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는 남친, 정말 다 남친 때문일까?
지연아 난 부대찌개 먹으러 가서, 냄비에다 밥 볶고 난 뒤 누룽지 긁으려 하다가 손 덴 적 있거든. 불을 껐으니까 식었을 거라 생각하고 잡았던 건데 뜨겁더라. 건더기 다 먹고 사리 넣어서 먹고 거기다 밥 볶는 동안에도 냄비가 달궈져 있었으니 뜨거운 건 사실 당연한 건데, 그땐 바보같이 '불을 껐으니까' 안 뜨거울 거라고 생각했어.
남친과 싸우고 나서 지연이는 금방 사과를 하잖아. 카톡으로 "미안해. 고치도록 노력할게."라는 이야기 하면서 말야. 그건 냄비를 달구던 불을 끄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
그게 다가 아냐. 그건 너 혼자 푼 거지 남자친구는 풀린 게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해 봐. 너랑 민지가 싸워서 쌍방폭행으로 경찰서에 갔어. 가서는 서로 자기가 피해자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해. 진술서에도 상대가 잘못한 것만 잔뜩 써놨어.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민지가 다가와서는 일 더 크게 만들지 말고 합의하자고 해. 그러면 넌 지금까지의 태도완 달리 웃으면서 "그래, 합의하자." 할 수 있겠어? 또, 네가 합의를 안 하겠다고 하자 민지가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면서
라는 이야기를 해. 그러면 넌 민지의 '합의하자'는 이전 태도를 진심이라고 생각할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꺼냈던 카드라는 생각이 들 거 아냐. 민지 저거, 속으로는 한 대 더 때리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화해하자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야.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야. 남자친구는 정확히 이 부분을 너에게 계속 얘기하거든.
남자친구가 참 말을 못 해서 나도 답답하긴 한데, 저 말은, "넌 왜 사과를 위한 사과를 하냐? 본심은 그게 아니면서 일단 사과부터 꺼내고, 그 사과를 내가 얼른 받지 않으면 감춰두었던 본심 꺼내서 나를 더 몰아세우지 않느냐."라는 거거든.
지연아, 이거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만 해도 그렇거든. 우리 집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만 하더라도, 택배 아저씨 왔을 때 자꾸 짖어서 내가 혼내면, 그 다음엔 불러도 이불 위에만 올라가 있지 나한테 오지 않아. 다시 오게 만들려면 좀 어르고 달래야 해.
라는 뜻을 보여주고 난 뒤에야, 간디도 마음을 풀고 다시 내게 오거든. 그럼 나도 간디를 쓰다듬어 주고 우리 사이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강아지 얘기에 다시 비유하자면, 지연이 넌 화해를 위해서 "이리와~ 아까 혼내서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강아지가 안 오면 안 온다고 또 혼내는 것과 같아. 그러니까 강아지도 널 믿을 수 없겠지. 분명 안 혼낸다며 이리 오라고 해 놓곤, 오지 않자 신문지 둘둘 말아서 혼내려 하니까.
내 친구 중에, 해외에 종종 드나든 까닭에 고교시절부터 영어를 잘 하던 친구가 있어. 언젠가 한 번 그 친구와 이태원에 같이 나간 적 있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미군과 웃으면서 대화도 잘 하더라고. 난 그때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큰 외국인을 처음 봐서 놀라는 중이었어. 어리기도 했던 까닭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건 내 취향이니까 존중해 줘. 난 그때 도베르만이나 그레이트 덴 같은 큰 개를 보고도 '이 개와 내가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으니까. 사실,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긴 해. 서울대공원 가서 호랑이를 보며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제압할 수 있을까? 내 팔을 하나 내주는 것과 동시에 눈을 찌르면 될까?'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거든. 물속에서 상어랑 싸우는 상상도 해 봤는데, 이 얘길 길게 하면 내가 너무 이상해 보이니까 이건 이쯤하자.
