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모] 학원의 꾸러기 선생님 외 2편
길거리를 지나다가, 한 휴대폰 판매점 직원이 여자 행인에게 말을 거는 걸 본 적이 있다.
(여자 분에겐 미안하지만)내가 보기엔 머리색이 예쁘지도, 특별히 그 여자 분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칭찬은 직원이 여자의 주의를 끌려고 막 던진 얘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으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판매점을 지나친 뒤에는 다른 가게 쇼윈도에 자신을 비춰보며 머리색과 외모를 확인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난 그녀가 다시 판매점 앞을 지나쳐도 판매점 직원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판매점 직원을 열심히 의식하며 걸어가겠지만.
위의 직원 정도의 능청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을 노멀로그에서는 '꾸러기'로 칭하고 있다. 거침없는 립서비스를 할 줄 알며, 일반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갖는 거리감도 단번에 좁힐 수 있는 사람. 이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좋게 보자면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남자의 친절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금요사연모음. 오늘은 꾸러기인 학원 선생님을 만난 모태솔로 H양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꾸러기들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보통의 경우 사제지간이라면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명확히 구분된 선 안에서 관계를 맺기 마련인데, 선생이나 학생 둘 중 하나가 꾸러기라면 그 선 밖에서 관계를 맺게 된다. '사제지간'이 아닌 '오빠동생'이나 '누나동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불쾌할 정도로 꾸러기 혼자 장난을 걸어온다거나, 간판만 '오빠동생'일 뿐 연인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이것만으로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이건 '허용선'을 어디다 그을 것인지에 대한 가치관 차이니, 공과 사는 더욱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밝혀둔다.)
때문에 H양이 통화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랑 통화하는 거야?"라고 장난스레 묻거나, H양의 헤어스타일이 바뀐걸 알아채고 말해준 학원선생의 태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H양이 공사구분을 확연히 하는 성격이라 수업 외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면 선생의 저런 태도가 문제될 수 있지만, H양 역시 단독 보충수업을 해 달라는 청을 하기도 하고 사적인 얘기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내 기준에선 그가 먼저 톡을 통해 사적인 연락을 해 오거나,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하거나,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 왔다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H양이 보낸 톡에 답장도 잘 하지 않았고, 밖에서 만나자는 H양의 요청도 거절했으며, 이렇다 할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H양은 자신의 손에 있던 걸 그가 빼앗아 갈 때 손이 닿은 걸 가지고 스킨십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H양아 너 그 정도로 의미부여를 하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그 후 H양은 그에게 "호감 있다는 거 티냈는데 왜 못 알아봐요?"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난 널 제자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대답을 했다. 그 말에 화가 난 H양은 "선생님이 오해할 만한 행동 충분히 많이 하셨다. 저에게 관심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학생들에게는 이런 행동 안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H양이 고3 남학생 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학생의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해주고, 그의 고민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줬다. 어느 날은 그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선물을 달라고 노래를 불러 선물도 해줬다. 남학생과 학습에 대한 카톡을 주고받다가 그가 영화를 보자고 하기에 H양은 거절했다. 남학생은 친구들에게 H양과 자신의 사이를 털어 놓았는데, 자신에게 유리하게 에누리를 붙여 말한 까닭에 그의 친구들은 "마음이 없는 거라면 상식적으로 생일선물 같은 건 안 주지."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그는 H양에게 고백했다. H양은 당연히 사제지간이라 생각했으니 고백을 거절했고, 그는 "선생님, 다른 학생들에게는 오해할 만한 그런 행동 하지 마세요."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H양의 기분은 어떨까?
갈등이 생기면 사연을 보내시는 여성대원의 사연인데, 솔직히 난 이 커플이 그냥 헤어졌으면 좋겠다. 전에 한 번 비유했던 것처럼, 이 커플은 라면을 끓이는데 너무 싱겁다며 스프를 더 넣고, 그랬더니 또 짜다며 물을 더 넣고, 그랬더니 또 싱겁다며 스프를 더 넣고, 그랬더니 또 짜다며 물을 더 넣고…, 하느라 3년간 먹지도 못할 라면만 끓이고 있는 사이 같다.
그 라면을 왜 그냥 버리라고 권하는지에 대해 적어둘까 한다.
ⓐ 선비타입의 여자.
