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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짐처럼 느껴지는 여자친구 외 1편

by 무한 2013. 11. 15.
[금사모] 짐처럼 느껴지는 여자친구 외 1편
내 메일함에 있는 사연은, 어떻게 해야 상대와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지를 묻는 솔로부대원의 사연이 5할, 연애를 시작했지만 상대와 갈등이 생겨 난감해진 커플부대원들의 사연이 3할, 이별 위기에 놓여있거나 갓 이별한 대원들의 사연이 2할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 사연들 사이에 '헤어지고 싶어 하는 커플부대원'들의 사연이 1할 정도 더 있다.

"무한님, 그런데 저거 다 더하면 10할이 아니라 11할인데…."


들켰네. 문과 출신이라 계산에 약하니 그 정도는 그냥 애교로 넘겨주길 바란다. 지금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가 뒤늦게 5할 더하기, 3할 더하기, 2할…, 하고 있을 대원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웃자고 한 소리고.

맨 나중 경우에 속하는 대원들이 밑도 끝도 없이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 놓는 까닭에 난 난감할 때가 많다. 그들은 대개 "여자친구가 제게 그저 짐처럼 느껴집니다."라든가 "여자친구를 봐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남자친구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릅니다.", "다른 이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난 그들에게

"놀 때는 둘이 재미있게 잘 놀아 놓고,
왜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자 절 찾아와 정당화를 도와달라는 겁니까?"



라고 묻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낯모르는 내게 "전 참 나쁜 놈인 것 같습니다."하는 고백까지 할 정도면 그들도 가볍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간 난 이런 '배부른 고민'보다 솔로부대원들의 '배고픈 고민'이 더 급하다고 생각해 매뉴얼로는 잘 발행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무래도 '비오는 물금'이 될 것 같은데다 휴가시즌에 연애를 시작한 커플들이 현재 무더기로 헤어지고 있는 상황이니,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다뤄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짐처럼 느껴지는 여자친구.


중학생 때까지 난 생선을 잘 발라 먹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두 아들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늘 손수 생선을 발라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혼자 생선이 먹을 일이 있을 때에는 생선 옆구리의 '가장 발라먹기 쉬운 살'만 먹고는 나머진 손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식사시간,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생선을 발라 주시는 걸 보곤 뭐라고 하셨다.

아버지 - 그냥 둬, 지들이 발라 먹게.
어머니 - 얘들이 발라 먹으면 잘 먹지도 못하고 다 버려.
아버지 - 그래도 지들이 발라 먹어 봐야 나중에 먹을 줄 알지.
어머니 - 나중에 크면 다 발라 먹겠지. 지금은 그냥 내가 발라 주는 게 나아.
아버지 - 하아 참. 왜 애들을 븅신 만들라 그래?



'왜 애들을 븅신 만들라 그래?'에 주목하길 바란다. K씨가 그간 여자친구에게 해줬던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저 대화에 나오는 '븅신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친구의 호감과 칭찬을 얻기 위해 그녀의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고, 그녀가 이직을 할 땐 소개서와 이력서도 대신 써 주고, 그녀가 시무룩해져 있으면 어떻게든 그 시무룩함을 지우려고 이벤트를 해 주고,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다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늘 배려해 주고,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도 다 들어줬다. 아마 지금도 여자친구가

"나 오늘 왠지 모르겠는데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네.
자기 이따가 우리 회사 근처로 와줄 수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하면, 본인 역시 회사 일로 마음이 말이 아닌 상황에서도 "응, 이따가 갈게."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 가서는 그녀와 저녁식사를 하고, 그녀가 꺼내 놓는 이야기들을 다 들어주고, 또 힘이 되는 이야기로 리액션을 해 주고, 그런 뒤엔 그녀를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주곤 돌아올 것이다. 