여하튼 그 친구는 영어에 자신이 있었기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팀을 이뤄 '영어 토론 대회'에 나가기로 했어. 그런데 대회를 위해 팀원들과 연습하면서부터 그 친구의 자신감이 심하게 쪼그라들었지. 가서 연습을 하다 보니까, 이게 '프리토킹' 수준으로 될 일이 아닌 거야. "두유 노 김치?" 정도의 대화를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듣기로는 거기서도 팀 내 실력별로 1순위, 2순위, 3순위 나눠서 발언 순서 및 내용의 경중을 정한다고 하던데, 친구는 '깍두기'로 참여하고 있었어. 친구는 그 팀에 자신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며 내게 따로 팀을 만들어서 나가자고 하기도 했는데, 난 거절했지. 난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에게 영어를 배운 형에게 영어를 배웠거든. 좀 복잡하지? 아무튼 백인영어와는 좀 달라서 우리끼리만 통하고 뭐 그런 게 좀 있어.
처음엔 그렇게 팀에서 '어버버'하며 발만 구르던(영어 토론회에선 환호 할 때 발을 구른다고 하더라고) 친구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아졌어. 깍두기였지만 계속 매달려서 참여하다보니 구사할 수 있는 문장과 어휘도 풍성해졌지.
대화도 마찬가지거든. 지연이 네가 '화해하려는 남친'에게 그랬잖아.
지연이 노멀로그에 있는 매뉴얼 많이 안 읽어 봤구나. 이거, 하도 해서 이제 지겨운 얘기야. 남자와 여자는 구사하는 단어의 수가 다르다는 얘기, 정서적 공감과 문제 해결이라는 대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 심경변화를 자세하게 고백하는 것을 남자는 포로로 잡혀 진술하는 듯이 느낀다는 얘기 등.
그러니까 이해하라는 얘기는 아니야. 이 얘기를 하면 왜 남자편만 드냐고 눈에 불을 켜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그런 차이가 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라는 거야. 처음엔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 들더라도 내가 왜 화났었는지를 가르쳐 주면 돼. 자기소개서도 백지 내밀고 쓰라고 하면 처음엔 잘 못 쓰지만, 가이드를 잡아주면 어느 정도 쓰기 시작하잖아. 그런 식으로 시작하라는 거야. 처음부터 완전히 흡족할 만한 답변을 기대하지 말고, 옹알이 수준의 대화라도 점점 이어가나봐. 내가 늘 얘기하잖아. 갈구지 말고 일단 가르쳐 주라고. 그게 '함께' 사랑을 하는 거야. "미안하다고? 그것 가지곤 성에 안 차니까 다시 말해 봐."라며 결재서류 집어 던지듯 내치기만 하면, 남자친구가 이 연애를 포기할 마음을 먹을 수 있으니까.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에는, 지연이 얘기와 반대 되는 사연이 참 많아. 남자가 만나기 전 날 늦게까지 놀고는 만나서 졸리다, 피곤하다 따위의 이야기만 해서 싸우는 사연들 말야. 물론 그 전날 남자는
라는 이야기를 하지. 저 이야기에서 여자가 화 난 이유는, 남자친구가 '친구랑 만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야. 그러고 나면 늘 다음 날 골골대고, 또 연애가 무슨 줄 서서 차례 기다리며 애정을 배급받는 것도 아닌데 '지금은 친구 타임', '내일은 연애 타임' 이런 식으로 나뉘니까 그게 섭섭하고 못 마땅한 거지.
여기서 보기에 지연이의 경우는 딱 반대거든. 지연이는 '학업, 과제, 알바, 알바 하는 곳의 사람들, 친구'에게 동력을 모두 쏟고 난 뒤에야 남자친구에게 남은 동력을 쏟아. 때문에 남자친구는 늘 '불만족'의 상태일 수밖에 없어.