K양은 흥을 깨며 김이 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그녀에게 "오천원짜리 치킨이 나왔는데, 유명한 치킨집보다 더 맛있대."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오천원짜리가 맛있어 봤자지. 싸니까 그냥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 뿐, 맛은 없을 거야."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 더 대화하고 싶은 기분을 싹 가시게 만드는 대화법이다. 하나 더. 누군가 그녀에게 "나 소나타 주문했어. 내일 차 받기로 함."이라는 얘기를 하면, 그녀는 "어차피 출퇴근 용도면 경차가 낫지 않아? 중형차는 괜히 기름만 더 먹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밉다. 삶을 살며 분명 비판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상대가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라고 대꾸하면 상대는, 좀 짜증이 난다. 약간의 의견차이만 있어도 그녀가 대화를 토론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토론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건 "내 말만 맞다."라는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그러다 남자가 그 태도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그녀는 "우린 생각이 다른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 다툰 후에도 합리화.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누다 남자가 참다못해 짜증과 화를 내기 시작하면, K양은 "난 자기처럼 화 안 내. 기분 나쁘더라도 참지. 같이 합의점을 찾아 생각 공유하고 그랬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남자는 더 화가 난다. K양 대화의 패턴이
위와 같기 때문이다. 남자가 "왜 넌 네가 이기지 못하면 끝을 안 내냐?"라고 얼굴을 붉힌 채 말해도, 그녀는 "이기려는 거 아니야. 자기를 설득하려는 거지."라는 대답을 할 뿐이다. 이거,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다. K양의 '설득'은 상대가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기 전까진 절대 멈추는 법이 없지 않은가. 남자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받아들여 달라고 하면,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말이다. 그럼 답이 안 나오는 게 맞다.
ⓒ 남자의 변화.
아래는 위와 같은 갈등을 여러 번 겪은 K양의 남자친구가 한 말이다.
헤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K양은 현재 '무조건 사과'를 하고 있다. 그럴수록 남자친구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내가 어떻게 굴든 간에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지."라는 태도로 K양을 괴롭히고 있다.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과를 하면 받아주겠다고 말하지만, K양이 '무조건 사과'를 해도 "그게 아니야. 다시 해."라는 식으로 내치는 모양이라고 할까.
완벽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건 가능해도, 현재처럼 남자친구가 "알아서 기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라면 관계를 예전처럼 돌리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용서할 생각도 없으면서 "하는 거 봐서 용서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일단 관계를 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넌 네 성격 이상한 걸로 사람 하나 잃은 거 평생 후회하고 반성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그에게 남은 건 K양에 대한 증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봐야 그 모습이 상대를 더 오만하게 만들 뿐이니, 나중에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금은 다 비워내길 권한다.
지영아, 남자 나이가 서른넷이야. 바보겠냐? 지영아, 그 남자 연락하고 지내는 여자가 하나 둘이 아니야. 바보겠냐? 지영아, 그에게 믿을 수 있게 폰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기겁하며 폰을 뺏어. 바보겠냐?
지영이 친구들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좋아하는 까닭에
라는 반반의 애매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두 번 볼 것도 없이 이건 후자가 분명하잖아.
매뉴얼을 통해 몇 번 이야기 한 적 있듯이, 바람둥이들이 죄다 잘생긴 외모에 여성들에게 인기 많은 타입은 아니야. 오히려 도착한 사연들을 보면 바람둥이들은 그냥 '훈훈한 남자'인 경우가 많아. 고민을 말하면 잘 들어주고, 화를 내도 어느 정도는 다 받아주는 그런 남자 말이야.
그들은 '지역방송국'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직장에 한 명, 동네에 한 명, 동창 중에 한 명, 모임에 한 명, 종교모임에 한 명 등. 다가가기에 편하고 무난한 스타일 있잖아. 사귀다가 그런 관계가 들켜도, 그들은 영화에서처럼 "널 속인 건 미안했다. 하지만 난 그 애를 더 사랑한다. 잘 지내라." 이러면서 단칼에 자르지 않아. 변명을 앞세우고,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말하고, 때로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다가 가능성이 더 많은 관계 쪽으로 붙기 마련이지.