둘의 관계가 애초부터 이렇게 'K씨의 봉사활동'이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그래도 둘이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또 K씨가 여자친구의 업무에도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K씨가 여자친구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되고자 그녀가 원할만한 일을 전부 하며, 동시에 그녀가 할 일들까지 대신 해주며 문제가 벌어지고 말았다. 처음엔 서서 K씨에게 부탁하던 그녀가 앉아서 부탁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결국 지금은 누워서 부탁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대개 이런 상황에 처한 남성대원들은 여자친구에 대해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났다.'
'이런 애인 줄 몰랐다.'
'너무 나약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다.'
'혼자서는 살아갈 힘이 없는 애다.'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건 명백한 착각이다. 지금은 자신이 여자친구를 안고 있으니 여자친구가 걸음마도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그녀를 내려두고 땅에 발 딛게 하면 알아서 잘 걷는다. 그녀가 '모자란 인간'이 아니라, 그녀를 안고서 그녀의 인생까지 대신 살아주려고 하는 그대의 태도가 '모자란 생각'이란 얘기다.

만약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도 생선을 발라주시며 내게 "넌 그 나이에 아직도 생선 하나 발라 먹을 줄 몰라?"라는 이야기를 하신다면, 어떨까? 그럴 경우, 정말 난 '생선도 발라 먹을 줄 모르는 인간'인 걸까? 내가 그렇게 된 것엔 어머니의 책임이 조금도 없는 걸까? 전부 다 그저 내가 못난 탓일까?

여자친구의 인생까지 K씨가 대신 살아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녀는 짐'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녀도 어른이다. 안고 있는 게 무거우면 내려놓고 같이 걷자고 하면 되는 거지, 내팽개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K씨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번에 이별을 한 뒤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 같은 여자를 만나도 그녀의 어리광만 이끌어 낼 것이 분명하니, 여자친구를 버리기 전에 K씨의 '대신 살아주려는 태도'부터 버려보길 권한다.


2. 여자친구를 봐도 아무 감정이….


J씨에겐 소설가 박민규의 문장을 하나 소개시켜주고 싶다.

"지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아폴로를 달에 착륙시켰던 컴퓨터보다 정확히 3배가 더, 뛰어난 것이다.
내 책상 밑으론 인터넷이 들어와 있고,
나는 더 이상 도서관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환경에서 당신을 화성에라도 보내줄만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조까라 마이싱이다."

- 박민규, <조까라 마이싱이다> 중에서


톡을 주셨던 어느 독자 분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말하자면, 어느 독자 분께서 며칠 전 내가 올린 별사진에 대해

"사진 멋져요! 저도 그런 사진 찍고 싶어요.
그런데 제 카메라는 캐논 550D인데, 이런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겠죠?"



라는 톡을 보내주셨다. 톡으로 답을 드리긴 했지만, 내가 별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캐논의 400D로 그 독자 분이 쓰시는 카메라보다 세 단계나 이전의 것이다.(400D->450D->500D->550D순이다.) 렌즈가 다르지 않냐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사진은 번들렌즈로 찍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는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데이비드 앨런 하비라는 사진작가가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출신의 작가인데, 몇 년 전 방한했을 때 그는 D70에 35mm 단렌즈 하나만 들고 왔다. 그 모습을 본 기자가 단출한 장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며 질문을 하자, 그는

"이 카메라만으로 모든 것을 다 찍을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가 "안 그래도 카메라를 바꿀 생각이다. 이거 노이즈도 심하고, 렌즈는 어중간해서 광각이나 망원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자.

J씨가 보낸 사연을 읽다 보면, J씨가 '여자친구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이 파악했거나 예상하고 있는 여자친구의 모습이 그녀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하며,

'그래봐야 그럴 게 뻔한데 뭐….'


하는 식으로 J씨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정리한다. 그러다 보니 J씨에게 여자친구는, 동적인 부분이 거세당한 정물이 되었다. 센서의 한계와 화각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카메라가 컴컴한 장롱 속 처박히듯, 여자친구와의 관계 역시 '더는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관계로 여겨지고 만 것이다.

