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가까워져 썸을 타지만 그게 전부인 여자, 왜?
수 년 전 일산에 살 때, 도서관에 갔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다. 학창시절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지만 마주치면 인사는 하고 지내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무슨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까닭에 매일 도서관에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도서관에 자주 오는지, 밥은 어디서 먹는지 등을 물었다. 당시 난 노트 하나 들고 자료실로 출근하듯 도서관을 다니고 있던 중이라 거의 매일 들른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자기도 매일 열람실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한다고 말했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그를 만난 날 이후로 내 도서관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그가 계속해서 날 호출했기 때문이다. 자료실에서 책을 보며 메모를 하고 있으면 친구가 날 불렀다. 담배 하나 피우자, 커피 한 잔 하자, 간식 먹고 하자 등의 이야기를 하며. 또 친구는 밥도 같이 먹자고 했다. 어차피 먹어야 하는 밥이니 같이 먹는 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밥을 먹고 난 이후에 친구의 수다를 들어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게 되었다.
그는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타입이었다. 딱히 어떤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난 나중에 SUV를 살 생각이다."로 시작해서 "롯데리아보다 맥도널드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다."를 거친 뒤, "친구가 사고 난 일이 있었는데, 보험을 꼭 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로 이어지는 식의 대화였다. 나 혼자 도서관에 왔다면 1시에 밥 먹으러 내려갔다가 1시 반쯤이면 올라왔겠지만, 친구와 함께 먹으면 1시에 내려갔다가 3시가 다 되어서야 올라올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춥네. 그만 들어갈까?"하는 말로 대화를 겨우 마무리 한 뒤에야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내가 차라리 "몇 시에 뭘 하자, 밥은 몇 시까지 먹고 들어오자." 등의 제안을 했으면 좋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난,
하는 두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중 두 번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며칠간 저런 태도를 보였더니, 친구는 더 이상 날 부르러 오지 않았다. 내가 거절할 때, 실망한 표정을 웃음 뒤로 감추던 친구의 그 얼굴이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날 위한 변명을 좀 적어두자면, 당시에 난 그 친구 때문에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도 힘들었다. 집중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자꾸 누군가 찾아와 초인종을 눌러대는 느낌이랄까. 대화 역시 그 친구의 하소연이나 희망사항에 대해 들어주는 것이 8할이라, 내겐 '감정적, 정서적 의존'처럼 느껴졌다.
물질적으로는 친구가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산 적이 더 많았고, 내 담배가 떨어진 것을 보고는 자기 담배를 살 때 내 담배를 한 갑 사다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부담스러웠다. 받은 만큼 나도 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좀 들었고, 아니면 그만큼의 부탁이나 요청을 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전과 달리 서로를 호출하는 일은 없었고, 밥도 각자 알아서, 커피도 각자 알아서, 담배도 각자 알아서, 먹거나 마시거나 피웠다. 지나다가 마주치면 인사만 잠깐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난 그 친구가 '의식적으로 더 빨리 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내가 옆에 가서 앉아도, 그 친구는 자신의 음식을 다 먹고는 일어서서 가 버렸다. 거리를 좀 두려고 했다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아, 내가 밥 먹고 담배 하나 같이 피우자며 잡아도, 그 친구는 빨리 올라가 봐야 한다면서 핑계를 대곤 일어섰다.
사연을 보낸 D양이 연애에 대해 물었는데, 난 왜 친구랑 멀어진 얘기 따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 이야기 안에 D양의 모습이 있다. 어떤 모습이 비슷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자.
