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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결혼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외 1편

by 무한 2013. 11. 22.
[금사모] 결혼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외 1편
남자친구는 참 좋은 사람인데,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 결혼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는 Y양. 그녀는 내게 "저 책도 샀어요! 제가 노멀님의 여동생이라고 생각하시고 꼭 현명한 선택 도와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난 "노멀님에게 보내실 메일을 저에게 잘못 보내신 것 같네요."하려다 그만 두었다. 날 설레게 해주려고 일부러 책 샀다는 뻥도 친 걸 텐데, 뭐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굴 것 있겠는가.

Y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오빠도 아직 안 갔는데 네가 먼저 가려고?"라는 얘기를 해주었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뻥친 것에 복수하려고 한 얘기고,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뭐가 내 마음에 걸리는지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자.


1-1. 간식을 배부르게 먹으니 밥 먹기가 싫지.


이거 Y양이 최대한 각색해 달라고 한 부분인데, 이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 얘기 안 할 수가 없다. 오래 두고 알아온 Y양의 이성친구 K는, Y양의 환상과 정서적 부분을 배부르게 만든다. Y양은 K와 양심에 거리낄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데이트 한 적 없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을 사귀는 중)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라며 로미오와 줄리엣 놀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있는 중이니 남자친구가 청혼을 해도 Y양은 별로 기쁘지가 않다. K는 그의 행실로 보아 분명 바람기 있는 남자지만, 그래도 센스 있고 반짝반짝하니까.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며 말해달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K는 감정만 좇는 불나방이다. 그는 꿈같은 얘기들을 Y양에게 던지지만 현실에선 여자친구와 잘 사귀고 있고, 나름 자신이 살 궁리를 이미 다 해놓은 상태다. 그러는 중에 그가 Y양에게 여자친구 험담을 하거나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너야."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건, 그냥 그러면서 노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니 얼마나 영화 같은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화를 하다보면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주인공 같아서 점점 더 그 상황극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정신 차리자. 둘은 상황극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정말 마음이 있는 거라면 두 사람 모두 지금 사귀는 사람 정리하고 만나면 되는 건데, 그렇게는 못하고 서로 간만 보면서, 그걸 또 '이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타령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누가 말리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 집안이 원수도 아닌데 왜 "네가 결혼하게 되면, 이제 우린 못 보겠지…."하며 둘이 영화 찍고 있는가.

Y양이 지금처럼 자신의 환상을 K에게 다 부여하고 있는 상황에선, 그 누가 와서 청혼을 하든 마음에 차지 않을 것이다. K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느니,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Y양은 몸은 남자친구와 연애하고 있지만 마음은 K와 연애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선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도 'K와의 결혼'이라는 환상을 계속 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갈등이 생겨도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후회할 것이고, 달콤한 말들을 던지는 K와 달리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남자친구가 답답해 보일 것이다.
 
"저도 알아요. 둘 중 한 사람을 포기하면 제 문제가 정리된다는 걸."


꼭 그렇지는 않다. 왜 그렇지 않은지는 역시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1-2. 흘러가는 대로 흘러온 3년.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Y양이 '두 마음'을 가지고 남자친구와 연애한 까닭에, 안타깝게도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어쩌다보니 여기까지'의 느낌이 되고 말았다. 그것 외에도 '남자친구에게 반해서 사귄 건 아니었다는 것'과 '결혼을 생각하긴 이른 나이였기에 연애를 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난 K만 없었어도 지금쯤은 Y양이 남자친구에게 확신을 갖든 포기를 하든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난 내게 자신의 연애 고민을 털어 놓는 지인이 있으면 대개

"나한테 얘기하지 말고, 그 사람하고 얘기해봐."


라며 '둘의 대화'를 권한다. 그 지인이 나랑 살 게 아니라 상대와 살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레벨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1단계 - 안부 묻는 대화.
2단계 - 가십에 대해 말하거나 투닥투닥 할 수 있는 대화.
3단계 - 고민을 털어 놓거나 서로의 일상을 챙기는 대화.
4단계 -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
5단계 - 불편하고 불쾌한 일들을 조율할 수 있는 대화.
6단계 - 미묘한 감정들 까지도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대화.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연인과는 고작 1~3단계의 대화 밖에 못 나누면서, 연인이 아닌 타인과 4~6단계의 대화를 나누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 창구를 감정의 해결사로 여기며, 연인과는 간판만 걸어 놓은 관계로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Y양과 남자친구의 관계가 그랬다. Y양은 K라는 '간식'으로 인해 감정적인 허기짐이 채워졌기에, '밥'인 남자친구와는 '남들 다 하는 데이트' 정도만 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연애는 대부분 남자친구의 노력을 동력으로 해서 여기까지 왔고, Y양의 감정을 보듬어 주는 건 남자친구보다 K가 더 잘 하게 되었다.