카메라를 장롱 속에 처박아 둔 채 셔터도 누르지 않았는데, 카메라에 감동적인 사진들이 찍혀 있을 일이 있을까? 카메라를 처음 샀을 때에는, 새 카메라가 생겼다는 기쁨에 겨워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찍으면서도 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나가서 동네 화단에 있는 꽃을 찍으면서도 가슴이 뛴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그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그때부터는 알맞은 장소를 찾아 그곳까지 직접 가서 셔터를 누르지 않는 한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없다.  

여자친구와 뭘 어디까지, 얼마나 해봤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여자친구와 스키장에 간 적도 없고, 케이크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비행기를 탄 적도 없고, 라이딩을 한 적도 없고, 그림을 그려 본 적도 없고, 탁구를 쳐 본 적도 없고, 산림욕을 해 본 적도 없고, 템플스테이를 해 본 적도 없고, 악기를 연주 해 본 적도 없고, 낚시를 해 본 적도 없고, 목마를 태워 본 적도 없으면서 여자친구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건, 오만이다.

지금은 J씨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듯한 여자친구가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할애에 J씨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분명 올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팽개쳤다가 뒤늦게야 '아, 겨우 나 따위를 위해 그때 그녀는….'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지 말고, 오늘 만나 맛난 빵을 나눠 먹길 바란다.


남자친구가 너무 멍청한 것 같아(상식부족, 맞춤법 모름 등) 헤어지고 싶다는 여성대원들의 사연도 꽤 많이 오는 편인데, 그럴 경우엔 그 부분에 대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해 보길 권한다. "그것도 몰라?"라며 차갑게 쏘아 붙이는 대신, 같이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더불어 그녀들이 말하는 것 중 상당수는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것들'일 수 있다는 얘기도 여기다 적어두고 싶다. 남자친구가 칸트와 헤겔을 모른다며 분개하는 대원도 있었는데, 그쪽에 관심이 없으면 당연히 모를 수 있는 부분이다. 그건 "첼시랑 아스날을 구분 못 해?"하고 묻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테의 <신곡>얘기를 했더니 남자친구가 팝송을 잘 안 듣는다고 답했다는 대원도 있었는데, 모르면 갈구기 전에 먼저 가르쳐 주길 바란다. 그대도 배우기 전엔 몰랐던 것임을 잊지 말고 말이다.

끝으로 검은 강아지 '코비'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 지인이 키우던 코비는, 너무 짖는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분양되었다. 내 생각에 코비가 짖었던 건 지인의 가족들이 다 출근하고 나면 집에 홀로 남겨져 있는 것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은데, 여하튼 지인은 '얌전하고 짖지 않는 강아지'를 원한다며 코비를 다른 사람에게 분양했다. 다른 집에 간 코비는 '짖음 문제'로 더 구박받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새로운 주인은 가정주부라 늘 집에 있기에, 코비 혼자 두려움에 떨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인이 "쟤는 다른 집에 가서도 짖어서 맨날 혼 날거야."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다.

전에 이야기 했듯 여자친구를 유기한 남자들 중에는 '걔는 나한테 완전히 의지하고 있었던 애니까,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지금이라도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겠지.'하는 생각을 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그건 완벽히 착각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좋은 남자 만나서 좋은 여자친구로, 또 아내로, 또 엄마로 잘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대가 상대로 하여금 '좋은 여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도 주지 않은 채 혼자 상대의 인생까지 대신 살아주려다 벅차다며 팽개친 까닭에 일이 그렇게 된 것이지, 그녀가 '모자란 여자'라서 그랬던 것이 아님을 잊지 말길 바란다. 위와 같은 문제로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그게 정말 '그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이 상황'의 문제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제 남자친구는 제 얼굴을 기억 못 하는데, 이럴 땐 어떡하죠?" 그건 병원으로.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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