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모] 자신만 바라보지 말라는 남친 외 2편
지난 여름, 비싼 해외배송료까지 물어가며 구입한 어떤 제품이, 지금은 내 책상 모서리에 있다. 팔을 움직이다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져 깨지기 쉬운 곳이다. 이렇듯 어떤 대상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건, 그 대상이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되기도 한다.
이번 주엔, 상대의 생활 모서리에 자리하고 있는 여성대원들의 사연이 많았다. 아직은 '연애중'이라는 책상 위에 있긴 하지만, 상대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까닭에 불안에 떨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이런 대원들을 모두 초대해 바다낚시를 함께 가고 싶다. 갯바위에 서서 광어나 우럭, 놀래미를 잡아내는 즐거움을 맛보고, 또 바닷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끓여 먹는 라면의 맛을 알려주면 그녀들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알았으니까 너 빼고. 농담이고, 웃을 일 없이 그저 남친의 애정도를 알아보느라 "오늘 만나면 안 돼? 지금 와주면 안 돼?"라는 떡밥만 던지고 있기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연애 이외의 삶에서 아무 즐거움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여자는 매력 없다.
라며 모서리에서 구걸하지 말자. 그럴 땐 '너 그러다 나 놓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맞는 거다. 오늘 금사모에서는 모서리에서 덜덜 떨고 있는 K양의 사연부터 살펴보자.
전에 한 번 이것과 관련된 얘기를 했더니
라는 뉘앙스의 댓글이 달린 적 있다.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안다. 나 역시 남성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매뉴얼에서는 "판사가 되어 그녀의 이야기들을 재판하려 하지 말고, 잘 들어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는 변호사가 되세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얘기 하는 건, '도를 넘어선 행동들'에 대한 것이다.
그대가 아무개씨의 변호사라고 해보자. 아무개씨는 아침에 전화해서는 버스기사의 난폭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버스기사를 처벌할 수 없냐고 묻고, 점심에는 회사 동료와 다툼이 있었는데 인격 모독을 당한 것 같다며 고소할 수 없는지를 묻는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윗집이 너무 소란스러운 것 같다며 층간소음으로 신고할 수 없는지를 묻고, 저녁에는 늦은 시간에 동네 어느 차량의 경보음이 울렸다면서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처벌할 수 없는지를 또 묻는다. 그대라면 아무개씨를 버텨낼 수 있겠는가?
K양의 사연을 보자. 그녀의 사연엔
등의 문장들이 나온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K양이 이 관계를 '연애'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K양의 남자친구는 이 관계를 '육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징징 거리는 큰 어린아이 하나 어르고 달래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게 싸움이 아니라, K양의 '서운함 토로'였기 때문이다. K양은 자신이 꿈꾸던 대로 연애를 맞추려고 한다. 남자친구도 그것에 협조적인 편이었다. 동네를 벗어난 데이트도 하고, K양이 색다른 장소에서 데이트 하는 걸 좋아하는 까닭에 그 뜻에 따르기도 했다. 이야기도 잘 들어 줬다. 위에서 말한 '가족문제'의 경우도 남자는 다 듣고 K양을 위로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하면 할수록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한다고 했지만 K양은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들'이라는 새로운 미션표를 발표할 뿐이다. 남자친구에겐 이 연애가 즐거울까? 그는 이 연애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에겐 이 연애가 소중할까? 미안하지만 그런 감정들 보다는, 의무감과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그러다 결국 그는, 이건 '연애'일 뿐 '결혼'까지 이어갈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남자친구가 K양의 아빠, 오빠, 친구, 남자친구, 동생, 조력자, 상담자의 역할을 고루 다 감당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로지 그 역할들만을 담당하기 위한 연애는 앞서 말했듯 남자친구에게 의무이며 부담이 된다. 만약 이런 관계가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자신은 늘 구박과 잔소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K양은 현재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족과 남자친구 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는데, 그런 생활은 '365일 24시간 남친에게 의지하기'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아침에도 남친, 저녁에도 남친, 주중에도 남친, 주말에도 남친…. 이런 상황에서 "그따위 말을 하는 남친이라니, 갈 길 가라고 그냥 보내셔요."라며 덮어놓고 토닥토닥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로해 봐야 K양이 다음 연애를 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수 있어 하는 얘기니, 연애(남자친구)가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보다 좀 더 줄이는 데 힘써보길 권한다.
