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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종합병원 병동의 의사와 간호사

by 무한 2013. 7. 17.
종합병원 병동의 의사와 간호사
지난 [간병인편]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글은 일반화 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라는 것을 먼저 밝혀둔다. 병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 개인이, 병원에 머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두는 것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병동 간호사의 서열을 알아보는 방법


스테이션(병동 중앙,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곳)에 앉아 있으면 일단 '막내'는 아니라고 보면 된다. 막내는 앉아서 오랫동안 뭔가를 할 시간이 없다. 막내는 어딘가에서 수액을 갈고 있거나, 바이탈을 체크하고 있거나, 정리를 하고 있거나, 혼나고 있다.

내가 있던 병동의 막내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학교로 비유하자면 막내가 '새내기', 그 위의 간호사가 '과대표' 정도 되는 분위기였다. 아니, 학교에 비유하는 건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학교보다는 군대의 분위기와 더 흡사했다. 군대에서 작전을 나가면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다들 예민하고, 평소보다 훨씬 압박감이 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대략 그런 분위기가 스테이션에 흐르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주간, 초번, 야간으로 나누어 근무를 하는데, 그 인원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따라 병동 분위기의 차이가 많이 난다. 내가 있던 병동에는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세 명의 '고참 간호사'가 있었다. 그녀들 각각의 특색을 적자면 아래와 같다.

ⓐ 시어머니
째지는 듯한 고음의 목소리를 가진 간호사였다. 굳이 관찰하지 않아도 그녀 '실세'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있던 병동은 스테이션 바로 옆이었는데, 그녀가 근무할 때에는 그녀 목소리만 들려왔다. 특이한 건, 다른 '고참 간호사'가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것과 반대로, 그녀는 병동 전체를 휘젓고 다니며 많은 것들을 지시했다. 그녀가 스테이션에서 막내에게 "이거 다 쓴 거야? 넣어놔도 되지?"라고 물었을 때, 막내의 심장이 얼어붙는 걸 난 봤다.

ⓑ 모델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 보이는 '고참 간호사'였다. 스테이션에 가장 오랫동안 앉아 있는 간호사였는데, 자신이 가장 예뻐 보인다고 생각하는 자세로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컴퓨터를 하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외모도 가장 뛰어났기에, 앞쪽 게시판 병원 홍보물에는 그녀와 어느 의사가 웃고 있는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다. 다른 간호사들이 '미소'에 신경을 쓰며 억지로라도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그녀는 '차도녀'로 컨셉을 잡았는지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제로 도도하기도 했다. 내가 뭘 물어보려고 가면 쳐다보지 않은 채 대답하기도 했고, 곁눈질로 인기척을 느끼면 가만히 있다가도 뭔가를 바쁘게 하는 척 하기도 했다.(대답을 해 준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막내가 부리나케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자신이 해결하려 했기에, 그녀가 '고참 간호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투명인간
군대로 치자면 '말년병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간호사였다. 말년병장들은 떨어지는 낙엽에도 다칠 수 있기에 대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 일이 많다. 조만간 군대를 떠나 사회로 복귀할 예정이기에, 군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닥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 그렇습니까 군인아저씨들. 전 곧 민간인이 될 사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정도의 뉘앙스로 받을 뿐이다.
이 '고참 간호사'가 근무할 때, 다른 간호사들의 표정이 가장 밝았다. 위에서 말했던 '막내'역시 이때에는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난 그 전까진 '막내라서 참 고생이 많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간호사가 근무할 땐 그녀가 오버스러울 정도로 활발한 모습을 보였기에 좀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있을 때 마침 근무가 그렇게 짜여진 까닭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전에 분명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 한 사람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시 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와이파이 비밀번호 물어봤을 때 "저희는 근무시간에 폰을 안 써서 잘 모르겠네요."라고 하던데, 병원에 그렇게 묶여 있고 폰도 사용할 수 없으면 '사생활'이나 '연애'는 어떻게 꾸려나가는지가 좀 궁금했다.


2. 맞춤형 갈굼, 수간호사


이전까지는 병원 간호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을 그냥 '수간호사'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간호사들과 다른 옷을 입고, 의사가 회진 돌 때 옆에서 보좌하듯 따라다니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난 처음엔 '보험관련 상담 같은 걸 하는 아주머니인가?'하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수간호사였다.