또 그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잘 해. 당장 폰에서 여자 번호 다 지우라고 해봐. 그럼 보는 앞에서 싹 다 지우기도 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번호들은 죄다 살아나 있거나, 다른 루트를 통해 그녀들과 연락하는 걸 발견할 수 있지. 화를 내며 당장 프로필 사진을 커플사진으로 바꾸라고 하면 당시엔 얼른 바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다른 사진으로 바꾸지. 뭔가를 잘못하다가 걸려도
따위의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 어리숙하고 서툴러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런 척을 할 뿐이지. 그렇게 말하면 넘어가기가 쉽거든. 다른 데 정신 팔려 연락도 안 하며 무관심한 태도 보여 놓고도, 왜 연락을 안 하냐고 물으면
따위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 물론 역시 '그런 척' 할 뿐인 거지만 말야. 딱 보면 답 나오잖아. 잠수 탄 것에 대해서는 저런 얘기 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면서, 폰 보니까 그냥 오빠동생사이라는 여자애에게 "뭐하니?"하며 안부 묻고 있었잖아. 그가 당장 사과 잘 하고 하라는 대로 다 맞춘다고 해서 붙잡고 있지 마. 그랬다간 훗날 지영이가 한 방에 잘려나갈 테니까.
내가 보기엔,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만나서 얘기할래?"라는 톡 보내며 놀고 있는데, 그걸 보고도 "이 사람, 철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라고 묻는 지영이가 바보야.
소제목 1번과 3번의 사연은 명확한 답이 나오는 까닭에 별로 안타깝지 않지만, 소제목 2번은 정이 들대로 들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사이라 안타깝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그냥 "아 그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완전 반전인데?" 정도의 대답만 했어도 행복한 대화가 되었을 것이고, 혹은 남자가 조금만 더 이해심을 발휘해 "아니, 꼭 그럴 거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거야.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면 재미있잖아." 정도로 부드럽게 대처하기만 했어도 극단까지 가진 않았을 것 같다.
연애할 땐 딱 한 발만 물러서도 많은 일이 해결된다. 남자친구가 선택장애(응?)를 가진 까닭에 뭘 먹을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럴 땐 '아후 답답해. 얘는 진짜 리드할 줄도 모르고, 계획성도 없네.'라고 생각하는 대신, "나 매콤한 거 먹고 싶어."라고 힌트만 줘도 함께 웃으며 식사할 수 있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끊었다면 "너 왜 내 말 안 끝났는데 전화 끊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나 말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전화 끊었어. 흑흑." 정도로 순화해서 말해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더불어 사과할 땐 사과만 하고, 합리화도 하지 말자. 며칠 전 명절에 싸운 지인 커플이 있는데, 남자가 100% 잘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라며 합리화를 했다. 상황을 그렇게 해석한 후 전화통화로 "나도 잘못했지만 너도 잘못했다."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둘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격한 감정이 다 풀리고 난 후 "앞으로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는 받기로 하자. 긴급상황이었는데 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정말 답답했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 역시 전화를 꺼 두거나 안 받진 않을 테니까, 우리 꼭 이건 약속하자."라고 얘기했으면 해결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재 둘은 서로를 '더 사귀어봐야 피곤할 게 분명한 인간'으로 생각한 채 연락을 안 하고 있다. 노멀로그 독자 분들 중에는 이렇게 풀 수 있는 문제를 답이 없다며 넘기는 분이 없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길!
▲ 사연은 제발 양식에 맞춰서 보내주세요. http://normalog.com/notice/1339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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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를 지나다가, 한 휴대폰 판매점 직원이 여자 행인에게 말을 거는 걸 본 적이 있다.
"머리 어디서 했어요? 색깔 진짜 예쁘네. 아름다운 갈~색~머~리!
진짜 잘 어울린다. 어디 미용실에서 했어요? 나도 거기서 해야겠네."
진짜 잘 어울린다. 어디 미용실에서 했어요? 나도 거기서 해야겠네."
(여자 분에겐 미안하지만)내가 보기엔 머리색이 예쁘지도, 특별히 그 여자 분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칭찬은 직원이 여자의 주의를 끌려고 막 던진 얘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으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판매점을 지나친 뒤에는 다른 가게 쇼윈도에 자신을 비춰보며 머리색과 외모를 확인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난 그녀가 다시 판매점 앞을 지나쳐도 판매점 직원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판매점 직원을 열심히 의식하며 걸어가겠지만.