M양의 사연은, 지난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결론만 적어 보내 다루기 힘든 사연'에 속한다. 왜 싸웠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라는 M양 '자체평가'를 한 채점표만 들어있다. M양 본인이 생각하기엔 이것도 만점, 저것도 만점, 그것도 만점이었는데, 도대체 왜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 것인지를 내게 묻고 있다.
우선 M양에게, 돈 때문에 싸우는 커플이나 상대가 한눈을 팔거나 바람을 피워 싸우는 커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매뉴얼을 통해 그런 일들이 자주 소개되는 것은 그런 이유들로 인해 갈등이 벌어진 대원들이 사연을 보내기 때문이지, 일반적으로 연애하고 있는 커플 중 돈이나 다른 이성으로 인해 동물욕 해가며 싸우는 커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그런 일들이 없었다고 해서 '아무 문제없는 연애'라고 결론짓진 말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왜 헤어지자고 한 걸까요?"라고 묻는 M양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라는 질문뿐이다. 다른 부분은 사생활 노출을 염려한 M양이 적어주지 않은 까닭에 나도 알 수 없고, 여기서 보이는 문제는 긴장감이 전혀 없는 '명예직 연애'라는 점이다.
롱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3주에 한 번 만났다는 부분을 보자. 만남의 빈도가 애정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지만, 내가 택배 아저씨를 마주하는 횟수보다 연인인 둘의 만남이 적다는 게 놀랍다. M양 커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한 커플을 본 적 있는데, 그 커플 역시 "서로를 늘 생각하며 지낸다면, 만남이 중요한 건 아니야."라며 분기에 한 번쯤 만나 데이트를 하곤 했다. 뭔가 멋있어 보이지만, 나중에 두 사람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서로 점점 낯설어지다가 결국 '남남'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너 없는 하루'에 익숙해진 것이다.
남자친구의 갑작스런 이별통보라기 보다는, 모르는 사이에 둘의 이별이 서서히 진행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M양은 매달리기만 하면 다시 연인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난 이건 자연스레 이루어진 연애의 '종말'인 까닭에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M양에겐 아무 것도 더 하지 말고 일단 남자친구의 결정을 받아들이길 권해주고 싶다. 뭔가를 해도 그런 후에 해야지, 지금 상황에서 M양이 편지 쓰고, 이벤트 하고, 선물을 줘봐야 버스 지나간 뒤 요란스레 손 흔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 한 마디도 더 하지 말고 지금 상태 그대로 있길 권한다.(그래야 남자친구가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찍게 된다.)
노멀로그 애독자들을 모아 '사연 콘서트'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S양의 사연을 큰 스크린에 띄워 놓고, 내가 "여러분, 이런 관계를 뭐라고 하죠?" 하면,
라는 공통된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따위의 얘기에도 넘어가니 '쉬운 여자'가 되는 거다.
공짜 보험이니까. 구남친의 입장에서 S양은,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가입해 두기만 하면 나중에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이다. 그러니 지금 명확히 입장을 밝혀 가입을 거절할 필요가 없잖은가.
늘 얘기하지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인 거다. 나도 지금까지 운전을 하며 사고 한 번 안 냈지만, 오늘 나가서 차를 몰다가 뺑소니 하면 뺑소니범 되는 거다. 물론 우리 어머니께서는
라고 하시겠지만, 사람을 치고 도망갔으면 뺑소니범이 맞는 거다.