Y양의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인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Y양이 온전히 그를 겪어 본 후에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도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Y양은 전공수업이 아닌 교양수업 듣듯 그와 연애를 했다. 그래서 "그와 결혼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Y양에게 찬반 어느 쪽이든 힘주어 말해주기가 어렵다. Y양이 컴퓨터가 갑자기 안 된다며 내게 본체를 들고 온 느낌이랄까.

무한 - 코드가 빠졌던 건 아닌가요?
Y양 - 몰라요.
무한 - 꺼진 이후에 다시 안 켜보신 건가요?
Y양 - 네. 어디가 고장 난 거죠?
무한 - 그건 전원 넣고 컴퓨터를 켜봐야 알 것 같은데….
Y양 - 제가 지금 시간이 없거든요. 컴퓨터 파워만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요?
무한 - 단순한 전원 문제인지, 아니면 부품이 고장 난 건지, 소프트웨어 문제인지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Y양 - 시간이 없다니까요. 파워 바꾸면 되는 거 맞아요, 아니에요?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Y양이 일단 남자친구의 프로포즈에 승낙했고, 이미 부모님께 인사까지 드린 뒤라 난 더욱 난감하다. 남자친구는 그간 자신이 연애를 이끌어 왔듯, 결혼 역시 혼자 착착 진행시켜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Y양은 그저 조수석에 탄 채 이렇다 저렇다 말도 못하고 엉겁결에 결혼식장까지 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K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남자친구와 사계절을 한 번 더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보기엔 남자친구나 남자친구 집안에서 사주와 택일 등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언제를 넘기면 안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결혼도 거기에 맞춰 진행하려는 것 같은데, 그게 맞다면 최악의 경우 Y양은 남자친구에게 '결혼의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 현재 둘의 관계가 "결혼을 더 미루면 우리는 헤어져야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결혼 미룬다고 헤어질 관계 같으면 지금 헤어지는 게 낫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오늘부터는 남자친구라는 '한 사람'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가 보길 권한다.


2. 걔 아빠가 되면 안 돼, 창규야.


창규야 난 말야, 만약 썸녀가 나에게

"전 남자를 믿지 않아요. 믿었다가 배신당한 적이 있거든요.
그 이후론 누구를 믿지 않게 되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되물을 거야. 썸녀가 혼자 지하로 들어가서 땅바닥에 동그라미 그리고 있으면, 그 옆에 가서 나는 믿어도 좋다고,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그런 말 안 해. 크레인을 몰고 와서라도 지상으로 끌어 올려놓지.

썸녀가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난 걔 아빠처럼 잔소리 해가며 달래려고 안 해. 차라리 나쁜 친구가 되어서 같이 어울리지. 잘 생각해봐. 나쁜 친구랑 어울리는 건 나쁜 친구가 잘 챙겨주거나, 배려해 주거나, 헌신을 해줘서가 아니거든. 같이 있으면 재미있으니까 노는 거야.

내가 질리도록 얘기했잖아. 뒤에서 쫓아가지 말고 앞서가라고. 넌 지금도 썸녀에게 충분히 잘 해주고 있고, 물심양면으로 잘 챙겨주고 있어, 그런데 뭐가 또 그렇게 미안해서 자꾸 걔한테 미안하단 소리를 해?  

"힘들면 힘드니까 도와달라고, 나한테 부탁해도 돼."


창규야. 그러지 말라고. 넌 걔 아빠가 아니라 아는 오빠야. 대화의 8할이 상대의 안부 묻고 건강 걱정해 주는 거, 너 그거 '챙겨주는 입장'인 사람만 뿌듯해지는 대화라는 거 아직 모르는구나? 너한테만 내가 살짝 알려주는 건데, 단답보다 그게 더 짜증나. 대화가 무슨 스토리도 없이

"몸은 좀 어때?"
"얼른 더 자."
"밥은 먹었어?"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해."
"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내 마음도 안 좋다…."



