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종합병원 병실의 간병인들.
같은 병원 같은 병동을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간병을 하느라 며칠간 머물렀는데, 이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병실 분위기가 5년 전과 달라진 부분들도 있기에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일반화 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라는 걸 먼저 이렇게 서두에 밝혀두고, 출발해 보자.
과거엔 간병인들이 대개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입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사 온 음료나 음식 등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 병동에 삼일쯤 같이 있다 보면 이웃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퇴원할 땐 서로 쾌차하라는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간병인이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이 아닌, '간병'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간병인들은 병원과 연관된 업체에 속해 있는 듯, 회사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한 병원에서 병동만 옮기며 일을 하는지 서로 친한 듯 보였다. 간호사들도 그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는지,
라며 알은척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전문 간병인이 아닌, 보호자가 간병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잔소리나 지적을, 간호사들은 그들에게 쏟아 부었다. 병실 정리가 엉망이다, 빨래를 왜 병실에 널어두냐, 저 위에 물건 올려두지 말라니까 왜 올려뒀냐, 시트가 나왔는데 왜 다시 안 집어넣었냐 등의 이야기로 간병인을 혼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있던 병동의 간병인들은 간호사의 지적에 일단 변명부터 꺼냈다. 변명을 듣고 이해해 주는 간호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어쨌든 간병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적받은 걸 치우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 되었다. 그렇다고 간병인들이 그냥 당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간호사가 병실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중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한국말을 하다가 갑자기 중국어로 다급히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분명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병실의 왕고는 '입원기간 가장 긴 환자'였다. 병원밥을 다른 환자보다 많이 먹었다는 것으로 그에겐 'TV리모컨'과 냉장고를 더 넓게 쓸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 사람에 따라, '병실 왕고'라는 이유로 자신이 의사와 동급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몇 번 베드에 누가 면회를 왔는지, 뭘 사왔는지 등을 기억하며 병실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이번에 느낀 건, 그런 '왕고' 역할을 전문 간병인들이 하고 있다는 거였다. 간병인 중 가장 고참인듯 보이는 사람이 리모컨을 쥐고 있었고, 그 바로 아래의 간병인이 에어컨을 통제했다. 또 다른 간병인은 커튼을 많이 치면 안 된다거나 수건을 안 보이는 쪽으로 걸어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를 했다. 냉장고 역시 번호가 적힌 공간을 무시하고 본인들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저런 행위가 강제적이라든가 스트레스를 받게 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간병인들은 병장에서 이등병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저 말 한 마디에 간병인 셋이 모두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자신들의 반찬통과 간식 등을 치웠다. 잔소리를 하던 간병인은,
라며 친절히 안내까지 해 주었다.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인 간병인들은 이처럼 '간호사'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 없지만, 전문 간병인들은 파벌이 형성되어 있을 경우 버티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추레하게 하고 다닌다'며 다른 간병인에게 대놓고 이야기 하는 일도 있었다. 비꼬는 어투로 상대를 약 올리는 모습, 서로 뒷담화를 나눈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을 두고 눈으로 신호 보낸 뒤 웃음을 흘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환자를 돌보는 일보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게 더욱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5박 6일간 같은 병실에 있었던 세 간병인에 대한 이야기다.
A. 수면의 여왕.
그 누구보다 먼저 잠들고, 그 누구보다 늦게 일어나는 분이었다. 누가 간병인이고 누가 환자인지 모를 정도로 우울한 기운을 풍기셨다. 담당하는 환자는 사고로 인해 잠깐 입원하신 할머니였는데, 간병인은 할머니께 용기를 북돋아 드리기 위한 말을 계속 해 드렸다.
할머니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계신듯 보였는데, 간병인은 계속 "할머니, 더 살아서 뭐하냐고 생각하지 마." 등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했다. 그런 위로를 삼일 쯤 듣자, 할머니에게서도 우울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저녁식사를 마치면 바로 취침에 들어가셨다.