구남친의 집에 가서 지내며, 그에게 여자친구랑 주말에 만날 거냐고 물어보며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가 "나중에 우리 결혼하면 이러이러한 집을 지어서…."라는 이야기를 하니 그저 행복할 뿐인가? S양이 내 여동생이었으면, 내가 울며 애원을 해서라도 제발 거기서 나오길 부탁했을 것 같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대체 왜 '세컨드'같은 걸 하며 지내고 있는가. 설마, 구여친이었으니 세컨드와는 다른 거라고 말 할 생각인가?
거듭된 행동을 통해 증명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게 확신이다. S양이 받은 건 그의 '달콤한 말'뿐이며, 그것의 대부분은 내가 보기엔 지키든 안 지키든 문제될 게 없는 '허위공약'일 뿐이다. "난 지금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지만, 결혼은 너와 할 거야."라는 말은, 오늘 저녁 그가 연락 끊어버리면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약속 아닌가.
현재 S양의 구남친은, 길어지는 기다림에 지쳐 S양이 확답을 받으려 하면, "내가 분명 어제 얘기 했지? 그런데 넌 왜 날 믿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하는 거야?"따위의 말로 오히려 S양을 탓한다. 이 글 읽고 S양이 또 따지면 구남친이 "못 믿겠으면 그냥 끝내. 단 이거 하나는 기억해 둬. 난 분명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고, 너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런 내 말에 아무 믿음도 보여주지 못한 건 너야.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라고 대답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아, 어쩌면 좋을까. 그는 "보채는 널 위해, 내 자취방에서 지내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라고 말 할 정도로 영악한 남잔데….
어쩌다 보니 전부 커플부대원들의 사연만 다루게 된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솔로부대원들의 사연 위주로 매뉴얼을 발행할 예정이니, 솔로부대원 독자 분들은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생일맞이 글에 답글을 다는 중인데, 달아 놓은 답글이 없어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안 달아 놓고 거짓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달았는데 내 답글이 지워졌다. 관리자 페이지에 삭제된 댓글들이 모아져 있는 휴지통에도 그 흔적이 없다. 썼던 글을 다시 똑같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지만, 어쨌든 주말을 이용해 100개의 댓글에 모두 답글을 달아놓도록 하겠다.
그리고 새 책은 11월 4일 부터 판매가 시작되는 까닭에, 월요일에 출판 공지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남다른 정보력을 가지고 계신 독자 분들이 이미 발견을 하시곤 인터넷 서점에 책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책 제목은 <홀로여도 좋지만 네가 있어 더 행복하다>이다. 난 <천 번을 흔들리면 어지러워서 멈추면 비로소 청춘이다>같은 제목으로 하고 싶었는데 출판사 측의 반대가 심해 무산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시면 표지와 목차 등을 보실 수 있다.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는 월요일 공지에서 자세히 들려드리겠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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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비싼 해외배송료까지 물어가며 구입한 어떤 제품이, 지금은 내 책상 모서리에 있다. 팔을 움직이다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져 깨지기 쉬운 곳이다. 이렇듯 어떤 대상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건, 그 대상이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되기도 한다.
이번 주엔, 상대의 생활 모서리에 자리하고 있는 여성대원들의 사연이 많았다. 아직은 '연애중'이라는 책상 위에 있긴 하지만, 상대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까닭에 불안에 떨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이런 대원들을 모두 초대해 바다낚시를 함께 가고 싶다. 갯바위에 서서 광어나 우럭, 놀래미를 잡아내는 즐거움을 맛보고, 또 바닷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끓여 먹는 라면의 맛을 알려주면 그녀들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전 그런 거 딱 질색인데요? 추운 거랑 생선 정말 싫어해요."
알았으니까 너 빼고. 농담이고, 웃을 일 없이 그저 남친의 애정도를 알아보느라 "오늘 만나면 안 돼? 지금 와주면 안 돼?"라는 떡밥만 던지고 있기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연애 이외의 삶에서 아무 즐거움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여자는 매력 없다.