저런 얘기로만 가득하잖아. 안부를 묻거나 건강 걱정해 주는 걸 아예 접으라는 얘기는 아니야. 그간 말로 열 번 하던 걸, 앞으로는 행동 한 번 하는 걸로 바꿔. 상대가 감기기운 있는 것 같으면 생강차, 모과차, 비타민, 뭐 줄 수 있는 거 많잖아. 그거 한 번 주면 되는 거야. 지금처럼 계속 입으로만 걱정해 주는 건 그만하고 차라리 비타민을 하나 사다 줘. 이렇게 얘기하면 틈날 때마다 상대에게 선물 갖다 바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진 않도록 주의하고.

상대에게 도움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마. 부탁한 적도 없는데 받는 도움은 대개 사은품처럼 여겨질 뿐이야. 매번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려고도 애쓰지 마. 사람이 어떻게 365일 24시간 즐거움에 가득 차 있을 수가 있어. 영혼의 숙성을 위해 고독을 씹고 있으면 그냥 좀 씹게도 둬. 고독 씹고 있는 상대에게 자꾸 "나한테 기대."라고 말하지 말고.

고백이고 뭐고 일단 같이 좀 놀아. 그리고 너 참 멋없으니까 앞으로는 좀 멋있게 행동해봐. 야, 썸녀가 피자 얘기하면 그게 계기잖아. "내가 같이 먹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이 뭐야. 카톡으로 저 따위 리액션만 할 거면 카톡 탈퇴해. 그게 뭐하는 짓이야. "피자 콜! 새우 들어간 거 새로 나왔다는데, 그거 먹을까?"하면 되잖아. 피자 살 돈 없어서 그래? 돈 때문이라면 형이 해결해 줄 테니까 울지 말고 말해 봐. 사채는 처음이지?

농담이고. 오늘부터는 박력에다가 추진력 좀 겸비해서 가보자. 맨날 폰 붙잡고 앉아서 마음만 졸이는 거 너도 지겹잖아. 움직여. 같이 밥 먹자고 했다가 거절당해도 안 죽으니까, 쫄지 말고 말해. 내가 보기엔 이거 연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120%인 관계인데, 창규 네가 지금 소심하게 카톡으로만 '아빠놀이'하고 있어서 망할 것 같아. 창규야. 모든 새끼백로가, 단 한 마리의 예외도 없이 첫 비행을 할 때 목숨을 걸고 나무에서 뛰어내리거든. 넌 뛰어내렸다가 날지 못할까봐 두렵다며 계속 둥지에 앉아서 비행하는 꿈만 꿀 거야? 아니지? 첫 비행을 응원하는 내가 뒤에 있으니까, 믿고 날아 봐.


끝으로 "남자친구네 김장하는데, 남자친구는 제가 와서 좀 도와줬으면 하는 눈치더라고요. 회사 언니들하고 얘기해 보니까 그런 거 한 번 가면 앞으로도 당연히 제 일이 된다면서 가지 말라던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사연을 보낸 J양에게 대답을 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본인의 고민은 본인의 상황에 대입시켜서 생각하자. J양과 남자친구는 결혼을 생각하며 만나고 있으며, J양이 이사를 할 때에도 남자친구가 와서 도왔고, J양 부모님의 일을 남자친구가 돕기도 했다. 그것 외에도 그는 J양과 J양 가족을 위해 여러 일들을 했다. J양의 가족까지도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들을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는 게 맞다. 회사 언니들이 자세한 속사정도 모른 채 일반적인 연애에 대입해 내린 "그랬다간 버릇된다."라는 결론에 무작정 따랐다간, 남자친구가 '난 이렇게까지 얘를 위해서 하는데, 얘는 날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구나.'라는 인간적인 실망을 할 수 있다. 남자친구가 J양을 효도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거나, 일은 J양이 하고 뿌듯해 하긴 자신이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면, '버릇될까봐'란 이유로 서운함이나 섭섭함의 금을 내지 말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자 그럼, 다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길!



"남자친구네 김장 500포기 하는데, 그래도요?" 일단 가겠다고 말하고 깁스하는 방법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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