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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이별 직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구남친, 어떡해?

by 무한 2013. 11. 7.
이별 직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구남친, 어떡해?
어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검은색 무쏘 차량이 트렁크를 연 채 세워져 있었다. 트렁크 앞에선 한 남자가, 어디서 고구마를 캐왔는지 고구마가 담긴 자루들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누가 봐도 아래에 깔린 고구마가 뭉개질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자루들을 던지듯 내려놓고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옆에 서서 그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왜 그래?"


여자가 말했다(그녀의 어조는, 계이름으로 옮기면 '미파레레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집으로 와서 가져가라 그래."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여자가 침묵을 지키며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지만,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지 않았다. 

"진짜 성격 이상하다."


여자의 말에, 남자는 자루에서 손을 땐 채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로 여자를 쳐다봤다.

남자 - 야, 너 내가 분명히 말했지.
여자 - 조용히 말해.
남자 - 내가 밭으로 와서 가져가라고 했어, 안 했어?
여자 - 조용히 말하라고.
남자 - 이 씨X 진짜, 장난하나.
여자 - 내가 쪽팔려서 너랑 못 살겠다, 진짜.



남자는 부서질까 걱정될 정도로 트렁크 문을 세게 닫았고, 여자는 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어서 남자도 지하주차장을 향해 차를 몰고 가 버렸다. 보도블록 위에는 고구마 자루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둘 모두 감정이 상한 까닭에 고구마를 누가 가져가든 말든 그건 자기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저 고구마, 내가 가져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훼이크고, 두 사람은 지인들에게 자신들의 밭에 와서 고구마를 캐 가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남자는 '와서 캐가라고 말해도 안 가져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다 캐서 갖다 바쳐야 하나?'하는 생각에 화가 난 것 같고, 여자는 '그래도 준다고 말했으니 우리가 갖다 줘야지, 이걸 그냥 다 집에 들고 오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즐겁자고 시작한 '농사놀이'가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나는 두 사람이 고구마를 다시 가지러 왔을 때,

"이거 사실 진짜 아무 것도 아닌 일이거든요. 고구마 이런 걸로 싸울 필요 없어요.
여자 분은, 겨우 고구마 때문에 남편에게 성격이 이상하다느니,
쪽팔리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고 나면, 남자는 자기 자존심을 건드린 얘기 못 잊거든요. 
그래버리면 앞으로도 함께 살면서 적의를 갖거나, 경계를 하게 될 위험이 있어요.
나를 성격이 이상한 사람, 쪽팔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를 위해
뭔갈 하고 싶지도 않고요.
화나서 한 얘기라는 건 알지만, 그 한 마디로 인해 앞으로 계속 엇나가게 될 수 있어요.
남자 분은, 잘 생각해 보면 지금 화가 난 게 아내에게 화가 난 게 아니잖아요.
지인들이 힘은 들이지 않고 고구마만 먹고 싶어 해서 벌어진 일인데,
이 일을 가지고 아내를 금방이라도 때릴 듯이 쳐다보거나 욕을 해 버리면,
아내 역시 공포를 느꼈던 그 순간이 마음속에 각인되고 말잖아요.
차라리 "난 이러이러해서 진짜 속상하다. 우리가 봉사활동 하는 것도 아니고."라면서
속마음을 털어 놓고 아내에게 공감을 구했다면,
아내가 마음의 '좋아요' 버튼을 눌러줬겠죠.
어쨌든 벌어진 일이고, 여기서 고구마 팽개치듯 뿌려봐야 해결되는 게 없으니,
이번엔 그냥 남 돕는다 생각하시고 고구마 나눠 주세요.
주고도 안 좋은 소리 들을 필요 없잖아요.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 되었을 때 서로 등 긁어줄 사람이라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인데,
그런 관계를 겨우 이 고구마 사건 하나로 인해 틀어지게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새 책 인증샷을 보내주고 계시는 독자 분들께 답장을 드리는 일이 먼저라 고구마 커플은 둘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놔두고 집에 들어와 버렸다. 자 그럼, 고구마 커플 얘기는 이쯤하고 오늘 사연 출발해 보자.


1.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내 주변에도 S양의 구남친과 비슷한 지인이 몇 명 있다.