"알았어. 그럼 다음 주에는 보는 거지?"
라며 모서리에서 구걸하지 말자. 그럴 땐 '너 그러다 나 놓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맞는 거다. 오늘 금사모에서는 모서리에서 덜덜 떨고 있는 K양의 사연부터 살펴보자.
1. 자신만 바라보지 말라는 남친.
전에 한 번 이것과 관련된 얘기를 했더니
"너무 남자입장에서만 쓰여진 글이네요.
여자들은 자신의 소소한 감정들까지 보듬어 주기를 원하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냐며 토닥토닥 해주고,
잘 들어주고 리액션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런데 그런 행동들을 줄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남성적 시각에서 한 이야기 같네요."
여자들은 자신의 소소한 감정들까지 보듬어 주기를 원하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냐며 토닥토닥 해주고,
잘 들어주고 리액션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런데 그런 행동들을 줄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남성적 시각에서 한 이야기 같네요."
라는 뉘앙스의 댓글이 달린 적 있다.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안다. 나 역시 남성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매뉴얼에서는 "판사가 되어 그녀의 이야기들을 재판하려 하지 말고, 잘 들어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는 변호사가 되세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얘기 하는 건, '도를 넘어선 행동들'에 대한 것이다.
그대가 아무개씨의 변호사라고 해보자. 아무개씨는 아침에 전화해서는 버스기사의 난폭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버스기사를 처벌할 수 없냐고 묻고, 점심에는 회사 동료와 다툼이 있었는데 인격 모독을 당한 것 같다며 고소할 수 없는지를 묻는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윗집이 너무 소란스러운 것 같다며 층간소음으로 신고할 수 없는지를 묻고, 저녁에는 늦은 시간에 동네 어느 차량의 경보음이 울렸다면서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처벌할 수 없는지를 또 묻는다. 그대라면 아무개씨를 버텨낼 수 있겠는가?
K양의 사연을 보자. 그녀의 사연엔
"가족문제로 짜증나있던 제가 남자친구에게 달래달라며 전화하던 중…."
"남자친구가 일해야 해서 못 오는 걸 알지만, 제가 와주면 안 되냐는 요구를…."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제가 서운함을 조절하지 못해 종종 다툼이…."
"남자친구가 일해야 해서 못 오는 걸 알지만, 제가 와주면 안 되냐는 요구를…."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제가 서운함을 조절하지 못해 종종 다툼이…."
등의 문장들이 나온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K양이 이 관계를 '연애'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K양의 남자친구는 이 관계를 '육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징징 거리는 큰 어린아이 하나 어르고 달래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싸워도 저는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금세 풀어지는데, 남자친구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게 싸움이 아니라, K양의 '서운함 토로'였기 때문이다. K양은 자신이 꿈꾸던 대로 연애를 맞추려고 한다. 남자친구도 그것에 협조적인 편이었다. 동네를 벗어난 데이트도 하고, K양이 색다른 장소에서 데이트 하는 걸 좋아하는 까닭에 그 뜻에 따르기도 했다. 이야기도 잘 들어 줬다. 위에서 말한 '가족문제'의 경우도 남자는 다 듣고 K양을 위로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하면 할수록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한다고 했지만 K양은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들'이라는 새로운 미션표를 발표할 뿐이다. 남자친구에겐 이 연애가 즐거울까? 그는 이 연애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에겐 이 연애가 소중할까? 미안하지만 그런 감정들 보다는, 의무감과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그러다 결국 그는, 이건 '연애'일 뿐 '결혼'까지 이어갈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남자친구가 K양의 아빠, 오빠, 친구, 남자친구, 동생, 조력자, 상담자의 역할을 고루 다 감당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로지 그 역할들만을 담당하기 위한 연애는 앞서 말했듯 남자친구에게 의무이며 부담이 된다. 만약 이런 관계가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자신은 늘 구박과 잔소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K양은 현재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족과 남자친구 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는데, 그런 생활은 '365일 24시간 남친에게 의지하기'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아침에도 남친, 저녁에도 남친, 주중에도 남친, 주말에도 남친…. 이런 상황에서 "그따위 말을 하는 남친이라니, 갈 길 가라고 그냥 보내셔요."라며 덮어놓고 토닥토닥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로해 봐야 K양이 다음 연애를 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수 있어 하는 얘기니, 연애(남자친구)가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보다 좀 더 줄이는 데 힘써보길 권한다.