위의 직원 정도의 능청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을 노멀로그에서는 '꾸러기'로 칭하고 있다. 거침없는 립서비스를 할 줄 알며, 일반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갖는 거리감도 단번에 좁힐 수 있는 사람. 이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좋게 보자면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남자의 친절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금요사연모음. 오늘은 꾸러기인 학원 선생님을 만난 모태솔로 H양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1. 학원의 꾸러기 선생님.
꾸러기들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보통의 경우 사제지간이라면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명확히 구분된 선 안에서 관계를 맺기 마련인데, 선생이나 학생 둘 중 하나가 꾸러기라면 그 선 밖에서 관계를 맺게 된다. '사제지간'이 아닌 '오빠동생'이나 '누나동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불쾌할 정도로 꾸러기 혼자 장난을 걸어온다거나, 간판만 '오빠동생'일 뿐 연인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이것만으로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이건 '허용선'을 어디다 그을 것인지에 대한 가치관 차이니, 공과 사는 더욱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밝혀둔다.)
때문에 H양이 통화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랑 통화하는 거야?"라고 장난스레 묻거나, H양의 헤어스타일이 바뀐걸 알아채고 말해준 학원선생의 태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H양이 공사구분을 확연히 하는 성격이라 수업 외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면 선생의 저런 태도가 문제될 수 있지만, H양 역시 단독 보충수업을 해 달라는 청을 하기도 하고 사적인 얘기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내 기준에선 그가 먼저 톡을 통해 사적인 연락을 해 오거나,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하거나,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 왔다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H양이 보낸 톡에 답장도 잘 하지 않았고, 밖에서 만나자는 H양의 요청도 거절했으며, 이렇다 할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H양은 자신의 손에 있던 걸 그가 빼앗아 갈 때 손이 닿은 걸 가지고 스킨십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H양아 너 그 정도로 의미부여를 하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그 후 H양은 그에게 "호감 있다는 거 티냈는데 왜 못 알아봐요?"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난 널 제자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대답을 했다. 그 말에 화가 난 H양은 "선생님이 오해할 만한 행동 충분히 많이 하셨다. 저에게 관심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학생들에게는 이런 행동 안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H양이 고3 남학생 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학생의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해주고, 그의 고민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줬다. 어느 날은 그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선물을 달라고 노래를 불러 선물도 해줬다. 남학생과 학습에 대한 카톡을 주고받다가 그가 영화를 보자고 하기에 H양은 거절했다. 남학생은 친구들에게 H양과 자신의 사이를 털어 놓았는데, 자신에게 유리하게 에누리를 붙여 말한 까닭에 그의 친구들은 "마음이 없는 거라면 상식적으로 생일선물 같은 건 안 주지."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그는 H양에게 고백했다. H양은 당연히 사제지간이라 생각했으니 고백을 거절했고, 그는 "선생님, 다른 학생들에게는 오해할 만한 그런 행동 하지 마세요."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H양의 기분은 어떨까?
2. 선비타입의 여자.
갈등이 생기면 사연을 보내시는 여성대원의 사연인데, 솔직히 난 이 커플이 그냥 헤어졌으면 좋겠다. 전에 한 번 비유했던 것처럼, 이 커플은 라면을 끓이는데 너무 싱겁다며 스프를 더 넣고, 그랬더니 또 짜다며 물을 더 넣고, 그랬더니 또 싱겁다며 스프를 더 넣고, 그랬더니 또 짜다며 물을 더 넣고…, 하느라 3년간 먹지도 못할 라면만 끓이고 있는 사이 같다.
그 라면을 왜 그냥 버리라고 권하는지에 대해 적어둘까 한다.
ⓐ 선비타입의 여자.
K양은 흥을 깨며 김이 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그녀에게 "오천원짜리 치킨이 나왔는데, 유명한 치킨집보다 더 맛있대."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오천원짜리가 맛있어 봤자지. 싸니까 그냥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 뿐, 맛은 없을 거야."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 더 대화하고 싶은 기분을 싹 가시게 만드는 대화법이다. 하나 더. 누군가 그녀에게 "나 소나타 주문했어. 내일 차 받기로 함."이라는 얘기를 하면, 그녀는 "어차피 출퇴근 용도면 경차가 낫지 않아? 중형차는 괜히 기름만 더 먹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밉다. 삶을 살며 분명 비판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상대가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라고 대꾸하면 상대는, 좀 짜증이 난다. 약간의 의견차이만 있어도 그녀가 대화를 토론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토론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건 "내 말만 맞다."라는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그러다 남자가 그 태도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그녀는 "우린 생각이 다른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 다툰 후에도 합리화.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누다 남자가 참다못해 짜증과 화를 내기 시작하면, K양은 "난 자기처럼 화 안 내. 기분 나쁘더라도 참지. 같이 합의점을 찾아 생각 공유하고 그랬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남자는 더 화가 난다. K양 대화의 패턴이
①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②그건 자기의 음모론 같은데?