썸의 초반, 상대를 대하는 D양의 태도에 기술점수 9점, 예술점수 8.9점을 주고 싶다. 훌륭하다. 특히
라며 자연스레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다른 솔로부대원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을 정도다. 복도에서 썸남을 마주치면 로봇처럼 걸어가는 타 대원들과 달리 D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D양은 '부탁'도 잘 활용한다. 상대가 D양의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해 리액션 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식사약속을 잡는 것까지도 훌륭하다. 여기까지는 흠잡을 데가 전혀 없다. 썸남과 말도 자연스럽게 놓고, 어색하지 않게 이전 대화에서 나왔던 소재들을 다시 꺼내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D양이 이쯤부터 계속 '가속'을 하기에 문제가 벌어진다. 상대가 D양의 부탁을 잘 들어주고, 그렇게 어느 정도 친해져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자, D양은 '감정적, 정서적 의존'을 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D양의 '부탁하는 빈도'도 높아진다. 내가 썸남이라면,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그녀는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D양의 지인이고 D양이 저런 카톡을 보낼 때 옆에 있었더라면,
라는 질문을 했을 것 같다. 이 상황이 왜 문제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남녀를 바꿔 보면 된다. D양과 이제 갓 친해진 남자가 있는데, 그가
하는 카톡을 계속 보낸다고 해보자. 한두 번이야 받아주겠지만, 상대가 계속 저런 말만 반복하면 D양도 더 이상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바로 상대가 D양의 카톡에 '대답 없음'으로 답하게 된 이유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미안하지만, D양이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D양에게 관심이 없을 거란 얘기를 먼저 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D양의 친구라고 해도, D양과 내가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며 우정을 쌓아온 관계가 아니라면, 만약 D양이 "나 불치병 걸렸어."라는 말을 해도,
정도의 생각만 할 것 같다. D양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그 사실이 충격적이지 않으며, 그 위기를 절실하고 절박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는 얘기다.
D양이 과거의 남친 및 썸남에 대해 느낀 감정들을 좀 보자.
그러니까 이건, 소개팅을 하고 나서 썸남에게 고백을 받았는데,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제 막 사과나무를 심었을 뿐이면서, 다음 날부터 열매타령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성보다 감성이나 본능이 훨씬 앞서는 이십대 초반의 연애라거나, 상대에 대한 팬심으로 시작하는 첫 연애라면, D양이 바라는 그런 연애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D양과 썸남은 모두 이십대 후반이 아닌가. 특히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썸남은, 앞선 연애들로 인해 연애에 대한 환상도 풍화작용을 겪었을 것이며, 늘 얘기하듯 이제는 자신이 만든 상대의 이미지에 풍덩 빠져 올인 하는 연애가 아닌,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연애를 원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썸남에게 D양처럼 '나에게 빠졌다는 느낌'이 안 보인다며 모나게 굴면, 잘 하려고 노력을 하긴커녕 대화 창구를 닫아 버리게 된다. 상대는 D양과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D양은 자꾸 뭘 내 놓으라는 식으로 찌르고 꼬집기 때문이다.
난 D양에게, 연애에 대한 태도를 좀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과거엔 D양의 외모 하나만 보고도 구애하는 남자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그럼 이 상황에 맞춰 D양도 태도를 바꿔야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채 구남친이나 과거의 썸남에게
라며 유효기간 지난 구애를 들추고 있으면 곤란하다. 돌아오는 답이라고는 "내가 그랬었나?"라거나 "그건 뭐, 그냥 그랬던 건데…."일 것이 뻔하니, 화석으로 남은 그 애정표현들을 발굴하는 일도 그만 멈추길 권한다.
D양은 현재 이십대 후반의 나이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가 이번에 진로를 바꿨는데, 난 개인적으로 그 상황도 D양의 연애에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학원에서 만난 현재의 썸남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 D양보다 나이가 좀 더 있는 썸남은,
하는 고민을 하고 있거나, 학교 일 때문에 늘 쫓기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듯 보인다.(더불어 썸남은 아직 군복무를 마치지 않았기에 그 문제도 있다.)