군대와 분위기가 비슷한 까닭에 자꾸 군대 얘기를 하게 되는데, 수간호사는 군대의 행정보급관과 느낌이 비슷하다. 한 부대에 몇 십 년 근무한 행정보급관은 병사나 간부의 심리를 모두 꿰뚫고 있으며, 부대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겪은 까닭에 당황하는 법이 없다. 수간호사도 그런 느낌이다. 그게 '여유'에서 생긴 것이 아닌, 산전수전을 겪으며 자연히 그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오랜 시집살이로 인해 "이제 더 겁나는 일도 없다."라는 마음이 되어버린 큰며느리의 느낌이랄까.

난 수간호사와 딱 한 번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의 '웃으면서 할 말 다 하는 스킬'에 매료되어 버렸다. 스테이션에 말하지 않고 1층에 내려갔다가 전화를 받고 올라왔을 때였는데, 그녀는 '말하지 않고 간 것'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전에 한 번 같은 일이 있었을 때, 일반 간호사는 별 일 아닌 듯 그냥 "오셨네요. 환자 분 데리고 1층에 내려가서 검사 받으세요."라고 말했는데, 수간호사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병원의 입장을 설명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한 번 봐 준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그 미소 속에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스테이션에 간호사 분들이 아무도 없어서 그냥 내려갔던 건데요."라고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 두었다. 그랬다가는 피바람이 불 것이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다.

수간호사의 그 '웃으며 할 말 다 하는 스킬'은 다른 간호사의 실수를 지적할 때 빛을 발했다. 한 번은 의사가 회진을 돌다가, 침대 옆에 부착된 '손 소독제'가 다 떨어진 것을 발견한 적 있다. 환자를 손으로 만져 상태를 보려 소독제를 사용하려 했는데, 소독제가 다 떨어졌던 것이다. 옆에 있었던 수간호사는 회진이 끝난 후 다른 간호사를 데려와 조근조근 말하기 시작했다. 지적을 당하는 간호사는 당황했는지 일단 변명을 했는데, 수간호사는 딱 그 간호사가 '변명한 만큼' 더 갈궜다. 지적당한 간호사가 '완전한 패배 선언'으로 무장해제를 하고 나서야 잔소리가 멈춰졌다.

수간호사가 스테이션에 있을 땐, 위에서 말한 '시어머니'라고 했던 고참 간호사도 조용했다. 수간호사는 대개 다른 간호사 한 명을 옆에 끼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해당 간호사의 표정이 밝지 않은 걸로 봐서 좋은 소리는 아닌 듯 했다. 여하튼 대부분의 사람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 달리, 미소 지으면서도 할 말 다 하는 부분이 매력적이었기에 이렇게 적어둔다.


3. 교수와 레지던트


교수(특진의사) 얘기는 별로 할 게 없다. 그들은 회사로 치자면 사장, 부대로 치자면 사단장 같아서 볼 일이 별로 없다. 회진을 돌 때, 교수가 병실로 들어오면 일단 TV가 꺼지고 그 밑의 의사들과 간호사가 옆으로 둘러선다. 다른 환자에게 교수가,

"어깨는 좀 어떠세요? 숨 쉬는 건? 손을 이렇게 해 보세요. 손이 저리실 때도 있나요?"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저렇게 얘기하고 나서는, 레지던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교수 - 0000증상 없다며?
레지던트 - 예. 처음에 제가 확인할 땐 증상이 없는 걸로….
교수 - 지금은 있잖아.
레지던트 - 예….
교수 - 다시 확인해봐.
레지던트 - 예.



수간호사처럼 '웃으며 할 말 다하는 스킬'같은 게 교수한테는 필요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붙잡고 길게 잔소리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냥 짧게 딱 한 마디, "확실해?" 정도의 얘기를 하면 이후 상황이 알아서 정리됐다.

병원에 있으면서, 좋은 교수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원했을 때에는 좋은 레지던트를 만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담당이었던 레지던트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자꾸 서두르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환자가 반응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해보세요. 괜찮아요? 괜찮죠? 안 아프죠? 아프지 않죠?"
"좀 나아진 것 같으세요? 나아진 것 같으시죠? 여긴 좀 덜 아프시죠?"
"어지러워요? 안 어지럽죠? 안 어지럽죠? 이쪽으로 해보세요. 안 어지럽죠?"