2.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남친.
M양의 사연은, 지난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결론만 적어 보내 다루기 힘든 사연'에 속한다. 왜 싸웠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돈 때문에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자주 못 보긴 했지만 그건 저희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요."
"다툼은 있었지만, 그게 서로가 싫어서 다툰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자주 못 보긴 했지만 그건 저희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요."
"다툼은 있었지만, 그게 서로가 싫어서 다툰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라는 M양 '자체평가'를 한 채점표만 들어있다. M양 본인이 생각하기엔 이것도 만점, 저것도 만점, 그것도 만점이었는데, 도대체 왜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 것인지를 내게 묻고 있다.
우선 M양에게, 돈 때문에 싸우는 커플이나 상대가 한눈을 팔거나 바람을 피워 싸우는 커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매뉴얼을 통해 그런 일들이 자주 소개되는 것은 그런 이유들로 인해 갈등이 벌어진 대원들이 사연을 보내기 때문이지, 일반적으로 연애하고 있는 커플 중 돈이나 다른 이성으로 인해 동물욕 해가며 싸우는 커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그런 일들이 없었다고 해서 '아무 문제없는 연애'라고 결론짓진 말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왜 헤어지자고 한 걸까요?"라고 묻는 M양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둘의 연애가 '명예직 연애'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라는 질문뿐이다. 다른 부분은 사생활 노출을 염려한 M양이 적어주지 않은 까닭에 나도 알 수 없고, 여기서 보이는 문제는 긴장감이 전혀 없는 '명예직 연애'라는 점이다.
롱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3주에 한 번 만났다는 부분을 보자. 만남의 빈도가 애정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지만, 내가 택배 아저씨를 마주하는 횟수보다 연인인 둘의 만남이 적다는 게 놀랍다. M양 커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한 커플을 본 적 있는데, 그 커플 역시 "서로를 늘 생각하며 지낸다면, 만남이 중요한 건 아니야."라며 분기에 한 번쯤 만나 데이트를 하곤 했다. 뭔가 멋있어 보이지만, 나중에 두 사람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서로 점점 낯설어지다가 결국 '남남'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너 없는 하루'에 익숙해진 것이다.
남자친구의 갑작스런 이별통보라기 보다는, 모르는 사이에 둘의 이별이 서서히 진행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M양은 매달리기만 하면 다시 연인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난 이건 자연스레 이루어진 연애의 '종말'인 까닭에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M양에겐 아무 것도 더 하지 말고 일단 남자친구의 결정을 받아들이길 권해주고 싶다. 뭔가를 해도 그런 후에 해야지, 지금 상황에서 M양이 편지 쓰고, 이벤트 하고, 선물을 줘봐야 버스 지나간 뒤 요란스레 손 흔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 한 마디도 더 하지 말고 지금 상태 그대로 있길 권한다.(그래야 남자친구가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찍게 된다.)
3. 새여친 정리하겠다는 구남친.
노멀로그 애독자들을 모아 '사연 콘서트'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S양의 사연을 큰 스크린에 띄워 놓고, 내가 "여러분, 이런 관계를 뭐라고 하죠?" 하면,
"양다리요!"
라는 공통된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너는 결혼상대로 좋은 여자다.
지금은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지만 너와 결혼을 할 생각이다."
지금은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지만 너와 결혼을 할 생각이다."
따위의 얘기에도 넘어가니 '쉬운 여자'가 되는 거다.