저 위에서 다투기 직전 벌어진 상황도 한 번 봐봐. 네가 알바 끝나고 와서 피곤하니까 좀 자려고 했을 때 남자친구가 서운해 했잖아. 넌 거기에 대해서 "왜 잠도 못 자게 하고 통화 하려 하냐."라며 귀찮은 내색을 했고 말야. 그게 그저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지연이 네 말이 맞아. 피곤해서 자겠다는데 그걸 두고 자기랑 통화 안 한다고 서운해 하는 남자친구가 이상한 거지.
그런데 남자친구가 따지는 부분은 사실, "나랑 통화하지 않고 잔다."라는 게 아니라, "너에게 난 뭐냐?"라는 거거든. 남자친구의 입장에선 자신이 너의 학업이나 친구, 알바 하는 곳의 사람들에게도 전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 테니까. 학교에 있을 땐 공부해야 하니까 통화 못 하고, 알바 할 땐 알바 해야 하니까 통화 못 하고, 저녁엔 알바 하는 곳의 사람들이랑 술 마시니까 통화 못 하고, 그 다음 날엔 역시 학교에 있으니까 통화 못 하고, 학교 끝나고 통화 좀 하나 했더니 피곤하다며 잔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라는 얘기도 하게 된 거거든. 애정이 안 느껴지니까. 물론 이게 다 지연이 잘못이란 얘기는 아니야. 남자친구가 저러면서 자꾸 일을 크게 만들거든. 그는 전화 하다가 자기 기분이 상하면 그냥 끊어버리고, "그래, 또 내 잘못이지. 내가 개새*지."하면서 비꼬거나 비아냥거려.
만약 남자친구가 내게 사연을 보냈으면, 난 그에게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 같아. 마음이 울퉁불퉁 해졌다고 여자친구에게 심술부리거나, 삐쳤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데 안 삐친 척 하면서 '가시 돋친 말' 하지 말라고도 말해줬을 것 같고.
이 정도 얘기하면 이제 문제가 뭔지,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좀 감이 잡히지? 내가 위에서 한 이야기들을 남자친구와 그대로 나눠보길 바라. 남자친구는 그저
라고 거칠게 말한 걸, 내가 소제목 3번에서 알아듣기 쉽게 풀어 놨잖아. 애정이 안 느껴져서 그러는 거니까, 남친의 우선순위를 좀 높여 두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말했다고 해서 다음부터 완벽하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어. 앞서 이야기 했지만, 영어 잘 못하는 사람에게 "앞으론 짧게 말고, 길게 말해줬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다음부터 그가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손톱만큼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니까, 완벽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몰아세우기만 하진 말자고.
자 그럼, 하룻밤만 더 자면 불금이니까 다들 힘내시길!
▲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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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아 난 부대찌개 먹으러 가서, 냄비에다 밥 볶고 난 뒤 누룽지 긁으려 하다가 손 덴 적 있거든. 불을 껐으니까 식었을 거라 생각하고 잡았던 건데 뜨겁더라. 건더기 다 먹고 사리 넣어서 먹고 거기다 밥 볶는 동안에도 냄비가 달궈져 있었으니 뜨거운 건 사실 당연한 건데, 그땐 바보같이 '불을 껐으니까' 안 뜨거울 거라고 생각했어.
1. 너 혼자 풀었다고 다가 아냐.
남친과 싸우고 나서 지연이는 금방 사과를 하잖아. 카톡으로 "미안해. 고치도록 노력할게."라는 이야기 하면서 말야. 그건 냄비를 달구던 불을 끄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
그게 다가 아냐. 그건 너 혼자 푼 거지 남자친구는 풀린 게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해 봐. 너랑 민지가 싸워서 쌍방폭행으로 경찰서에 갔어. 가서는 서로 자기가 피해자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해. 진술서에도 상대가 잘못한 것만 잔뜩 써놨어.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민지가 다가와서는 일 더 크게 만들지 말고 합의하자고 해. 그러면 넌 지금까지의 태도완 달리 웃으면서 "그래, 합의하자." 할 수 있겠어? 또, 네가 합의를 안 하겠다고 하자 민지가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먼저 다가갔는데 넌 그따위 반응 밖에 안 보이냐?
