'으로 지내자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우선 말투부터 고쳐야 한다. 현재 P군의 카톡대화 말투는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마지막 부분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까 "~하겠구나.", "~하렴.", "~하자꾸나." 같은 서술어는 더 이상 쓰지 말길 권한다. 둘은 겨우 한 살 차이 아닌가. 그런데 대화를 보면 P군은 상대에게 무슨 '삼촌'이라도 된 것처럼 군다. 상대보고 말을 놓으라고 하든지, 아니면 P군이 친구처럼 대화하든지 하자.
대화 내용 역시 '애늙은이'처럼 괴상한 주제를 꺼내지 말길 권한다. 상대가 필리핀에 살다가 왔으면 필리핀과 한국의 차이점, 혹은 필리핀 음식 같은 것에 대해 물으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난 P군의 저 멘트를 보고 사연 창을 닫으려고 했었다. 그런 게 궁금하면 검색을 하자. 상대도 어이가 없으니까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가. 여행 관련해서 물어 볼 게 있다고 해놓고 정치적 상황을 묻고 있으니 '이건 또 어떤 종류의 아픔을 지닌 인간인가?'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대화 주제는 노멀하게 선택하길 바란다. 소개팅 나가서 상대에게 '수다 말고, 거대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 대원도 있었는데, 그런 '거대 담론'을 나누고 싶으면 소개팅 말고 토론모임 같은 곳엘 나가자. 피곤하다.
그리고 하나 더. 대화를 하려고 말을 걸었으면 대화를 길게 하자. P군의 대화는 레퍼토리가 전부 똑같다.
상대가 할머니 댁에 내려간다고 했으면 그 지역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할머니 댁에 자주 가는지, 친척들 중 또래의 친척이 있는지 등을 물으면 된다. "그래 잘 다녀오고, 올라오면 밥 한번 먹자."라는 말만 하지 말고 말이다.
혼자 불타는 짝사랑은 이제 그만하자.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거, P군이 '이전 짝사랑' 끝내고 나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다른 이성을 향해 다시 불타오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예전에 말했듯 주변의 '아는 이성'을 멸종시키게 된다. 가능성만 보이면 일단 상대를 종교로 삼아 예배드리는 남자. 난 P군이 그런 남자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와 사귀겠다'는 마음 대신 '그녀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길 권한다. '어느 타이밍에 고백을 해야 하는가' 따위는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라는 톡을 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친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P군이 이성을 대하던 것의 반대로만 하면 성공한다. 여태껏 P군은 대화에 소심하고 고백에 과감했다. 앞으론 대화에 과감하고 고백에 소심해지자. 이전처럼 상대에게 전화 한번 거는 건 무서워하면서 고백에만 적극적이어선 곤란하다. 상대에게 매달리거나 무릎 꿇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 해도 좋으니, 필요하다면 그 마음 그대로를 상대에게 털어 놓으며 친해지길 권한다.
하나 더. 상대는 철저하게 자신의 생활을 단속하며 '미래'를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을 땐 카톡 알림도 꺼 놓고, 늦게까지 공부하다 잠들 때도 많다. 그런 반면 P군은 태평한 듯 보인다. 지금은 이십대 중반이니 고만고만한 것 같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춘을 그냥 흘려보낸 것에 대한 '채무'를 감당해야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딱 그즈음부터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진다. 페북 들어가서 상대 일과 체크하는 건 그만두고, 상대가 부러워할만한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기 바란다.
P군이 마음껏 마시고 있던 김칫국 그릇을 내가 쳐 엎어 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일부러 나쁜 얘기를 적은 게 아니라, P군이 보낸 자료들이 위와 같은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어서 그랬다. 상대는 겉으로 웃음 이모티콘까지 넣어가며 답하긴 하지만, 갈수록 대화를 빨리 끊고 싶어 한다. P군이 매번 똑같은 얘기만 하니 솔직히 상대도 짜증이 날 것이다. 그걸 모른 채 P군은 말한다.
그런 거 하지 말자. 로보트도 아니고 대체 그게 뭐하는 짓인가. 말을 걸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 버리는 건 '가랑비 작전'이 아니다. 그건 한 주에 한 번씩 찾아와 식당 문 열고 인사한 뒤, 주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나가버리는 '이상한 손님'같은 거다.(그런 사람이 계속 온다면, 쫓아내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P군이라면, 이미 상대와 팥빙수를 두 번쯤 먹었을 것 같다. 폰 붙잡고 카톡 찔끔찔끔 하면서 다가가네 어쩌네 하지 말고, 남자답게 가자.
▲ "근데 제목에 '해외에서 살다 온'은 별 연관이 없…." 여자가 착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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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열 번 넘게 읽었는데, 어렵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이미 확고하게 이쪽을 '좋은 오빠'로 정해 놓은 거 같아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어렵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과 달리 모든 남자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자인 까닭에, 이쪽에선 계속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해 무릎 꿇은 채 쫓아갈 수 있다.