③왜 화를 내?
④난 화가 나도 자기한테 화 안 내.
⑤합의점을 찾자.
②그건 자기의 음모론 같은데?
③왜 화를 내?
④난 화가 나도 자기한테 화 안 내.
⑤합의점을 찾자.
위와 같기 때문이다. 남자가 "왜 넌 네가 이기지 못하면 끝을 안 내냐?"라고 얼굴을 붉힌 채 말해도, 그녀는 "이기려는 거 아니야. 자기를 설득하려는 거지."라는 대답을 할 뿐이다. 이거,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다. K양의 '설득'은 상대가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기 전까진 절대 멈추는 법이 없지 않은가. 남자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받아들여 달라고 하면,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말이다. 그럼 답이 안 나오는 게 맞다.
ⓒ 남자의 변화.
아래는 위와 같은 갈등을 여러 번 겪은 K양의 남자친구가 한 말이다.
"난 널 보면서 (이럴 때마다)항상 짜증나고 슬펐어. 나는 너니까 이해하는데, 너는 왜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지. 방금 한 얘기도 싸울 일이 아니었는데, 결국 네가 옳고 그름에 매달리다 또 싸움이 돼. 대화 그만 하자고 말해도 넌 멈추려고 하지 않고, 이젠 진짜 싫다. 넌 그냥 평생 네 자존심이나 세우고 살아. 너 혼자 진지해져서 열폭하고. 진짜 난 너에 대한 정 다 떨어진 것 같다."
헤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K양은 현재 '무조건 사과'를 하고 있다. 그럴수록 남자친구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내가 어떻게 굴든 간에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지."라는 태도로 K양을 괴롭히고 있다.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과를 하면 받아주겠다고 말하지만, K양이 '무조건 사과'를 해도 "그게 아니야. 다시 해."라는 식으로 내치는 모양이라고 할까.
완벽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건 가능해도, 현재처럼 남자친구가 "알아서 기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라면 관계를 예전처럼 돌리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용서할 생각도 없으면서 "하는 거 봐서 용서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일단 관계를 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넌 네 성격 이상한 걸로 사람 하나 잃은 거 평생 후회하고 반성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그에게 남은 건 K양에 대한 증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봐야 그 모습이 상대를 더 오만하게 만들 뿐이니, 나중에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금은 다 비워내길 권한다.
3. 바보겠냐 지영아.
지영아, 남자 나이가 서른넷이야. 바보겠냐? 지영아, 그 남자 연락하고 지내는 여자가 하나 둘이 아니야. 바보겠냐? 지영아, 그에게 믿을 수 있게 폰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기겁하며 폰을 뺏어. 바보겠냐?
지영이 친구들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좋아하는 까닭에
"그 남자가 서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고, 아님 치밀한 바람둥이라 그럴 수 있다."
라는 반반의 애매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두 번 볼 것도 없이 이건 후자가 분명하잖아.
매뉴얼을 통해 몇 번 이야기 한 적 있듯이, 바람둥이들이 죄다 잘생긴 외모에 여성들에게 인기 많은 타입은 아니야. 오히려 도착한 사연들을 보면 바람둥이들은 그냥 '훈훈한 남자'인 경우가 많아. 고민을 말하면 잘 들어주고, 화를 내도 어느 정도는 다 받아주는 그런 남자 말이야.
그들은 '지역방송국'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직장에 한 명, 동네에 한 명, 동창 중에 한 명, 모임에 한 명, 종교모임에 한 명 등. 다가가기에 편하고 무난한 스타일 있잖아. 사귀다가 그런 관계가 들켜도, 그들은 영화에서처럼 "널 속인 건 미안했다. 하지만 난 그 애를 더 사랑한다. 잘 지내라." 이러면서 단칼에 자르지 않아. 변명을 앞세우고,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말하고, 때로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다가 가능성이 더 많은 관계 쪽으로 붙기 마련이지.