B. 능청의 여왕.
하루 종일 끊임없이 정말 잘 드시는 분이었다. 역시 이 분의 담당 환자도 할머니셨는데, 할머니는 의사표현을 고개 끄덕이는 것으로 겨우 하실 정도로 편찮으셨다. 이 간병인은
라며 냉장고에서 참외를 꺼내오고, 잠시 후 같은 방식으로 요플레를 꺼내오고, 이어서 계속 다른 음식들을 꺼내다가 먹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어도 간병인은 냉장고로 향했다. 할머니가 거부의사를 밝히면,
라며 음식들을 폭풍흡입했다. 더욱 놀라운 건, 할머니의 식단마저도 마음대로 바꾼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로 '일반식'과 '보리 비빔밥'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간병인은 자신이 보리밥을 먹고 싶었는지 할머니께
라며 질문을 했다. 그 물음에 분명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싫다는 내색을 하셨는데, 간병인은
라고 말하곤 보리밥을 주문했다. 저녁식사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보리밥이 싫다며 드시지 않았다. 간병인은 "할머니, 그래도 먹어야 힘을 내지. 조금이라도 먹어."라고 몇 번 권하다가, 혼자 보리밥을 다 먹어 버렸다. 냉장고를 열어 "이거 주인 있어요?"라며 묻고는, 주인이 없는 음식(퇴원한 환자가 놓고 간 것)을 다 먹을 정도로 대단한 식탐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아, 할머니의 며느리가 아침마다 다녀갔는데, 그때는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의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C. 고생의 여왕.
간병인C는, 앞서 말한 간병인A와 B가 하는 일을 합친 것보다 많은 일을 하는 분이었다. 환자의 생리현상 뒤처리를 모두 다 하며, 밤낮 할 것 없이 환자를 데리고 수시로 검사를 받으러 건물을 오르내렸다. 간병인 A와 B가 "다른 병원은 여기보다 시간당 오천 원씩 더 준다."며 불평을 할 때에도, C는 묵묵히 환자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일 년 넘게 그 환자를 돌보는 중이라고 했는데,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태도엔 경건함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얼굴 근육이 다 굳어버린 듯 6일 동안 한 번도 C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희로애락은 이미 다 부서져 사라지고, 덤덤함만 남은 듯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
그 밖에 흥미로웠던 건, 전문 간병인들과 엮인 병원 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의료기기 파는 곳과는 친분 때문인지, 아니면 중개료를 받기로 했기 때문인지 수시로 연락하는 간병인도 있었다. 어느 병동에 새 환자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간병인들끼리 주고받으며 의료기기점과 연결해 주려는 듯 보였다.
간병인들에게 건강보조식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간병인B가 그 판매원에게 약을 사 먹었는데, 살 빠진다는 효소제품이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요플레 1팩(6개입)을 "유통기한 내일까지네. 오늘 다 먹어야겠네."라며 혼자 다 먹으니 살이 찌는 건데….
삼 년간 간병을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삼 년간 간병인으로 일을 하고 나니, 마음에 아무 희망과 소망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과 동시에 팔이 망가졌다고 했다. 바닥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자다보면 한 쪽으로 누워 자신의 팔을 깔고 자거나, 바로 누워도 침대 옆으로 팔을 내 놓은 채 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잘못된 자세로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팔을 뒤로 돌리거나 들어올리기 힘들어 지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아플 땐 이렇게 간병을 못 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간병인도 있었는데, 이거 자꾸 얘기가 감정에 치우치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자.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겐 간병을 받을 일도, 간병을 할 일도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 간병인들에게 시어머니처럼 굴었던 간호사들에게도 시련은 찾아오는데….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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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병원 같은 병동을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간병을 하느라 며칠간 머물렀는데, 이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병실 분위기가 5년 전과 달라진 부분들도 있기에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일반화 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라는 걸 먼저 이렇게 서두에 밝혀두고, 출발해 보자.
1. 전문 간병인들의 등장.