내가 읽고 느낀 대로만 말하자면, 여기서 보기엔 둘의 카톡대화가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과 3학년 남학생의 대화 같다. 썸남은 연락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학교에 잡혀 있고, 뭔가 계속 '할 일의 연속'속에서 사는 것 같은데, D양은 (진로 변경으로 인한 고민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분명 가까워지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이후 D양의 '바라는 것'이 많아진 문제에 더해,
하며 '헌신도, 구애도, 고백도 좀 빨리 빨리 합시다.'라는 뉘앙스로 상대를 몰아가면, 지금처럼 상대는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아직 완전히 망가진 관계는 아니니, 딱 올해 3, 4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연락하며 지내길 권한다. 상대가 뭘 해주길 바라지 말고 우선 '친한 사이'로 지내는 걸 목표로 해보자. D양이 말한 N에 참가하는 건 나도 적극 찬성한다. 가서 또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행운을 빈다.
▲ 아직 출간 소식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 http://normalog.com/1549 서평과 리뷰는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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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일산에 살 때, 도서관에 갔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다. 학창시절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지만 마주치면 인사는 하고 지내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무슨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까닭에 매일 도서관에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도서관에 자주 오는지, 밥은 어디서 먹는지 등을 물었다. 당시 난 노트 하나 들고 자료실로 출근하듯 도서관을 다니고 있던 중이라 거의 매일 들른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자기도 매일 열람실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한다고 말했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그를 만난 날 이후로 내 도서관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그가 계속해서 날 호출했기 때문이다. 자료실에서 책을 보며 메모를 하고 있으면 친구가 날 불렀다. 담배 하나 피우자, 커피 한 잔 하자, 간식 먹고 하자 등의 이야기를 하며. 또 친구는 밥도 같이 먹자고 했다. 어차피 먹어야 하는 밥이니 같이 먹는 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밥을 먹고 난 이후에 친구의 수다를 들어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게 되었다.
그는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타입이었다. 딱히 어떤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난 나중에 SUV를 살 생각이다."로 시작해서 "롯데리아보다 맥도널드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다."를 거친 뒤, "친구가 사고 난 일이 있었는데, 보험을 꼭 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로 이어지는 식의 대화였다. 나 혼자 도서관에 왔다면 1시에 밥 먹으러 내려갔다가 1시 반쯤이면 올라왔겠지만, 친구와 함께 먹으면 1시에 내려갔다가 3시가 다 되어서야 올라올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춥네. 그만 들어갈까?"하는 말로 대화를 겨우 마무리 한 뒤에야 말이다.
1. 우리가 멀어진 과정.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내가 차라리 "몇 시에 뭘 하자, 밥은 몇 시까지 먹고 들어오자." 등의 제안을 했으면 좋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난,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는 걸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거절을 해서 거리를 좀 둘까?'
아니면 그냥 거절을 해서 거리를 좀 둘까?'
하는 두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중 두 번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지금은 별로 (담배가)안 땡기네. 난 이따가 내려갈게."
"오늘은 배가 안 고프다. (점심은)너 먼저 먹어."
"밤에 잠이 안 와서 커피 좀 줄이려고. 마시고 와."
"오늘은 배가 안 고프다. (점심은)너 먼저 먹어."
"밤에 잠이 안 와서 커피 좀 줄이려고. 마시고 와."
며칠간 저런 태도를 보였더니, 친구는 더 이상 날 부르러 오지 않았다. 내가 거절할 때, 실망한 표정을 웃음 뒤로 감추던 친구의 그 얼굴이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날 위한 변명을 좀 적어두자면, 당시에 난 그 친구 때문에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도 힘들었다. 집중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자꾸 누군가 찾아와 초인종을 눌러대는 느낌이랄까. 대화 역시 그 친구의 하소연이나 희망사항에 대해 들어주는 것이 8할이라, 내겐 '감정적, 정서적 의존'처럼 느껴졌다.