그래, 갈 데 까지 가보자. 절대 합의는 없다. 콩밥 좀 먹어봐라."
그래, 갈 데 까지 가보자. 절대 합의는 없다. 콩밥 좀 먹어봐라."
라는 이야기를 해. 그러면 넌 민지의 '합의하자'는 이전 태도를 진심이라고 생각할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꺼냈던 카드라는 생각이 들 거 아냐. 민지 저거, 속으로는 한 대 더 때리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화해하자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야.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야. 남자친구는 정확히 이 부분을 너에게 계속 얘기하거든.
"네가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려는 게 진짜인지 난 모르겠어.
넌 사과를 위해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화난 상태잖아.
그럼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넌 사과를 위해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화난 상태잖아.
그럼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남자친구가 참 말을 못 해서 나도 답답하긴 한데, 저 말은, "넌 왜 사과를 위한 사과를 하냐? 본심은 그게 아니면서 일단 사과부터 꺼내고, 그 사과를 내가 얼른 받지 않으면 감춰두었던 본심 꺼내서 나를 더 몰아세우지 않느냐."라는 거거든.
지연아, 이거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만 해도 그렇거든. 우리 집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만 하더라도, 택배 아저씨 왔을 때 자꾸 짖어서 내가 혼내면, 그 다음엔 불러도 이불 위에만 올라가 있지 나한테 오지 않아. 다시 오게 만들려면 좀 어르고 달래야 해.
"혼내는 거 아냐, 난 너에게 적의가 없어.
아깐 잠시 네가 짖어서 그랬던 거지,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아깐 잠시 네가 짖어서 그랬던 거지,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라는 뜻을 보여주고 난 뒤에야, 간디도 마음을 풀고 다시 내게 오거든. 그럼 나도 간디를 쓰다듬어 주고 우리 사이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강아지 얘기에 다시 비유하자면, 지연이 넌 화해를 위해서 "이리와~ 아까 혼내서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강아지가 안 오면 안 온다고 또 혼내는 것과 같아. 그러니까 강아지도 널 믿을 수 없겠지. 분명 안 혼낸다며 이리 오라고 해 놓곤, 오지 않자 신문지 둘둘 말아서 혼내려 하니까.
2. 옹알이부터 시작해도 돼.
내 친구 중에, 해외에 종종 드나든 까닭에 고교시절부터 영어를 잘 하던 친구가 있어. 언젠가 한 번 그 친구와 이태원에 같이 나간 적 있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미군과 웃으면서 대화도 잘 하더라고. 난 그때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큰 외국인을 처음 봐서 놀라는 중이었어. 어리기도 했던 까닭에
'이 미군과 내가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건 내 취향이니까 존중해 줘. 난 그때 도베르만이나 그레이트 덴 같은 큰 개를 보고도 '이 개와 내가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으니까. 사실,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긴 해. 서울대공원 가서 호랑이를 보며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제압할 수 있을까? 내 팔을 하나 내주는 것과 동시에 눈을 찌르면 될까?'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거든. 물속에서 상어랑 싸우는 상상도 해 봤는데, 이 얘길 길게 하면 내가 너무 이상해 보이니까 이건 이쯤하자.
여하튼 그 친구는 영어에 자신이 있었기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팀을 이뤄 '영어 토론 대회'에 나가기로 했어. 그런데 대회를 위해 팀원들과 연습하면서부터 그 친구의 자신감이 심하게 쪼그라들었지. 가서 연습을 하다 보니까, 이게 '프리토킹' 수준으로 될 일이 아닌 거야. "두유 노 김치?" 정도의 대화를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듣기로는 거기서도 팀 내 실력별로 1순위, 2순위, 3순위 나눠서 발언 순서 및 내용의 경중을 정한다고 하던데, 친구는 '깍두기'로 참여하고 있었어. 친구는 그 팀에 자신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며 내게 따로 팀을 만들어서 나가자고 하기도 했는데, 난 거절했지. 난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에게 영어를 배운 형에게 영어를 배웠거든. 좀 복잡하지? 아무튼 백인영어와는 좀 달라서 우리끼리만 통하고 뭐 그런 게 좀 있어.