또 그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잘 해. 당장 폰에서 여자 번호 다 지우라고 해봐. 그럼 보는 앞에서 싹 다 지우기도 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번호들은 죄다 살아나 있거나, 다른 루트를 통해 그녀들과 연락하는 걸 발견할 수 있지. 화를 내며 당장 프로필 사진을 커플사진으로 바꾸라고 하면 당시엔 얼른 바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다른 사진으로 바꾸지. 뭔가를 잘못하다가 걸려도
"진짜 난 네가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지 몰랐어. 난 전혀 그렇게 생각도 안 했었는데…."
"앞으로는 네가 말한 대로 할게. 난 정말 몰랐어. 미안해."
"앞으로는 네가 말한 대로 할게. 난 정말 몰랐어. 미안해."
따위의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 어리숙하고 서툴러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런 척을 할 뿐이지. 그렇게 말하면 넘어가기가 쉽거든. 다른 데 정신 팔려 연락도 안 하며 무관심한 태도 보여 놓고도, 왜 연락을 안 하냐고 물으면
"네가 화 나 있는 것 같아서 연락을 안 했어. 말 걸면 싸우게 될 것 같아서 무서웠어."
따위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 물론 역시 '그런 척' 할 뿐인 거지만 말야. 딱 보면 답 나오잖아. 잠수 탄 것에 대해서는 저런 얘기 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면서, 폰 보니까 그냥 오빠동생사이라는 여자애에게 "뭐하니?"하며 안부 묻고 있었잖아. 그가 당장 사과 잘 하고 하라는 대로 다 맞춘다고 해서 붙잡고 있지 마. 그랬다간 훗날 지영이가 한 방에 잘려나갈 테니까.
내가 보기엔,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만나서 얘기할래?"라는 톡 보내며 놀고 있는데, 그걸 보고도 "이 사람, 철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라고 묻는 지영이가 바보야.
소제목 1번과 3번의 사연은 명확한 답이 나오는 까닭에 별로 안타깝지 않지만, 소제목 2번은 정이 들대로 들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사이라 안타깝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그냥 "아 그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완전 반전인데?" 정도의 대답만 했어도 행복한 대화가 되었을 것이고, 혹은 남자가 조금만 더 이해심을 발휘해 "아니, 꼭 그럴 거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거야.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면 재미있잖아." 정도로 부드럽게 대처하기만 했어도 극단까지 가진 않았을 것 같다.
연애할 땐 딱 한 발만 물러서도 많은 일이 해결된다. 남자친구가 선택장애(응?)를 가진 까닭에 뭘 먹을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럴 땐 '아후 답답해. 얘는 진짜 리드할 줄도 모르고, 계획성도 없네.'라고 생각하는 대신, "나 매콤한 거 먹고 싶어."라고 힌트만 줘도 함께 웃으며 식사할 수 있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끊었다면 "너 왜 내 말 안 끝났는데 전화 끊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나 말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전화 끊었어. 흑흑." 정도로 순화해서 말해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더불어 사과할 땐 사과만 하고, 합리화도 하지 말자. 며칠 전 명절에 싸운 지인 커플이 있는데, 남자가 100% 잘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사과하려고 전화 했는데 얘는 전화도 안 받는다. 날 무시하는 거다.
내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얘가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이건 분명 얘 잘못이다."
내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얘가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이건 분명 얘 잘못이다."
라며 합리화를 했다. 상황을 그렇게 해석한 후 전화통화로 "나도 잘못했지만 너도 잘못했다."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둘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격한 감정이 다 풀리고 난 후 "앞으로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는 받기로 하자. 긴급상황이었는데 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정말 답답했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 역시 전화를 꺼 두거나 안 받진 않을 테니까, 우리 꼭 이건 약속하자."라고 얘기했으면 해결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재 둘은 서로를 '더 사귀어봐야 피곤할 게 분명한 인간'으로 생각한 채 연락을 안 하고 있다. 노멀로그 독자 분들 중에는 이렇게 풀 수 있는 문제를 답이 없다며 넘기는 분이 없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길!
▲ 사연은 제발 양식에 맞춰서 보내주세요. http://normalog.com/notice/1339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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