과거엔 간병인들이 대개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입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사 온 음료나 음식 등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 병동에 삼일쯤 같이 있다 보면 이웃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퇴원할 땐 서로 쾌차하라는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간병인이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이 아닌, '간병'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간병인들은 병원과 연관된 업체에 속해 있는 듯, 회사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한 병원에서 병동만 옮기며 일을 하는지 서로 친한 듯 보였다. 간호사들도 그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는지,
"어? 여사님(간호사가 간병인을 부르는 호칭) 여기로 오셨네?"
라며 알은척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전문 간병인이 아닌, 보호자가 간병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잔소리나 지적을, 간호사들은 그들에게 쏟아 부었다. 병실 정리가 엉망이다, 빨래를 왜 병실에 널어두냐, 저 위에 물건 올려두지 말라니까 왜 올려뒀냐, 시트가 나왔는데 왜 다시 안 집어넣었냐 등의 이야기로 간병인을 혼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있던 병동의 간병인들은 간호사의 지적에 일단 변명부터 꺼냈다. 변명을 듣고 이해해 주는 간호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어쨌든 간병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적받은 걸 치우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 되었다. 그렇다고 간병인들이 그냥 당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간호사가 병실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중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한국말을 하다가 갑자기 중국어로 다급히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분명했다.
2. 병실의 엄석대.
5년 전만 하더라도 병실의 왕고는 '입원기간 가장 긴 환자'였다. 병원밥을 다른 환자보다 많이 먹었다는 것으로 그에겐 'TV리모컨'과 냉장고를 더 넓게 쓸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 사람에 따라, '병실 왕고'라는 이유로 자신이 의사와 동급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몇 번 베드에 누가 면회를 왔는지, 뭘 사왔는지 등을 기억하며 병실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이번에 느낀 건, 그런 '왕고' 역할을 전문 간병인들이 하고 있다는 거였다. 간병인 중 가장 고참인듯 보이는 사람이 리모컨을 쥐고 있었고, 그 바로 아래의 간병인이 에어컨을 통제했다. 또 다른 간병인은 커튼을 많이 치면 안 된다거나 수건을 안 보이는 쪽으로 걸어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를 했다. 냉장고 역시 번호가 적힌 공간을 무시하고 본인들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저런 행위가 강제적이라든가 스트레스를 받게 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간병인들은 병장에서 이등병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냉장고에 넣을 자리가 없네. 나가서 (간호사에게) 물어봐야겠다."
저 말 한 마디에 간병인 셋이 모두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자신들의 반찬통과 간식 등을 치웠다. 잔소리를 하던 간병인은,
"두 번째 칸에 넣으세요. 여기 쓰시면 돼요."
라며 친절히 안내까지 해 주었다.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인 간병인들은 이처럼 '간호사'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 없지만, 전문 간병인들은 파벌이 형성되어 있을 경우 버티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추레하게 하고 다닌다'며 다른 간병인에게 대놓고 이야기 하는 일도 있었다. 비꼬는 어투로 상대를 약 올리는 모습, 서로 뒷담화를 나눈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을 두고 눈으로 신호 보낸 뒤 웃음을 흘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환자를 돌보는 일보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게 더욱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세 간병인.
아래는 5박 6일간 같은 병실에 있었던 세 간병인에 대한 이야기다.
A. 수면의 여왕.
그 누구보다 먼저 잠들고, 그 누구보다 늦게 일어나는 분이었다. 누가 간병인이고 누가 환자인지 모를 정도로 우울한 기운을 풍기셨다. 담당하는 환자는 사고로 인해 잠깐 입원하신 할머니였는데, 간병인은 할머니께 용기를 북돋아 드리기 위한 말을 계속 해 드렸다.
"할머니,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죽어야지.' 이런 생각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셔."
'내가 죽어야지.' 이런 생각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셔."
할머니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계신듯 보였는데, 간병인은 계속 "할머니, 더 살아서 뭐하냐고 생각하지 마." 등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했다. 그런 위로를 삼일 쯤 듣자, 할머니에게서도 우울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저녁식사를 마치면 바로 취침에 들어가셨다.