처음엔 그렇게 팀에서 '어버버'하며 발만 구르던(영어 토론회에선 환호 할 때 발을 구른다고 하더라고) 친구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아졌어. 깍두기였지만 계속 매달려서 참여하다보니 구사할 수 있는 문장과 어휘도 풍성해졌지.
대화도 마찬가지거든. 지연이 네가 '화해하려는 남친'에게 그랬잖아.
"나는 오빠에게, 내게 뭐가 미안한지 듣고 싶어."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에 대해 오빠가 알고,
그거에 대해 말해줘야 내 마음이 풀리지."
"내 기분이 나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난 그런 사과 하나도 받고 싶지 않아."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에 대해 오빠가 알고,
그거에 대해 말해줘야 내 마음이 풀리지."
"내 기분이 나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난 그런 사과 하나도 받고 싶지 않아."
지연이 노멀로그에 있는 매뉴얼 많이 안 읽어 봤구나. 이거, 하도 해서 이제 지겨운 얘기야. 남자와 여자는 구사하는 단어의 수가 다르다는 얘기, 정서적 공감과 문제 해결이라는 대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 심경변화를 자세하게 고백하는 것을 남자는 포로로 잡혀 진술하는 듯이 느낀다는 얘기 등.
그러니까 이해하라는 얘기는 아니야. 이 얘기를 하면 왜 남자편만 드냐고 눈에 불을 켜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그런 차이가 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라는 거야. 처음엔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 들더라도 내가 왜 화났었는지를 가르쳐 주면 돼. 자기소개서도 백지 내밀고 쓰라고 하면 처음엔 잘 못 쓰지만, 가이드를 잡아주면 어느 정도 쓰기 시작하잖아. 그런 식으로 시작하라는 거야. 처음부터 완전히 흡족할 만한 답변을 기대하지 말고, 옹알이 수준의 대화라도 점점 이어가나봐. 내가 늘 얘기하잖아. 갈구지 말고 일단 가르쳐 주라고. 그게 '함께' 사랑을 하는 거야. "미안하다고? 그것 가지곤 성에 안 차니까 다시 말해 봐."라며 결재서류 집어 던지듯 내치기만 하면, 남자친구가 이 연애를 포기할 마음을 먹을 수 있으니까.
3. 티내는 남친과 놀고 싶은 여자.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에는, 지연이 얘기와 반대 되는 사연이 참 많아. 남자가 만나기 전 날 늦게까지 놀고는 만나서 졸리다, 피곤하다 따위의 이야기만 해서 싸우는 사연들 말야. 물론 그 전날 남자는
"내일 만나는 것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놀겠다는 건데, 왜 그걸 이해 못 해주냐.
우리는 내일 만나는 거 아니냐. 오늘은 친구들과 보내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우리는 내일 만나는 거 아니냐. 오늘은 친구들과 보내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이야기를 하지. 저 이야기에서 여자가 화 난 이유는, 남자친구가 '친구랑 만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야. 그러고 나면 늘 다음 날 골골대고, 또 연애가 무슨 줄 서서 차례 기다리며 애정을 배급받는 것도 아닌데 '지금은 친구 타임', '내일은 연애 타임' 이런 식으로 나뉘니까 그게 섭섭하고 못 마땅한 거지.
여기서 보기에 지연이의 경우는 딱 반대거든. 지연이는 '학업, 과제, 알바, 알바 하는 곳의 사람들, 친구'에게 동력을 모두 쏟고 난 뒤에야 남자친구에게 남은 동력을 쏟아. 때문에 남자친구는 늘 '불만족'의 상태일 수밖에 없어.
