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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거래처 여직원을 좋아하게 된 모쏠남, 문제는?

by 무한 2013. 9. 16.
거래처 여직원을 좋아하게 된 모쏠남, 문제는?
김형,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가 은행에 갔습니다. 순번이 되어 창구에 앉았고, 맞은편엔 새내기 티가 나는 여직원이 앉아 있습니다. 제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며 그녀는 허둥지둥 댑니다. 그러다 손에 인주까지 묻히고 말았습니다. 인주가 묻은 걸 모르기에 제가 알려줬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아, 하하 감사합니다."


하며 웃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일어설 때 제가 "손가락에 인주 또 묻었어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녀는 손가락에 묻은 인주를 지우며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김형. 저는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제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487번 고객님 일 뿐입니다. 좀 더 나아갔다고 칩시다. 그녀가 문서에 서명해 달라고 했을 때 제가 장난을 좀 쳤습니다. 연예인이 팬에게 싸인해 주듯  "행복하세요."라고 적은 겁니다. 이거 저희 동네 롯데슈퍼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아주머니들이 좋아하는 장난인데, 여하튼 제 장난에 그녀가 웃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제게 호감을 가진 걸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저는 487번 고객님 일 뿐입니다. 또 겉으로 그녀가 웃었더라도 속으로는 '뭥미?'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농담은 상대에 맞게 해야 하는 겁니다. 정수기 코디 아주머니를 빵빵 터지게 할 수 있는 농담도, 도서관 사서에겐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김형의 농담에는 살짝 문제가 있습니다. 여하튼 이거 좀 막막한 사연이긴 한데, 출발해 보겠습니다.


1. 그녀는 제게 호감을 가진 걸까요?


서두에서 말한 은행원 얘기를 좀 더 해 봅시다. 저 은행원이 저에게 '뭐야 이 사람? 별꼴이야.'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기에 저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번 은행에 갔을 때에도 그녀에게 장난을 칩니다. 번호표를 몇 개 뽑아 놓고 그녀가 호출할 때에 맞춰 그녀의 창구로 갑니다.

무한 - 또 만났네요.
직원 - 네?
무한 - (손가락을 하나 들며)전에 인주….
직원 - 인주? 아, 네. 안녕하세요.



그녀가 절 알아보곤 밝게 웃습니다. 그녀는 제게 호감을 가진 걸까요?

이어서 또 드립을 칩니다. 장마 얘기를 합니다. 장마(비)와 장마(장기주택마련저축)라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드립입니다. 그녀가 또 웃습니다. 그녀는 제게 호감을 가진 걸까요?

일을 다 보고 일어설 때에도 장난을 칩니다. 다음번에 올 때에는 기다렸다가 486번 번호표를 뽑을 테니 꼭 486번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역시 그녀가 웃습니다. 그녀는 제게 호감을 가진 걸까요?

김형, 물론 이런 식의 접근이 통할 때도 있습니다. 그녀와 장기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먼저 장난을 쳐 오기도 한다면 분명 친해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개드리퍼'가 아닌 '유쾌한 사람' 정도의 이미지로 다가가는 방법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김형은 상대가 예의상 한 번 웃은 것 가지고 그걸 '호감'이라 생각하며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은행원 얘기에 비유하자면, 그건 첫 '인주' 사건이 있던 날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연락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 것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인주 얘기했던 사람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어디 사세요?"


이런 상황이니, 사적인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는 대답을 듣는 게 당연한 겁니다.


2. 난 다 알고 있다?


김형, 이건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가 솔로부대원이고 도서관엘 다닌다고 해봅시다. 공쥬님(여자친구)의 발목도 잡지 못할 정도지만 어쨌든 예쁘장한 여자사람을 한 명 발견했습니다. 관심이 가는 까닭에 저는 계속 그녀를 쳐다봅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제가 계속 쳐다보니 그녀도 절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열람실에서 마주쳐도 저는 그녀를 빤히 쳐다봅니다. 그녀 역시 피하지 않고 저를 쳐다봅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도서관 입구에 그녀가 서 있었는데, 제가 도서관에 들어갈 때 그녀가 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무한 - 왜요?
그녀 - 네????
무한 - ㅎㅎㅎㅎ



저는 씩 웃으며 얼른 도서관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김형. 제가 저랬다면 그녀는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겁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 보면 피할 겁니다. 그녀가 김형을 피하듯이 말입니다.

이건 뭐랄까, 좀 엉큼하고 이상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사이인데, 속으로만 '쟤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라고 착각하며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행동을 했으니, 그녀가 김형을 경계하고 언짢아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이후 카톡을 보내 사적인 질문을 했을 때, 그녀가 경계하자 김형이 보인 태도도 문제입니다.

김형 - 이름이 뭐에요?
상대 - 왜요?
김형 - 폰에 저장해 두려고요. 이름이 000사무실은 아닐 거잖아요. ㅎㅎㅎ
상대 - 회사 번호로 저장해 주세요. 전에 입금 때문에 문자 드리느라 잠시 제 폰 쓴 거라서요.
김형 - 뭐, 알겠어요 그럼. 000사무실로 놔두죠 뭐~
상대 - 아뇨. 제 번호는 삭제해 주세요. 사적인 번호라서 삭제 부탁드려요.
김형 - 네~ 걱정 마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상대 - 네. 수고하세요.