"구남친은 분명 제게 돌아올 거라 했는데,
돌아올 게 아니라면 왜 저와 연락을 하고 스킨십을 하는 거죠?"
돌아올 게 아니라면 왜 저와 연락을 하고 스킨십을 하는 거죠?"
공짜 보험이니까. 구남친의 입장에서 S양은,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가입해 두기만 하면 나중에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이다. 그러니 지금 명확히 입장을 밝혀 가입을 거절할 필요가 없잖은가.
"그 사람, 그럴 사람 아니에요. 진짜 갈등하고 있을 거예요…."
늘 얘기하지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인 거다. 나도 지금까지 운전을 하며 사고 한 번 안 냈지만, 오늘 나가서 차를 몰다가 뺑소니 하면 뺑소니범 되는 거다. 물론 우리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들이 그럴 애가 아니에요. 딱지 한 번 뗀 적 없을 정도로 정직한 앤데…."
라고 하시겠지만, 사람을 치고 도망갔으면 뺑소니범이 맞는 거다.
구남친의 집에 가서 지내며, 그에게 여자친구랑 주말에 만날 거냐고 물어보며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가 "나중에 우리 결혼하면 이러이러한 집을 지어서…."라는 이야기를 하니 그저 행복할 뿐인가? S양이 내 여동생이었으면, 내가 울며 애원을 해서라도 제발 거기서 나오길 부탁했을 것 같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대체 왜 '세컨드'같은 걸 하며 지내고 있는가. 설마, 구여친이었으니 세컨드와는 다른 거라고 말 할 생각인가?
"무한님 얘기가 맞다면, 그는 왜 저에게 여러 번 확신을 주는 거죠?"
거듭된 행동을 통해 증명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게 확신이다. S양이 받은 건 그의 '달콤한 말'뿐이며, 그것의 대부분은 내가 보기엔 지키든 안 지키든 문제될 게 없는 '허위공약'일 뿐이다. "난 지금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지만, 결혼은 너와 할 거야."라는 말은, 오늘 저녁 그가 연락 끊어버리면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약속 아닌가.
현재 S양의 구남친은, 길어지는 기다림에 지쳐 S양이 확답을 받으려 하면, "내가 분명 어제 얘기 했지? 그런데 넌 왜 날 믿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하는 거야?"따위의 말로 오히려 S양을 탓한다. 이 글 읽고 S양이 또 따지면 구남친이 "못 믿겠으면 그냥 끝내. 단 이거 하나는 기억해 둬. 난 분명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고, 너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런 내 말에 아무 믿음도 보여주지 못한 건 너야.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라고 대답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아, 어쩌면 좋을까. 그는 "보채는 널 위해, 내 자취방에서 지내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라고 말 할 정도로 영악한 남잔데….
어쩌다 보니 전부 커플부대원들의 사연만 다루게 된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솔로부대원들의 사연 위주로 매뉴얼을 발행할 예정이니, 솔로부대원 독자 분들은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생일맞이 글에 답글을 다는 중인데, 달아 놓은 답글이 없어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안 달아 놓고 거짓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달았는데 내 답글이 지워졌다. 관리자 페이지에 삭제된 댓글들이 모아져 있는 휴지통에도 그 흔적이 없다. 썼던 글을 다시 똑같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지만, 어쨌든 주말을 이용해 100개의 댓글에 모두 답글을 달아놓도록 하겠다.
그리고 새 책은 11월 4일 부터 판매가 시작되는 까닭에, 월요일에 출판 공지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남다른 정보력을 가지고 계신 독자 분들이 이미 발견을 하시곤 인터넷 서점에 책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책 제목은 <홀로여도 좋지만 네가 있어 더 행복하다>이다. 난 <천 번을 흔들리면 어지러워서 멈추면 비로소 청춘이다>같은 제목으로 하고 싶었는데 출판사 측의 반대가 심해 무산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시면 표지와 목차 등을 보실 수 있다.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는 월요일 공지에서 자세히 들려드리겠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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