- 이별을 동력으로 새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는 말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저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

'저건 이별 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기 보다는,
마치 새로운 연애를 하기 위해 이별을 하는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든다. 16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1600미터 계주 같은 느낌이랄까. 이별을 하면 으레 이성에게 위로 받다가, 위로를 해준 그 이성과 연애를 하는 게 그들의 공식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보니 저렇게 된 걸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이걸 '유형'으로 까지 분류 하냐고 묻는다면, 난 그들에게 보이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하겠다. 그 특징은 아래와 같다.

ⓐ 그가 지인들에게 자신의 연애에 대해 말하는 것과 실제 연애엔 차이가 있음.  
ⓑ 항상 자신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연애에 임하고 있다고 말함.
ⓒ 사귄 직후부터 당연히 결혼하게 될 사이인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함.
ⓓ 연애 중에도 '오피스 와이프'나 '여지가 있는 이성' 등을 곁에 둠.
ⓔ 절대 헤어지잔 얘기를 먼저 꺼내진 않지만, 상대가 꺼내면 바로 받아들임.



끝까지 혼자만 '좋은 사람'으로 남는 타입이라고 보면 꼭 맞을 것 같다. 이야기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의 무관심과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여자가 지쳤다는 게 보이는데, 겉에서만 보면-그의 말만 들은 입장에서 보면- 그는 모든 노력을 다 한 사람이고 피해자도 역시 그 자신인 듯 보인다.

연애의 시작은 여느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대원들처럼 급속도로 불타며 진행된다. 그러는 중에 이제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얘기를 하거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얘기, 내 마지막 사랑이라는 얘기 등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걸 직접 연인인 상대에게 전하는 게 아니라 지인들에게 말한다거나 SNS에 올리는 등의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그가 정말 상대에게 완전히 반해 그런다기 보다는, 그저 자신이 현재 그런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그들은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식은 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연애 때문에 힘들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말에 "~만 아니었다면", "차라리 ~였다면" 식의 핑계를 달아둔다. 심지어 이성인 학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 그녀에게 '여자친구 험담'을 늘어놓으며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이성인 동창과는 뒷담화나 조언을 가장한 수다 등으로 가까워지고, 동시에 여자친구는 방목해 둔 채 그녀가 밥을 먹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난 S양의 구남친을 이 유형으로 분류해 두었다. 구남친은 구여친과의 일을 S양에게 털어 놓으며 S양과 가까워졌고, 이별 직후 S양이 위로를 해주자 바로 S양에게 고백해 사귀게 되었다. S양과 헤어진 후에도 그는 같은 패턴으로 새여친과 연애를 시작했다. 그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2. 준비된 이별.


S양은,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큰 후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남친의 무성의함과 무관심함을 견디다 못해 헤어지자고 했는데, 구남친이 덤덤하게 그 말에 수긍했기에, S양은 '내가 헤어지자고 말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난 S양에게 해주고 싶다. 난 S양이 한 건 '원인제공'이 아니라 '구실제공'이라고 생각한다. S양이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난 이후 구남친이 하는 모든 일들은, 마치 기다려온 일들을 처리해 나가듯 자연스레 진행된다. S양이 매달렸을 때 바늘 들어갈 틈도 없이 단호하게 그가 거절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 너와 난 결혼해도 계속 부딪힐 게 뻔하다.
ⓑ 난 내가 보살펴 줄 여자 말고, 날 이끌어 줄 여자가 필요하다.
ⓒ 되돌리기에도 너무 늦었고, 우리는 인연이 아닌 거다.



저 말들 외에, 직장과 친구로 얽혀 있으니 좋게 헤어지자고 한 점, 이별 후 소개팅도 좀 하며 남자를 만나보라고 한 점, 시간 지나고 나면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한 점 등을 봐도, 그가 S양을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다기 보다는, '이별한 친구'처럼 생각하며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별 후 그가 보이는 태도를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덤덤하고 자상하다. 아쉬움이나 미련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좋은 마무리'를 하려고 S양을 달래고만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와 호의까지 보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S양이,

"굳이 왜 그런 얘기를 제게 했던 걸까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데, 왜 저한테 그랬을까요?"
"얼마 전 그가 보낸 문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별 후 자신은 새여친과 연애를 시작했으면서, 구여친에게 마음 정리할 겸 여행 다녀오라고 권하고, 소개팅 하라고 권하고, 너의 밝은 에너지 운운하며 토닥토닥 하는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버'로 보인다. 