"그게 무슨 얘기죠? 그녀는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제게 고맙다는 얘기도 했는데…."
그 '고맙다는 얘기'부터 풀어가 보자.
1. 다정한 여자.
몇 년 전, 친구의 친구, 친구의 후배, 뭐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캠핑장에 간 적이 있다. 지인들과 어울려 고기를 구워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런 자리에선 대개 처음 고기를 구운 사람이 계속 고기를 굽게 되기 마련이다.
고기를 구운 건 내 친구 J였다. J는 말 수가 적으며, 어딜 가든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가장 먼저 나서서 하는 우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목받고자 튀려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차를 탈 때 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난 집 가까우니까 걸어가도 돼. 너희들이 타고 가."라고 말하는 스타일의 친구였다.
여하튼 J가 한참 고기를 굽고 있는데, 친구의 후배인 Y양이 밥과 반찬이 담긴 접시와 캔맥주를 J에게 가져다주었다. 고기 굽느라 못 먹는 것 같다며 챙겨준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고기가 타기 시작했다. J가 Y양만 뚫어져라 보며 의식하는 관계로 고기 굽는 것에 집중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봤다. Y양 쪽으로 가는 고기 접시에 가장 잘 익은 고기가 수북하게 담기는 것을. 며칠 후 J가 말했다.
"그 Y씨, 나한테 관심이 있던 것 같은데…. 눈도 계속 마주쳤는데…."
이거 참 슬픈 이야기라 여기에 적기가 좀 그렇긴 한데, 결론만 말하면 Y양은 훗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와 사귀었다. 친구들이 J와 그녀를 이어주려 했지만,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거절했다. J는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에게 마음이 있던 게 아니면 왜 그 날 자신을 챙겨주고 눈을 자꾸 마주쳤냐는 거였다.
다정한 여자를 처음 만나 본 남자들은 저런 착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주 쉬운 예로, 또래의 이성 헤어디자이너가 일하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할 때, 그 헤어디자이너가 질문을 조금만 길게 해도 모태솔로남의 심장은 급하게 뛸 것이다. 만약 그녀가
"수영 할 줄 아세요? 저도 수영 배워야 하는데~
처음에 가면 뭐 배워요? 수영 배우기 어렵지 않아요? 이 근처에 가르쳐주는 곳 있어요?"
처음에 가면 뭐 배워요? 수영 배우기 어렵지 않아요? 이 근처에 가르쳐주는 곳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는 주변 수영장의 강습 시간표와 가격을 알아봐 주겠노라는 말까지 할 것이다. 상대는 '수영장 정보'나 얻어들을 겸 가볍게 꺼낸 말인데, 듣는 모태솔로남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이런 걸 굳이 묻지도 않겠지.
아주 약간이라도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거야.
만약 호감이 없다 하더라도,
이건 일반적인 헤어디자이너-손님'의 관계가 아니야.
뭔가 느낌이 달라. 인연인 건가….'
아주 약간이라도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거야.
만약 호감이 없다 하더라도,
이건 일반적인 헤어디자이너-손님'의 관계가 아니야.
뭔가 느낌이 달라. 인연인 건가….'
라는 생각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놓고는 내게 "헤어디자이너에게 고백하려 합니다."라며 사연을 보낸다. 아, 저 위에서 말한 Y양에게 '캠핑장에서 J를 챙겼던 이유는 무엇인가, 시선교환은 왜 했는가'에 대해 친구가 물어본 적 있다. Y양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 오빠 혼자 고기 굽고 있기에 챙겨준 건데….
눈 마주친 건, 그 오빠가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눈 마주친 거고…."
눈 마주친 건, 그 오빠가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눈 마주친 거고…."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사연의 주인공인 P군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간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온 P군 입장에선 이 말이 충격적이겠지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P군에게 했다는 감사인사는, 롤링페이퍼에 한 줄 적어준 칭찬의 말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 이후 그녀의 모든 행동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그냥 '다정한 여자'인 것이다.
2. 모태솔로남의 향기.
너무 낙심하진 말길 바란다. 그저 그녀가 '다정한 여자'라서 그간 친절과 미소를 보인 것이라 하더라도, 웃으며 대화하고 서로 칭찬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니 앞으로 가까워지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P군에게선 모태솔로남의 향기가 너무 진하게 난다. 이대로 나가다간 그녀로부터 '부담스러워요'라는 말을 듣거나, '답장 없음'을 경험하게 될 게 뻔하다. 거기까지 몰린 후 다급한 마음에 고백하겠다고 나서면 '좋은 오빠동생'으로 지내자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우선 말투부터 고쳐야 한다. 현재 P군의 카톡대화 말투는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마지막 부분을 떠오르게 한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넥스트 <해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넥스트 <해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그러니까 "~하겠구나.", "~하렴.", "~하자꾸나." 같은 서술어는 더 이상 쓰지 말길 권한다. 둘은 겨우 한 살 차이 아닌가. 그런데 대화를 보면 P군은 상대에게 무슨 '삼촌'이라도 된 것처럼 군다. 상대보고 말을 놓으라고 하든지, 아니면 P군이 친구처럼 대화하든지 하자.