물질적으로는 친구가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산 적이 더 많았고, 내 담배가 떨어진 것을 보고는 자기 담배를 살 때 내 담배를 한 갑 사다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부담스러웠다. 받은 만큼 나도 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좀 들었고, 아니면 그만큼의 부탁이나 요청을 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전과 달리 서로를 호출하는 일은 없었고, 밥도 각자 알아서, 커피도 각자 알아서, 담배도 각자 알아서, 먹거나 마시거나 피웠다. 지나다가 마주치면 인사만 잠깐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난 그 친구가 '의식적으로 더 빨리 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내가 옆에 가서 앉아도, 그 친구는 자신의 음식을 다 먹고는 일어서서 가 버렸다. 거리를 좀 두려고 했다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아, 내가 밥 먹고 담배 하나 같이 피우자며 잡아도, 그 친구는 빨리 올라가 봐야 한다면서 핑계를 대곤 일어섰다.
사연을 보낸 D양이 연애에 대해 물었는데, 난 왜 친구랑 멀어진 얘기 따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 이야기 안에 D양의 모습이 있다. 어떤 모습이 비슷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자.
2. 진격의 D양.
썸의 초반, 상대를 대하는 D양의 태도에 기술점수 9점, 예술점수 8.9점을 주고 싶다. 훌륭하다. 특히
"이것 좀 들어봐요. 나 이렇게 무거운 거 들고 다녀요."
라며 자연스레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다른 솔로부대원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을 정도다. 복도에서 썸남을 마주치면 로봇처럼 걸어가는 타 대원들과 달리 D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D양은 '부탁'도 잘 활용한다. 상대가 D양의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해 리액션 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식사약속을 잡는 것까지도 훌륭하다. 여기까지는 흠잡을 데가 전혀 없다. 썸남과 말도 자연스럽게 놓고, 어색하지 않게 이전 대화에서 나왔던 소재들을 다시 꺼내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D양이 이쯤부터 계속 '가속'을 하기에 문제가 벌어진다. 상대가 D양의 부탁을 잘 들어주고, 그렇게 어느 정도 친해져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자, D양은 '감정적, 정서적 의존'을 하기 시작한다.
"오빠, 나 오늘 진짜 상태가 안 좋아."
"오빠, 나 좀 화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비 많이 오네. 마중 나와 주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고 달달한 거 먹고 싶다."
"이런 날은 그냥 누가 나 안아줬으면 좋겠다."
"오빠, 나 좀 화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비 많이 오네. 마중 나와 주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고 달달한 거 먹고 싶다."
"이런 날은 그냥 누가 나 안아줬으면 좋겠다."
더불어 D양의 '부탁하는 빈도'도 높아진다. 내가 썸남이라면,
'이거 지금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아니면 심부름 시키는 거야?'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그녀는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D양의 지인이고 D양이 저런 카톡을 보낼 때 옆에 있었더라면,
"야, 너 왜 그래? 요즘 사는 게 힘들어? 왜 그렇게 그 사람한테 앵겨?"
라는 질문을 했을 것 같다. 이 상황이 왜 문제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남녀를 바꿔 보면 된다. D양과 이제 갓 친해진 남자가 있는데, 그가
"회사도 싫고, 사람도 싫고, 그냥 혼자 하는 일 했으면 좋겠다."
"진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싫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이런 날은 누가 치맥 살 테니까 나오라고 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매콤한 거 먹고 싶네. 자기 전에 매운 거 먹으면 안 되는데."
"진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싫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이런 날은 누가 치맥 살 테니까 나오라고 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매콤한 거 먹고 싶네. 자기 전에 매운 거 먹으면 안 되는데."
하는 카톡을 계속 보낸다고 해보자. 한두 번이야 받아주겠지만, 상대가 계속 저런 말만 반복하면 D양도 더 이상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바로 상대가 D양의 카톡에 '대답 없음'으로 답하게 된 이유라고 보면 될 것 같다.
3. 쉽게, 그리고 금방 실망하는 여자.
미안하지만, D양이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D양에게 관심이 없을 거란 얘기를 먼저 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D양의 친구라고 해도, D양과 내가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며 우정을 쌓아온 관계가 아니라면, 만약 D양이 "나 불치병 걸렸어."라는 말을 해도,
'저런, 안 됐네.'