B. 능청의 여왕.
하루 종일 끊임없이 정말 잘 드시는 분이었다. 역시 이 분의 담당 환자도 할머니셨는데, 할머니는 의사표현을 고개 끄덕이는 것으로 겨우 하실 정도로 편찮으셨다. 이 간병인은
"할머니, 우리 참외 먹을까? 참외 먹고 싶어?"
라며 냉장고에서 참외를 꺼내오고, 잠시 후 같은 방식으로 요플레를 꺼내오고, 이어서 계속 다른 음식들을 꺼내다가 먹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어도 간병인은 냉장고로 향했다. 할머니가 거부의사를 밝히면,
"나 먹으라고? 알았어. 내가 먹을게."
라며 음식들을 폭풍흡입했다. 더욱 놀라운 건, 할머니의 식단마저도 마음대로 바꾼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로 '일반식'과 '보리 비빔밥'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간병인은 자신이 보리밥을 먹고 싶었는지 할머니께
"할머니, 보리밥 먹고 싶어?"
라며 질문을 했다. 그 물음에 분명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싫다는 내색을 하셨는데, 간병인은
"모르겠다고? 마음대로 하라고? 알았어."
라고 말하곤 보리밥을 주문했다. 저녁식사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보리밥이 싫다며 드시지 않았다. 간병인은 "할머니, 그래도 먹어야 힘을 내지. 조금이라도 먹어."라고 몇 번 권하다가, 혼자 보리밥을 다 먹어 버렸다. 냉장고를 열어 "이거 주인 있어요?"라며 묻고는, 주인이 없는 음식(퇴원한 환자가 놓고 간 것)을 다 먹을 정도로 대단한 식탐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아, 할머니의 며느리가 아침마다 다녀갔는데, 그때는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의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C. 고생의 여왕.
간병인C는, 앞서 말한 간병인A와 B가 하는 일을 합친 것보다 많은 일을 하는 분이었다. 환자의 생리현상 뒤처리를 모두 다 하며, 밤낮 할 것 없이 환자를 데리고 수시로 검사를 받으러 건물을 오르내렸다. 간병인 A와 B가 "다른 병원은 여기보다 시간당 오천 원씩 더 준다."며 불평을 할 때에도, C는 묵묵히 환자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일 년 넘게 그 환자를 돌보는 중이라고 했는데,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태도엔 경건함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얼굴 근육이 다 굳어버린 듯 6일 동안 한 번도 C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희로애락은 이미 다 부서져 사라지고, 덤덤함만 남은 듯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
그 밖에 흥미로웠던 건, 전문 간병인들과 엮인 병원 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의료기기 파는 곳과는 친분 때문인지, 아니면 중개료를 받기로 했기 때문인지 수시로 연락하는 간병인도 있었다. 어느 병동에 새 환자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간병인들끼리 주고받으며 의료기기점과 연결해 주려는 듯 보였다.
간병인들에게 건강보조식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간병인B가 그 판매원에게 약을 사 먹었는데, 살 빠진다는 효소제품이었다.
"지금, 살 빠진다는 뭘 더 먹을 게 아니라, 일단 먹는 걸 줄여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요플레 1팩(6개입)을 "유통기한 내일까지네. 오늘 다 먹어야겠네."라며 혼자 다 먹으니 살이 찌는 건데….
삼 년간 간병을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삼 년간 간병인으로 일을 하고 나니, 마음에 아무 희망과 소망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과 동시에 팔이 망가졌다고 했다. 바닥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자다보면 한 쪽으로 누워 자신의 팔을 깔고 자거나, 바로 누워도 침대 옆으로 팔을 내 놓은 채 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잘못된 자세로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팔을 뒤로 돌리거나 들어올리기 힘들어 지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아플 땐 이렇게 간병을 못 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간병인도 있었는데, 이거 자꾸 얘기가 감정에 치우치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자.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겐 간병을 받을 일도, 간병을 할 일도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 간병인들에게 시어머니처럼 굴었던 간호사들에게도 시련은 찾아오는데….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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