아무래도 마음은 진작 다 떠났지만, 둘이 '같은 바닥'에 있고, 또 S양의 친구와 구남친의 친구가 연애를 하고 있는 까닭에 더 S양에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S양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일이나 생활에 S양이 '신발 속 작은 돌멩이'가 되어 불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그는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게 아니라 '맺고 푸는 것'이 확실한 성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맺은 걸 풀 뿐 끊지 않는다(그것엔 '인연'이나 '운명'을 중시하는 그의 신조가 영향을 끼친 것일 수도 있고, 절대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그의 습관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끊는 것이든 푸는 것이든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으니, 그의 적선 비슷한 호의에 의미부여하지 말고 그만 그 관계에선 눈을 돌리길 권한다.


3. 그의 '결론'을 보자.


어떤 핑계나 변명을 달았든 어쨌든 그는

"S양, 너는 아니다."


라는 결론을 냈다. 그게 그가 이 관계에 대해 제출한 답이다. 혹시 S양은 그가

"내 옆에 있으면 누구든 힘들 거다. 난 혼자 살아야 한다. 그냥 혼자 늙어야지."


라고 한 말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어쨌든 현재 새여친과 만나 잘 사귀고 있다. 안 그런가?

그는 S양에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느니, 잘생긴 남자를 만나라느니, 너는 밝은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라느니, 더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만, 역시 결론은 "어쨌든 넌 구여친. 우린 끝났음."이다.

"그가 따뜻한 말로 사람을 위로하는 걸 잘 한다는 건,
회사 사람들도 다 인정할 정도로 그는 사람들을 챙깁니다.
그런데 아무리 습관적으로 그러는 사람일지라도,
그런 말을 해야 할 사람과 안 해야 할 사람은 구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헤어진 연인에게까지 왜 습관적으로 그런 따뜻한 말을 하며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거죠?"



그건 위에서 말한 '같은 바닥'이라는 것과 '얽힌 인맥'이라는 점에 더해, 유기한 쪽에서 가지는 약간의 죄책감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연애하다가 자신이 이별을 말하면 여자친구가 자살할 거라고 착각하는 남자가 꽤 많다. 특히 연애 중 여자가 남자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거나, 남자가 여자를 아이 키우듯 보살피며 사귀었을 경우, 열에 아홉은 그런 착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대원들은

"참 나, 그게 말이 되나요?"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대원들에겐, 내 주변엔 그런 연애를 하다 헤어진 후 구여친이 시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걔는 지금이라도 내가 연락하면, 분명히 나 보러 나올 거야."


라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남자도 많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 해 주고 싶다.


S양은 말한다.

"시간이 조금 걸려 먼 길 돌아가도, 이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은데…."


정말 그럴 만큼 그가 S양에게 괜찮은 남자였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헤어진 후에도 계속되는 그의 달콤한 말이나, 유효기간 지난 핑크빛 약속들만 붙잡은 채 재회만 간절히 바라지 말고, 냉정하게 둘의 연애를 돌아보자. 특히 사귈 때 나누었던,

구남친 - A로 가면 좋은데, 거긴 너무 비싸네. 그냥 B로 가야지.
S양 - 돈 모자라서 그래? 내가 빌려줄까?
구남친 - 우리가 어떻게 될 줄 알고 돈을 빌려줘….



라는 대화를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는 정말 괜찮은 남자였을까? 인맥관리를 위해 지인들의 SNS에 댓글 남기고 카스에 사진 올릴 시간은 있으면서, 정작 S양에겐 바쁘다며 연락도 하지 않던 그 모습은 구남친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S양이 질려서 떠날 때까지 방치해 두었다가, 간다고 하니 그가 배웅해 주겠다며 베푸는 호의에 흔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 짐짝처럼 여겨지며 한 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그 시절은 잊은 채, 헤어졌다는 다급함에 그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리진 말길 바란다.



▲ 아직 출간 소식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http://normalog.com/1549 서평과 리뷰는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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