대화 내용 역시 '애늙은이'처럼 괴상한 주제를 꺼내지 말길 권한다. 상대가 필리핀에 살다가 왔으면 필리핀과 한국의 차이점, 혹은 필리핀 음식 같은 것에 대해 물으면 되는 것이다.
"그곳의 정치적 상황은 어떤 편인지…."
솔직히 난 P군의 저 멘트를 보고 사연 창을 닫으려고 했었다. 그런 게 궁금하면 검색을 하자. 상대도 어이가 없으니까
"음…, 필리핀 며칠 다녀오시는 거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가. 여행 관련해서 물어 볼 게 있다고 해놓고 정치적 상황을 묻고 있으니 '이건 또 어떤 종류의 아픔을 지닌 인간인가?'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대화 주제는 노멀하게 선택하길 바란다. 소개팅 나가서 상대에게 '수다 말고, 거대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 대원도 있었는데, 그런 '거대 담론'을 나누고 싶으면 소개팅 말고 토론모임 같은 곳엘 나가자. 피곤하다.
그리고 하나 더. 대화를 하려고 말을 걸었으면 대화를 길게 하자. P군의 대화는 레퍼토리가 전부 똑같다.
ⓐ 안부 묻기.
ⓑ 화이팅 하라고 말하기.
ⓒ 다음에 한 번 보자며 끝맺기.
ⓑ 화이팅 하라고 말하기.
ⓒ 다음에 한 번 보자며 끝맺기.
상대가 할머니 댁에 내려간다고 했으면 그 지역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할머니 댁에 자주 가는지, 친척들 중 또래의 친척이 있는지 등을 물으면 된다. "그래 잘 다녀오고, 올라오면 밥 한번 먹자."라는 말만 하지 말고 말이다.
3. 그 밖의 이야기들.
혼자 불타는 짝사랑은 이제 그만하자.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거, P군이 '이전 짝사랑' 끝내고 나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다른 이성을 향해 다시 불타오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예전에 말했듯 주변의 '아는 이성'을 멸종시키게 된다. 가능성만 보이면 일단 상대를 종교로 삼아 예배드리는 남자. 난 P군이 그런 남자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와 사귀겠다'는 마음 대신 '그녀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길 권한다. '어느 타이밍에 고백을 해야 하는가' 따위는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오빠! 나 ~하게 되었어! ㅎㅎㅎ"
라는 톡을 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친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P군이 이성을 대하던 것의 반대로만 하면 성공한다. 여태껏 P군은 대화에 소심하고 고백에 과감했다. 앞으론 대화에 과감하고 고백에 소심해지자. 이전처럼 상대에게 전화 한번 거는 건 무서워하면서 고백에만 적극적이어선 곤란하다. 상대에게 매달리거나 무릎 꿇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 해도 좋으니, 필요하다면 그 마음 그대로를 상대에게 털어 놓으며 친해지길 권한다.
하나 더. 상대는 철저하게 자신의 생활을 단속하며 '미래'를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을 땐 카톡 알림도 꺼 놓고, 늦게까지 공부하다 잠들 때도 많다. 그런 반면 P군은 태평한 듯 보인다. 지금은 이십대 중반이니 고만고만한 것 같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춘을 그냥 흘려보낸 것에 대한 '채무'를 감당해야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딱 그즈음부터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진다. 페북 들어가서 상대 일과 체크하는 건 그만두고, 상대가 부러워할만한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기 바란다.
P군이 마음껏 마시고 있던 김칫국 그릇을 내가 쳐 엎어 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일부러 나쁜 얘기를 적은 게 아니라, P군이 보낸 자료들이 위와 같은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어서 그랬다. 상대는 겉으로 웃음 이모티콘까지 넣어가며 답하긴 하지만, 갈수록 대화를 빨리 끊고 싶어 한다. P군이 매번 똑같은 얘기만 하니 솔직히 상대도 짜증이 날 것이다. 그걸 모른 채 P군은 말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톡을 보내며 연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거 하지 말자. 로보트도 아니고 대체 그게 뭐하는 짓인가. 말을 걸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 버리는 건 '가랑비 작전'이 아니다. 그건 한 주에 한 번씩 찾아와 식당 문 열고 인사한 뒤, 주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나가버리는 '이상한 손님'같은 거다.(그런 사람이 계속 온다면, 쫓아내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P군이라면, 이미 상대와 팥빙수를 두 번쯤 먹었을 것 같다. 폰 붙잡고 카톡 찔끔찔끔 하면서 다가가네 어쩌네 하지 말고, 남자답게 가자.
▲ "근데 제목에 '해외에서 살다 온'은 별 연관이 없…." 여자가 착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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