저 위에서 다투기 직전 벌어진 상황도 한 번 봐봐. 네가 알바 끝나고 와서 피곤하니까 좀 자려고 했을 때 남자친구가 서운해 했잖아. 넌 거기에 대해서 "왜 잠도 못 자게 하고 통화 하려 하냐."라며 귀찮은 내색을 했고 말야. 그게 그저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지연이 네 말이 맞아. 피곤해서 자겠다는데 그걸 두고 자기랑 통화 안 한다고 서운해 하는 남자친구가 이상한 거지.
그런데 남자친구가 따지는 부분은 사실, "나랑 통화하지 않고 잔다."라는 게 아니라, "너에게 난 뭐냐?"라는 거거든. 남자친구의 입장에선 자신이 너의 학업이나 친구, 알바 하는 곳의 사람들에게도 전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 테니까. 학교에 있을 땐 공부해야 하니까 통화 못 하고, 알바 할 땐 알바 해야 하니까 통화 못 하고, 저녁엔 알바 하는 곳의 사람들이랑 술 마시니까 통화 못 하고, 그 다음 날엔 역시 학교에 있으니까 통화 못 하고, 학교 끝나고 통화 좀 하나 했더니 피곤하다며 잔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넌 내 목소리도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고, 그냥 내가 싫은 것 같아."
라는 얘기도 하게 된 거거든. 애정이 안 느껴지니까. 물론 이게 다 지연이 잘못이란 얘기는 아니야. 남자친구가 저러면서 자꾸 일을 크게 만들거든. 그는 전화 하다가 자기 기분이 상하면 그냥 끊어버리고, "그래, 또 내 잘못이지. 내가 개새*지."하면서 비꼬거나 비아냥거려.
만약 남자친구가 내게 사연을 보냈으면, 난 그에게
"야, 일단 피해의식을 좀 버려.
넌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까봐 늘 전전긍긍 하는 것 같아.
여자친구가 주말에 친구랑 영화를 보려고 하면
'내가 예매할 거야. 나랑 봐!'하면 되잖아.
그런데 넌 '그래, 너는 나보다 친구가 더 중요한가 보구나. 재미있게 봐라.'하고 있잖아.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특기가 포기야?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 기뻐? 즐거워?
왜 자꾸 상황을 시궁창으로 만들어?
툭하면 판 엎어 놓고 '내가 피해자다.'하지 말고, 바짝 붙어서 네가 해결해."
넌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까봐 늘 전전긍긍 하는 것 같아.
여자친구가 주말에 친구랑 영화를 보려고 하면
'내가 예매할 거야. 나랑 봐!'하면 되잖아.
그런데 넌 '그래, 너는 나보다 친구가 더 중요한가 보구나. 재미있게 봐라.'하고 있잖아.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특기가 포기야?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 기뻐? 즐거워?
왜 자꾸 상황을 시궁창으로 만들어?
툭하면 판 엎어 놓고 '내가 피해자다.'하지 말고, 바짝 붙어서 네가 해결해."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 같아. 마음이 울퉁불퉁 해졌다고 여자친구에게 심술부리거나, 삐쳤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데 안 삐친 척 하면서 '가시 돋친 말' 하지 말라고도 말해줬을 것 같고.
이 정도 얘기하면 이제 문제가 뭔지,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좀 감이 잡히지? 내가 위에서 한 이야기들을 남자친구와 그대로 나눠보길 바라. 남자친구는 그저
"나한테 네가 좀 집착했으면 좋겠다."
라고 거칠게 말한 걸, 내가 소제목 3번에서 알아듣기 쉽게 풀어 놨잖아. 애정이 안 느껴져서 그러는 거니까, 남친의 우선순위를 좀 높여 두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말했다고 해서 다음부터 완벽하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어. 앞서 이야기 했지만, 영어 잘 못하는 사람에게 "앞으론 짧게 말고, 길게 말해줬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다음부터 그가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손톱만큼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니까, 완벽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몰아세우기만 하진 말자고.
자 그럼, 하룻밤만 더 자면 불금이니까 다들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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