우선 김형이 했다는 "이름이 000사무실은 아닐 거잖아요. ㅎㅎㅎ"라는 농담은 저걸 농담으로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재미가 없습니다. 나름 참신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그럴 땐 차라리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여쭤보는 거라고 핑계를 대는 게 나았을 겁니다.

"뭐, 알겠어요 그럼. 000사무실로 놔두죠 뭐~"라고 대답한 것도 제 입장에선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뉘앙스에서 "알려주기 싫으면 말아라~"같은 냄새가 납니다. 제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아, 네. 알겠습니다. ^^" 정도로 물러났을 것 같습니다.

ⓐ 아, 네. 알겠습니다. ^^
ⓑ 뭐, 알겠어요 그럼. 000사무실로 놔두죠 뭐~


저 둘의 뉘앙스가 어떻게 다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


여기다간 김형 또래의 보통 사람과 김형의 차이점을 좀 적어둘까 합니다. 연애 얘기는 아니지만, 자신이 남들과 뭐가 얼마큼 다른지를 살펴보는 건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은사님에 대해 그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형은 은사님에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게 바로 그 은사님이라고 말합니다. 보통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게 너무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무시하셔도 좋습니다만, 누군가와 만나 연애를 시작했을 때 '도사님'의 얘기를 하며 혼자 비밀무공을 연마한 듯이 이야기 하는 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사님에게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고마운 분' 정도의 의미만 부여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과거의 자신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 역시 너무 만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굵은 글씨로 표시해주신 '밀랍인형'이라든가 '포커페이스'같은 단어들은 '군중 속의 고독'을 혼자만 겪으신 듯 이야기 하는 느낌을 줍니다. 예컨대 제가 도서관에 갔을 때, 그곳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책만 파먹고 있는 애벌레'로 묘사하고 저는 거기에 맞지 않는 독수리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건 그냥 제 문학적 상상력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의식이 너무 강하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가 어렵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사연에 'ㅇ벗음'이라고 쓰신 부분이 모두 습관성 오타니 이해해 달라고 적어 주셨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오타를 낸 것을 알았을 때 지우고 다시 씁니다. 의도적으로 'ㅇ벗음'이라는 말로 웃음을 주시려 하신 걸 수도 있겠지만, 그 오타를 소개팅녀나 썸녀에게도 사용하실 거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합니다.

"ㅇ벗어요. (습관성 오타니 양해를….)"


저렇게 부연설명까지 적어가며 오타를 이해해 달라고 하시는 게, 솔직히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습니다. 거래처 여직원에게도 조만간 저 오타를 사용하실 거라 생각하니 걱정이 되서 하는 얘깁니다.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이 전부 20년 이상 알아온 오랜 지기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제가 위의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었습니다. 오래 알아온 친구들, 그리고 같은 종교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개 엄청난 포용력을 발휘합니다. 이쪽의 모난 모습도 다 품어주기도 하고, 허물이 보이면 들추기 보다는 감춰주려 합니다. 소중한 우정입니다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그건 '온실'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렇게 전부 다 이해해주던 사람들과 만나다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사소한 것에 쉽게 상처 받거나 작은 변화에도 패닉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거래처 여직원과는 말씀하신대로 마주칠 때 인사 하며 지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경계를 풀게 할 방법이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뭔가를 더 하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잠자리 잡을 때를 떠올려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놀라서 잠자리가 날아갔다면, 다시 앉아 긴장을 풀 때까지 거리를 유지하며 지켜보는 게 가장 나은 선택 아니겠습니까. 무슨 얘기를 더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는 건 상대의 경계심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 물은 게 섣부른 행동이었냐고 억울한 듯 말씀하시는데, 거기엔 위에서 말한 '태도'의 문제도 있고 이전에 벌인 "왜요? / 네????"의 사건도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저라면 마주칠 때마다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때 이름을 물었을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용감해 지시기 바랍니다. 앞에서는 말 걸기도 힘들어 하면서 뒤에서 카톡으로만 농담 던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둘이 1에서 10 중 2정도의 친분을 가지고 있다면, 단 둘이 마주쳤을 때나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에도 2~3정도를 벗어나면 안되는 겁니다. 남들이 없을 때에만 혼자 7정도의 친분으로 다가가면, 그 차이는 고스란히 부담이 되고 맙니다. 업무와 관련해 그녀에게 조언을 얻는 일이 종종 있으신 것 같은데, 조언을 듣고는 고맙다며 초콜릿이라도 하나 선물하면 되는 겁니다. 그녀가 조언을 해줄 때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고 그걸 '호감'이라 착각한 채 "어디 살아요? 이름이 뭐에요?"하는 건, 혼자 너무 나가버린 겁니다.

다음번엔 '성큼성큼' 말고, 잠자리를 잡을 때처럼 조심스레 다가가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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