이건 뭐 자신이 의심하는 증상에 맞게 환자를 맞추려는 것 같아서 다른 의사에게 이 부분에 대해 말하긴 했다. 혼날 수도 있겠지만 싫은 소리를 들어서라도 저런 태도를 고치는 게, 그 레지던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교수가 담당의고 레지던트가 주치의였는데, 둘 사이에 활발한 의사소통이 없는 것 같아서 좀 의아하기도 했다. 새로 나타난 증상을 레지던트에게 말했는데, 그는 "그건 별개의 증상이에요. 관련 없는 증상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교수가 회진 돌 때, 난 같은 얘기를 교수에게도 했다. 그러자 교수는 "아…, 언제부터 그러셨어요?"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관련된 검사도 지시했고 말이다. 이 정도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좀 당황스러웠기에, 교수에게 '레지던트에게 이야기 했다'는 것도 밝혔다. 역시 또 혼났겠지만, 그 경험도 그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4. 레지던트와 간호사


위에서 너무 레지던트의 어두운 부분만 얘기한 것 같은데, 인간적으로 레지던트가 측은해 보일 때도 있었다. 특히 병원에 온지 1년도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레지던트가 있었는데, 그는 대개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니는 레지던트와 달리 담배를 피러 갈 때에도 혼자 갔다. 흡연실 옆 자판기에서 이온음료를 뽑아 벌컥벌컥 마시고는, 또 얼른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는 걸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레지던트는 퇴근도 안 하는지, 저녁엔 안에 하늘색 수술복 같은 걸 입고 돌아다녔다. 나도 담배를 많이 피우는 까닭에 한 시간에 한 번은 꼭 흡연실로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레지던트는 흡연실에 있었다. 흡연실이 그에겐 마음의 안식처인 듯 혼자 먼 곳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 위에서 소개한 '조급증 레지던트'가 그의 선배였다. 때문에 둘이 병실에 들어와 환자를 볼 때가 있었는데, 그때 '조급증 레지던트'는 시범을 보이듯 다급한 증세체크를 했고, 측은한 레지던트는 옆에서 '체크하는 방법'을 지켜봤다.

그러던 중, 역시 위에서 말한 '시어머니 간호사'가 들어와 수액을 간 적도 있다. 난 이전까지 의사와 간호사의 서열이 '의사 > 간호사'라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 간호사'는 거침없이 행동했다.

"비켜주세요. 수액 갈게."


침대 옆에서 증세체크 시범을 보고 있던 '측은한 레지던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켜줬다. '조급증 레지던트'역시 잠시 멈칫 하더니, 서둘러 체크를 끝내고 병실을 나가버렸다.

개인적으로 느낀 종합병원의 서열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교수 > 수간호사 > 수련의 ≥ 고참 간호사 > 신입 수련의 > 간호 막내 >>>> 간병인


너무 딱딱한 얘기만 적어 놓은 것 같아 말랑말랑한 얘기도 하나 적자면, 레지던트 중 간호사를 좋아하는 듯 보이는 관계도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있었던 일인데, 남자 레지던트 한 명과 여자 간호사 두 명이 와서 분식을 시켰다. 레지던트는 그 중 예쁘게 생긴 간호사에게 관심이 있는 듯 참치와 멸치 김밥 중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저 메뉴는 어떠냐면서 의견을 묻기도 했다. 따라 온 다른 간호사는 멀뚱멀뚱 서서 김밥 써는 것만 보고 있었다.

예쁘게 생긴 간호사가 별 반응을 안 보이며 아무거나 먹자고 했고, 여하튼 주문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예쁜 간호사가 뭔갈 안 하고 왔다면서 다시 병동에 올라가 있겠다고 했다. 그러자 레지던트는 다른 간호사에게

"음식 나오면 받아서 올라 와."


하고는 예쁜 간호사와 올라가 버렸다. 하아, 적고나니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나쁜 이야기를 적어 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 밖에 자잘한 이야기들도 꽤 많았는데, 메모해 놓은 병원 봉투를 잃어버려서 생각해 내기가 어렵다. 간호사가 우리 앞 침대의 할머니께

"할머니, 오른 팔 들어보세요. 잘 하시네. 왼 발 들어보세요."


하고는 칭찬만 하고 나가, 할머니가 계속 팔과 다리를 들고 있었던 일도 있었는데….

이번 경험을 하며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갈구더라도, 일단 뭘 좀 가르쳐 주고 갈구는 게 어떨까?'


라는 점이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늘 생각했던 부분인데, 아랫사람이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일 떠맡기고 갈구기보다, 하는 방법이든 순서든 일단 가르쳐 주고, 못하면 그때 갈궈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분야든 교육을 아무리 많이 받았더라도 이론과 실무의 차이는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냥 아랫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만만하니 일단 갈구는 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 아닐까.

막내 간호사가 퇴근하려 사복으로 다 갈아입고, 다른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선배 간호사가 다가와 한참을 붙잡고 갈구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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