정도의 생각만 할 것 같다. D양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그 사실이 충격적이지 않으며, 그 위기를 절실하고 절박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는 얘기다.
D양이 과거의 남친 및 썸남에 대해 느낀 감정들을 좀 보자.
"반가워하면서도 조금 주춤하길래 그냥 냅뒀습니다."
"썸남이 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썸남을 봤는데, 뭔가 (저와)사랑에 빠진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썸남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화났지만, 화내진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썸남들이 점점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썸남이 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썸남을 봤는데, 뭔가 (저와)사랑에 빠진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썸남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화났지만, 화내진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썸남들이 점점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소개팅을 하고 나서 썸남에게 고백을 받았는데,
"그가 진심으로 절 좋아한다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저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안 생기더군요."
저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안 생기더군요."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제 막 사과나무를 심었을 뿐이면서, 다음 날부터 열매타령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성보다 감성이나 본능이 훨씬 앞서는 이십대 초반의 연애라거나, 상대에 대한 팬심으로 시작하는 첫 연애라면, D양이 바라는 그런 연애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D양과 썸남은 모두 이십대 후반이 아닌가. 특히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썸남은, 앞선 연애들로 인해 연애에 대한 환상도 풍화작용을 겪었을 것이며, 늘 얘기하듯 이제는 자신이 만든 상대의 이미지에 풍덩 빠져 올인 하는 연애가 아닌,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연애를 원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썸남에게 D양처럼 '나에게 빠졌다는 느낌'이 안 보인다며 모나게 굴면, 잘 하려고 노력을 하긴커녕 대화 창구를 닫아 버리게 된다. 상대는 D양과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D양은 자꾸 뭘 내 놓으라는 식으로 찌르고 꼬집기 때문이다.
난 D양에게, 연애에 대한 태도를 좀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과거엔 D양의 외모 하나만 보고도 구애하는 남자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그럼 이 상황에 맞춰 D양도 태도를 바꿔야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채 구남친이나 과거의 썸남에게
"옛날에 오빠가 나한테 이러이러한 말을 했었잖아. 그땐 왜 그랬던 거야?"
라며 유효기간 지난 구애를 들추고 있으면 곤란하다. 돌아오는 답이라고는 "내가 그랬었나?"라거나 "그건 뭐, 그냥 그랬던 건데…."일 것이 뻔하니, 화석으로 남은 그 애정표현들을 발굴하는 일도 그만 멈추길 권한다.
D양은 현재 이십대 후반의 나이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가 이번에 진로를 바꿨는데, 난 개인적으로 그 상황도 D양의 연애에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학원에서 만난 현재의 썸남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 D양보다 나이가 좀 더 있는 썸남은,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거나, 학교 일 때문에 늘 쫓기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듯 보인다.(더불어 썸남은 아직 군복무를 마치지 않았기에 그 문제도 있다.)
내가 읽고 느낀 대로만 말하자면, 여기서 보기엔 둘의 카톡대화가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과 3학년 남학생의 대화 같다. 썸남은 연락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학교에 잡혀 있고, 뭔가 계속 '할 일의 연속'속에서 사는 것 같은데, D양은 (진로 변경으로 인한 고민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분명 가까워지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이후 D양의 '바라는 것'이 많아진 문제에 더해,
"저번에 만났을 때 오빠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하며 '헌신도, 구애도, 고백도 좀 빨리 빨리 합시다.'라는 뉘앙스로 상대를 몰아가면, 지금처럼 상대는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아직 완전히 망가진 관계는 아니니, 딱 올해 3, 4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연락하며 지내길 권한다. 상대가 뭘 해주길 바라지 말고 우선 '친한 사이'로 지내는 걸 목표로 해보자. D양이 말한 N에 참가하는 건 나도 적극 찬성한다. 가서 또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행운을 빈다.
▲ 아직 출간 소식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 http://normalog.com/1549 서평과 리뷰는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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